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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치가 지망생의 포부
-소문의 덫 5-
홍 성 암
영동지방의 작은 도시인 K시가 때 아닌 선거열풍에 휩싸였다. 이곳 출신 국회의원인 최호철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선고되었기 때문이다. 벌금이 백만 원 이상인 경우엔 자격이 상실된다. 그래서 보궐선거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아직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는 터여서 정치가 지망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선거철이 되면 으레 겪는 일이라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가장 당선이 유력시 되는 후보는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은 권혁춘씨였다. 그는 20여년 검사생활을 했고 대통령의 무슨 자문 위원인가를 지냈다는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자신도 이 고장 출신이지만 그 아내가 이곳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최씨 문중이고 소문난 부자여서 경제력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맞서고 있는 유력후보는 비록 무소속이긴 하지만 이곳 K시에 내리 3선 시장을 지낸 박준홍씨였다. 그는 시장으로서 3선을 연임할 만큼 시민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그동안 시의 발전을 위한 업적도 상당했다. 집권 여당도 그를 공천할 생각이었지만 그가 시장 재임시절 지은 시청건물이 그의 집안 땅이었다는 구설수에 올라 있어서 공천 막판에 제외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박준홍씨 본인은 매우 억울한 모함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결벽을 증명받기 위해서도 이번 선거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결의가 대단했다.
호남에 기반을 둔 전통 야당에선 통합야당이란 이름으로 김준기씨를 후보로 내세웠다. 그는 이 지역의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운동권 출신이어서 나름대로의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야당 지향의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 양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밖에도 서너 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당선을 겨냥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기회에 이름을 알리고 차기를 노리려는 야심에서였다. 그들은 대체로 급조된 정당의 이름을 빌려 쓰거나 아니면 아예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였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라도 알리려고 열심이었다.
영진리의 정치인을 자처하는 이만용의 경우도 유권자들이 볼 때는 그저 이름 석자 알리려는 정도의 인물이었다. 우선 이만용의 학력이란 게 초라했다. 그는 이 지역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게 학력의 전부였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그냥 들어갔고, 중․고등학교의 경우도 학생수가 모자라 입학시험도 치는 둥 마는 둥 했기 때문에 거저 입학한 셈이라 특별히 내세울 것도 못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서울의 명문대학 출신에다 더러는 외국의 석, 박사 학위까지 내걸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다 경력이란 것도, 영진리의 리장을 지냈다는 것과 이 지역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현재 ‘영진리횟집’의 사장이라고 되어 있었다. 시의원 낙선 경력은 그런 대로 보아줄만하지만 ‘영진리 리장’ 경력에다 ‘영진리횟집’의 사장 경력까지 내세우니 이건 아무래도 너무하다 싶었다.
그래서 시의 유권자들은 ‘영진리횟집’ 사장이라는 이만용이란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묻곤 했다.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영진리 사람들이야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온 터라 그를 ‘코흘리개 개구쟁이‘라는 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평생 영진리 바닥을 벗어나 본 일이 없는 그라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의원에 출마하긴 한 모양인데.”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영진리 출신으로는 드물게 시의원에 출마했다. 면에서 한 명 뽑히는 시의원에 출마하여 거의 당선될 뻔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가 시의원에 출마하게 된 것은 집안의 형님벌인 만철이 그를 찾아와 설득해서였다.
“이 사람아. 자네 언제까지 리장할 건고? 자네 부친 때부터 리장에 어촌 계장을 도맡아 하다가 대물림까지 하게 되니 아무래도 불공평한기라. 김정일처럼 그 자리를 아들 대까지 물려줄 텐가?”
막상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했다. 그가 해병대 근무를 마치고 제대해 돌아오니 아버지의 근력이 좋지 않았다. 워낙 술을 좋아하시던 분이라 나이가 예순이 넘으니 술에 곯아서 여기저기 망가지기 시작하던 것이다.
“리장 일은 이제 벅차서 안 되겠다. 네가 해라.”
부친이 그렇게 시켜서 무심코 맡게 되었다. 그게 벼슬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아버지가 자리보전하고 눕자 어촌계장 일도 그냥 떠맡게 되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서였던지 그냥저냥 그렇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어머니가 경영하던 영진리횟집도 맡아서 매우 바쁜 처지가 되었는데 아무도 리장이나 어촌계장 자리를 떠맡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몇 년 째 그냥하고 있던 참인데 만철 형이 그렇게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잘됐소. 그러지 않아도 횟집 일이 바빠서 누구한테 떠 넘겨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형님이 맡아주소.”
“이 사람 보게. 내가 하겠다고 그런 건가? 근래에 시의회라는 게 생겨서 웬만한 지역에서는 한 두 명의 시의원 출신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 지역엔 지금껏 한 명도 없는기라. 그래 자네보고 출마해 보라고 한 말일세.”
“웬걸요. 자격이 있어야지요. 학벌도 그렇고, 경력도 신통치 못하고. 돈도 없고요.”
“시의원이 별건가? 읍내에 가서 들어 보니 부동산 중개인, 어물상회 주인, 퇴직 공무원, 뭐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출마를 하데. 방내리 리장 송병훈도 나온다데. 그 사람, 땅이 좀 있긴 하지만 나머지 경력이야 자네나 피장파장 아닌가?”
