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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앞에 의자 둘을 놓고,
반드시 강의 내용을 하나 하나 진행할 때마다
“성령의 실제와 나타남의 웍샵”을 진행한다.
殉命의사람 배종부 목사 성령세미나 강의 15-7>
월 오후 2:00 왜 성령신앙인가?
4:00 성령의 기름부음
저녁 7:00 방언속에 열리는 영계
화 오전 9:00 신유와 내적치유의 능력
11:00 영분별의 은사
오후 2:00 축사(逐邪)의 권능
4:00 예언(豫言)의 은사
저녁 7:00 능력의 전이(轉移)와 성령의 임재
수 오전 9:00 기도와 중보의 은혜
11:00 영적인 통로 환상,투시,영안의 실제
오후 2:00 레마의 말씀의 위력
4:00 영계를 관통하는 신앙생활
저녁 7:00 영적무기 성령의 불,바람,생수,빛,검...
목 오전 9:00 성령동행,성령충만의 삶
11:00 오능복음(五能福音)의 권능
7.예언의 은사(Gift of Prophpcy)
(롬12:6)우리에게 주신 은혜(恩惠)대로 받은 은사(恩賜)가 각각(各各) 다르니, 혹(或) 예언(豫言)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或)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或) 가르치는 자(者)면 가르치는 일로, (8)혹(或) 권위(權威)하는 자면 권위(權威)하는 일로, 구제(救濟)하는 자(者)는 성실(誠實)함으로, 다스리는 자(者)는 부지런함으로, 긍휼(矜恤)을 베푸는 자(者)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예언의 4대 줄기-1>.설교, 2>.개인 말씀묵상, 3>.개인기도, 4>.예언자의 개인예언
1.예언의 정의
예언은 희랍어 Propheteia 는 하나님의 생각과 명철에 관해서 선포함을 뜻하는 명사이다. 예언은 과거에 관한 것, 현재에 관한 것, 혹은 미래에 관한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은사이다.
예언이란? 솟아나다, 분출해 나오다, 앞으로 뿜어져 나오다.[출 7:1-2, 잠언 15:28] 뜻이다.
Nabi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 306회가 나오는데, 이 단어의 뜻은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듯 솟아오른다.[Spring out],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면 물이 펄펄 꿇는 것처럼 끓어오른다.[Boiling]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예언이란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솟아오르며, 하나님이 음성을 선포하는 것이다.
나부[nabu] 부르다, 선포하다. 알리는 사람
[로쉬 Roch] 선견이라는 말은 보는 사람, 이상[Vision]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초췌]-예언적 환상을 보는 자
70인 성경에 선지자란 단어가 [프로피테스] -파수꾼, 지켜보는 사람, 경계자 단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말하여 주는 은사
2.예언사역자의 사명
예언사역자는 그 시대에 중요한 사명을 가진 자이다.
1). 구약성서는 예언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2). 예언자들은 초림예수를 예언했다.
3). 예언자들은 메시야가 오는 길을 예비했다.[세례 요한]
4).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5). 예언자들은 교회의 신비를 알려주었다.
6). 예언자들은 교회기초에 가장 중요한 기초를 이루고있다.
7). 예언자의 직임은 신약교회의 5중사역 중의 하나였다.
3.선지자의 역사
1) 모세 이전시대 선지자들 [4000-1450 B.C]
* 아벨[눅 11:50,51]
* 에녹[유다서 14절]
* 노아[히 11:7, 벧전 3:20, 창 9:25~27]
2) 부분적 선지자들의 직임
* 아브라함[창세기 20:7, 시 105;9~15]
* 이삭[시105;9~15, 히 11:20]
* 야곱[시·105;9~15, 창 48:13~49:29]
* 요셉[시 105:15-23, 창 50:29, 히 11:22]
3) 모세시대 선지자(1450-1050 B.C.)
* 모세[신 34:10] *미리암 여선지자[출 15:20] *아론[출 7:1]
* 드보라[여선지자] [출 15:20]
*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이스라엘자손에게 보내심 [사사기6:7]
* 한나[여선지자] [삼상 2:1~10]
4) 초대왕의 통치시대 [1050-931 B.C.]
