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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목사 미카엘의 간증문
4개월 전 알렉산더 할아버지가 106세를 일기로 별세하셨고, 그렇게 내 인생의 중요한 한 장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신 분이시기에 오늘 제 간증은 할아버지의 일대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알렉산더 할아버지는 20세기 초 폴란드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분은 변호사셨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할아버지는 아내, 외동딸과 함께 바르샤바의 게토(유대인 강제 거주 구역)로 보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자력으로 탈출하셨고 가족들의 위조여권을 만들 계획이셨습니다. 탈출한 할아버지는 폴란드의 한 마을에 정착하셨는데 그곳에는 이미 유대인 900여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거기서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하셨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치군이 그 마을에 사는 모든 유대인은 옷가방 하나만 챙겨서 다음날 장터로 모이라는 공고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가방을 챙기고 계시는데 마을에서 약국하시는 분이 오시더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다음날까지 약국 창고에 숨겨주셨습니다. 다음날 900여명의 유대인은 모두 인근 숲에서 사살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속 그 마을에서 사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천주교 수녀원으로 도망을 가셨는데, 그곳에는 이미 유대인 어른 두 명과 소년 하나가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원장 수녀님은 누군가 독일인들에게 고발을 해서 이 수녀원도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소련 국경까지 걸어가라고 음식을 챙겨서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이 길을 나서는데 수녀님이 할아버지를 뒤쫓아 오셔서 금속으로 된 큰 십자가 목걸이를 할아버지 목에 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가 할아버지를 구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게슈타포(비밀경찰)가 나타났습니다. 한 장교가 할아버지에게 총구를 겨눈 채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당신 유대인이오?” 너무 큰 충격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못하신 채 두 손만 들어 올리셨습니다. 십자가를 본 그들은 “아, 당신은 크리스천이군” 하더니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사살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얼마간 유격대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게슈타포에게 붙잡혀 감금되셨고 사형집행을 하루 앞두고 계셨습니다. 감방에 홀로 앉아 자신이 철저히 무력한 존재임을 깨달은 할아버지는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잠시 후 한 교도관이 오더니 마지막으로 소원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너무 추우니 따뜻한 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층으로 옮겨졌는데 그곳엔 교도소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는 그간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습니다.
잠시 후 교도소장이 방을 나가더니 돈이 가득 든 가방을 하나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의 사형 집행을 맡은 교도관에게 그 가방을 전해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돈을 받는 대가로 할아버지를 사형대상자 리스트에서 빼고 풀어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앞으로 어떻게 이 돈을 갚아야할지 묻자 소장은 그냥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는 세 번째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할아버지는 위조여권을 손에 넣게 되었고 아내와 딸을 바르샤바 게토에서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 사람은 전쟁동안 게토 밖에서 목숨을 부지했고 종전이 되자 곧바로 이스라엘로 이민을 왔습니다. 자신이 전쟁 중에 겪은 일 때문에 할아버지는 유럽 전역에 걸쳐 전시동안 목숨을 걸고 유대인들을 도와준 비유대인들을 찾는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열방의 의로운 이방인’을 위한 국제위원회 의장이 되었고, 예루살렘 소재의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뮤지엄’에 ‘열방의 의로운 이방인’을 위한 숲을 조성하여 코리텐붐, 오스카 쉰들러 같은 분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할아버지는 ‘그들은 소수였다’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이방인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다른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셨습니다.
