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일요일 맑음. 집에서만 지내다.
일요일이라서 새벽에 개를 끌고 나가는 사위를 따라 나가서 가까운 공원에 한번 다녀온 뒤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만 지냈다. 신문도 받아보지 않고, TV도 1 대가 거실에 있기는 하지만 주인 내외가 모두 공부하는 것이 본업인지라 거의 틀지 않고 지내니, 우리 내외도 만약 책조차 보지 않는다면 정말 달리 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 미국에 다녀왔다는 어떤 친구 보고 잘 갔다 왔느냐고 물었더니, “어휴! 그것 정말 감옥살이 지요. 뭐”하던 생각이 난다. 요즘은 만약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러한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기는 한결 나을 것 같다.
나도 오전에는 도서관에 갈 수도 없고, 무엇이 손에 잡히지도 않아서 좀 지루하였으나, 오후에는 이층 방에 햇볕이 잘 들어와서 몇일 째 읽던 것을 계속하여 읽기도 하고, 이메일을 열어 보기도 하면서 그런대로 즐겁게 보냈다. 내가 쓴 시원치 않은 글에 대하여 댓글을 달아준 동양고전연구회의 여러 회원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목소리가 귓전을 감돌아서 행복하였다.
그런대 한 가지 놀라운 일은 이 일기를 우리 다움까페에 올리자 말자, 그 내용이 막 바로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었는가? 일기를 이메일로 보내어 놓고서, 보낸 내용에서 말한 어떤 사람의 신상에 관하여, 아무래도 내가 좀 잘못 알고 적은 것이 아닌가 하여, 다시 이메일을 열고서 한 번 더 그 이름을 검색하여 확인하여보고자 해서, 입력을하였더니, 바로 24분 전에 다움까페에 올린 내가 《일기》에서 (자신 없이 썼던) 말이 그대로 인용되어 떠오르지 않는가? 참 글을 함부로 썼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것만 같다.(앞으로 나의 사생활을 주로 적은 이런 보잘 것 없는 글을 누구나 퍼가지 못하게 해야할지 생각 중이다)
점심은 비빕밥을, 저녁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자주 밥상에 오르는 밑반찬이나 마른 나물반찬은 아직은 대부분 청도의 수무동에서 뜯어 말리거나 절여서 가지고 온 것이라서, 아주 “무공해organic”이라고 자랑하면서 먹는다. 봄 배추와 햇 부추를 뜯어 김치를 담구어 놓고, 가지고 오려다가 짐이 무거워 그만 둔 것이 아쉽다. 여기 채소들이야 맛이 어디 그만한가?
아이들은 커피 샾에 가느니, 요가하러 가느니, 가게에 가느니 하고 번갈아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것 같았으나, 집사람은 어제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한지 공예를 어떻게 여기서도 다시 할지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니, 낮 시간에는 점심 저녁을 1층으로 내려가서 조금 거들어차린 것 이외에는 하루 종일 2층 침실에서 혼자서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장보러 나갈 때는 꼭 따라 나가는데, 오늘은 그것도 안는 것을 보니 좀 의아하다.
참 좋은 세월을 만났다고 해야 할지? 하기야 나이 70에 이만한 여유도 없어서야 되겠는가? 국내에 있을 때는 매일 운전도 하고, 신문도 보고, TV도 보고, 전화도 하고, 강의도 듣고, 동창회에도 나가고, 주말이면 촌집에 가서 풀도 뽑으면서, 한참도 쉴 틈이 없이 살았는데 말이다.
6월 25일 월요일 맑음. 매미가 울고 개똥벌레가 날아다닌다.
저녁 먹고 공원에 나가니 매미가 울고 개똥벌레가 날아다닌다. 지금 한국은 물론, 같은 미국 땅이라고 하더라도 샌프란씨스코나 보스톤 근교에서는 이러한 것을 보지 못하였는데, 이곳이 그만큼 청정(淸淨)한 지역이라는 이야기다. 백인들이나 흑인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노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느긋해 진다. 인생의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야 동서양이 다르겠는가? 초승달이 뜬 것을 보고서, 또 한 달이 “새롭게 시작되는 구나” 하면서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땅거미가 진 뒤에야 집으로 들어왔다.
집 앞 잔디밭에 집 사람이 호수를 끌고 와서 물을 뿌려서 시원하다. 여기도 기온은 매일 30도 이상 상승하지만, 비가 별로 오지 않으니 집집마다 잔디밭에 자동호스를 설치해 놓고 아침, 점심, 저녁 가릴 것 없이 틈만 나면 뿌리는 것이 이 곳 사람들의 중요한 일과의 하나인 것 같은데, 아직 이 집에는 그런 것을 사지도 않았고, 또 특히 집 뒷 정원의 화단은 개만 나가서 설치다가 보니 황량하기 거지 없다.
사위가 힘도 세고 마음도 착하여 집안일을 아무 것이나 다 하고, 처음 이사 와서는 뒤뜰에 조그마한 쉼터조차 손수 하나 지었는데, 지금 보니 “손으로 정원 가꾸는 일Hand Gardening”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옆집의 잔디보다도 노랗게 시들어 가서 좀 민망하더니, 이제부터 좀 파랗게 될 것 같아 다행이다. 한국의 반농(半農)이 여기 있는 동안은 잔디라도 가꾸어야 할 것 같다.
첫댓글 선생님. 오늘 대구의 밤기온은 춥습니다. 긴팔옷을 입고 싶습니다. ㅎㅎ
선생님! 수무동에도 개똥벌레 있지요? 晉나라 車胤처럼 螢窓을 가까이 두어 늘 책을 많이 보시나 봅니다. ㅎㅎ
선생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는 논어 배운적 잇는 제자이며, 마침 저의 아이가 며칠전 미주리 캔사스시티로 이사갔어요.
아이는 버지니아택에서 과학사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후엔 1달 예정으로 잠시 귀국할 예정입니다만, 선생님 계신 곳하고 멀지 않아 더욱 반갑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요즘은 추워서 저녁에는 전기장판을 잠시 꽂아야할 정도입니다. 서울과 대구가 기온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서늘한 기온으로 여름방학을 한 건지 헷갈립니다. 덥더라도 따님과 함께하시는 선생님과 사모님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