* 사무엘[삼상, 행 3:24]
* 나단[삼하 7:2~17, 12:1~22, 왕상 1:8~45]
* 갓[삼상 22:5, 역대상 21:9~19]
* 다윗[행 1:16, 2:20, 4:25, 히 11:32]
5) 다윗시대
* 아히야[나라가 분단될 때[왕상 11장]
* 세미야가 르호보암에게 예언[왕상 12장]
* 여로보암을 반대하는 예언[역대하 9:26]
* 야하시엘[역대 20:14~24]
* 엘리엣셀[역대하 20:37]
* 여로보암 집에 대한 예언[왕상16:1-7]
* 예후가 이스라엘왕에 대한 예언 [왕상 16:7]
* 하나냐가 유다왕을 책망 예언[역대하16:7]
* 스가리야[역대하 20:20~21, 눅11:49~51]
* 미카야[왕상 22장]
* 엘리야[왕상 17~왕하 1장]
* 엘리사[왕하2-13장]
* 선지자 학교[삼상10:5]
6) 포로 시대[845-400 B.C]
포로 시대 전
* 오바댜
* 요엘
* 요나
* 아모스
* 호세야
* 미가
* 이사야
* 예레미야
* 나훔
* 스바냐
* 하박국
포로 때
* 에스겔
* 다니엘
포로시대 후
* 학개
* 스가랴
* 미가
7) 암흑시대
* 세례(침례) 요한[눅 1:76]
* 스가랴[눅 1:67]
* 안나 여선지자[눅 2:36]
* 그리스도[요 6:14, 눅 4:24, 이사야 61:1]
8) 신약 시대
* 예루살렘의 선지자들[행 11:27]
* 에베소 교회 선지자들[엡 2:20, 행 19:6, 엡 4:11]
* 안디옥 교회 선지자들[행 13:1]
* 고린도 교회 선지자들[고전12:10,28, 14:1,28]
* 유다와 실라는 선지자[행15:32]
* 데살로니가 교회 선지자들[살전 5:20]
* 두로의 선지자[행 21:4]
* 아가보 선지자[행 11:28, 21:10~11]
9) 오늘날시대 [33A.D - 예수 재림]
[엡 4:11~14, 고전 12:28]
4.예언사역자의 사명
예언사역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는 자이다.
* 예언사역자는 하나님께 향한 절대적인 신앙이 있어야한다.
* 예언사역은 하나님의 음성을 위하여 책임을 지고 목숨까지라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마10:19~20].
* 예언사역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운반한다.
*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특수한 신분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마 5:19, 갈1:7~8]
* 예언은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선포되는 하나님의 뜻이다.
* 예언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알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일을 선포하는 성업이 바로 예언이다.
* 예언사역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일이다. 인간의 입술을 이용했다 해서 인간의 말을 전하거나 인간의 지혜를 선포함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져야 하는 것이 예언이다.
3>. 예언사역자의 사명은 영적 파수꾼이다.
“예언사역자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늘 깨어 있어야 할 파수꾼의 사명이다.”
4>. 예언사역자는 중보기도자이다.
예언적 중보란?-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인 기도요청을 받고, 신령하게 기름부음 받은 말을 통해 기도하는 능력이다.
5>. 예언사역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이다.
* 예언사역자는 인격으로나 덕망으로나 일상생활에서도 책임있는 인격, 책임있는 품위를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서 위치를 지켜야한다.
* 예언사역자는 성령으로 하늘에 있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의 원하는 일을 그대로 전파해야 되고, 하나님의 계획을 그대로 전파해야 된다. 하나님의 요구를 그대로 전달해야 되는 것이다.
* 예언사역자가 성령으로 참예언을 하지 아니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치못할 줄을 알아야한다.[겔 34:1~16]
* 예언하기 위한 방법보다는 성령으로 감동되려고 하는 기도가 더욱 필요하다.
6>. 예언사역자는 예수께서 말씀하심과 같이 예수의 기쁨을 주어야 한다.
예언은 교회의 덕, 권면, 위로가 되어야 한다.
두려움에 떨고있는 자에게 방향제시를 함으로 평안과 위로를 끼쳐야 할 의무를 지닌 자가 예언사역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하늘에서 온 평강의 말씀이요 평안의 말씀이다.[요 20:21~23]
“예언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유모가 젖을 아이에게 먹이지 아니하면 젖이 아파서 못 견딘다.”
7>. 예언사역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로 하여금 믿게하고 순종하게 해야 한다.
