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는 있는데 출구는 없었다. 그리고 방 안에 난 혼자였다. 마음 탓인지 사방을 둘러싼 흰 벽이 명도 대비 더 어둡게 느껴졌다. 물 밖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점점 더 숨이 차오를 때 나의 의식은 폐소공포증을 견디지 못하고 공간 밖으로 퉁겨져 나왔다. 꿈이다.
대형 마트 앞, 넓은 공터엔 일 년에 두 번 카니발이 열렸다. 그리고 커다란 트럭 몇 대가 오더니, 신기한 놀이기구를 쏟아냈다. 꼬깃꼬깃 잘 접어 넣었던 그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속 화차처럼 서서히 몸을 풀어갔다. 마트에 갈 때마다 오늘은 어떤 놀이기구가 설치됐나 구경하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드디어 카니발의 첫날. 이 조용한 마을 어디서 그 많은 사람이 다 나왔는지 모를 만큼 입구에서부터 긴 줄을 이뤘다. 작지만 제법 높이 올라가는 미니 관람차, 빙글빙글 돌아가는 찻잔, 바이킹까지 다 돌고 잠시 쉬려는데 아이들이 뭔가를 발견한 듯 일제히 한 곳으로 달려갔다. ‘거울의 방’이었다. 일종의 미로 같은 건데 일단 들어가면 거울에 반사되어 어디가 거울로 막힌 벽이고, 어디가 뚫린 길인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만만히 본 그곳에서 일이 터져버렸다. 같이 들어갔던 아이들이 먼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난 그만 거울 벽 안에 홀로 갇혀버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또 다른 내가 나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열심히 손을 더듬어 한 발씩 나아갔지만, 어느새 내가 출구를 못 찾고 비슷한 구역에서 맴돌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꿈속에서처럼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에게 문은 공간과 공간을 막고 있는 벽이자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길이며 세상과의 단절로 나를 가두는 도구이기도 했다. 문 하나를 여닫는 행위는 언제나 내게 새로운 도전이며 삶의 문제였다. 그래서 난 항상 그 문 앞에 서서 물었다. 이 문 너머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있는지, 그로 인해 도출된 결과는 삶의 정답일지.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그 문은 언제나 답이 없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겨우 빠져나온 문은 출구가 아닌 입구였다. 먼저 나와 있던 아이들은 내가 잘못 나왔다며 다시 들어가라 손짓했지만 난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버렸다. 과제는 끝났고, 도출된 결과는 오답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가. 난 ‘거울의 방’ 밖에 서서 나 자신에게 반문했다. 그래서 너의 삶은 오답이었냐고.
그제야 내가 꿈속에서 간과했던 것을 발견했다. 그 방은 애초에 한 개의 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입구와 출구는 하나였다. 들어온 문으로 다시 열고 나가면 되는 것, 입구는 출구가 되고 출구는 입구가 되는 것. 그 생각 밑에 애초에 없던 문을 깊이 묻어 버렸다. 그러고 나니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가끔 그때 묻어버린 그 문에 대해 아직도 답을 묻는다. 내 안에 묻은 것이 문(門)인지 아니면 문에 대한 문(問)인지 혹은 그저 이 문(文)을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문들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