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동 집 건축가들이 제안하는 ‘함께 사는 집’ 글 : 이선주 | 사진 : 김선아 | 사진제공 : 서울소셜스탠다드 |
‘통의동 집’ 앞에 모인 ‘서울소셜스탠다드’와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람들. |
서울대 건축학과 동창생인 김민철・김하나・ 성나연씨가 정림건축문화재단과 손잡고 최근 선보인 셰어하우스 ‘통의동 집’을 찾았다. 경복궁 서쪽, 효자로와 자하문로 사이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4층짜리 노란 건물. 나지막한 한옥들로 둘러싸여 있어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셰어하우스는 이 건물 2층에 네 가구, 3층에 세 가구가 들어가 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침대와 옷장, 책상, 조명까지 짜 맞춘 듯 방에 딱 들어맞게 자리 잡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영옥씨(로뎀건축 소장)가 설계한 가구다. 화장대를 겸해 사용할 수 있도록 책상 길이는 1.5m로 넉넉하게 하고, 옷을 걸 수 있는 옷장은 최대한 넓게 확보했다. 또 침대 밑과 옷장의 위아래는 모두 수납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입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세심하게 고려했음은 공유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신발장은 개인별로 나눠 최대한 넓게 확보했고(요즘 젊은 층이 얼마나 구두와 신발을 중시하는지!), 샤워실 앞에는 개인 사물함이 설치돼 개인용품을 수납할 수 있게 했다. 세탁기와 함께 건조기도 설치해 빨래 널 공간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했다.
다목적 공간으로 쓰이는 1층. |
방이 있는 2층과 3층뿐 아니라 1층과 지하 1층도 입주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지하 1층에는 널찍한 주방과 식탁, 의자 등이 놓여 있어 함께 밥을 해먹거나, 혼자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독서를 하기도 좋아 보였다. 프라이팬과 냄비, 식기 등 함께 쓰는 부엌용품과 컵과 수저 등 개인용품을 따로 보관할 수 있도록 수납장이 분리되어 있다. 냉장고에도 자신이 먹을 음식을 따로 보관할 수 있다. ‘따로, 또 같이’ 생활할 수 있도록 구석구석 배려한 흔적이다. 1층도 독특한 공간.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골목과 그대로 연결된 듯한 느낌인데, 지름이 2m에 달할 것 같은 커다란 원탁과 12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누구는 여기에 앉아 책을 읽고, 누구는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누구는 회의를 해도 어색할 것 같지 않다. 원탁을 중심으로 ‘따로, 또 같이’가 이뤄지는 것이다.
“2012년 위키서울@마을과 공유경제 전시회, 대한민국 친환경대전에서 ‘우리가 어떤 물건까지 다른 사람과 함께 쓸 수 있을까?’를 조사했어요. 공유하는 게 많을수록 자원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죠. 그런데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다’고 한 물건의 범위가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습니다.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점점 더 편안해하는 것 같아요.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 기록했는데 책을 읽고, 일이나 공부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등 카페를 집처럼 활용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통의동 집’은 그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셰어하우스입니다.”
입주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주방. |
대학을 나와 각기 다른 현장에서 활동하던 세 사람이 뭉친 것은 2012년 소셜벤처 ‘ㅅㅅㅅ =서울소셜스탠다드(Seoul Social Standard)’를 만들면서였다. 서울소셜스탠다드는 ‘빠르고 밀도 높은 성장의 역사를 가진 서울(Seoul)을 배경으로, 그 안의 사람과 시간, 공간이 만드는 다양한 관계(Social) 속에서, 우리가 지지해야 할 표준(Standard)은 무엇인지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것을 미션으로 한다’는 뜻. 대학원에서는 산업공학을 전공, ‘유저인터페이스’를 연구한 김하나씨, NHN 일본지사에서 웹서비스 기획을 하던 성나연씨, 건축사무소를 다니던 김민철씨는 성나연씨의 귀국을 계기로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이들 모두 대학시절부터 건축가란 이름난 작품을 남기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환경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살기 좋고, 재미있고, 함께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이들이 생각한 첫 번째 사업은 부동산정보서비스였다.
