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벼랑 끝에 몰린 한국농업
우리나라 농업은 급속한 시장개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UR협상타결(1994년) 이후 농산물 수입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수입액은 1993년 78억달러에서 1997년 112억달러로 늘었다가, 1999에는 IMF 여파로 86억달러에 그쳤으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저가 농산물 수입이 전체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수입농산물의 급증은 국내 농산물의 공급과잉과 가격하락을 초래하여, 농가수지가 악화되고 결국 농가부채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원자재가격은 크게 올랐으나 상당수 농산물의 가격이 오히려 떨어져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최근 농민들이 부채 탕감을 요구하며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격렬한 시위에 나설 정도로 한국 농업은 위기 상황이다. 전체 농가부채는 1999년말 기준, 25조 5,600억원에 이르며, 가구당 부채규모는 1,850만원이다.
농업과 농촌의 취약성은 수십년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이다. 60년대 이후 GDP대비 농림어업 비중은 38.7%(61년)에서 5.1%(99년)로 줄어들었으며, 식량자급도는 93.9%(65년)에서 29.4%(99년)로 줄었다. 농촌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생산활동이 위축되고 농촌사회가 空洞化되었다. 또한 정부의 일방적인 지원위주 농업정책, 정치권의 인기영합 행태가 결과적으로 농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정부는 1992∼98년간 농어촌구조개선 투융자사업에 42조원이 투입되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앞으로 뉴라운드 농업협상,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중국의 WTO 가입 등이 우리 농업에 위협요인이 될 전망이다. 농업 및 다른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경쟁력있는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농업도 비즈니스 마인드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디어와 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Ⅱ. 새로운 가능성, 벤처농업의 성공사례
국내 농업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벤처의 새 싹이 돋아나고 있다. 농지, 시설 등의 하드 기반, 장기간 축적된 노하우에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접목되어 벤처형 농업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 제조업체가 IT기술을 도입하여 디지털 전환(e-Transformation)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농업벤처는 대단한 하이테크는 아니지만 아이디어, 기술개발, 리스크부담 등의 측면에서 벤처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4월 벤처농업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300여 농업인들이 자발적으로「벤처농업포럼」을 조직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성공사례들은 농업도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이오, 디지털 등 신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면서 마케팅과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벤처농업의 유형과 성공사례
청매실 농원은 70년간 매실나무를 키우고 가공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국내 최고의 노하우를 축적하였다. 주변 농가를 포함하여 연간 150톤의 매실을 생산하고 있고, 매실농축액, 매실장아찌, 매실주 등 매실식품들을 개발하여 연간 30억원어치를 판매하고 있다. 철저한 장인정신, 유기농법, 선진기법 벤치마킹 등이 어우러져 매실 명품을 만들어 내었고 소비자 신뢰를 얻는데도 성공했다. 앞으로 매실제품을 다각화하면서 농원을 관광상품화할 예정이다.
국순당은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백세주제품을 대중화하는데 성공했다. 50년간 축적한 발효기술 바탕 위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여 주류시장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기존 업체들이 구축해 둔 장벽을 뚫기 위해 유통망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고, 특정 지역에서 먼저 기반을 다진 후 인근으로 넓혀가는 마케팅전략을 사용했다.
강릉 부연동주민들은 토종꿀 하나로 오지마을를 부자마을로 변모시켰다. 부연동은 18가구 중 15농가가 토종꿀을 생산하고 있고, 4,000통에서 연간 8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주변 지인, 도시의 농협, 여론주도층 등에 선물을 하고서 입소문을 통해 고정고객을 확대하는 마케팅전략을 사용했다.
아이디어와 기술을 접목하는 벤처농가도 등장하고 있다. 경남 통영 관상조류농원은 새를 사육하여 학교, 동물학습장, 음식점 등에 판매함으로서 연간 3억원 이상의 고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 마장농협에서는 인삼쌀을 개발하여 2억3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인삼쌀은 인삼농축액으로 쌀 표면에 미세한 피막을 입힘으로서 쌀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인삼의 효능을 갖는다.
20년간 황칠 연구에 전념한 정순태씨는 200여년간 단절되었던 황칠을 부활시켰다. 황칠나무는 한반도 남단에만 자생하는 토종식물로 여기서 채취된 황칠은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으로 수출되었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 황칠은 정신을 안정시키는 향을 발산하고 도료와 염료, 전자파흡수 등에서 탁월한 특성을 나타내어 앞으로 고수익이 기대된다.