“송병훈이야. 군대 동기생이지요. 그나 나나 그렇고 그렇네요.”
“내 말인 즉은 아무리 영진리가 가난한 어촌이긴 하지만 지금껏 정치인 비슷한 사람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그 말일세. 예전에 민선 면장시절이 있었지만 그 때도 면장 한 자리 해 본 사람도 없어. 그래서 술김에 자네 들어보라고 한 말일세.”
듣고 보니 그도 그렇긴 했다. 영진리란 곳엔 정치인은 커니와 이렇다할 고급 공무원 하나도 나온 적이 없다.
“그래도 자넨 말발이 있지 않나?”
만철이 말하는 말발이란 만용의 허풍을 말한다. 농담 좋아하는 그라 평소에 큰소리 탕탕 치고 살다 보니 모두들 만용이 말발은 아무도 못 당한다고 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저 웃자고 한 말이어서 말에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말썽이 생기면 만용이 끌려간다. 영진리 리장이란 직함도 있지만 해병대 출신이란 것도 중재에 한 몫을 했다. 그냥 해병대 출신인가? 해병대 의장대에서 근무했고 제대 말년에는 지휘봉을 잡고 대장 노릇도 했다. 그러니 미끈하게 큰 키와 당당한 체구가 한 몫을 한 셈이다.
집안의 형 되는 만철이 그렇게 운을 뗀 다음 날 영진리에 사는 만용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이번엔 자네가 우리 영진리를 대표해서 꼭 시의원에 출마를 해야겠네.”
“돈이 생기는 자리도 아니라는데 출마는 무슨?”
“그래도 명예라는 게 있는 거여. 자네의 명예뿐 아니라 영진리의 명예도 걸려 있다니까….”
만철이 만용의 친구들을 선동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모두 한결같이 만용의 출마를 권했다. 처음에는 말도 되지 않는다며 거절했지만 술잔이 거듭될수록 영진리를 위한 사명감 비슷한 게 생기게 되어 마침내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를 알고 있는 나이 든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의 출마소식을 듣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허, 그게 누구여. 범주 아들 아닌가? 그 망나니가 시의원에 출마 한다고?”
만용의 부친인 범주씨는 영진리 단골 리장에다 어촌 계장을 겸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잠수배도 한척 갖고 있어서 영진리 제일의 유지였다. 그에겐 딸만 셋이고 아들을 보지 못했는데 뒤늦게 만용을 나았다. 늦둥이로 본 아들이라 만용을 세상없는 아들이라고 떠 받쳐 키우다 보니 성질이 개차반이었다. 그야 말로 놀부 심보 그대로였다. 애호박에 말뚝 받기, 지나가는 여자애의 머리끄덩이 잡기. 물 뜨러 온 처자의 물동이 깨뜨리기. 고무줄 놀이하는 여자애들의 고무줄 뺏기. 그뿐 아니다 어른들도 골탕 먹었다. 길바닥에 함정을 파서 똥장군으로 똥을 퍼 나르던 농부의 발목을 분지르고 온통 똥칠갑을 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재미있다고 낄낄대고 웃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성질이 불같은 그 아비에게 지게 작대기로 반쯤 죽도록 두들겨 패지만 그 개굿한 성질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얼굴 곱살한 어머니가 억척이어서 남편이 번 것을 알뜰히 저축하고, 생선장수로 돈을 늘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해서 그런대로 인심을 잃지는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개굿한 자식 둔 죄로 마을 사람들 아무에게나 굽신대곤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제 애비 에미의 반만 돼도 좋았을 것을 하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런 어린 시절의 만용을 알고 있는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세상에 망조가 들지 않고서야 그런 망나니가 선거에 출마할 수는 없다는 투였다.
“허, 범주 아들녀석이 시의원 나왔다데.”
“세상에. 오래 살다 보니 별 희안한 일이 다 있구먼.”
“그래. 제 놈이 시의원 되어서 뭘 하겠다고?”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만용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든 모두 과거 어릴 때의 그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용의 출마가 그저 농담으로만 여겨졌다. 시의원이란 게 뭘 하는 사람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다섯 명이나 출마를 했다. 처음에는 면내에 이렇다할 인물이 없는 줄 알았는데 막상 출마를 하고 보니 모두 상당한 인재들이었다. 면내에 그런 숨은 인재들이 있었나 하고 새삼 깨달아질 정도였다. 그러니 영진리 리장 경력이 유일한 만용이 면에서 하나뿐인 시의원에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래도 걔가 인사성 하나는 밝데.”
“어른 술대접할 줄도 알고.”
“상갓집에서 밤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만용은 면내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특히 상갓집에 가서는 이웃들과 밤을 새웠다. 술을 좋아하는 그라,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술대접을 했다.
“자네 부친도 술이라면 사죽을 못 쓸 정도였네.”
“지도 술이라면 한 가락 하제요. 부전자전 아닙니꺼.”
“그려. 고맙네. 매번 술대접 받아서야.”
“어르신.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꺼? 제가 술 좋아해서 사는 겁지요. 대작할 사람이 필요해서 말입니더.”
“허, 말하지 않아도 알제. 표 찍을 사람은 이미 정해 진 거여.”
“표 얘긴 마세요. 그건 다른 얘기고요. 지금은 술자리니께 술잔이나 비우세요.”
