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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막대 인형극)
칠불암의 문수동자
곽 영 석
(kbm0747@hanmail.net)
나오는 사람들
현 감 (하동 고을의 원님)
이 방 (하동 감영의 인사 비서 등의 사무를 보는 관리)
큰스님 (칠불암의 스님)
동자승 (문수보살)
스님1∼9 (칠불암에서 공부하는 스님들)
예 방 (하동 감영의 관리)
포졸1∼7 (하동감영의 포졸들)
백성1∼7 (하동 고을의 주민들)
아이1∼5 (글방의 소년들)
때 :이른 여름
곳 :칠불암 절마당과 동헌 마당
무 대·이 연극의 무대는 쌍계사의 칠불암과 하동 감영의 동헌으로 나누어진다. 무대는 조립식으로 꾸며서 어린이들이 등퇴장과 함께 접고 펴게 하는 방법으로 연극을 진행해도 되지만, 조명기기를 사용하게 죌 경우에는 불빛으로 장소 전환을 나타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관객석에서 볼 때 왼쪽이 쌍계사의 칠불암과 아자방이다. 이 아자방은 무대 밖으로 계속되어 무대에서는 지붕처마와 기둥만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무대 후면에는 동헌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건물이 있고 그 앞에 현감의 집무용 의자가 계단 높이 자리하고 있다.
무대가 밝아지면, 방금 부임한 하동 현감이 의자 높이 거만하게 앉아서 이방이 건네 준 문서를 읽고 있다. 그리고 이 동헌의 좌우에는 육방관속들과 감영의 포졸들이 늘어서 있다.
현 감(문서를 바라보다가) 이방, 칠불암이라면 쌍계사에 있다는 그 암자 말이냐?
이 방(허리를 굽히고) 예. 가락국의 김수로왕 마마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곳이 바로 그 암자 이옵니다.
현 감 일곱 왕자가 모두 부처가 되었다는 말이냐?
예 방 예. 사또!
현 감(예방을 바라보다가) 옳지. 예방은 잘 알겠구나. 이 하동현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으니까.
예 방 예. 사또. 전해오는 말씀에 의하면….
현 감(부채를 쫙 펴서 부치며) 그래. 전해오는 말씀이 어떻다는 것이냐?
예 방 가락국 일곱 왕자님들은 외삼촌 되시는 보옥조사를 따라 스님이 되셨고, 쌍계사 칠불암 그 아자방에서 성불하셨다고 하옵니다.
현 감 가만, 거 보옥조사라고 한다면 그 옛날 인도의 아유타부족의 왕자가 아니더냐? 맞지?
이 방 사또어른 맞습니다. 바로 그의 누이인 황옥공주를 맞아 가락국의 김수로왕께서는 일곱 왕자를 낳으셨지요.
현 감 아들만 일곱? 허, 많이도 낳았구나.
이 방 예?
현 감 하나 낳아서 잘 키우기도 힘든 세상에 아들만 일곱씩이나 낳았으니 하는 말이다.
이 방 아 예.
현 감 그래. 쌍계사에서는 지금 모두 몇 분의 스님들이 계시느냐?
이 방 예. 모두 480여명의 스님이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 감(놀라) 뭐? 480명?
예 방 사또, 왜 그렇게 놀라시옵니까?
현 감 괘심한 일이로고. (화가 나서) 신임사또가 부임해 온지 벌써 보름도 더 되었거늘 아직 시주승 코빼기조차 볼 수가 없다니...
예 방 사또께서는 산중 스님들의 인사를 받고자 하시옵니까?
현 감 그야 물론이다.
예 방 사또어른, 쌍계사의 칠불암과 아자방에서 수도 정진하시는 스님들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속세의 인연을 끓고 오직 진리 탐구에만 전념하는 학승들이옵니다.
현 감(고개를 끄덕이며) 흠, 그래서 신임사또가 부임을 해 왔는데도 얼굴 하나 볼 수가 없었구나.
