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하우스”Abattoir
미국영화, 장르:공포,스릴러, 개봉:2017.06.22
감독:대런 린 보우즈만(Darren Lynn Bousman),
각본:크리스토퍼 몬페트(Christopher Monfette),
주연:제시카 론디스(Jessica Lowndes), 조 앤더슨(Joe Anderson),
린 샤예(Lin Shaye), 데이턴 칼리(Dayton Callie)
관객:35,263명(2017.06.30.현재)
증거와 사건의 원인을 알수 없는 충격적인 연쇄 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을 칼럼 형식으로 게재하는 부동산팀 취재기자 “줄리아”(제시카 론디스역), 줄리아의 전 남편이자 현직 경찰로서 줄리아의 사건추적을 위험하게 여기면서도 그 사건 현장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래디”(조 앤더슨역), 줄리아의 어머니로서 줄리아와 그래디에게 주거지를 제공하지만 이미 사이비종교와 같은 집단최면에 빠져 줄리아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앨리”(린 샤예역), “다크하우스”의 주인으로서 연쇄 살인사건의 현장을 가져와 거대한 유령의 성을 건설한 사이코패스 “제베디아”(데이턴 칼리역).
다크하우스는 이 네 사람의 이야기다. 전 미국을 공포에 몰아 넣었던 연쇄 살인사건에는 언제나 사이코패스들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증거 부족과 범죄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사건이 종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어느날 줄리아는 잠못 이루는 조카 “찰리”(에이든 플라워즈역)를 위로하며 친언니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친언니의 가족은 누군가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고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틀뒤 누군가가 사건현장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린 것이다. 이 일로 충격에 빠진 줄리아는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기 위해 추적을 시작한다.
이러한 연쇄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나홀로 추적을 하는 줄리아의 행보에는 제베디아가 건설한 거대한 다크하우스가 있다. 제베디아는 연쇄 살인사건 현장을 수집하는 특별한 수집가다. 그는 줄리아의 글을 읽고 그 글 속에 등장한 사건 현장을 통째로 뜯어가서 재구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씩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 사건 현장은 더디어 거대한 제국이 되었지만 끊임없는 살인사건으로 여전히 미완성이다.
다른 외지인들의 방문을 거부하는 지역 보안관은 줄리아와 그래디의 출입과정에서 되돌아 가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마을 사람들은 이미 제베디아의 최면에 걸려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평정심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앨리의 집을 찾아가 위기를 부른다.
다크 하우스, 제베디아가 건설한 성에는 이미 죽은 자들의 분노가 살아있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다크하우스에는 사건 현장과 현장에서 있었던 모든 사건들의 흔적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충격적인 현장을 목도하는 줄리아와 그래디는 이성을 잃고, 제베디아는 다크 하우스건설의 목적과 지향점을 이야기 한다. 여동생의 사건현장을 목격한 줄리아가 출입문 앞에서 당황해 있을 때 그래디가 줄리아를 부르며 다가서자 겁에 질린 줄리아가 그래디인줄 모르고 칼을 휘둘러 그래디는 즉사해 버린다.
그래디를 죽인 줄리아가 공포에 휩싸이며 제베디아에게 총을 겨누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 엘리가 줄리아에게 총을 쏘아 죽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사건의 진실을 찾아 떠났던 줄리아와 그래디는 죽었고 다크 하우스는 또다른 누군가의 살인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끝이 났다. 공포영화도 아니고, 19금도 아닌 듯 하다. 어느 것 하나 칭찬할 만한 내용이 없다. 세계적인 요란함은 그저 빈 깡통이었을까?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연쇄살인사건 현장 수집가”와 그가 만든 다크 하우스다. 그러나 그 어떤 공포도 작용하지 않는다. 이미 죽은자의 현장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연쇄 살인사건은 극악한 사회로의 귀착이 있다. 사회가 점점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는 쇼크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언젠가 이러한 충격이 일반화되며 우리 사회 자체가 경악할 수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다크 하우스라고 부른다. 우리는 어떤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을까?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은 하나님의 몫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이제 “각성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 “돌아봄” 만큼 중요한 과정은 없다. 돌아봄과 치유를 통해 사회는 악함을 악함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브레이크다. 그리스도인이 브레이크가 되지 못할 때 그것은 반대로 악세레다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