“그려. 그려.”
선거의 막판이 되니 영진리 개구쟁이 만용이 당선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영진리. 범주 아들이 제일 유력하다면서?”
“그려. 여론 조사에서는 압도적 다수로 일등이라데.”
면내 사람들은 설마 제가 되랴. 싶으면서도 얻어 마신 술이 있는지라.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한 표 찍어주어야지.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마음이 전염병처럼 번졌던지 압도적 다수로 그가 일등이 될 가망이 많았다. 만용이 일등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인정되고 있는 터에 누구로부터 만들어진 것인지 그를 헐뜯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만용이 말이네. 걔가 어렸을 때 계집애들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나? 고무줄 놀이할 때 고무줄 뺏기, 오자미놀이 때 오자미 빼앗기 등으로 말이네.”
그런 식으로 시작된 말은
“그래갖곤 군대가기 전만해도 마을의 계집치곤 손 안탄 년이 없다는 거여. 세월이 좋았을 적 이야기지. 지금 같으면 성폭행 죄니. 성추행 죄니 해서 감옥살이 감이제.”
소문은 그런 식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소문을 잠재우려는 변명도 같이 떠돌았다.
“걔가 어렸을 적에 장난이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에 다니고부터는 마을의 처녀를 집적였다는 소문은 별로 없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여.”
그러다 급기야는
“피해를 본 사람 있으면 직접 나오라고 혀”
하는 식으로 대들자 소문이 한 풀 꺾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로운 소문이 돌았다. 이 사람 만나면 술사고 저 사람 만나면 술사는 판에 자금이 떨어져 영진리횟집 문닫을 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무일푼이 되어 매일 눈물을 찔끔거리며 동정표를 모은다는 것이다. 이 사람 보고는 술값 내라 하고 저 사람 보고 술값 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거지같은 작자를 시의원으로 당선시켜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면의 체통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문도 오래 가지 않았다. 선거에 출마하고부터 횟집 경영이 부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한테 술을 사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골 사람들이란 한 잔 얻어 마시면 한 잔 사서 갚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만용이 술사겠다는 것을 극구 만류하고 서로 자기가 사겠다고 싱갱이질 하는 게 남의 눈에 잘못 비친 것이다. 술집 주인의 입장에서야 매번 술을 사려고 하는 만용의 돈 보다 어쩌다 사는 유권자의 돈을 선호하게 마련인데 그게 소문이 되어 표가 우르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투표일이 가까워지자 상황이 다시 달라졌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 일을 제일 같아 나서서 할 사람이 만용이 그 사람밖에 더 있남. 사실 바른 말이지. 술도 늘 제가 먼저 샀지. 그래도 궂은일엔 그에게 밖에 부탁할 곳이 없지 않네. 사람이 털털해서 만만하기도 하고.”
“그러게 말이여.”
여론이 그렇게 되어서 만용은 다시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소문이 한 번 돌 때마다 표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저런 소문에 다 단련되어서 마침내 당선의 문턱에 온 듯싶었다. 그런데 선거일을 이틀 앞두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만용이 술값이 없어서 술값을 내놓지 않으려는 어머니를 발길로 내질렀다는 것이다.
“아니. 그럴 수가 있어. 그 어머니가 어떤 어머니인데.”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 집안일을 꾸린 것은 그 어머니였다. 횟집을 물려주고 그가 시의원에 출마해서부터 신발이 닳도록 쫓아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한 것도 어머니였다. 곱살하게 생긴데다가 상냥하고 말솜씨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그런 어머니를 발길질 하다니.
“글쎄. 방석 밑에 돈을 깔고 있는데. 그걸 주지 않는다고 어머니를 발길로 걷어찼다네.”
“저런 후레자식이 있나.”
시골 유권자들은 일제히 분개했다. 시골이란 게 이웃집의 집안 형편을 너무나 잘 안다. 만용이 제정신에 그랬을 리는 없지만 술이 취하면 엉망이다. 근래엔 건강이 안 좋고 잦은 술판 때문인지 정신을 잃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니 술 취한 개라고. 돈을 내놓지 않으니 술김에 그랬을 런지도 모른다.
“이놈. 네놈이 그럴 수가 있어.”
마을의 어른들이 만용을 보자 분개해서 호통쳤다.
“어떤 어머니인데. 이놈. 그런 놈이 시의원이 다 뭐엿.”
미쳐 변명해 볼 겨를도 없었다. 다 된 젯밥에 콧물을 흘린다던가? 만용은 아주 참패하고 말았다. 나중에 그 소문의 진원지가 어디였던가를 따져 보아도 확실치 않았다. 모두들 술좌석에서 들은 것 같다느니 하면서 어물어물 했다. 누군가의 조직적인 루머 작전에 여지없이 참패를 당한 것이다. 만용이로서야 억을 하기 그지없었다. 마침 그때 선거운동으로 지친 어머니가 감기몸살로 심하게 앓아누워 있어서 그런 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확인해 주는 꼴이 되었던 것이다. 물귀신 작전에 말려든 것이어서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만용이 이번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은 시의원 선거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모함성의 루머로 낙선된 분풀이를 하겠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번 선거만으로도 영진리횟집을 남의 손에 넘기고 살던 집도 은행에 저당 잡힌 판이라 당장 집안에서부터 반대였다.