예 방 그게 저…(난처한 듯) 사또어른, 전임사또나 관찰사, 한양의 암행어사가 왔을 때도 산중 스님들의 인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현 감(벌컥 화를 내며) 그럼, 인사를 받으려는 내가 잘못이란 말이냐?
이 방 (예방을 바라보다가) 사또,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눈치를 살피며)산중의 스님들 이라고 해서 인사를 받지 않을 수는 없지요.
현 감 그래그래. 이방은 내 뜻을 알고 있구나.
이 방 사실 말이 났으니 아뢰옵니다만, 경치 좋은 계곡에 대궐 같은 집을 지어놓고 놀면서 시주님들의 공양을 받아먹고 있으니 불손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예 방(이방을 어이없게 바라보다가) 이보시오. 이방, 말은 바로 하랬다고 어찌 산중 스님들을 욕되게 하시려고 그러시오?
현 감(큰소리로) 예방!
예 방 예. 사또어른.
현 감 산중스님들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가서 인사를 받으리라!
모 두(놀라) 예?
예 방(어이없다) 사또어른, 칠불암의 아자방에까지 찾아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현 감 그래. 얼마나 고매한 인품이기에 신관 사또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지 내 가서 얼굴들을 똑똑히 볼 것이니라.
이 방(손뼉을 치며) 사또어른, 아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물 맑고 경치 좋은 그곳의 풍경을 보시면 사또께서도 근심 걱정은 모두 잊게 되실 것이옵니다.
현 감 허, 그곳이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더냐?
이 방 사또,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좋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현 감 옳다. 내 이 기회에 그 스님들을 우리 하동고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말겠다.
예 방(걱정이 되어) 저 사또어른, 그럼 쌍계사의 칠불암을 찾아가시는 것이 인사를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고, 스님들을 절에서 내쫒기 위해 가시는 것이옵니까?
현 감 왜? 예방은 그것이 불만인가?
예 방 사또어른, 그러시면 안 되옵니다. 그 스님들은 고을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분들입니다.
현 감(빈정거리듯) 호,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예방에게) 매일하는 일 없이 밥만 먹고 빈둥빈둥 놀고 있는 스님들을 쫒아내고자 하는 것이 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냐?
예 방 사또어른,
현 감 모든 백성이 나라를 위해 변방에 성을 쌓고, 농번기에 일손이 모자라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마당에 대궐 같은 집에서 놀고만 먹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
예 방 사또어른, 그 그러나
이 방(예방에게) 예방, 사또어른의 심기가 편치 못하니 그만 두시게.
예 방(한숨을 쉬며) 알겠습니다.
현 감 이방!
이 방 예이-.
현 감 말이 난 김에 지금 당장 내가 그곳에 가리라. 가마를 대령하여라. 알겠느냐?
이 방(놀라)사또어른, 지금 당장에 말씀이옵니까?
현 감 그래. 지금 당장!
이 방(잠시 망설이다가) 얘들아, 후원에 가마를 대령하라 이르신다! 사또어른 쌍계사 칠불암에 납신다!
포졸들 예이-.(포졸들 몇이 퇴장한다)
현 감(만족한 듯)어험!, 이 기회에 신관사또의 강직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지. (미소를 짓는다)
이 방(관객에게) 여러분!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 불교가 한창 탄압을 받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사또어른이 저렇게 말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아무튼 산중 스님들이 봉변을 당하시게 되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지요?
현 감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창건된 유서 깊은 칠불암과 쌍계사를 없애면 조정의 대감들도 나를 새롭게 보실 거야 암. 그렇지. 허 허(기침) 어험!
예 방 (허리를 굽히고) 사또어른, 그 칠불암의 아자방은 그동안 수많은 도인들이 나온 불교의 요람입니다.
현 감(버럭 화를 내며) 예방, 예방은 산중스님들에게 아첨하고 본관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사사건건 반대만 할 셈이냐?
예 방 사또!