오키드바이오텍은 바이오기술과 전통적인 종묘생산 기술을 결합하여 고품질, 고부가가치의 호접란 종묘를 개발할 계획이다. 호접란은 꽃이 아름답고 수명(2∼6개월)이 길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반도체에 버금가는 고부가가치 품목이다. 국내 종묘시장은 연간 200억원, 개화주 시장은 500억원 정도이며, 세계 시장은 50억달러로 추정된다. 그러나 국내 호접란 업계는 영세성과 기술취약으로 인해 경쟁력이 없어서 매년 천만본 이상의 종묘를 수입(70∼100억원 규모)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산물을 가공하여 해외로 수출하는 기업도 있다. (주)장생도라지에서는 분말, 농축액, 한방차 등 도라지 가공식품을 개발하여 연간 3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이중 5억원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 이성호대표는 1954년부터 다년생 도라지 재배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1970년 재배기술을 터득했고 1991년에는 특허를 취득했다. 그는 '오래된 도라지가 산삼보다 약효가 낫다'는 옛말에 착안하여 40년간 도라지 재배법을 연구했다. 도라지는 일반재배법으로 키우면 수명이 3년밖에 되지 않으나 그는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25년 이상된 도라지를 재배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기술지도를 받아 주변농가 240가구가 14만평에 장생 도라지를 재배하여 연간 5억5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농촌지역을 관광상품화하는 사례도 있다. 충남 금산군은 하루 30억원(31톤), 연간으로는 2,000억원어치의 인삼이 거래되는 국내 인삼산업의 중심지이다. 금산군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인삼을 활용하여 매년 축제를 개최하며, 올해는 60만명이 방문하였으며 500억원의 판매를 기록했다. 금산인삼축제는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농업축제로 자리잡았다. 국내 최고의 휴양지인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귤 농장을 하는 민명원씨는 1996년부터 민박을 시작했다. 그는 신혼부부를 포함하여 연간 5천명의 숙박객, 4만명의 당일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객실 10개를 갖춘 소규모 숙박시설이지만 고급 호텔에서 느낄 수 없는 가족같은 따뜻함과 친절함으로 차별화하여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Off-line과 On-line을 결합한 기업도 있다. (주)쌀맛나는 세상은 쌀 유통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퀵서비스 사업을 하던 구자준씨가 1998년 회사를 설립하였다. 쌀가게들을 전화망으로 묶어서, 소비자가 쌀을 주문하면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가 10∼30분 이내에 배달한다. 전화망, 인터넷(On-line)과 전국 1,500개의 가맹점(Off-line)을 결합하여 작년 1,16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000년 3천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동수씨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첨단 농기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섬에서 홀로 닭 4만마리를 키우는 사이버 양계인으로 아침마다 이메일을 점검한다. 인터넷을 활용하여 양계 유통정보를 분석하여 출하시기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다른 양계 농가들이 손해를 볼 때도 이동수씨는 연간 3억원 매출에 4,000만∼5,000만원의 이익을 올렸다. 그는 올해 8월 시사주간지 타임지에도 소개되었으며 "인터넷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한다. 내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늙은 농부에 그쳤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Ⅲ. 한국농업의 활로
농업이 시대조류에 편승하지 못하면 국내 농업의 기반마저 붕괴되어 국가경제에도 큰 짐이 될 수 있다. 농업은 중소기업과 함께 국민경제의 자립??균형발전을 지탱하는 부문이다. 농업이 갖는 한계를 감안하여 노동, 토지, 자본 등 물적요소 확대보다는 아이디어와 기술, 창의력에 기초한 지식기반농업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제 농업에도 비즈니스 찬스가 도래했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시대의 조류는 농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사업 아이디어, 비즈니스 감각을 가진 능력있는 농가에 있어서 요즘 농업은 흥미있는 사업이 되고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으며 농업인의 경영능력과 사고방식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고 있다. 향후 기술혁신 노력과 경영능력이 있는 농업인은 번영하게 될 것이며, 역으로 기술혁신이나 경영합리화의 능력이 부족한 농업인은 쇠퇴하게 될 것이다.
한국농업이 갖고 있는 잠재적 경영자원과 벤처정신을 조화시켜 성공사례를 확산시키고 벤처농업의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현재의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좋은 토양으로 바뀔수 있다. 의외로 농업분야에 벤처화가 가능한 아이템들은 무궁무진한데 사업화되지 못하고 사장돼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금 부터라도 벤처정신에 눈을 돌려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첫째, 고부가가치 농업비즈니스를 창출하여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환경농산물, 화훼, 건강식품, 생약 등 시장이 유망하고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특화한다. 인터넷, 문화, 관광 등을 접목하여 농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쟁력과 마케팅 마인드만 있으면 해외수출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개방이 불가피하고 국제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품목은 고통을 감수하고서 구조조정을 지속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농업경쟁력을 지원하는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 나가야 한다. 농업인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젊은층이 유입되도록 농촌의 생활 여건을 개선해나가며 농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영농기술, 시장정보 등 콘텐츠를 제공하도록 한다.
셋째, 농업인 개개인이 글로벌화, 디지털혁명, 생명중시 등 여건변화가 주는 기회를 인지하고서 벤처정신으로 도전해야 한다. 농업 분야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정체되었으나 최근 들어 인터넷 확산, 게놈 프로젝트 추진 등으로 인해 새로운 기회들이 나타나고 있어 이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한다. 벤처농업이 기존 농업과 다른 점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넷째, 유망한 가족농이나 영농법인을 벤처기업 형태로 바꾸고 품목??지역별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한다. 농협 조직을 생산자 주도의 영리법인으로 전환하고 네트워크에 포함시키고, 미국, 일본 등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교포들을 연결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사회 각 분야가 지식기반, 디지털 시대로 변화함에 따라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농업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농업도 이런 흐름에 따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면서 경쟁력을 키워가야 할 시기이다. 농업인 개개인이 변화의 기회를 자각하고, 창의력과 벤처정신을 조화시켜 개성있는 농업비지니스(Agri-Business)를 창출한다면 농업도 얼마든지 첨단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분야로 바뀌고 있다.
농업분야에 벤처라는 의미는 지금까지 생산에만 급급하던 농업분야에 소비자 즉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을 인식시키고, 변화를 싫어하는 농업계에 디지털경제에 걸맞는 경영과 마케팅능력을 불어넣는 의미이다. 그 동안 농업분야가 뒤떨어져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경영과 마케팅이라고 볼 때 이 분야의 수혈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벤처정신이라는 것은 과거와 같이 정부에 의존하는 농업이 아닌 개개인의 창의력이 중요시되는 농업으로 발전시키고, 이러한 토대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벤처 정신이다. 이러한 벤처정신의 도입은 멋진 변화이기에 앞서 우리 농업의 중요한 생존수단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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