“그것 해서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그만 둬라.”
어머니의 말이다. 아내는 더욱 질색이다.
“애들 모두 거지 만들 작정이요. 그만두지 않으면 나는 아예 집을 떠날 거요.”
집안 어른도 말렸다.
“이 사람아. 선거 한 번 치르고 온 집안이 쪽박 차게 되어서야. 두 번 다시 말게. 그만 두란 말이여.”
그렇게 되니 만용은 리장이 된 만철을 찾아가 통사정이었다.
“형님이 좀 도와주소. 선거 바람은 형님이 불어 넣은 것 아니요.”
“이 사람아. 현실적으로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나? 수입은 무일푼이고, 횟집 팔고, 살던 집 저당 잡히고, 그렇게 거덜이 나서야.”
처음 시의원 출마를 권한 것이 만철이었지만 쪽박 차고 나앉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도 말릴 수밖에 없었다.
“리장 자리나 도로 찾아가게.”
“형님, 나도 사내로 태어난 놈이요. 리장 자리 탐하게 생겼소. 지난번엔 엉뚱한 소문 땜에 너무 억울하다 그 말이제요. 이번엔 예전처럼 어수룩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거고요.”
“허, 시의원 선거에서도 그런 판인데. 이번엔 국회의원 선거네. 돈도 돈이지만 모략도 과거와는 수준이 다를 것이야. 이번엔 여당과 야당, 대통령까지 관련된 권력 다툼인데 그걸 견뎌 낼 재간이 있남?”
“그야. 생각할 나름이지요. 시골의 시의원이 자라서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거지요.”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무얼로 선거를 치르려나?”
“원래 선거란 공약 아닙니까? 훌륭한 정견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만용은 정견으로 버티어 보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기죽지 않고 큰소리치는 그 성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초반엔 만용의 출마가 그저 웃음꺼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선거가 종반전에 들어가면서 이만용의 이름이 유권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허, 영진리 어촌 출신 그 만용이 말일세. 육두문자로 좌충우돌 퍼부어대는 게 재미있어서 유권자들이 떼 지어 몰려든다네.”
“무슨 말을 하는데?”
“그냥 웃기는 거지. 정치가란 것들은 모두 사기꾼이고 모리배다. 그런 직업 정치꾼들을 국회에서 몰아내려고 출마를 했다.”
“좋은 얘길세.”
“야당 놈들은 붉은 물이 들어 불그레해져서 북한 김정일 끄나풀과 접선이 되어 있고. 여당 놈들은 모두 돈독이 올라 뇌물만 챙기는 놈들이다. 그러니 붉은 물이 들어서 국민의 세금을 북쪽으로 퍼내는 자가 국회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당선만 되면 뇌물 챙기기에 혈안이 된 차떼기 당의 부자 놈들도 안 된다. 그런 식이라니까.”
“무소속인 박시장에 대해서는?”
“박준홍은 3선 시장하면서 시청을 제 집안 종중 땅에다 지어가지고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고 소문이 파다하지 않느냐? 이런 자가 국회의원 되면 나라를 거덜 내기 마련이다. 그렇게 몰아붙이고.”
“그거야 소문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는 거지. 이 시골에 30층 시청 건물이 왜 필요하냔 걸세. 소방서 망루를 지으려면 몰라도. 돈 많이 뜯어 먹자는 수작이란 거지. 지금이라도 30층 꼭대기 전망대는 소방서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호텔로 개조해서 관광객 유치에 활용해야 한다는 걸세.”
“그도 그려. 시장이 백여 평 되는 호화 집무실에서 근무한다고 소문이 파다했제. 그렇게 큰 방이 왜 필요하남? 그런 큰 건물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 텐데. 전기세며 물세며, 거기다 건물세도 내야 할 테지.”
그런 식의 화제들이 돌고 돌았다.
“그렇긴 한데 영진리 어촌 구석에 살면서 기껏 시의원 한 번 출마한 경력밖에 없는데, 제가 국회의원 하면 뭘 할 건고? 겨우 고등학교만 나왔으면서.”
“그것도 제대로 들어가기나 했음사. 학생이 모자라서 그냥 긁어모을 때 덤으로 입학한 처지인데.”
“그래도 말 발 하나는 있더라고. 자기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제일 먼저 호화 관청을 호텔이나 회사에 팔아버리고 공무원들은 모두 셋방을 살게 하겠다는 거구만. 사람이 좋은 방에서 좋은 의자에 앉아 있고 보면 말 타면 풍물 잡히고 싶다는 격으로 국민을 우습게 알게 된다는구먼. 셋방살이를 해야 이웃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고 뇌물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게야. 그 뿐인가? 관공서의 자가용도 싹 없애겠다는 거여. 모두 자전거 한 대씩 사주고 그것만 타고 다니게 한다는 게야. 자동차는 손님 접대용 의전용 차 한 대만이면 된다는구먼. 그래야 연료를 절약하게 되고 다른 시민들에게도 모범이 되어서 자전거가 생활필수품이 되게 한다는 거야. 공무원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을 거라네.”
“그럴 듯하네.”