현 감 에이-. 듣기 싫다. (예방을 향해) 이방은 나를 따르라!
이 방(예방에게 그거보라는 듯 눈짓을 하고 현감을 따른다) 예이-.
*현감과 이방이 퇴장하려고 할 때 사찰의 범종소리가 들려온다. 무대의 불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사이-, 칠불암 쪽이 밝아지면, 현감과 이방, 포졸들이 동헌의 뒤쪽에서 나타나 칠불암과 동헌의 경계 지점에 이른다.
현 감(숨이 찬 듯 호흡을 몰아쉬며) 아, 숨이 차다. 엎드리면 코가 닿을 듯 가까워 보이는 길이 제법 멀구나.
이 방 그래도 (주위를 돌아보며) 이곳의 경치하나는 그만입죠.
현 감 그렇구나. (주위를 살피며) 맑은 계곡물하며, 싱그러운 소나무 숲 아름다운 바위틈마다 이름 모를 꽃들이 한창이로구나.
이 방(은근하게) 사또어른, 칠불암의 아자방을 꼭 구경하실 생각이옵니까?
현 감(웃으며) 왜? 그토록 유명하다는 아자방을 관할 사또로서 보지 말라는 법이 있더냐? 혹 내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도 있느냐?
이 방 아 그것은 아니옵고...
현 감 허허허허, 무엇을 망설이느냐? 보아하니 그 산중 스님들에게 봉변을 당했던 모양인데 난 그런 일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이 방 예.
현 감(경계지점에서 뜀 뒤를 하듯 폴짝 뛰어 칠불암 쪽으로 건너간다) 이방, 연극이라서 그런지 십리 길이 한 걸음이면 되는구나.
이 방(현감이 한 것처럼 폴짝 뛰며) 예. 연극이니까 그렇지. 실제 걸어가면 한나절도 더 걸리지요. (포졸들도 뛰어 건넌다)
현 감(좌우를 살피며)그런데, 그 많다는 스님들이 안거하고 있다는 절이 왜 이렇게 고요하냐?
이 방 예. 제가 보기에도 이상합니다.
현 감 내가 온다는 것을 짐작하고 모두 도망을 간 것은 아니냐?
이 방 도망이라고요?
포졸1 사또 나으리, 방안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립니다요.
현 감(잠시 귀를 모으고 듣다가) 그러면 그렇지. 한두 놈은 남아 있어야지.
*이때 아자방의 뒤쪽에서 동자승이 불소시게를 들고 등장한다. 동자승은 현감 앞에 이르러 빙글거리고 웃는다.
이 방 이 녀석아, 왜 겁도 없이 히죽거리고 웃는 게냐?
동자승 해해해해. 나리, 여기에는 소나 개나 말은 한 마리도 없답니다. 그런데, 한 놈 두 놈 헤아리는 것은 개나 소를 헤아릴 때 쓰는 말인데, 나리 일행이 개나 소가 아니거늘 누구를 보고 이 놈 저놈 하시는지 그것이 우스워서 웃었사옵니다.
현 감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 이놈 봐라!
이 방 아니 어린 것이 어느 안전이라고.
현 감 어린 녀석이 무척 당돌하구나. 예, 동자야, 그래 주지스님은 어디 계시느냐?
동자승 예. 아침에 금강산의 화홍 선사님의 법문을 들으러 가셨는데 곧 오실 것입니다.
현 감(버럭) 예끼, 이놈 거짓말을 해도 속게 해야지. 금강산이 여기서 천리 길도 더 되거늘 아침에 가서 좀 있다가 돌아온다고?
동자승 예. 곧 오실 것입니다.
현 감 허허, 그래도 이놈이?
이 방(동자승에게) 그럼, 주지스님이 축지법이라도 한다는 말이냐?
동자승(웃으며) 이방어른, 그렇게 쉬운 도술은 이곳의 스님들은 벌써 깨우쳐 알고 있지요.
현 감(입맛이 쓰다) 어험!
