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모독하는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2)
가사를 쓴 팀 라이스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는 유다의 눈으로 본 예수이고, 예수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이 작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라 말했다.(<Seventeen>) <수퍼스타>는 예수의 12제자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판 가룟 ‘유다(Judas Iscariot)의 시각’ 으로 본 예수의 마지막 날들을 그린 뮤지컬이다. 극중 유다는 “예수를 팔 수 밖에 없는 운명에 강요된 억울한 인물”로 묘사된다. 라이스와 웨버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에 대해 인간적 연민과 함께, 그에게 상당히 ‘존중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라이스는 “복음서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 같지만, 예수와 유다의 묘사에 대해서는 큰 오류가 있는 것 같다”며, “복음서에 나오는 유다는 평범한 인물이다. (후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말할 때는 늘 통렬한 비판이 있어왔다. 그러나 나는 유다가 제자 중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며, 바로 그런 점이 그가 그런 ‘궁지’에 빠지게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라이프지> 71년). 유다는 아무런 죄가 없고, 과연 똑똑하기 때문에 ‘궁지’에 빠진 ‘억울한’ 인물인가? 복음서에 의하면 유다는 제자단의 회계(전대)를 맡은 자였다.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공금을 챙긴 사람이다. 마리아가 고가의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을 때 그는 “왜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는가“라 불평하였는데, 정작 그의 본심은 그 돈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려는 것이었다.(요 12:6) 그는 은 30을 받고 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겼다. 그가 왜 예수를 팔아넘겼는가? “마귀가 그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눅 22:3, 요 13;27) 성경은 유다를 탐욕에 빠진 위선자, 마귀의 종으로 정죄하고 있다. 예수는 그를 ‘멸망의 자식’(요17:12)이라 했다. 그는 결국 저주를 받아 목을 매어 자살했다. 두 작사.작곡가의 유다에 대한 ‘관대한 시선’은 기본적으로 성경(복음서)에 대한 무지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불신의 눈으로 성경을 비판적, 악의적으로 해석한데 따른 것이다. 극중 유다는 하나님에게 자신을 선택해 범죄자로 만들고 죽게 한 책임을 물으며 하나님을 ‘비열한 범죄자’(your foul bloody crime..)라 비난한다. 하나님을 중죄인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수퍼스타>는 시종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수퍼스타>에 나오는 곡 중 가장 대중적인 발라드 <I don't know how to love him(그분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에서 매춘부로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는 언급이 없다. 이것도 성경에 대한 피상적 이해의 결과다)는 예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He's a man, he's just a man"(그는 남자, 그저 남자일 뿐야)”라 노래한다. 나아가, “이전에 난 많은 남자들을 가졌었지, 모든 면에서 그도 그저 한 남자일 뿐"이라며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이 ‘안았던’ 수많은 남자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한 남자에 불과하다고 노래한다. 이 가사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예수와 마리아와의 성적(性的)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영화, 소설 등에서 종종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사랑한 창녀, 나아가 예수가 사랑한 여인으로 그리는데 이는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저급한 인물로 비하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퍼스타>는 예수의 신성뿐 아니라, (죄를 모르시고 그 안에 죄라고는 전혀 없으신) 순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덕성까지 부정한다.
또한, 극중 예수는 대단히 우유부단하며, 혼란스럽고, 비참한 인물로 묘사된다. <수퍼스타>의 예수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고 혼란이 가득한 나약한 인간이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과, 자신이 왜 죽어야만하는지를 놓고 갈등과 혼란에 빠진다. 예수는 그에게 밀려드는 군중들을 향해 “나에게 강요하지마, 난 능력이 없다”며 “너희 스스로 자신을 치료하라”(heal yourselves)”고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에게 “자신은 3년간의 사역으로 인해 피곤하고 지쳤는데, 왜 죽음의 잔을 마셔야하느냐"며 불평을 쏟아낸다. “왜 내가 죽어야 하느냐,(Why should I die? Oh why should I die?) 죽으면 무슨 보상이 있느냐(If I die what will be my reward?)”며 신랄하게 하나님께 따진다.(노래 <겟세마네>중) 예수는 “꼭 죽어야한다면 마음 변하기 전에 죽여달라”고 항의조의 볼멘 소리를 하지만, 이런 태도는 성경의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나타난 주님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주님은 자신 앞에 놓인 엄청난 고난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 속에 처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드리지만, 그의 기도에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나 불경스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예수는 결국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며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할 것을 결단한다. 성경의 예수님은 시종 자신의 사명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머뭇거리지 않으시고 골고다를 향해 나아가셨다. 주님은 결코 우유부단한 분이 아니셨다. <수퍼스타>의 예수는 죄 없으시고, 신실하시고, 겸손하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