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5장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자유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찬송 220장)
2023-9-8, 금
맥락과 의미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율법주의를 철저히 반박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습니다.
5장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구체적 결과를 자유라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칼빈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칭의에 따라서 나오는 후속편이라고 표현합니다.
1. 참된 자유: 율법으로부터 자유,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자유(1-15절)
2. 성령님 안에서 죄악의 욕망을 이기고 거룩하게 됨(16-26절)
1. 참된 자유: 율법으로부터 자유,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자유(1-15절)
1) 율법 지켜 선행을 해야 구원받는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1-12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1절).
첫 번째 자유는 종교적 선행의 짐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으로 선을 행해서 구원을 행해야 한다는 짐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유혹하는 거짓 교사들은 할례를 받아야 의롭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구약의 다른 모든 의식 율법들도 다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4절,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바울은 나쁜 것을 가르치는 그들을 저주합니다.
구약 율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식법입니다. 제사제도, 할례, 안식일 절기 등에 대한 율법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도덕법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의식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진 자입니다. 은혜로부터 끊어진 자들입니다.
착하게 살아서 (도덕법) 의롭게 되려는 자도 그리스도와 은혜로부터 끊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행동의 선함을 구원에 보태려고 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끊어진 자들입니다.
5절, 이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 안에서 의롭게 된 우리는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립니다.” 먼저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이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실제로 의롭게 사는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매일 성령님 안에서 의롭게 변화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의로운 삶’을 사니까 그 결과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고 인정하신 그 결과로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의롭게 살아갑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의를 우리도 이루어 갑니다.
이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이어집니다. 그 날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하고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것을 소망합니다. 그 재림 날의 소망을 성령님이 지금 우리 안에서 굳세게 해 주십니다.
6절, 사랑과 선행은 율법주의자들처럼 사람의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사랑이라는 일을 이루는 믿음입니다. 먼저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 때문에 이웃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니까 믿음이 생기고 의롭다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사도는 통탄합니다. 7절,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8절). 무서운 것은, 작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는 것입니다(9절). 믿음에 사람의 행위 공로를 조금 집어넣는 것이 믿음 전체를 파괴합니다. 결국은 교회 전체를 파괴합니다.
10절, 성도들은 지금까지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 믿음에서 확신과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평화를 혼란시키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로마 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교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로마교 또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행위(선행, 기도 등)가 구원의 공로로 조금은 작용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회 정의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좋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완전성을 손상시키는 잘못이 있습니다. 그 교리는 저주받을 교리입니다.
11절, 사도는 ”할례를 꼭 받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사도가 타협했으면 유대교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고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결코 그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십자가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유대인은 죽이려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12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 원한다”는 말은 저주의 표현입니다. 할례는 신체의 한 부분의 둘레를 자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어 버리라”고 합니다. 아예 그 부분 자체를 잘라 버리라고 심하게 말합니다.
율법(그 중에 하나가 할례)을 지켜서 구원받으려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까지 의롭게 살 수 없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구원이 있습니다. 그 밖에 어떤 것도 우리에게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선행의 짐에 눌리지 맙시다. 재산, 학벌, 성격, 외모, 어떤 것에도 매여 종노릇하지 맙시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양심을 억누르는 어떤 강요에도 굴복하지 맙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립시다.
2) 종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13-15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오직 은혜로 절대적으로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유가 아닙니다. 죄를 짓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에게 종노릇 하는 자유입니다(13절).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갈라디아 교회 안에서는 율법주의 때문에 파벌이 나뉘어서 분쟁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서로서로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공격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헛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러면 결국 모두가 멸망할 것입니다(15절).
2. 성령님 안에서 죄악의 욕망을 이기고 거룩하게 됨(16-26절)
1) 성령님께 순종하여 죄악된 욕망을 이김(16-21절)
참된 자유는 자신의 죄악된 욕망에도 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16절). 우리의 자연적인 성향과 의지는 성령님에 대항하여 욕망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죄악된 생각과는 다른 거룩한 욕망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하면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18절). 율법의 지배를 받아서, 율법이 두려워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일하셔서 자발적으로 기쁘게 선을 행할 마음을 주십니다. 종이 아닌 주인의 태도로 율법을 이루게 하십니다.
2) 성령님이 우리 안에 맺으시는 열매(22-26절)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게 된 사람 안에서는 성령님께서 열매를 맺으십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마음 속의 상태나 성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에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 기쁨, 평화, 온유, 절제 등을 행합니다. 가족과 이웃을 향하여 유익을 끼칩니다. 이것들은 율법의 요구와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23절). 오히려 율법에 부합하는 일을 합니다. 율법을 완성하는 것들입니다(14절 참고).
자신의 의지로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해 보려 한 적이 있으시지요? 그러면, 율법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우리는 율법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능력으로 이웃 사랑을 이룹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십계명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노력해서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율법의 지식을 사용하여,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받는 저주를 두려워하며 살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새 성품으로 서로 사랑하며 기쁨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는 계속 성령님을 의지합시다. 악한 생각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읍시다. 서로에 대해서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 서로 분노를 돋우고 시기 질투하는 것을 그만둡시다.
믿고 복종할 일
자유를 즐깁시다. 내가 선행을 해야 구원받는다는 이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납시다.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를 믿으면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갑시다. 양심의 평안과 자유를 누립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는 그 믿음이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누리는 우리는 누구의 종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종으로 사랑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안에는 우리를 죄짓게 하는 우리의 본성의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그 생각들을 부인합시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러면 사랑, 평화, 기쁨, 자비 등 하나님이 우리에 주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사랑, 평화, 기쁨, 오래참음, 온유함 등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큰 선행을 항상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 사람이 보기에 당장 뚜렷한 표시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에도 계속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용서 받았음을 감사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딸로 삼아 주셨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