동자승 그런데 하동현의 나리들께서 어쩐 일로 이 산중에까지 오셨는지요?
현 감 허, 내가 어쩌다 이런 간난 동자승을 상대하게 되었는가?
이 방 여기 신관 사또께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칠불아자방을 보고 싶 으셔서 이곳까지 직접 찾아오셨다. 네가 안내 하여라!
현 감(위엄을 갖추며) 어험!
동자승 제가 안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모든 스님들이 방안에서 공부하고 계시므로 내부를 보여드리지는 못합니다.
현 감(기가 막힌 듯)예야, 이 절에는 너 말고 상좌나 나이든 스님들은 없느냐?
동자승 모두 공부에 전념하고 계십니다. 제게 말씀하시지요.
현 감 좋다. 우선 저 (가리키며) 아자방을 열어보아라!
동자승 예.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였으니 서너 시간은 기다리셔야 하겠습니다.
현 감 괘심하구나. 내가 이 고을에 현감인데 현감이 백성들의 모습을 살피기 위해 찾아 왔거늘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이 방 물러 서거라. 어서 !
동자승(두 팔을 벌려 막아서며) 죄송합니다. 조정의 영상대감께서도 본도의 관찰사도 그러하셨습니다. 수행하는 스님들을 방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방(현감의 눈치를 보며) 사또어른, 아자방은 다음에 보시지요.
현 감 듣기 싫다. (포졸들에게) 얘들아, 저 아자방의 문을 열어라!
포졸들 예이-.(우르르 달려들어 아자방의 문을 연다)
현 감(방안을 바라보다가) 아니, 아니, 저 꼴이 다 무엇이냐? 차마 눈을 뜨고 못보겠구나.
포졸2 사또나리, 모두가 낮잠을 자는지 반은 꾸벅거리고 졸고 있사옵니다.
현 감 아자방에는 도인들만 수도한다고 들었는데, 수도하는 스님들의 자세가 바로 이런 것이었더냐?
동자승 (태연하게) 사또어른, 스님들의 자세가 뭐 잘못되었습니까?
이 방 저기 저 모습을 보면 모르겠느냐?
포졸3 저기 방안에 앉은 스님은 천정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습니다.(혼잣말처럼) 천정에서 내려오는 거미를 잡으려나….
동자승 하하하하, 저 스님은 ‘앙천성숙관(仰天星宿觀)’이라는 공부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모 두 앙천성숙관?
현 감 뭣이? 이놈아, ‘앙천성숙관’이라면 여기 있는 관객들이 알아듣겠느냐?
이 방 얘야, 그게 무슨 말이냐?
동자승 말씀드리지요. ‘앙천성숙관’이란 넓고 넓은 우주에 흩어져있는 별들을 관찰하여 천문을 깨닫고자 하는 공부입니다.
현 감 험, 네 말솜씨가 제법이구나. 그래. 우주의 신비를 깨달아서는 무엇을 하느냐?
동자승 하늘나라에 태어난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현 감 허허허…. 그도 그럴 듯하구나.
이 방 (입맛을 다시다가) 그럼, 내가 한 가지 묻자.
동자승 예.
이 방(가리키며) 저기 위쪽 윗목에서 방아 개비처럼 온몸을 흔들고 있는 스님이 있는데 저것도 공부를 하는 것이란 말이냐?
동자승 예. 바로 보셨습니다.
이 방 뭐? 저것도 공부라고?
동자승 예. 그렇습니다. 저 스님이 하는 공부는 ‘춘퐁양류관(春風楊柳觀)’이라는 공부이지요.
포졸들 ‘춘풍양류관’?
동자승 자세히 말씀드리면, 봄바람에 실버들이 나부끼는 것과 같이 탐욕으로 눈이 어두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자유스럽게 해주는 공부이지요.
현 감 그건 그렇다하고 아랫목에서 방귀를 퉁퉁 뀌고 앉아있는 저 스님도 공부를 하는 것이냐?
