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모녀 기타/정동윤
덕수궁 정동길 담벼락 한편에서
젊은 여인이 기타 반주로
가을을 노래한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중략)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애잔하게 흐르는 노래에
치매 걸린 엄마가 옆에서
연신 손을 흔드는데
울음이 배인 노래지만
꿋꿋하게 절제하며
행인들 발걸음 드디게 한다
멀찍이 군데군데 자리 잡은
정동길 사람들은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나온
엄마의 천진함에
컥컥 솟구치는 눈물
삼키고 있는지 모른다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팁 상자에
지폐 한 장 떨구고 가니
노래 부르는 딸보다
엄마가 아이처럼
고마운 인사 꾸벅 숙인다
내 가슴의 덕수궁 풍경이
모녀 기타로 새겨져
울컥하며 흐른다
2.서울역/정동윤
어딘가로 떠나고
누군가는 도착하는 서울역
나는 역 주변을 자주 배회하는데
해 뜨기 전부터
밤이 늦도록
길손들 들락거리며
묵직한 캐리어가 굴러가고
귀여운 가방이 끌려가고
설렘의 보따리가 총총총 걸어간다
붉은 벽돌 청사 한 쪽
때 절은 인생들이 밤을 밝히는
일인용 텐트 앞에는
유효기일 촉박한 빵이
명절 기차표보다 빨리 매진되고
잠은 아침 여행을 시작한다
어딘가로 떠나고
누군가는 도착하는 서울역
기차로 떠나고픈 아릿한 봄날.
3.오월의 기다림/정동윤
문밖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얼른 나가 문을 여니
하얀 햇볕만
한 뭉텅이
바닥에서 피어올랐다
커피를 마시다
새소리 같은
인기척이 들려
다시 문을 여니
놀란 바람이
풀쩍 뛰어올랐다
자동차 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니
꽃을 안고 들어오는
아이들 목소리가
오월의 기다림을
풍선처럼 터뜨렸다
정동윤 약력
* 서울중구문인협회 회원
대륙문협 회원
숲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