테리가타(Therigatha, 長老尼偈)지난 2009년 본지에 ‘낭의 소리’로 불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제하 스님(고관사 한주)이 초기 경전 가운데 ‘테리가타(Therigatha, 長老尼偈)’에 대해 격주로 연재한다.
제하 스님은 경북 청도 운문사 강원을 졸업한 후 인도 푸나와 델리대학교에서 8년 동안 산스크리트어를 전공하고 현재 조천읍 조천리 고관사에서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싯다르타 왕자 이야기’를 번역 출간했다.
이번 글과 함께 실리는 그림은 설치미술가 희상 스님(제주시 봉개동 안국사) 작품으로 희상 스님은 운문사 승가대학을 마치고 동국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브레멘 국립조형예술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리플롬․마이스터 과정(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동국대 미술학과에서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편집자주>
덕 높은 비구니 스님들이아라한과 성취한 후 읊은‘기쁨에 찬 게송’ 522편
해제(解題)
초겨울 산의 나무는 조촐하다.
한여름의 무성한 짙푸른 나뭇잎도, 가을의 화려함도 없다.
늙은 수행자의 마른 몸 같다.
불필요한 그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은 수행자의 당찬 모습 같다.
그 분의 존재만으로도 이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초기경전은 겨울나무 숲 같다.
나무 자체로 빛나는 겨울나무로 가득한 산은 저 끝까지 확연히 보인다.
무성한 가지만 보였던 여름 숲과는 달리 겨울 산은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팔리경전은 겨울 숲 같다.
형이상학의 부질없음과 화려한 수식이 빠진 팔리경전에 나타난 부처님의 가르침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간결하나 깊은 울림으로 잠든 영혼을 깨운다.
대승경전에 익숙한 우리들이 초기 경전을 처음 대할 때 느끼는 낯설음과 충격에 가까운 신선함은 그래서 일 것이다.
짙푸른 여름 숲의 나무도, 가을 산의 화려한 단풍으로 장식한 나무도, 겨울 산의 앙상한 나무도 다 같은 나무다.
계절이 바뀌고 나무의 모양새가 변했어도 나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팔리경전의 간결함속에서도 대승경전의 화려한 수식 속에서도 부처님 말씀은 그대로 부처님 말씀이듯.
팔리경전의 ‘쿠타카 니까야’에 속하는 ‘테리가타’는 ‘장로니게’로 알려져 있다.
부처님 당시 장로니(테리․Theri)라 일컬어지던 덕이 높고 수행을 겸비해 대중의 존경을 받는 비구니 스님들이 아라한과를 성취한 후 읊은 기쁨에 찬 게송(udana․감흥어)이다.
우리나라 큰 스님들의 오도송이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비구니 승가가 마하빠자빠티 고타미의 출가로 성립된 후 많은 여인들이 출가를 했다.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서 여성 수행자가 생긴 종교는 불교가 처음이다. 여성의 출가는 전 세계 여성사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다.
아버지에서 남편, 그리고 아들에게로 이어지던 의지와 종속의 소극적이며 수동적이던 여성의 삶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자유로운 독립적인 삶으로 일대전환이 이루어진다.
누구누구의 딸에서 아무개의 아내로 다시 아무개의 엄마로 이어지던 삶이 오롯한 자신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물리적 변화 만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 혁명적인 여성의 출가를 담마팔라 스님은 장로니게 주석서(테리가타 아타카타)에 이렇게 표현했다.
“비구니 승가가 잘 확립되었을 때, 보통 사람들은 여러 마을, 작은 마을, 지방, 왕국의 수도 등에서 좋은 가정의 여인들과 좋은 가정의 며느리들, 또 좋은 가정의 소녀들이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 법의 좋은 가르침, 승가의 잘 확립된 상태를 듣고 가르침을 확신해 윤회에 혐오가 생겼다.
그래서 자신의 남편, 부모와 친척들에게 허락을 받고 가르침에 헌신하여 출가했다. 출가 후에는 계행을 갖추고 스승과 그 장로들에게서 가르침을 얻고자 노력하고 정진하고 곧 아라한과를 실현했다. 그들이 ‘기쁨에 찬 게송(Udana․감흥어) 여기저기에서 말한 게송을 후에 결집을 하신 분들이 하나로 모아 각각의 장으로 합송을 진행했다. 이것을 장로니게라고 불렀다.”
장로니게는 총 522편의 게송으로 이루어졌고 구성은 게송의 숫자로 나뉜다. 즉 한 게송으로 이루어진 게(偈)는 1집에 속하며 두 게송으로 이루어진 게는 2집으로, 이런 식으로 가장 긴 70여개의 게송은 대집으로 편찬되었다.
장로니게의 주석서에는 73명의 장로니의 이름과 전생부터 지금까지의 삶과 출가 동기, 게송을 읊게 연유들이 사실적으로 자세히 설명되었다.
장로니게의 내용은 부처님에 대한 찬탄과 장로니 스님들의 깨달음의 경지, 수행담, 출가 동기 등이 솔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표현되었다.
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해주신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장로니는 부처님의 게송을 자신의 게송으로 삼아 전하기도 한다.
볕바른 가을 어느 날 노스님이 갓 출가한 어린 스님과 함께 잔디밭의 풀을 뽑으며 당신이 살아 온 세월을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는 것 같다.
솔직 담백한 자신의 이야기가 권위적이고 교훈적인 훈계나 논리 정연한 교리의 설명보다도 더 강한 종교적 감화력을 갖는다.
더불어 그들이 살아온 고단한 세속의 삶이 구도를 향한 강한 원동력이 되어 마침내 아라한 과를 성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쌉쌀한 이른 봄의 코를 찌르는 매화 향은 뼈에 사무치는 지난겨울의 추위가 만들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