동자승 물론입니다.
현 감 (빤히 바라보며) 공부를 한다고?
동자승 예. 그건 ‘타파칠통관(打破㓼筒觀)’이라고 합니다.
포졸5 타파칠통관이 뭐야?
포졸3 공부 좀 해라. 공부 좀!
포졸5 그럼 넌 알아?
포졸3 동자승한테 들어 봐!
동자승 ‘타파칠통관’이란 사람이 무식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공부입니다.
현 감 어허, 이놈 말솜씨가 제법이다 했더니 제법 까부는구나.
포졸3 (가소롭다는 듯) 야, 이 젖먹이 놈아, 저기(가리키며) 저렇게 머리를 무릎에 대고 코를 골고 자고 있는 스님도 공부를 한단 말이냐?
동자승 그 스님은 지금 ‘지하망명관(地下亡命觀)’을 연구하고 계십니다.
현 감 뭣이라? ‘지하망명관?’
동자승 사또어른, 사람이 죄를 짓고 죽으면 땅속에 있는 지옥으로 들어 가서 심판을 받게 되지요. 그래서 그들을 무슨 수로 어떻게 구제를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 감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어린 네가 이처럼 말솜씨가 좋으니 이곳에 있는 스님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얘들아, 그만 가자.
포졸들 예.
이 방 사또, 그냥 가시옵니까?
동자승 사또어른, 조금 있으면 금강산에 가셨던 큰스님이 돌아오실 텐데 만나 보시고 가시지요.
현 감 그럴 필요 없다! 이방,
이 방 예.
현 감 이 쌍계사와 칠불암의 모든 스님들을 초대한다는 공문을 저 동자에게 주어 주지에게 전하게 하여라.
이 방 예. (옷소매에서 두루마리 공문을 꺼내준다) 큰스님에게 전하여라.
동자승 (두 손으로 받으며) 알겠습니다. 사또어른께서 산중스님들을 이렇게 초대하여 주시니 정녕 고마울 따름입니다.
현 감 (빙긋이 웃으며) 고맙다니 내 마음도 기쁘구나. 꼭 주지에게 전해서 산중 스님 전원이 참석해야 한다고 일러라!
동자승 (허리를 굽히며) 예.
*현감과 이방, 포졸들이 퇴장한다. 동자승은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빙긋이 웃다가 돌아 서서 아자방의 방문을 닫는다. 사이-, 동자승이 두루마리 공문을 가슴에 안고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큰 스님과 몇몇 스님들이 들어온다.
큰스님 동자야, 무엇을 그리 생각하고 있느냐?
동자승 (인사하며) 큰스님, 지금 돌아오십니까?
큰스님 칠불암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네 눈에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살아 있으니 무슨 일이냐?
스님들 무슨 일이냐?
동자승 예. 방금 전에 하동현의 현감이 포졸들을 거느리고 다녀갔습니다.
모 두 현감이?
큰스님 거 이상하구나. 사또가 이곳까지 직접 나온 것은 무슨 연유가 있었을 터인데 성 쌓는 일에 젊은 스님들을 보내달라는 것은 아닌 지?
스님1 우리 스님들을 내 쫒으려는 것은 아닐까요?
스님2 그래요. 전임사또도 그 일로 몇 차례나 공문을 보내오지 않았습니까?
동자승(공문을 큰스님에게 주며) 이 공문을 큰스님에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큰스님(공문을 받아 훑어보고는 깜작 놀란다) 무엇이?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을 돌아야 한다고?
스님3 큰스님 무슨 일이옵니까?
큰스님(혼잣말처럼) 이것은 우리 스님들을 모두 몰아내고 이 땅에 불교를 없애려는 속셈이로구나.
스님들 큰 스님!
