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댁의 아픈 손가락(8)
서울 한강 변 큰아들네 집 거실이 분주하다. 회사 일정을 조정하느라 늦게 입국한 둘째 광홍이 내외와 미국에 유학 가 있던 광율이의 아들까지 부들댁을 향한 애틋한 마음들이 모여 ‘부들댁의 행복찾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카카오톡으로 부들댁의 병세와 잃어버린 딸을 향한 애끓는 심정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한 탓에 각각의 전공 분야를 활용해 아이디어들을 짜낸다. 먼저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박사 광홍이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아이비리그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부들댁의 큰손자 하람이가 네트워크를 활용한 방안과 언론 미디어를 통한 고모찾기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평소 똑똑하기로 소문난 큰며느리 미영이지만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 감히 대화에 낄수 조차 없다.
미영은 분주히 주방을 드나들며 과일과 커피를 준비한다. 평소 집안일은 도우미들의 손을 빌린 터라 과일 깎는 손놀림이 어둔하다. 하지만 커피머신에서 원두커피를 내리는 솜씨만큼은 바리스타 뺨치는 솜씨다. 한참을 씨름한 뒤 화려한 쟁반 위에 가지런히 놓인 당도 높은 낯선 과일과 구수한 향내의 아메리카노를 내어 놓았지만 커피 한잔 외엔 손댈 겨를 없이 대화에 골몰한다.
한편 부들댁이 다니는 안동교회에서는 중보기도대라는 특별 기도팀들이 모여 부들댁의 이름을 적어놓고 온 힘을 다해 기도하고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교회의 1층 기도실은 지은지 86년이 지난 연륜을 말해 주는 듯 고요함 속에서도 힘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주곡지 집사는 부들댁의 이름이다. 곡(골짜기-谷) 지(그칠-止) 내리 딸을 낳은 아버지가 딸을 그만 낳고 아들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일게다. 아니면 힘든 골짜기의 삶을 끝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름대로 부들댁은 골짜기의 험난한 삶을 끝내고 평탄하고 화려한 새 삶을 살아갈 자격이 주어졌지만 현실은 부들댁을 놓아주지 않았고 부들댁의 아픈 사연을 들은 이웃 사람들은 무심한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안동교회는 새벽기도회 때마다 주곡지 집사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가 이어졌고 안타까움에 내일처럼 눈물지으며 기도하는 교인들이 많아졌다.
부들댁과 광율이 모자간의 마지막 여행은 하루 하루가 행복 그자체 포근한 일정으로 이어진다. 전북 고창 선운사 초입에 자리잡은 맛집으로 소문난 풍천장어집을 찾아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장어죽을 주문하고 가지런히 불판 가득 장어를 구워 연한 부분만 작게 잘라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린다.
며칠간의 여행 중 기운은 쇠하지만 아들의 정성에 입맛은 돌아온 듯 간장에 양념한 장어구이 몇 점이 부들댁을 힘솟게 한다.
1주일 일정으로 시작한 모자간의 행복한 여행은 전남 여수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남해를 거쳐 고향 안동 땅을 밟고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기력이 쇠해가는 부들댁의 건강 상태를 염려한 아들의 결단으로 7일 중 5일 만에 여수까지만 갔다가 호남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병실에 돌아온 부들댁은 아들과의 행복한 여행이 꿈만 같다. 그리고 며칠 전 꾸었던 빨간 원피스를 입고 엄마를 목놓아 부르짖던 딸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간신히 진정한 마음을 흔들기만 한다.
여러 줄의 링거를 꽂고 잠시 낮잠을 자는 중에도 천정의 전등 불빛이 손짓하는 딸의 모습으로 보이고 머리맡 가습기의 수증기가 큰 강물처럼 밀려온다.
광율은 담당 교수와 상담을 한다. 신경외과 팀에서 시술한 뇌동맥류는 정상으로 회복되어 다행인데 췌장의 종양이 말기의 상황이라 항암치료를 하는 것은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담당 교수 역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노라고 함께 기도하자고 한다. 잦은 지방 근무로 늦게 장로 임직을 받은 광율은 담당 교수가 이웃 교회의 장로라는 말을 듣고 더욱 믿음의 동지를 주치의로 만나게 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제 부들댁의 남은 날은 많지 않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 광율, 광홍이와 큰손자 하람이 까지 곁에 있으니 세상 부러울게 없다.
부들댁의 병실 소파엔 노트북 두 대와 요상하게 생긴 기계들이 놓여져 있다. 광홍이와 손자 하람이가 연신 두들겨대며 무엇엔가 몰두한다.
연구소에서 가져온 빅데이터들을 정리하면서 의심이 가는 몇 개의 좌표들을 집중 분석한다. 안동신시장을 유난히도 많이 검색한 흔적들, 딸을 잃어버린 엄마의 사연들 등 빅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작은 단초들을 찾아 퍼즐을 맞추어 가듯 하나 하나 접근한다.
우선 부들댁의 유전자검사를 위해 한국유전자검사원에 신청을 하고 택배로 온 키트에 검체를 채취해 보냈다.