교회당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한다. 그리고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기에 예언을 듣고 곧 행동으로 옮기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예언의 책임이다.
8>. 예언사역자의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실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여러가지 묘사
1. 하나님의 말씀은 더러움을 정결케 하는 불이다[렘 23:29]
2. 하나님의 말씀은 환경의 모든 결박과 속박을 부숴뜨리는 방망이[hammer]이다[렘 23:29]
3. 하나님의 말씀은 방향을 잡아주는 빛이다[시 119:105]
4.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이다[약 1:21~25]
5.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아기를 성장시키는 신령한 우유이다.[벧후 2:2]
6.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를 측량하는 막대기이다[계 11:1~2]
7.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자라게 하는 씨앗이다[벧전 1:23]
8.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방어하고 분별하는 영적인 검이다[히 4:12]
9.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새롭게 하고 깨끗케 하는 물이다[엡 5:26]
10.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좋게 만들어주는 송이꿀과 같다[시 19:7~14]
11. 말씀은 영혼과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생명의 떡이다[마태 4:4]
12. 말씀은 성장해 나가는 자에게 찌르는 채찍과 같다[전도서 12:11]
13. 하나님의 말씀은 치료를 역사하신다[시 107:20]
14. 하나님의 말씀은 소망을 안겨다준다[시 119:14~116, 147, 130:5]
15.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건져준다[시 119:170]
16. 하나님의 말씀은 적절한 유익을 안겨다준다[잠언 15:23]
17.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의 결과를 가져다준다[이사야 55:8~11]
18.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준다[빌 2:16, 요일 1:1]
19.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골 3:16]
20. 하나님의 말씀은 간곡한 권면을 가져다준다[히 13:22]
21.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을 가져다준다[시 119:162, 잠언 12:25]
거짓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말이나 세상의 영에 미혹된 말을 전함으로써,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자이다.
9>. 예언사역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음성을 전달하는 자이다[요 6:68]
10>. 예언사역자는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믿음의 언어들이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지 분명하게 파악을 해야한다.
“예언사역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하는 데만 사용하라. 죄인들을 변화시키는데 사용하라. 병을 고치기위해 사용하라. 세상의 꿈을 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꿈을 갖게 하라. 죽은 것을 살리라. 영감을 받게하라. 능력을 얻게하라. 하나님 앞에 복종하게 하라.”
11>. 예언사역자는 말에 대한 진실성, 말에 대한 책임, 말에 대한 실력이 있어야한다.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고,
*예언은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예언사역자는 혀를 아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기 때문에 혀가 항상 기름부음을 받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하지 않으면 사망의 쓴뿌리가 된다.
12>. 예언사역자는 예언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경건한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예언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태도가 경건치 못하면, 그로 인한 책임을 자신이 지어야 한다[히 6:5-6]
* 예언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경건하라
*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받으라
*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믿으라
*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하라
* 하나님의 음성이 자신의 생명인 줄 알라
* 하나님의 음성으로 살라
1. 하나님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시기를 원하신다.[아모스 3:7, 요한 15:15]
2. 하나님의 음성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이다.[벧후 1:19~21]
3. 하나님의 음성은 선한 싸움의 하나님의 능력이다.[딤전 1:18]
4. 하나님의 음성은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에스겔 37장]
13>.예언사역은 교회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5,예언이란?
예언이란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시지를 받아, 하나님의 성별된 말씀으로 전달하는 능력이다. 미래의 일보다는 현재적인 말씀의 선포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는 은사이다. 목사님의 설교 중에 자신에게 해당되는 갈 길을 일러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 등이다.
한동대 김영길 총장은 한동대총장 청빙 수락여부를 앞두고 기도하는데, 창12:1절 이하의 본문으로 설교하는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내가 네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라는 설교 말씀이 그에게는 예언이 된 것이며, 그는 믿음으로 받아 이를 실천한 것이다.
예언은 개인적으로 권위있게 말씀하는 경우도 있고, 공적으로 말씀하는 경우도 있다. 공적인 경우 대부분 설교로 전달된다. 설교속에 성령의 음성이 들리기 때문이다. 설교는 한 음성이나 들리는 방향은 갖가지로 들린다.
예언은 권면과 격려가 따르며, 위로가 따른다. 참예언과 거짓예언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14장은 방언과 예언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게 말씀한다.