스님3(큰 스님의 공문을 받아서) 자, 제가 읽겠습니다. (공문을 펼친다) 본관은 신임 하동현감으로 그동안 대덕들의 법력을 익히 알고 있던 터. 오는 보름날 아침동헌 마당에 목마 한필을 준비하고 백성들과 산중스님들의 수승한 법력을 보고자 하니 스님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스님5(모두에게)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스님4(3에게 편지를 받아서) ‘일찍이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된 것은 수행을 위한 것이며, 그 수행은 세상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함이었으니 수승한 법력으로 목마를 타고 달린다면 본관은 쌍계사는 물론 관할 모든 사찰에 상을 내릴 것이요. 만약에 목마를 타고 달리지 못한다면 헛되이 시주의 은혜를 소비한 죄를 물어 산중스님 전원을 이 고을에서 추방할 것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동현감 곽영석’
스님들(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나무관세음보살!
큰스님나무관세음보살,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지는 못할망정 더욱 탄압을 받게 되었구나.
스님4부처님의 가피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어찌 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동헌 마당을 돌 수가 있겠습니까?
큰스님여러분, 산중스님들은 순교한다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를 청합시다.
스님6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날벼락입니다.
큰스님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보름날까지는 아직 기일이 남아있으니 용맹기도로 부처님의 가피를 청합시다. 나무관세음보살.
모 두 나무관세음보살.
동자승 큰 스님.
큰스님 동자야, 걱정하지 말거라. 네게는 화가 미치지 않을 테니까.
동자승 큰 스님, 제가 그 목마를 타보고 싶습니다.
모 두 뭐?
큰스님 네가 그 목마를 타 보겠다고?
동자승 예. 그까짓 목마를 타는 일이 뭐가 어렵습니까? 제가 타 보겠습니다. 목마를 타고 동헌을 한 바퀴 돌면 되는 거지요?
큰스님 동자야, 네 말은 고맙다만, 목마를 타고 어찌 동헌을 돈단 말이냐?
동자승 큰 스님, 문제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셔요. 제가 보름날 아침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을 신나게 돌아보겠습니다.
스님7(어깨를 다독거리며) 동자야, 고맙다. 하지만 네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동자승 아이 염려마시라니까요. 제게는 하동 현감이 준비한 목마를 타고 달릴 수 있는 꾀가 있습니다.
모 두 꾀?
큰스님 무엇이? (놀라) 넌 스님들의 음식 공양을 하는 공양주인데 어떻게 신통스런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이냐?
동자승 큰스님, 제가 그 목마를 타서 현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습니다.
스님들 얘야.
동자승 스님들, 염려 마셔요. 온 산중 스님들께 화가 미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스님8 큰 스님!
큰스님 동자야, 네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그리 하여라!
동자승(합장하며) 큰 스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범종소리가 들린다. 이어 목어를 두드리는 소리- 무대의 불이 꺼진다. 그 어둠속에서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그 사이 하동현 동헌 무대가 차려진다. 동헌의 한쪽 구석에는 목마의 머리가 반쯤 보인다.
합 창
아느냐 이름 높은 칠불아자방
거룩하신 장유화상 이룩하신 절
수로왕과 허씨 부인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고 그 이름 칠불이라네.
보았니 문수동자 목마 달린 거
심술궂은 하동현감 목마 가지고
스님 네의 도술을 시험해 볼 때
목마 달린 그 아기 문수동자라네.
*노래가 끝나면, 동헌이 밝아진다. 보름날 아침, 스님들과 백성들이 마당으로 모여들고 동헌의 높은 의자에는 현감이 앉아있다. 그 좌우에는 육방관속들과 포졸들이 늘어 서 있다.
큰스님(합장 인사한다) 사또어른, 칠불암의 조실 현덕입니다.
현 감(웃으며) 허허허,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고승 대덕들을 만나 뵈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큰스님 속세의 인연을 끊고 사는 산중스님들을 초청하여 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현 감 예. 아무튼 반갑습니다. 더욱이 고승 대덕들의 훌륭하신 법력을 볼 수 있게 되어 고을 백성들과 더없이 기쁩니다.
