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에 우리의 음악을 알리는 자랑스러운 배달부! 「싱싱 국악 배달부의 역사속의 우리 가요 이야기」
'카츄샤의 노래'자유당 시절 경향신문의 사옥은, 소공동, 미도파 백화점 옆에 있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지하도가 없었지만 바로 길 건너가 명동이라 점심때나 퇴근 후에는 으레 그리로 나가서 은성과 같은 대폿집에서 통금시간 빠듯하게 마시고 곤드레만드레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그 집은 웬만한 사람은 다들 알다시피 탤런트 최불암의 자당이 하던 것으로 낮이나 밤이나 문인. 화가. 음악가들의 단골집으로 누굴 만나거나 연락할 일이 있으면 그리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그때의 명동에는 술집이 많았다. 돈이 좀있으면 양주 집으로 갔다. 모두가 PX에서 흘러나오는 양주인데 위스키보다도 진토닉을 마시는 게 유행처럼 되었던 때가 있었다.모두들 마셨다 하면 진토닉이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고, 영화를 무척이나 사랑하던 영화인 중 <유두연>이 있었다. 유두연은 원래가 황해도의 부잣집 아들로 일본에서도 이름난 사학인 경응 대학을 다니다가 해방 후에는 서울에 정착, 어떤 까닭에서인지 영화인들하고 친해지면서 몇 작품의 감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두연>은 작사가인 <유호>를 만나자고 했다. 영화<카츄샤>를 제작. 감독하기로 했는데 주제가가 꼭 필요하니 작사를 부탁했다. 유두연은 성품이 호쾌하고 술이 들어가면 영화에서부터 음악, 미술까지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며 떠들기가 일쑤였던 성격의 소유자였다.더군다나 야심작인<카츄샤>를 만들게 돼서 그런지 그는 작사가<유호>를 만나자마자 <카츄샤>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하였다. 아직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는 영화인데!!그리고 작사가<유호>는 곧 승낙을 했다. 테이블 위에 술이 놓였고 <유호>는 혼자 술을 따라 마시면서 노랫말을 써 내려 간다.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버린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잠시후 가사를 받아든<유두연>은 테이블을 치며 무척 좋아했다. <유두연>은 이튿날로 작곡을 <이인권>에게 부탁했고, 그리하여 한국 가요계의 높은 콧대 그 핵심부에 자리 잡게 된 <카추샤>가 탄생했다.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그렇다. 누구나 한 번쯤은 첫사랑에 대한 비밀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첫사랑은 묘한 것이어서 비록 첫사랑에 실패했더라도 그 추억은 가끔 되살아나는 것이다.“ 얼어붙은 마음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엾어라 캬추샤” 첫사랑을 속삭이면서 누구나 <영원한 사랑>이 되자고 약속을 한다. 그러나 첫사랑의 연인들은 결국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별을 한다.그리고 이별의 슬픔을 안고 여 주인공은 눈이 퍼붓는 겨울 벌판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보내드린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가엾은 순정의 여인 일것이다.아울러 보이지 않은 설움의 눈물로 벙어리의 외침으로 살아갈 뿐인 여인의 슬픔을 선명하게 그려낼 뿐 아니라, 그러한 것이 듣는 이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하고 다가서는 진정한 노래가 오늘날 <카츄샤>이다.[자료 참조: 옛 가요 잡지]'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국악을 사랑하는 그 날까지 배달은 계속된다.' -싱싱 국악 배달부-☞‘싱싱 국악 배달부' 페이스북 페이지( https://m.facebook.com/hosim67)☞‘싱싱 국악 배달부' 공식카페 (http://cafe.daum.net/singsingkukakpostman)☞싱싱 국악 배달부 카카오 스토리 채널에서 소식 받아보기01. 스마트폰으로 카카오스토리 접속02. 친구 찾기에서 '싱싱국악배달부'로 검색03. 화면 중앙 '소식 받기'버튼 클릭
출처: 싱싱 국악 배달부 원문보기 글쓴이: 김호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