불광동에서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할 때, 조용기 목사는 장모 최자실 목사로부터 은빛날개를 타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러 다닐 것이라는 감동과 방언 통역을 받았었다. 그 때에는 보리죽도 제대로 먹지 못할 때여서, 예언을 듣고서 픽 웃었다고 한다.“최전도사님! 보리 죽이나 실컷 먹었으면 한이 없겠어요.”
그러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청교도영성훈련의 전광훈 목사는 한얼산기도원의 이천석 목사에게서“한국교회를 움직일 큰 종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는 예언을 받았다. 너무 시시했다.
그런데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보니, 자기가 그런 목사가 되어 있었다.
배종부 목사는 2004년 11월에“한국교회를 살릴 성령의 종이 될 사명”을 받기 위하여 31일 간 금식기도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 기도가 훌륭하게 완성되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받으셨고, 이제는 빠른 속도로 그 길을 인도하고 계신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갈 길을 분별해 주는 것이다.
1>.설교는 가장 아름답고 믿을 수 있는 주 예언사역이다.
2>.그 다음은 매일 매일의 개인의 말씀묵상이다. 설교와 말씀묵상은 예언의 가장 큰 두 줄기이다.
3>.그 다음은 개인기도시의 확정이다.
4>.그 다음은 예언자의 개인적 예언기도이다. 이 예언기도는 함부로 받지 말 것을 권고한다.
깊이, 신중히, 오래, 많이 작정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새벽기도 해야 한다.
예언의 은사를 충만히 받으려면 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속에 살아가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갈 길을 인도함 받을 수 있다. 그날 그날의 말씀묵상은 그날 그날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다.
돈 주고 점치러 가지 말고, 기도원 힘들여 찾아다니는 헛수고 하지 말고, 설교를 늘 생활의 지침으로 삼으며, 개인적으로 말씀 묵상훈련과 기도생활에 최선을 다하라.
박00 장로가 청년시절 예언기도를 받으러 갔더니, 친구는 목사가 되겠다고 하고, 자기는 장로가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 친구를 보고는,“죄가 쌓이네.”라는 한마디 말만 했다.
2여 년 후에 그 친구는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한다.
여청년 000은“목사님! 제 앞 길을 보여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예언기도를 해 보면 족두리 쓰고, 결혼식 하는 장면이 자꾸 나온다. 신혼의 방이 나온다. 곧 결혼한다는 것이다. 예언은 그대로 적중되었다.
임신을 했다. 태아 감별이 금지되어 있다. 기도해 보니, 아이가 총과 남자가 갖고 노는 장남감들을 갖고 놀고 있었다.“아들이네!”아들을 낳았다. 예언이 맞은 것이다. 훗날 아들 둘을 낳고, 걱정이 되어 딸을 원하는 기도를 받았다. 소꿉장난감 같은 환상으로 딸이 나왔다. 딸을 낳았다.
며느리가 임신을 하기 전, 새끼줄에 손바닥 길이 만한 크고 긴 고추가 20여개 줄줄이 달려 있어,“너 임신했냐? 아들 낳겠네.”했다. 한 달여 후에 임신이 되었다.
얼마 전 의사가“아들입니다.”했다.
친정 엄마에게“엄마! 아들이래.”그러니, 놀라지도 않고“당연한 것 아냐?”그러더란다.
예언은 예언하는 자의 영이 맑고 밝아야, 정확하게 본다. 성령 충만하고, 기도가 늘 충만해야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6.고전 14장 방언,예언장 강해
(고전14:3)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예언은 초대교회에서는 공적 은사였다. 교회에서 예배중에 순서의 하나로 시행했다. 방언도 마찬가지이다.)
(고전14: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고전14: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권면으로 바로잡도록...
초대교회는 그래서 공개적 자백, 회개, 치유, 은사 나눔의 사역이 이루어졌다. 1907년의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운동도 바로 이 공개적인 죄의 자백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고전14: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틀린예언과 앞선예언은 바른예언과 맨 후에 예언하는 자로 인하여 검증을 받는다. 그러므로 예언사역은 한 사람만 예언하면 아니된다. 반드시 그룹으로 해야 한다. 전문적인 예언의 은사를 받은 여러 사람의 예언이 서로 맞아야 한다.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말 예언은 훈련하는 것일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이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는 주님이 주셔야 행사할 수 있다. 갈고 닦는 것은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1>.예언은 내가 믿음으로 이루어가는 것이다.“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롬12:6절)
예언을 받아도 내가 믿음으로 이루지 않고, 깨뜨려버리면 그냥 깨지고마는 것이다.