큰스님(무거운 신음) 음-,
현 감 여봐라! 준비 되었느냐?
모 두 예.
현 감 (돌아보며)듣거라. 오늘 쌍계사와 칠불암의 크고 작은 암자에서 수도하는 여러 고승들의 고매한 법력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스님들과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였다.
모 두 (웅성거린다)
현 감 조용, 에- 그것은 여기 계시는 고승 대덕들께서 저 목마를 타고 이 동헌마당을 돌면 큰 상을 내릴 것이요 만약 목마를 타지 못하면 헛되이 시주의 은혜를 소비한 죄를 물어 이 고을에서 추방할 것이다.
백성들 (웅성거린다) 추방? 목마를 타라고?
이 방 조용, 조용히 하라!
백성들(스님들을 본다)
현 감(자리에서 일어나 의기양양해서) 자, 그럼 스님들의 도력을 보여 주시지요.
예 방(눈을 감고 합장하며) 오, 이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큰스님 예. 목마를 타 보이겠습니다.
백성들 (웅성거린다)
동자승(앞으로 나오며) 큰 스님, 제가 목마를 타 보이겠습니다.
큰스님 동자야!
현 감 아니, 넌 그때 그 동자가 아니더냐?
동자승 예. (인사하며) 사또어른, 저희 불가의 작은 재주를 보시고자 하는데 큰 스님까지 수고하시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저 나무 말을 타 보일 테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현 감 그래? 자신만만하구나. 네가 정말 말을 탈 수 있다고 (자리에 앉는다) 좋다. 네가 타도록 해라!
동자승(스님들에게) 여러 산중스님들께서는 사또어른의 점심공양을 드시고 천천히 오십시오. 저는 저 목마를 타고 먼저 칠불암에 가 있겠습니다. 청소를 하다가 왔거든요.
스님들 나무관세음보살.
동자승 (목마가 있는 쪽으로 가서 말을 탄다) 이럇, 목마야, 칠불암으로 가자!
*목마의 머리가 담 밖에서 좌우로 움직이다가 말울음소리와 함께 발굽소리가 요란하게 사라진다. 모두 놀라서 말이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놀란다. 현감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예 방 아니, 저 (가리키며) 하늘 좀 봐라. 목마가 하늘을 날아간다!
백성들 와-
아이2 목마가 하늘을 날았어.
아이4 와,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 어떻게 목마를 몰고 하늘을 날수가 있지?
아이1 아기스님이 저런 도술을 부린다면 쌍계사스님들은 굉장할 거야.
아이들 그래그래.
현 감(뜰로 내려와서 바라보며) 이게 꿈은 아닌가? 불법은 불가사이하다더니….
스님들(안도하며)나무관세음보살.
큰스님(염주알을 헤아리며) 문수동자가 산중스님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구나. 문수사리 보살님. 감사하옵니다.
현 감(큰스님 앞으로 와서) 큰 스님 제가 너무 경솔하였습니다. 사과드립니다.
큰스님 이제 우리 산중스님들은 돌아가도 됩니까?
현 감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관내 모든 사찰의 의식공양은 물론 이 못난 위인도 부처님에게 귀의해서 가르침을 배우겠습니다.
큰스님 고맙습니다. (백성들 박수를 친다)
*범종소리가 들려오며 불이 꺼진다. 다시 무대가 밝아지며 출연한 모든 사람이 무대 앞으로 늘어서 노래를 부른다.
합 창
보았니 문수동자 목마 달린 것
심술궂은 경상감사 목마 가지고
스님 네의 도술을 시험해 볼 때
목마 달리신 그 아기 문수동자라네.
막-
곽영석 약력
73년 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
한국아동‧청소년극협회 이사장
16회청소년예술제희곡상 수상
제10회 학교극경연대회 최우수각본상
저서 마법사의 황금동화책등 희곡집 12권등
주소: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47길12 쌍용아파트103동1306호
연락처:010-2110-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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