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리님이 퍼오신겁니다
출처:http://www.donga.com/fbin/searchview?n=200103200194
문화 / 생활 >> 음반맛보기 2001/03/20 15:59
[신승훈의 음반맛보기]’피아'의〈pia@arrogantempire.xxx>
1980년대. 록 음악은 가요계의 변방에 위치한 장르였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연주되는 강렬한 디스토션 사운드의 헤비메탈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80년대 후반 '대도레코드사'가 탄생하면서 언더그라운드의 실력있는 밴드들을 선별, 그들의 자작곡을 수록한 옴니버스 앨범〈Friday Afternoon〉시리즈가 발매되긴 했다.
하지만 마니아층의 층을 논하기 이전에 조악한 수준의 레코딩은 음반의 생산과 소비 양측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정기적으로 연주할 클럽도 거의 없었다(록음악의 가장 큰 시장인 서울만 따져보더라도 1년 이상 지속적으로 운영되던 록클럽은 신중현씨가 운영하던 '우드스탁'과 후에 고대 옆으로 이전했던 '송설라이브카페' 두 곳뿐이었다).
록뮤지션들이 그처럼 팍팍하고 힘겨웠던 현실을 지탱해나갈 수 있었던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음악(연주)을 향한 진지한 접근이었다. 또 단순한 핑크빛이든 아니든 간에 내일을 향한 일종의 '희망'이자 '결의'였다.
데뷔앨범(20일 발매)을 발표한 6인조 헤비메탈 밴드 <피아>(彼我) 역시 이러한 '궁핍한 그러나 자존심 있는 전통'을 이어가는 밴드이다.
동아닷컴 황태훈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보컬인 옥요한은 청취자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하드코어라는 한가지 장르로 규정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드코어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뭐 그리 날카롭게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하드코어 밴드인 ‘콘’(korn)의 냄새가 난다는 풍문 그리고 스크래칭과 샘플링을 전문으로 하는 멤버 '심지'가 있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성급하게 자신들의 음악을 한가지 카테고리에 묶지 말라는 이야긴가? 아니면 앞으로 자신들이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거세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긴가?'
말이야 어찌 되었든 답은 음반 안에 있게 마련이다.
첫 곡이자 타이틀 곡인 <행복한 꿈의 나라>가 흐른다. "어!! 이거 봐라?"
음반이 돌고돌아 마지막까지 왔다. "그렇군" 옥요한의 자존심 섞인 대답이 되새김질된다. 첫 곡의 첫 소절이 지나기도 전에 확연히 드러나는 이 음반의 장점은(국내의 홈스튜디오에서 나온 음반이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사운드다. 국내 언더밴드들이 발표하는 앨범들의 톤과 어레인지(편집)가 이 정도만 된다면 아마 록음악이 연주되는 클럽은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피아(彼我)는 이러한 사운드의 위력을 음반 프로듀서로 활약한 안흥찬(록밴드 <크래쉬>의 보컬) 덕택이라며 그 공을 돌렸다.
사실 음반 곳곳에서 안흥찬의 위력이 드러난다. 언뜻언뜻 비치는 어프로치에서 트래쉬의 맛이 진하게 묻어나고, 하드코어에 비해 묵직하고 정제된 트래쉬메탈 특유의 톤이 음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트래쉬 사운드에 대해서는 국가대표격인 안흥찬이 프로듀스해서인지 하드코어 특유의 뭉개지고 거친 사운드를 설익게 구사할 때 느껴지는 짜증스러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결국 깔깔하다 못해 귀에 못이 박히는 듯한 사운드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곡 자체가 주는 느낌과 그 흐름에 동참하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하드웨어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결국 곡을 쓰고 연주하는 것은 뮤지션이다. 수학공식처럼 뻔한 절정의 조절에 의존하기보다는 곡이 가진 느낌의 흐름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얼터너티브에서 느꼈던 음울함에 거대한 울분과 폭발적 해소가 더해졌다. 소외된 인간이나 자본의 메카니즘의 대한 천착이 없음에도 현학적으로 써갈긴 그런 가사가 아니라 더 인상적이다. 주제와 목표가 분명한 연주를 하고 있다.
문뜩 뭉크의 그림 <절규>가 생각난다.
‘대바위’(대중음악판바로잡기위원회)에서 벌이고 있는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록밴드 피아.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서는 길에 “오래하시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풍토가 척박한 이 땅에서는 잘하는 것만큼 오래 견디어내는 것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2001년. 90년대 얼터너티브와 펑크의 득세로 '클럽'이라는 것이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인디레이블은 음반매장에서 그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그 옛날 변방에서 북을 치던 우리나라의 이등병 '록'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진급은 되었을까? 중앙관직으로 진출했을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변방임에 불평하지 않고 북을 열심히 두드리던 '록'이등병에게 있어 진급이나 중앙으로의 진출이 무어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었겠는가. 오히려 예로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북을 두드려왔던, 그리고 이른 아침마다 성문을 열고 청소했던 그 젊은이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알아주는 그 누군가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록'이등병에게는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수록곡>
1.행복한 꿈의 나라
2.기름 덩어리
3.원숭이
4.수요일
5.all
6.잔해
7.gone
8.벌레
9.stain
10.거짓말
11.부끄러움을 알라?
12.행복한 꿈의 나라(미성년자 청취가?)
신승훈 <동아닷컴 e포터> ssh9525@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