2>.예언은 수시로 바뀐다. 상황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하기 때문이다.
3>.앞날을 점치는 식의 예언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망한다. 이것은 가장 경계할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되는 미신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4>.예언의 본래적 성격인 1>.설교와 2>.말씀묵상, 3>.깊은기도에 충실하여 예언의 본래적 성격을 좇아, 성공적인 영적세계로 나아가라.
5>.예언은 점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다. 갈 길을 일러주는 것이다.
6>.지금의 마음의 방향과 생각대로 예언이 나온다. 그래서 잘 분별하고, 조심해야 한다.
(고전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은사를 훼방하고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성령훼방죄를 범치 말라.
* 성령훼방죄 - 성령거부죄 - 은혜없는 신앙생활,
성령소멸죄 - 마귀 역사에 묶임,
성령훼방죄 - 멸망의 영이 점점 임함,
성령대적죄 - 멸방받고, 저주받고, 죽음에 해당
순복음교회 한 구역장 집사는 종로 4거리에서 갑자기 성령의 강한 충격을 받고, 주체할 수 없는 강권적인 성령의 임재를 견디다 못해, 길거리에서 끓어앉아 강하게 방언기도를 하다가, 경찰에까지 끌려갔다. 그 바람에 귀가하는 시간을 지체하여, 빈집에 들어 온 강도를 면했다. 그 시간에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옷가지가 다 흩어져 있었으나, 귀금속과 돈은 안전했다.
주의 성령께서 여집사의 안전을 위하여 예언으로 역사하신 경우이다.
예언은 반드시 한사람에게만 받으면 안된다. 비교해보고 악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따라야 한다. 예언자는 상대방의 사정을 알면알수록 자의식이 들어 가, 바른예언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올바른 예언을 더 잘 할 수 있다.
한사람에게 계속 예언기도 받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예언을 자꾸 추구하면, 엉뚱한 뚱딴지길로 가게된다. 점을 자꾸 보러가면 망하는 것처럼...
예언에는 십자가가 없다. 그냥 앞날에 되어질 현상만 보여 줄 뿐이다. 예언보다는 십자가가 우선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사로잡힌다는 예언을 듣지않고, 십자가의 길을 갔다.
예언은 시간따라, 상황따라 자꾸 바뀐다. 변치않는 예언이란 없다. 예언이란 상황과 시간속에서 계속 깨닫지 못하는 나의 자의식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예언은 나를 깨닫게, 갈 길을 분별하게, 바르게 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예언은 좋은 것이 아니다. 예언을 자꾸 따라가면 교회도 자라지 않고, 심령도, 은혜도, 믿음도 절대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미혹된다. 이 말은 예언을 오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언은 갈 길을 분별해 주는 참으로 좋은 것인데, 사람들이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예언을 추구하며 자꾸만 미래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현실의 삶에 충실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교회와 삶이 성장한다. 예언이나 병고침이나 逐邪(축사)가 아니라, 말씀과 기도와 십자가가 우리 삶을 키우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와 십자가가 중요하다. 이것이 없이 은사만 강조하면 그 교회는 늘 깨어진다. 은사가 있는 교회는 시끄럽고, 오히려 은사가 없는 교회가 왜 부흥하는가? 사실은 이 3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은사, 은사하며 기복주의, 신비주의, 광신주의, 편파주의로 흘러가지 말라. 은사적인 것, 신비적인 것을 영성이라 말하지 말라.
지금 배목사는 지난 3여 년 동안 거의 성령설교만 해 왔다. 계속 성령세계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곧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의 기도목회, 성령목회에 추가하여, 이제 전도목회와 말씀목회, 양육목회로 선회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예언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데, 아주 유익하다. 사람은 미각, 시각, 후각, 청각, 촉각 5감으로만 의식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 그가 예언이나 방언통역으로,“하나님이 다 아시는구나!”하게 된다. 영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신자나 오랜 신자라도 예언으로 권고하면 도움이 된다. 예언은 쓸데없는 자만심, 교만, 허랑방탕함, 중심을 잡지못함, 낙심, 좌절, 방황할 때에 하나님의 뜻으로 자의식을 조정하여, 바로 잡아주는 것이다.
