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평북 용천 태생인 허준은 백석의 가장
친구로 알려진 있다. 허준은 일본 法政(법정 :
호세이)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했는데 白石의
주선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백석이 만주로
떠날 때 자신의 조선일보사 잡지인 《여성》지
기자직 후임으로 물려준 이도 허준이었다.
허준은 당시 낙원동에서 여관을 경영하던 외할
머니 댁에서 기거했고 훗날 백석의 뒤를 쫓아
만주로 이주로할 만큼 백석의 절친이었다.
子夜(자야)가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백석의
친구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신현중이다.
1910년 경남 하동 태생인 신현중은 통영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경성
제국대학에 입학한 수재로 경성제대 시절
일본의 만주 침략에 반대하는 격문을 돌리다가
검거되어 3년의 실형을 받고 복역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출소 후인 1934년 봄 조선일보
에 입사해 백석과 사귀게 되었다. 신현중은
허준과도 친한 사이여서 경성 서대문의 죽첨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자신의 여동생
신순영을 부랴부랴 허준에게 결혼시키고
처남 매제 사이가 되었다. 통영에서 교사를
하던 신현중의 누나, 신순정이 그녀의 남동생,
신현중의 경성제대 합격을 계기로 가족 모두
경성으로 올라왔고 신순정은 경남 통영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전근했고, 이때 그녀의 통영
제자 중 몇 명은 경성에 있는 여학교로 진학
하게 된다.
통영에서 경성으로 올라온 신순정의 제자 중
한 명인 박경련은 이화여고에, 신순정의 또
다른 제자 김천금은 경기여고에 재학 중이었
다. 그리고 김천금이 경기여고 입학 당시
보증 서준 이가 신현중이었다. 신현중은
이런 인연으로 외삼촌 서상호의 가회동 집
에서 하숙 하고 있던 박경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신현중은 조선일보에 입사하자마자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언론인 김준연의
눈에 띄었고 김준연의 딸 김자옥과 약혼읕
하게 된다. 이에 신현중은 백석에게 박경련
을 소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신현중은 백석
이 함흥으로 떠나간 뒤 김자옥과의 약혼을
파기하고 박경련과 혼례를 올렸으니 그
소식을 접한 白石의 상실감 또한 적지 않았
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