“그렇게 낭비를 줄여서 시민들의 세금을 현재의 딱 절반 수준이 되게 하겠다는 거야. 접대비니 판공비니 하는 낭비를 싹 줄이면 세금을 반만 거두어도 모자라지 않다는 거지. 그리고 시민들을 위한 각종 보조금 지급을 확대 하겠다네. 출산수당, 노인수당, 장애자 수당. 그런 식이야. 노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도 문제없다는 거야. 예컨대 버스표나 극장표 끊는 창구에는 65세 이상자만 채용되도록 하고, 복덩방도 부동산과 구별해서 노인들만 자격증을 내주고, 그렇게 해서 이 나라를 이만큼 잘살게 만든 노인들을 특별히 우대하겠다는 게지. 그러니 노인표는 몰표네. 상인들에게는 세금을 반으로 감면해주고, 이익이 생기지 않으면 보조금을 주겠다는 거지. 그 자금은 외국과의 무역에서 보충할 것이라네. 공무원들이 상인들 등 쳐 먹지 않고 잘 지원만 해주면 가능하다는 거야. 그 사람 말이 청산유수라. 여당이 세종시 수정안을 고집하고 야당이 세종시 원안을 고집하는데 만용이 웃기지 말라는 거야. 모두 당리당략에 의한 것이라며 공무원들은 서비스업인데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일해야 하는데 새로운 도시가 왜 필요하냔 거지. 차라리 공무원 별장지대를 만들어서 피곤한 공무원들이 찾아가서 쉬거나 잠이나 자게 하면 될 것인데, 그러니 땅을 매입한다, 개발한다, 뭣 한다 할 필요도 없다는 게지. 그리고 수정안에 나오는 도시는 바로 이곳 K시가 적격이란 게여. 물 맑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이런 곳에 과학연구단지를 만들어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게야.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국민이 납득할만한 새로운 세종시 방안을 내놓겠다는 걸세.”
“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곳 동해안은 다른 지역 보다 낙후되어 있는데 공해가 없고, 그런 사업체가 와야 하는데 과학연구소가 딱 적격이라는 게지. 삼척의 공업지대와 연계하고 평창의 동계올림픽과 연계하면 이 낙후된 지역에 미국의 무슨 밸리 같은 곳이 된다는구먼.”
이만용이 좌충우돌 즉흥적으로 떠들어대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었다.
“허, 그 친구 제법이네. 언제 그렇게 말발이 늘었남. 예전부터 허풍쟁이로 소문이 나 있어서 별명을 대포라 불렀지.”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만용의 말에 유권자들이 점점 끌리고 있다는 점이지. 그가 국회의원에 출마를 한다고 하자 모두 코웃음을 쳤거든. 이제 국회란 것도 개판은 개판이구먼. 그 허풍쟁이 이만용이 다 출마를 하는 판이니. 그렇게 비웃던 사람들이 지금 와선 저러다 진짜 당선될 런지도 모른다고 쑤군거리게 되었단 말일세.”
실제로 여론 조사에서는 만용이 단연 선두 그룹이었다. 아무리 정치가 개판이고 국회가 썩었다 해도 그래도 국회의원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것인데 이렇게 되면 정말 맹랑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그가 좌충우돌 지껄여대는 말에 대해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수긍을 한다는 점이다. 여론의 판세가 이상하게 돌아가니 이만용의 말을 아예 무시하던 후보자들도 그렇게 묵살할 수만도 없었다. 그래서 유세장에 나온 출마자들은 이만용의 말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무소속인 전직 시장이 적극적으로 변명에 나섰다.
“시청에 가서 지적도를 떼어 보면 알 겁니다. 그건 박씨 집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유언비어로 악성 소문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권자 여러분, 시청이 30층이라고 해서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 K시의 위상을 위해서도 그 정도의 청사가 필요합니다. 시청은 그 시의 얼굴입니다. 어느 나라도 시청 건물이 그 지역의 으뜸이지요. 유럽의 시청들은 모두 왕궁과 맞먹는단 말입니다. 우리 시의 시청은 우리 시민들의 얼굴이요 자랑이 아닙니까?”
여당 공천을 받은 검사출신의 권혁춘도 자기변호에 열심이었다.
“우리 여당을 부자당이라고 하고 한 때 차떼기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차떼기당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다 예전 말이지요. 지금은 그런 것이 통하는 시대 아닙니다. 저로 말하자면 20여년 검사생활에서 부정부패의 척결에 누구보다도 앞장을 선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이 나라가 다시 중흥의 기회를 가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야당 공천을 받은 김준기도 한 마디 했다.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됩니다. 야당이라고 해서 붉은 물이 들었니 어쩌니 비방해서야 되겠습니까? 북한과 가까이 지내며 통일을 앞당기자는 것은 우리 민족의 염원이지요. 어찌 야당만의 몫이겠습니까?‘
이런 식의 변명은 주로 만용을 향해서 퍼부어졌다. 다른 후보자는 점잖게 말하는데 만용은 무식한 육두문자를 써 가며 직접적으로 비난하기 때문에 우선 말막음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이만용이 단상에 올라가자 유권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기다리는 눈치였다. 전 같으면 제각기 몰고 온 청중들이 자기 측 후보의 연설이 끝나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관례인데 이만용의 육두문자를 들으려고 모두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이다. 이만용이 연단에 올라가더니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했다.