개별 편지함. |
“이제까지 부동산 정보라면 몇 평에 방이 몇 개이고, 어느 지역에 있고, 언제 지어졌는지 정도가 전부였잖아요? 저희는 그 집 앞 골목은 어떤 모습인지, 이웃들은 어떤지. 집에 얽힌 역사나 그 집만의 독특한 특징은 뭔지 같은, 좀 더 깊이 있고 친밀한 정보를 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사는 환경, 건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와 함께 청년들의 주거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본의 셰어하우스 전문가를 초청해 사례를 들으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받으면서도 함께 있어서 안심이 되는 느슨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1인 가구의 특성에 맞게 짜맞춤 가구를 넣었다. |
“사람들이 ‘그런 주거문화가 생기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너희가 직접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셰어하우스가 확산된 일본의 경우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바탕이 되었는데, 우리나라도 그게 가능할까’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개별적으로 신발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넉넉하게 갖췄다. |
이들은 정림건축문화재단과 손을 잡고 사업을 시작했다. 서촌과 서교동, 용산 등 오래된 동네를 중심으로 대상지를 물색하다 신축하고 있는 통의동 건물에 세를 들기로 했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이 세를 얻은 곳에 셰어하우스를 만든 것. 1층은 책장으로 파티션을 해 뒤쪽을 재단 사무실로 쓰고 있다. 지하 1층은 특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간. 입주자들이 함께 요리를 하고 밥을 먹으면서 소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주방기구도 풍부하게 갖춰 놓았다. 일곱 가구가 모두 입주하고나면 ‘오픈 키친’ 행사를 열 생각이다. 청소를 둘러싼 갈등을 줄이기 위해 화장실과 거실, 식당 등 공유공간은 1주일에 한 번 청소를 해줄 계획. 방은 작지만 공유공간이 풍부하기 때문인지 이 셰어하우스의 집세는 싸지 않은 편이다.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는 방의 크기에 따라 57만원, 62만원, 67만원이다. 현재 입주했거나 관심을 보이는 층은 주로 20~30대 여성이라고 한다. 거주자들이 원하는 환경을 갖추면서 집세는 낮추는 게 과제다. 첫 번째 셰어하우스에 이들은 ‘통의동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구와 조명까지 맞춤 설계한 방. |
“이제 ‘집’을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생활을 함께하는 곳이라고만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생활을 공유한다면 그곳도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그런 ‘집’들이 다양해지고, 많아져야 할 시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주(WOOZOO) 젊은 층이 직접 만든 ‘새로운 주거 문화’ 글 : 류동연 인턴기자(서강대 4) | 사진 : 김선아 | 사진제공 : 프로젝트 옥 |
WOOZOO 1호점 앞에 모인 김정헌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윤선호 매니저(왼쪽에서 두 번째)와 두 입주자. |
서울 종로구 권농동. 창덕궁 돈화문에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면 간판 하나가 보인다. WOOZOO. 새로운 거주문화를 만들겠다며 모인 젊은이들이 선보인 셰어하우스 브랜드 ‘우주’의 1호점이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면서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한번쯤 꿈꾸지 않나요?”
한국 젊은이들은 독립을 꿈꾼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기숙사 사감의 통제에서, 하숙집 아주머니의 오지랖에서 벗어나 청춘의 자유를 좇는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좁은 철창이다. 고시원, 원룸 혹은 오피스텔. 외부와 단절된, 철저히 홀로 버텨야 하는 공간이 그들의 집이다.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집의 핵심이다. |
혼자 밥 먹고, 혼자 TV를 보는 날이 계속된다.
‘취미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 모여 살면 어떨까? 공간도 그에 맞게 만들고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김정헌 대표는 시트콤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결책은 셰어하우스였다.
“입주자 인터뷰를 할 때 물어보면 ‘혼자 사는 게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1인 주거 형태가 대량 공급된 시장에서 선택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고시원이나 원룸에서 혼자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와 같이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주거 모델이 나온다면 그들은 선택권을 갖게 되잖아요.”
한옥을 멋스럽게 리모델링한 3호점. |
그는 뜻을 같이하는 계헌철・박형수・이정호씨와 함께 소셜벤처기업 ‘프로젝트 옥’을 설립하고 우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기존 집을 전세로 구해 리모델링한 뒤 월세로 내주는 것이다. 대상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외국인 유학생 등 그들이 정의한 주거 소외계층이다. 여럿이 모여 살기 때문에 집값을 아낄 수 있다. 40만원 안팎의 월세와 월세 두 달분의 보증금이면 충분하다.