물론 할아버지가 홀로코스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면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는 바르샤바 게토나 다른 집단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셨을 것이고, 그랬다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스라엘로 향하는 배에서 역시 폴란드 출신 유대인인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하셨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 중에는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열 살 쯤 되었을 때 2차 대전을 겪은 유대인자녀의 후유증인 끈질긴 악몽과 정신쇠약으로 고생하다 결국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18살 때 바르샤바 게토에서 시작하신 줄담배와 심장마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연 나는 고아가 되었고 내게 남은 식구는 조부모님과 남동생뿐이었습니다.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나는 이스라엘을 떠나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원했고, 그래서 이태리에 가서 의학공부를 하고 정신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고통의 장소를 멀리 떠나왔는데도 여전히 고통은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유대인으로 늘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온 나는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날 고통에서 구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교 성경의 예레미야서를 펴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그분을 만날 것이라는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그분을 찾아야할 지 몰랐지만 계속해서 그 분을 찾으며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야드 바솀 일로 독일에 가 계신 할아버지께서 나를 독일로 부르셨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친척을 포함해 수많은 유대인을 죽인 살인자의 나라 독일에 간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렇지만 수년간 뵙지 못한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 독일 방문을 감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투숙한 호스텔에서 유르겐이라고 하는 독일청년을 만났는데 그는 나를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와 조금씩 친해지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고통, 분노, 그리고 독일인들에 대한 원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주 못된 마음으로 그 청년과 사귀기 시작했고 유대인이 겪은 고통을 그 사람 탓으로 돌렸습니다. 내가 가시 돋친 말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유르겐은 변함없이 내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그는 자기가 마약중독으로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어떤 할머니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고 예수님이 즉시 자신을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내게 신약성경을 건네주며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이런 제안에 나는 매우 화가 났고, 그와 헤어지자마자 성경을 던져버렸습니다. 독일 방문을 마친 나는 이태리로 돌아왔습니다. 유르겐을 통해 만난 하나님의 숭고한 사랑과 독일 출신의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나보다 더 친밀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 내게 질투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롬11:11)
그 다음에 유르겐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신약성경을 다시 한 권 주면서 “이번에는 꼭 읽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읽어보고 유르겐에게 신약의 예수님이 유대인의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서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은 사랑과 긍휼, 용서와 치유의 능력이 가득한 분이었고, 이스라엘 학교에서 배운 악한 예수의 모습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유르겐은 나를 예배 모임에 초대했습니다. 새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 싫어서 내키지는 않지만 모임에 따라갔습니다. 늦게 도착한 나는 눈에 안 띄는 뒤쪽 구석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갈 무렵 나를 만난 적이 전혀 없는 어떤 여자 분이 일어서더니 다음과 같이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 중에 이스라엘에서 오신 분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는 아직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내가 너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내가 너를 네 원수의 나라로 데려온 것은 분노와 원망, 미움으로 가득 찬 굳은 네 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여기서 네게 메시야인 나를 보여줄 것이고 네 마음을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네게 네 원수까지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부드러운 새 마음을 줄 것이다(겔36:26). 그 후에 너를 네 고향 이스라엘로 다시 데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도록 준비시킬 것이다”.
이윽고 나는 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이태리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향한 비전을 가진 지역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나의 유대인 뿌리를 더 확실히 알기위해 유대인 공동체를 계속 만났습니다. 몇 년 후 주님께서는 내게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고통이 시작된 곳에서 내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고 메시야닉 유대인들과 함께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짐을 챙겨서 믿음 가운데 자라난 이태리 모교회의 축복을 받으며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나는 이스라엘에 가서 의사로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는 의사로서 사람의 몸을 고치는 것보다 목사가 되어 사람의 영혼을 고치는 일에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조금씩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 돌아온 얼마 후 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벌써 15년째 그 교인들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만난 형제, 자매들 덕분에 고아인 내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축복 중의 축복은 4년 전 지금은 제 아내가 된 마리안을 만나 결혼하고 작년에는 첫 아들을 낳아 아빠가 된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부목사로, 그리고 장로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또한 담임목사님께 3년간 실제적인 목회훈련을 받았고, 5년동안 목사들을 위한 신학교육을 받았습니다. 올 여름엔 4년간의 성경적 목회상담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제가 교회에서 맡고 있는 부분은 설교, 심방, 가정예배 인도 등입니다. 이 외에도 제가 이끄는 기도팀과 함께 안식일 예배 전 기도모임, 안식일 예배 후 개인 기도를 맡고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심야기도회를 인도하며, 일주일에 한 번 씩 기도학교에서 강의하고 예수님의 치유사역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메시야닉 학생 목양위원회와 레흐레하 자문 위원회와 같은 외부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세계적인 목사 및 선교사들을 위한 한 달간의 집중훈련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 훈련은 마태복음 28:19-20에 나오는 지상대명령을 근거로 마련된 것으로, 제자양육과 교인들의 교제를 위한 중요한 도구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모교회를 오랜 시간 섬겨왔지만 나는 이곳이 나를 위한 훈련소요, 언젠가는 주님께서 나를 새로운 일로 부르실 것임을 이미 수년 전부터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전을 담임목사님과도 여러 번 나누었습니다. 나는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렸습니다.