“3선시장님을 지내신 박준홍 후보님의 변명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엘 가 보세요. 왕궁 같다는 시청은 모두 그 나라의 수도 한 복판에 있지요. 시골 도시가 왕궁 같은 건물이 어디 있어요. 있으면 말해 보세요. 그 나라의 시청은 시민들이 가장 잘 모일 수 있는 시내 가운데에 있고 넓은 광장이 있어서 온 시민들이 집회를 할 수 있고 결혼식 같은 경우에도 시청 별관을 빌려서 사용합니다. 이곳 시청은 어떻습니까? 시의 한 쪽 산 밑에 나 홀로 우뚝 한데다가 고속도로 진입로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내버스 노선도 없어요. 그러니 자가용 족만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예전의 시청 자리로 다시 옮겨야 합니다. 2층이면 어떻습니까? 시민들의 세금을 낭비해서는 안 되지요. 우리 시에서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길도 새로 내고요. 하천도 새로 정비해야 하고요. 그 많은 자원을 시청을 팔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시청부지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박씨네의 땅으로 등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곳은 시골이라 그 땅 임자가 누군지는 다 알고 있습니다. 눈감고 아웅 하기지요. 공연히 자꾸 광고하지 말고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이만용은 여당공천 후보에게도 공격적이었다.
“여당 후보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권검사님은 재산 신고 제대로 했습니까? 소문을 들으니 정동진 유원지 쪽의 만여 평 택지와 서울 압구정동에 3채의 아파트, 그 밖의 부동산과 콘도며 골프의 회원권 등을 합쳐서 수백억 된다더군요. 검사생활 20년이라니 한 달 월급 얼마를 받습니까? 그 돈으로 생활비 하고 나면 저축하기 쉽지 않을 것인데 수백억 재산이란 게 무슨 말입니까? 투기한 것 아닙니까? 처가가 잘 산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만 그곳에서 물려받은 것이라면 증여세를 물어야지요. 본인이야 재산 형성에 일말의 잘못도 없다고 하지만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돈벼락을 맞은 게 아니라면 그 돈의 출처가 도무지 아리송하단 말입니다.”
야당연합 공천자에 대해서도 엄포를 놓았다.
“제가 색깔이 불그레하다고 말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 사람들이 맥아더 장군 동상을 끌어내려고 했던 것 아닙니까?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면 촛불시위나 하는 당 아닙니까? 그런 대중 선동은 다 공산주의의 전유물이지요. 실제로 그쪽 당이 집권했을 때 김정일에게 퍼준 돈으로 북에서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하도록 도와 준 당을 불그레하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이만용의 유세가 시작되자 한 쪽에서는 옳소. 하고 박수를 치고 다른 쪽에선, 집어치워라. 이 무식한 놈아. 하고 고함도 터져 나왔다. 반대 진영에선 도무지 상대를 못할 놈이라고 했다. 너무 무식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권자의 상당수가 이 무식한 정견 발표에 흥미를 가진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의 말이 먹혀가는 것이다.
이만용이 내놓는 공약도 점점 거창해지기 시작했다.
“무릇 정치가가 되려는 것은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을 잘 살게 하려는 것이지요. 현재 우리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첫째가 남북통일이지요. 둘째는 경제부흥입니다. 셋째는 교육의 개혁입니다. 지금 남북통일의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김정일이 병들어 그가 언제 죽느냐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 이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자칫하면 중국에게 먹혀 버립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란 게 뭡니까? 북조선이 고구려땅이란 게 아닙니까? 그래서 김정일이 죽으면 중국 땅으로 합치겠다는 겁니다. 이런 중요한 때에 미국과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미군 훈련 때 탱크에 깔려 죽었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런 단순 교통사고를 갖고 촛불시위를 하고 반미감정을 부추겨서 미군철수 하라고 떠들어대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인 맥아더 동상을 넘어뜨리겠다고 몰려가는 작자들을 두둔하는 그런 야당을 불그레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겉으로는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다고 선전해대고 뒤로는 북쪽에다 돈이나 퍼주자고 하는 그런 색깔의 야당 갖고는 통일이 어림도 없다 그 말입니다. 경제발전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영영 낙오하게 됩니다. 이명박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력발전소 플랜트를 수출 한 것, 그런 게 바로 경제부흥의 핵심이지요. 그런데 지금 여당은 어떻습니까? 친이계나 친박계다 해서 싸우느라 그런 뒷받침을 하지 못한다 그 말입니다. 제가 당선되면 이명박대통령으로 하여금 결연히 탈당해서 기업가들과 결속해서 원전수출, 자동차수출, 전자제품 수출, 그런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국수출기업당을 따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수출해야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닙니까? 교육 개혁도 그렇습니다. 야당이 주장하는 백 프로 무상급식 좋은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지요. 학생 뿐 아니라 교사들도 백 프로 무상급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과외 받으러 갈 기회가 없도록 학교에서 밤낮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자원이 있습니까? 뭐가 있어요. 인력만이 살길이거든요. 그런 인력을 학교에서 키워야지요. 교사들을 우대해야 합니다. 월급을 두 배로 올리고요. 학교 안에 사택도 마련해주고,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학생들만 생각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살도록 말이지요. 이런 명백한 일들을 왜 미룹니까?”