예언받을 때 좋은 것으로 칭찬받으면 격려하는 것이며, 나쁜 것으로 야단맞는 것은 낮추시는 것이다. 이는 다 좋은 것이며, 성령님이 예언을 사용하여 나를 바른 영적자세를 갖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목사가 야단치는 교인은 미워서가 아니라 바로잡으려는 것이며, 키우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왜 때리는가? 사랑하고 교정하기 위해서이다.
예언은 좋은 것이나, 아무리 좋은 것도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는 것처럼, 점치는 식으로 예언을 오용하면 망한다.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사람들이 악용함으로 항상 다 망쳐 놓는다.
땅의 것을 쌓으면, 하늘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 예언은 믿음으로 이루어가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열심히 나아가면 그 사람이 최고이다.
은사를 자꾸 강조하면, 개척교회 같은 경우는 망해 버린다. 은사자가 목사를 밟아버린다. 그러면 수습불가능이다.
예언은 새로운 예언이 앞의 예언을 언제나 앞선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죽는다고 선고받았다가, 궁궐문을 나서던 이사야에게 바로 하나님의 계시가 내려 이내 산다고 선고받는다.
예언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내려옴으로 상황따라 변한다. 수시로 변한다. 그래서 두세 사람의 예언이 필요하고, 공적으로 검증받는 것이 필요하다.
예언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늘 변한다. 그때 그때마다 자의식을 조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7.고전 14장의 예언의 특성
1>.다른 사람에게 유익과 덕(3절)
(3)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공적 은사)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사적 은사)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공적 은사)
2>.교회의 덕과 유익이 됨(3절)
(3)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공적 은사)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사적 은사)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공적 은사)
3>.방언과 성격이 다른 은사(5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해 아무 유익이 없음으로, 그래서 개인적인 은사이다.)
4>.계시, 지혜, 지식, 가르침, 영 분별, 방언 통역의 기초(6절)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 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5>.신자를 위한 것(22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이상한 말을 하니, 신비한, 놀라운, 이상한 일이니...)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을 해 줌으로, 하나님의 영이 살아 계심을 직접적으로 느끼니...)
6>.전도의 효과(25절)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 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 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예언은 책망, 판단, 숨은 일이 드러 남이 주 성격이다.)
7>.교회의 덕을 위해 사용(26절)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초대교회 예배 시간에는 이 모든 순서들이 시간 속에 다 들어 있었다. 예배가 보통 몇 시간씩 되었다. 목적은 교회의 유익과 덕이다. 개인의 유익이나, 개인의 치부, 영광, 인기가 아니다.)
8>.차서를 지켜 사용(27, 30절)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 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순서대로 하고, 서로 먼저 하려 들지 말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틀린 예언은 맨 후에 예언하는 자로 인하여 검증을 받는다. 그러므로 예언 사역은 한 사람만 예언하면 아니된다. 반드시 그룹으로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의 예언이 맞아야 한다.)
9>.사모할 것(39절)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성령 소멸죄에 해당)
(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은사를 잘 사용치 못하면 엉망이 되어 버린다. 고린도 교회는 이로 인하여 큰 분쟁에 휘말렸다.)
방언이나 예언 등 모든 은사는 항상 교회의 덕과 성도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전제해야 한다.
(고전14:12)그러면 너희도 신령(神靈)한 것을 사모(思慕)하는 자(者)인즉 교회(敎會)의 덕(德) 세우기를 위(爲)하여 풍성(豊盛)하기를 구(求)하라.
(고전14:19)그러나 교회(敎會)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爲)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一萬) 마디 방언(方言)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은사는 교회와 성도를 위한 것이지, 사적으로나,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예언은 삶의 실천과 행동으로 이루어가는 것이다. 예언에서 좋은 것은 받고, 나쁜 것은 버리라. 예언은 믿음으로 이루어가는 것이기에...
목사는 주의 종 = 예언자 = 선지자로 예언의 훌륭한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목사는 선포예언을 많이 해야 한다. 예언이란 예정론적, 운명론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망, 희망, 기쁨, 감사, 긍정으로 너의 예언을 이루어 가라.