약 1년 반 전쯤 다른 문제를 놓고 아내와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내실 때가 가까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분이 우리를 보내실 곳의 이름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서 34장의 한 부분을 읽게 하셨는데, 거기에는 목자도 없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도시가 목사도 교회도 없이 방황하는 신자가 많은 지역이라 나는 이를 확인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지난 몇 년 간 R지역 사람들이 와서 목회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셔서 사양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나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내가 R지역에 대해 특별히 들은 바도 없고 가서 살고 싶은 곳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계속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지난 9월에 열린 수련회 때 교회 비전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내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신다면 나를 축복하며 평안히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꼭 올해가 아니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전 쯤 안식일 예배 후 R지역에서 온 어떤 분이 아내를 찾아와서 R지역에는 언제 교회가 생기게 되냐고 물어보았고, 그 때 아내는 바울의 꿈속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하고 요청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순간 아내는 R지역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되었고 나와 함께 그 지역으로 파송되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내와 나는 R지역에 대한 마음을 담임목사님께 나누었고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허락하시면서 장로님들께도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목사님은 갑작스럽게 떠나지 말고 조금씩 정리를 해서 사람들이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또 내가 하던 있는 사역 중 일부를 맡아줄 후임자를 구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나는 장로님들을 만나 내 마음을 나누면서 적어도 이번 여름까지는 전처럼 사역을 계속할 것이고, 대신 R지역 모임과 양육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시작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열 명 정도가 새로운 그룹에 참여할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또한 R지역으로 옮긴 후에도 적절한 후임자를 구할 때까지 내가 맡은 책임을 계속 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나는 앞서 언급한 조건으로 새로운 일에 착수해도 좋다는 장로님들의 축복어린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아내와 아들 로이와 함께, 그리고 교회 어른들의 축복을 받으며 이루어졌다는 점이 내겐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는 교회 어른들께 앞으로도 교인들, 특히 선배 목사이자 오랜 친구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아 내겐 영적 아버지와 같으신 담임목사님과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싶다는 소망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R지역에 살고 있는 오랜 친구이자 내가 R지역 목사가 되는 환상을 본 자매가 사역을 돕기로 했습니다. 또 R지역의 한 형제는 1년간 가족들과 미국에서 지내게 되었다며 올 여름부터 우리에게 자기의 큰 집을 빌려주었습니다.
R은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현재 단 하나밖에 없는 교회도 그나마 다른 도시로 이전하려고 하는 곳입니다. 뉴에이지 페스티발에서 회심한 새신자도 몇 명 있는데 모두 양육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또 안 믿는 유대인 남편을 둔 핀란드 주부들도 있는데 남편들이 교회에 못 나가게 한다고 합니다. 모두 우리가 돌봐야할 양들입니다. 이처럼 신자들과 관계를 맺는 것 외에도 복음이 거의 들어오지 못한 이 도시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께 이 모든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독일에서 구원받으며 시작된 내 인생의 고리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이제야 그 때 내가 받은 비전이 우리의 삶을 통해 온전히 실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만,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 삶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모든 일이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에 이뤄지는지 꼭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축복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주희연 -- 미카엘 목사님 같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