만용의 주장은 매우 엉뚱한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후보들도 비슷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유권자들이 그럴싸하게 여기니까 다른 후보자들도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따라 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당선되면 남북통일을 앞당기겠다. 경제 발전을 시켜 선진국에 진입하게 하겠다. 교육을 혁신하여 과외가 필요 없도록 하겠다. 그렇게 모두 비슷해지니 만용은 한 발 다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제가 당선되면 이웃 군 시와 합해서 통합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영동통합시. 얼마나 좋은 이름입니까? 그렇게 해서 시의 세를 키워야 합니다. 사실 예전엔 역사적으로 평창군은 K시와 합쳐 있었고요, 동해시는 K시에서 분할 된 것입니다. 정선군도 이웃입니다. 이걸 모두 합쳐서 영동통합시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나중에 삼척시까지 합치면 더욱 좋고요. 그렇게 시의 세를 키우면 원주와 K시간 복선 전철은 시간문제고요. 그리하여 영동통합시는 과학연구단지와 관광레저단지를 결합한 모양이 될 것입니다. 관광객들이 여름철엔 동해바다에서 수영하고 잠은 대관령 산속에서 자고요, 겨울엔 대관령 스키장에서 놀다가 잠은 푸른 바다가 보이는 정동진에서 잔다 그 말입니다. 그러자면 경포대에서 평창 스키장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겁니다. 정동진에서 삽당령을 거쳐 정선까지도 케이블카를 설치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사철 관광지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 말이지요. 요즈음 우리나라 모든 곳에 공기가 오염되어서 갈 만 한 곳이 없습니다. 영동통합시만이 가능합니다. 삶에 지친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며칠씩 묵으면서 스스로를 재충전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자동차를 팍 줄여야지요. 도시를 전부 자전거길 위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남대천 둑방도 자전거길. 시내 중심가도 자전거길. 시내 중심지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아예 없애는 겁니다. 자동차는 시 외곽의 대형 주차장에 무료로 주차하게 하고요. 자전거를 어디서나 쉽게 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5백 원 동전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지 자전거를 빌려서 시가지를 다닐 수 있게 하는 겁니다. 30층 시청사를 팔고 그 돈으로 자전거 수 만대를 사서 운영하면 운영비까지 모두 충당할 수 있습니다. 지상 천국이 되는 겁니다.”
이만용이 매일 같이 새로운 공약을 쏟아내는 데 그게 옳은지 어떤지, 또는 예산을 어떻게 배정하는지는 따져 볼 재간이 없었다. 아무튼 대부분 그럴듯하기도 하고 아닐 듯도 하고, 그래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만용의 인기가 더욱 올라가게 된 것은 영진리의 개덕수가 참여하면서였다.
“형님. 그 공약이란 게 정말 그럴 듯 합니다.”
개덕수는 고향 선배인 만용이 어디서나 화제가 되고 있으니 기분이 으쓱했다. 그래서 자신이 도울 것이 없나 생각하다가 깡패들을 모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한 돈도 뿌리고 주먹도 사용하면서 똘마니들에게 단단히 훈시를 하는 것이다.
“그 형님으로 말 할 것 같으면 우리 아랫집에 사는 분인데,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 그 말씀이야. 너희들은 사람들이 몰린 장소면 어디서든 만용이 형님에 대해서 말하란 말이다. 야 그 형님 말씀 정말 들을 만 하네. 하는 식으로 화제로 삼으란 말야. 그리고 그 형님 반대하는 작자들이 있으면 우격다짐으로 눌러 버리라고. 개똥도 모르면서, 가만있기나 하라고 말이야.”
그는 읍내의 똘마니들 뿐 아니라 시내의 주먹패들까지 모두 긁어모아서 그렇게 떠벌리게 했다. 깡패들은 신바람이 났다. 그래서 개덕수가 시키는 대로 술집에서도 만용이 이야기, 택시에서도 만용이 이야기, 당구장은 물론 시장 바닥에서도 만용이를 화제로 삼았다. 워낙 우락부락 설쳐대니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아예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렇게 깡패들이 설쳐대니 인터넷 누리꾼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근래에 드물게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생각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온갖 악플로 심심풀이를 하던 누리꾼들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여든 야든 다 틀려먹었다. 만용의 주장이야 말로 신선하지 않은가? 토론방에도 모두 만용이를 편들었다. 그래야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누리꾼들이 쓰레기답게 설쳐대니 지역신문 기자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일 만용의 행투와 막말들이 신문의 전면을 장식했다. 그러다 보니 여론 조사를 하게 되어도 모두 만용이를 찍겠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속마음은 따로 있지만 여론 조사를 하는 것이라며 전화로 질문을 하게 되면 여든 야든, 이놈이든 그놈이든 다 고만고만한 쓰레기들인 기라. 차라리 만용이나 찍을라네. 그런 식이니 만용이 단연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유망주 후보들이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용이 당선이야 될까 싶으면서도 자신들의 표가 자꾸만 그 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요즈음 사람들은 인터넷 재미에 빠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실제나 진실 보다는 엉뚱한 허풍에 더 재미를 붙이고 산다. 그러니 살인자나 강도들을 위한 팬까페가 생기는 판이었다. 하긴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도 노사몬가 뭔가 하는 팬까페가 표를 긁어모아서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다음번엔 뇌물 먹었다고 소문난 사람에게 표를 모아주기도 했다. 아무튼 근엄하고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부동층들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강했다. 여북하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허 아무개는 박근혜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떠벌리는 것만으로도 수십만 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여부는 나중 문제고 그럴 듯한 소문과 재미만 있으면 우- 하고 지지하는 부동층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후보자들이 이만용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난 번 시의원 떨어질 때 써먹은 것이지만, 만용이 어머니가 깔고 앉은 돈을 뺏기 위해서 어머니를 발길로 걷어찼다는 것을 내세웠다. 