예언이란 교회를 견고히 세우기 위하여, 각 개인에게 권고, 안위, 덕, 은혜를 끼치는 원칙하에,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역이다.
예언사역은 언어구사가 매끄러워야 한다. 예언은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숨은 사역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롭게, 듣기좋게, 사랑으로, 위로로, 격려로 말해야 한다. 말씀하시는 성령은 내안에 내주하신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도하는 능력이다.
배목사는 수십번의 장기금식과 강단기도와 골방의 영성으로 능력을 받고 은사의 세계가 열렸다.
예언은 환상과 말씀, 꿈으로 많이 온다. 그 구체적 방법은 8가지이다. 환상, 꿈, 세미한 음성, 그림(영상), 감동, 말씀, 모임, 방언 통역 등 8가지이다.
예언의 어려움은 이러한 사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예언사역자는 환상과 여러가지 예언의 현상을 언어로, 상대방이 알도록, 상처입거나 부덕을 끼치지 않도록 잘 말해야한다. 예언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 덕을세움, 성도를 세움이기 때문이다.
권면의 선을 넘어가 정죄하거나 판단하거나 징계하는 것은 금물이다. 예언의 사실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 특히 예언의 대중사역은 실수하면 큰일난다. 정죄, 결점을 지적하거나, 판단하는 예언은 절대해서는 아니된다. 이것은 예언을 받기는 했으나, 잘못 사용하는 경우이다.
새성교회 초창기에 서희원 집사가 한번씩 왔었다. 그녀는 예언의 은사가 있었다.
“목사님은 사람이 없어, 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돈은 넉넉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후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特化(특화)된 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목사님의 사역은 대한민국에 목사님의 이름 석자를 모를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했다.
나는 웃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온 은사나 능력을 보면, 참으로 그 예언의 신비성을 느낀다. 그렇게 이루어졌다.
불신자도 예언해 주어야 한다.(고전14:24-25절)
(24)그러나 다 예언(豫言)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者)들이나 무식(無識)한 자(者)들이 들어 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責望)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判斷)을 받고, (25)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敬拜)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傳播)하리라.
조용기 목사는 열차간의 술에 취한 할아버지에게,“당신은 지옥을 마시고 있어요.”라고 얘기해 주었다. 전도를 거부하며 고함을 지르던 그 할아버지는 소주 3병을 마시고, 난간에서 떨어져 죽었다.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주어야 하는 것이다.
불신자를 향한 예언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된다. 교회 처음 온 사람, 부흥집회에 처음 온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한다. 그리고 독실한 신자가 된다.
8.예언과 해석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예언의 사역은 꼭 필요하다. 예언은 계시이다. 해석과 선포를 잘 하지 못하면, 예언사역은 실패로 돌아간다.
예언사역자들에게 나타나는 초기현상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잘 안되고, 마귀의 계시를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초신자들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이 의외로 형통하게 잘 열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위험하고, 따라서 지도를 잘 받을 필요성이 있다. 오류는 말씀과 기도, 성령동행으로 끊임없이 다져야 시정된다. 골방의 기도가 없으면 능력과 은사는 약해지기 마련이다.
예언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 여부는 검증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열려져있다. 열려져있다는 말은 밝고 당당하고 떳떳하고 광명정대하고 공개적이라는 말이다. 반면에 마귀역사는 닫혀져 있다. 죄악적, 정욕적, 욕심적, 미혹적이다. 음침하고, 은밀하고, 쉬쉬하는 뭔가가 있고, 석연치 않고, 비밀스럽다.
예언이 맞지않는 경우는 계시는 받으나, 해석이 안되기 때문이다. 해석의 오류이다. 믿음이 없으면, 예언은 맞지 않는다. 믿음의 선포를 수용하지 못하면, 예언은 유산된다. 믿음이 있어야 예언이 성취된다.
맞지않는 예언은 지혜, 지식, 영분별이 없어 맞지않는 것이지, 계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영상을 깨달아 언어로 전달하는 일이 쉬울 수가 없다. (고전13:2절) 내가 예언(豫言)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秘密)과 모든 지식(知識)을 알고... 처럼 꿈을 꾸어도 해석이 안되어 분별을 못하는 것이다.