실제로 그들은 1호점을 완성한 후 한 달 반 동안 거주하며 셰어하우스를 체험했다.
“저희 4명에겐 창업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같이 사는 게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면서 발전시킬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죠(웃음).”
베타테스트를 끝내고 2013년 2월 25일 첫 ‘우주인’이 탄생했다. 1호점의 콘셉트는 그대로 ‘창업자들을 위한 집’이 되었다. 이후 미술가·사회초년생·Slow Life·Creative Life·여행·요리·책을 거쳐 8호점까지 오픈한 상태. 각 콘셉트는 인테리어에서 잘 드러난다. ‘여행’ 6호점에는 벽에 세계지도를 널찍이 그렸고, ‘책’ 8호점에는 러그와 뒤로 젖혀지는 의자를 놓아 북카페처럼 만들었다.
“각 집의 콘셉트는 공통분모일 뿐이에요. 그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입주할 수 있습니다.”
우주는 공동체를 중시한다. 콘셉트하우스라는 독특한 설정 외에 네트워킹 파티와 오픈하우스를 꾸준히 여는 것은 사람들끼리 친목을 다지고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셰어하우스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일본인 입주자가 우주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홍보담당 매니저인 윤선호씨는 입사 전 3호점에서 6개월간 거주했다. 셰어하우스의 가치에 크게 공감하여 관제센터에 합류한 첫 우주인이 됐다.
“우주인이라면 다들 공동생활을 원해서 들어왔을 거예요. 저희는 그 즐거움을 보장해야죠. 앞으로 교류의 기회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에요. 집 안에서뿐만 아니라, 집과 집, 그리고 우주인과 비우주인 사이까지.”
우주인이 되는 절차는 다소 까다롭다. 지원서를 제출한 후 집을 견학하는 우주타임은 일종의 면접이다.
“저희는 좋은 분들이 우주에 살았으면 좋겠고, 또 자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선발 기준은 여러 항목이 있어요. ‘이 사람이 셰어하우스에서 즐겁고 유쾌하게 생활할 수 있는가?’ ‘이 집의 콘셉트에 어울리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게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이해해가는 과정이에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인테리어. |
김정헌 대표는 지금은 사라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적 기업 동아리 넥스터스 출신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등에서 봉사하며 ‘좋은 일은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을 담보로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에 들어와 사회적 기업의 개념을 배운 뒤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좋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대학생이던 위즈돔의 한상엽 대표와 넥스터스를 만들었고, 그 동아리는 시지온, 딜라이트 보청기 등 실력 있는 스타트업을 많이 배출해냈다.
“넥스터스는 실제로 창업을 하고 싶은 친구들이 모인 단체였어요. 당시 사회적 기업을 ‘공부’하는 데 초점을 둔 단체는 많았지만, 저희는 ‘이걸 어떻게 해볼까?’ 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죠. 매주 일요일 회의를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이런 식이죠. 어떤 사람이 아이템을 발표하고 같이하고 싶은 사람이 손을 들면 팀이 만들어져요. 그리고 그 아이템을 실제로 해보는 거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저는 올인했어요. ‘대학생이니까 이 정도지’ 하는 말을 듣기 싫었거든요.”
이제 집을 채우는 것은 우주인의 몫이다. |
우주는 현재 위즈돔・두손컴퍼니・쏘카 등 여러 스타트업과 제휴를 맺고 있다. 소비자층이 비슷하다는 사업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들은 함께 변화를 꿈꾸기 때문이다. 모이면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과거의 품앗이, 오늘날의 사회적 경제를 만든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와야죠.”
김정헌 대표는 확고하다. 2014년 목표는 40호점 오픈이다.
“저희가 추산해본 바로는 서울에 거주하는 주거 소외계층이 100만 명 이상이에요. 서둘렀는데도 이제 겨우 40여 명이 우주에 살고 있거든요. 최대한 서두르고 있어요. 한 명이라도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우주의 집 8채는 모두 집주인들이 먼저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면서 연락을 해와 만들어졌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함께 살기 위해 모이고 있다. WOOZOO라는 공간을 나누며 더 큰 우주(universe)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