이런 패륜아가 어떻게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수 있었는지 출마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란 것이 이미 판명 된 터여서 유권자들이 우- 하고 야유했다. 식상한 것 말고 좀 새로운 것을 들고 나오라는 것이다. 요즈음 같이 바쁜 세상에 한 번 써 먹은 것을 재탕, 삼 탕 해서야 무슨 설득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자 새로운 루머가 나왔다. 이만용이 어릴 때부터 개굿해서 여자애들을 못살게 굴었다. 지금으로 치면 그것도 성추행이다. 그런 성추행한 자에게 표를 주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성추행, 성폭력, 그런 말에 매우 민감한 터라 잠시 효과가 있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녀석의 성격으로 보아서 성추행은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자 이만용이 그런 피해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 구체적으로 이름을 대라고 대들었다. 김추자. 박선자. 이명희란 여자와는 더러 만나긴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이름은 모두 출마자의 부인의 이름이었다. 그게 한 번 소문이 되니 출마자의 부인들이 죽을 맛이다. 직접 나와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고 을러대었다. 아니면 모두 까발릴 것이라고 했다. 김추자, 박선자, 이명희가 어디 한두 명인가? 이름 때문에 엉뚱한 곤욕을 당해야 했다. 그래선지 그런 소문도 별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른 소문이 또 만들어졌다. 제각기 소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실이 어떤지, 진실이 무엇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한 사람이 이런 소문을 퍼뜨리면 다음 날은 다른 사람이 다른 소문을 퍼뜨렸다. 심심한 시골사람들은 떠도는 소문을 매우 즐겼다. 텔레비전 연속극 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맛나는 것이다. 선거 때가 아니면 맛보지 못할 스릴이다. 이젠 변명도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래서 되거나 말거나 아무 소문이나 제각기 만들어서 퍼뜨렸다. 그렇게 되니 근거가 없는 소문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고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 유리한지도 모를 판이었다. 이른 바 소문 정치다. 그동안 기존 정당들이 못된 버릇을 키워 놓아가지고 결국 모든 게 개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중에도 진지한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봐. 이러다 이만용이 진짜 당선되면 어쩔끼가?”
“헐 수 없지.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인데.”
“여당이나 야당에서 가만있겠어.”
“가만있지 않으면?”
“허위 선전은 법에 걸리거든.”
“소문이 그렇다고 했지. 진짜로 그렇다고는 했남. 그리고 소문은 너도나도 다투어 만들었잖아. 그러니 피장파장인데 무얼 고발해.”
“하지만 야당을 불그레하다고 한 경우는 지나치거든. 직접 유세장에서 나도 들었네.”
“불그레하다고 했지. 붉다고 한 것은 아니잖어. 불그레한 것은 사실 아닌가?”
“본인들이야 사실이라고 인정하겠어?”
“그런 정도야. 요즈음 정가에서 뿐 아니라 사회명사들도 자주 쓰는 말인데. 조갑제나 김동길 같은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던가?”
“그렇긴 하지.”
“정치판이란 게 으레 개판이란 것은 잘 알려진 일인데 그런 것을 문제 삼을 사람들이 누가 있겠어. 문제는 당선되고 볼일이제.”
문제는 당선되고 볼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만용의 선거공약은 점점 더 거창해지고 또한 구체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선심성 돈 퍼주기 공약도 서슴치 않았다.
“제가 당선만 된다면 6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경노연금을 만들어 1백만 원씩 주겠습니다. 결혼하는 청춘남녀에게는 결혼자금 2억원을 무이자로 융자해 줄 것입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출산자금으로 5천만 원씩 지급할 것입니다. 의료보험제도를 확충하여 모두 무상으로 치료 받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은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교육도 마찬 가지입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학비 면제는 물론이고 무상 급식을 확대할 것입니다. 독일처럼 대학을 모두 국립화해서 부실한 대학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가 전원 고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원 고용은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도 해 내는 일을 신흥 경제국가인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그럼에도 점점 더 인기가 높아갔다. 이대로 계속되면 누구의 눈에도 이만용이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런데 정말 그가 당선되면 어쩔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들 때 마다 모두들 가슴이 섬뜩 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개판이라 해도 그 정치가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치가들을 아무리 비웃어도 그 정치가들이 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장난조에 속아 넘어가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유권자가 그렇게 선택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라를 위한다는 입장에서 이런 식의 선거란 정말 바람직한 일인가를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렇긴 하지만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인데 경기규칙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권자들은 이만용의 허풍과 그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을 즐기면서도 이게 아니라는 의구심에 마음 한 구석이 자꾸만 얼어붙고 있는 느낌이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그저 기다려 볼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