그리고 빅데이터분석을 통해 얻은 좌표 몇 곳의 기관들을 방문하여 가족을 찾는 이들의 사연과 내용들을 입력하고 또 분석한다. 그러기를 여러 날 지친 기색 없이 광홍이와 손자 하람이의 밤을 지새우는 일정들이 이어지고 세 곳으로 압축되어진 좌표에서 가족을 찾기 위해 의뢰한 유전자 정보들과 맞추어 보기로 한다. 피를 말리는 기다림이 이어진 후 부들댁이 얻은 3개월의 시한 중 한 달을 남겨두고 검사원으로부터 소식이 전해졌다. 검사자 유전자 DNA 염기변이가 99% 이상 동일한 사람이 있다는 희소식이었다.
전화기 너머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를 감지한 부들댁은 “이게 왠 일인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연신 아멘 아멘이다.
기관의 도움을 받아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은 뒤 만남의 자리를 가지기 위해 장소를 정했다. 행여나 어머니가 너무 놀라 큰 일을 당할까봐 아들은 신촌세브란병원 앞 철길 옆에 있는 카페에서 먼저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은 12시 였으나 조급한 마음에 11시에 나가 일찍부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11시 30분이 되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천상 어머니의 모습과 닮은 여인이 들어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두툼한 입술 누가 보아도 친근한 이웃의 모습, 짙은 감색 통큰 바지에 체크무늬 니트 상의와 하얀 머플러를 하고 종이가방을 든 모습은 아들네 집을 방문한 어머니 부들댁과 너무나도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넓은 카페 안이었지만 손님이 뜸한 시간이라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닮은 두 사람이었다. 정신을 차린 광율은 차를 시킬 여유조차 없이 탁자에 놓인 냉수를 연신 들이키며 지난 시간을 거슬러간다. 아쉽게도 앞자리에 앉은 여인은 많은 기억들을 잊어버린채 안동신시장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님에 의하면 손이 귀한 집에서 양녀로 입양을 했는데 안동신시장에서 길 잃은 아이를 데려와 키웠고 이름도 나이도 성도 모른다고 했다. 양부모가 새로 지어준 성과 이름을 따라 이 나이 되도록 살았는데 성은 반남 박가요 이름은 미숙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안동 인근 영주시 문수면에서 살다가 문수초등학교를 나왔고 중학교는 영주에서 철길 위 관사골 문간방에서 자취생활하며 졸업했다고 한다. 가정형편 상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양부모님 친척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 미용학원에서 미용 기술을 배워 큰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작은 미용실을 차려 잘 살고 있노라고 했다. 또 남편은 서울 지하철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내년이 정년이라고 한다. 딸은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강남에 있는 아주 큰 출판사의 북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구구절절 쏟아놓는 사연들을 들으니 광율이는 어쩜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광율은 법조인의 전문성이 발동되어 어머니가 일러준 신체의 비밀을 확인한다. 먼저 왼쪽 엄지 손가락으로 부터 연결된 손목 근처에 까만 점이 있었다는 한 가지의 단서를 들고 이야기를 하니 화들짝 놀라며 소매를 걷어 보여주는데 까만 메주콩알 정도의 점이 자랑이라도 하듯 선명하게 보인다. "아~ 틀림없구나" 그럼 다음 단서 "어머니와 우리 형제 모두 오른쪽 새끼 발가락이 안쪽으로 많이 휘어져 있는데..." 채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투박한 신을 벋고 양말까지 벗은 미숙은 지금껏 감추어왔던 새끼발가락의 휘어진 못난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제 틀림없는 누나가 맞다고 생각한 광율은 탁자 너머에 있는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 놓으며 자신의 가정사와 어머니의 아픔을 눈물을 글성이며 소상히 설명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 홧병에 술만 드시던 아버지는 아이들이 잠든 시간이면 어머니를 향해 딸을 찾아오라고 다그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는 이야기를 최근 어머니의 병상에서 듣고 광율이 자신도 어머니에 대해 죄를 짓고 살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노라고 했다. 자식잃은 아픔을 다른 자식들에게 상처가 될까 감추었던 어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들으니 미숙은 미어지는 가슴을 주체할 길이 없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누나가 원하는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남은 대화를 마무리한다. 점심도 거른 채 이어진 대화속에서 어머니의 딸을 향한 애끓는 마음과 그간 감추어야만 했던 아픈 사연듣고 미숙은 몸이 떨리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친다. 일평생 어머니를 향한 간절함을 하늘이 도왔다고 하며 안정을 찾는다.
광율은 이제 누나가 확실하다는 믿음이 드니 휴대전화기를 들고 먼저 광홍이에게 전화한다. 어머니의 상태를 물은 뒤 어머니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누나를 만난 사실을 알리고 최대한 안정을 유지하도록 병실 전담간호사를 불러 대기 시키라고 한다. 누나와 함께 신촌 철길 아래 횡단보도를 건너 세브란스병원 어머니 병실로 향하는 광율이와 미숙의 발걸음은 어릴적 오누이가 손잡고 가는 듯 행복한 발걸음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