예언사역자는 존칭을 사용하고, 상처주지 말고, 정중하게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예언은 사역자의 믿음의 분수대로, 믿음의 분량대로 이루어진다. 은사는 특별한 자가 얻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하나님은 당신과 친한 자, 사랑하시는 자에게 계시를 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전하시려고 예언을 주신다. 예언은 특정인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보편적 은사이다. 하나님은 모든 자가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시고, 영계가 열리고 입신의 은혜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영안이 처음 열리면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여 말을 단속할 수가 없다. 정죄, 폼잡기, 능력과시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기 단계에는 스스로 절제와 관리가 잘 안된다. 경건의 지속적인 훈련으로 내적으로 갈무리해야 한다. 언제나 덕, 권면, 안위에서 벗어나지 말라. 유익한 결과만 말해야지, 나쁜 것을 말하면 안된다.
우리교회 박집사님의 지난 날 간증이다.
초신자 때 강대상의 뱀을 보고는 교회에서 쫓겨났다. 자기 목사가 뱀에게 쫓겨 늘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 뱀은 그 교회의 장로들이었다.
옛날 제주도에서 초신자 처녀시절, 막 교회에 나갔을 때 밤마다 철야기도를 하는데, 000 집사는 검은 자가용이 교회 앞마당에 주차해 있고, 목사님이 막 타려고 하고 있는 환상을 기도중에 보았다.
자기교회 목사가 서울로 가려는 것을 알고, 가짜목사라고 꾸짖었다. 목사가 마음을 고쳐먹고 목회를 하는데, 교회가 그렇게나 부흥하더라는 것이다.
서울 시내 큰 교회 000 목사가 검고 손톱이 길게 난 긴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교인들을 이리저리 마구 주무르며 휘두르고 있었다고 했다.
배목사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자주 보는 마귀의 손은 보통 손보다 손가락이 배 정도는 길다. 그리고 손톱이 흉악하게 길게 나 있고, 손의 표면에 털이 숭숭 나 있거나, 피부가 얼마나 거칠게 보이는지 모른다.
목사라고 다 올바르게 목회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큰 교회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는 것 같아도, 교인들을 볼모로 삼아 자기 이익을 챙기는 목사들은 사실 마귀의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영적으로 보지 못하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사실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만 말해야 영계가 맑아지고,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은사의 길을 여신다. 방언기도를 많이하라. 방언기도는 영을 맑게한다. 육신적인 기도는 때때로 정욕적이며, 가증스러우며, 미혹을 강화할 위험성이 있다.
예언의 영을 받으면 하나님의 시험(Test)이 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절제하며, 절대적순종의 정신이 있어야 예언의 영이 맑아진다.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해야 계속 올라간다. 하나님은 주시고 달아보시고, 또 주시고 또 달아 보신다.
은사들은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의 은사만을 가지고 사역하는 사람은 없다.
박영문 장로는 술취한 사람을 볼 때에, 뱀이 전봇대를 칭칭 감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을 감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며 기도하는“심령기도”는 예언의 초보단계이다. 물론 상대방의 마음이 읽혀지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예언의 은사 중의 하나이다.
병원전도할 때의 일이다. 원자력병원의 감상선암을 수술한 한 권사의 마음문이 기도중에 탁 닫혀버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방언기도 중에 암의 핏줄이 수술한 부위와는 달리 아래 위로 튀어나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말해 준 탓이었다. 영분별로 심령이 읽혀진다.
000 집사는 마음문이 꽉 닫힌 채로, 맨처음 새성교회 365성령집회에 왔다. 그리고 그날 마음문을 열고, 방언을 받았다. 그리고 마음속의 엉어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10여년간 아프던 가슴의 고질병이 그날 바로 고침을 받았다.
초기예언자는 상상, 공상 예언을 많이 한다. 본 것을 꾸며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은 없다. 심령의 변화도 없다. 그러므로 성숙한 예언자에게 예언받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초기예언은 장절이 표시되어 나오더니, 더 깊어지니 더 쉬운 말씀으로 나온다.
예언은 여러 사역자의 경우에 다같이 나오는데, 이는 같은 성령이 같이 말씀하기 때문이다.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이제는 예언이 활짝 열린 시대이다. 예언에 대하여 막히거나 닫힌 부분이 없게 하라. 모두가 예언 받고, 예언하는 자가 되라.)
(계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예언사역은 믿음으로 예언된 것을 붙들고 나아갈 때, 심령의 변화를 가져오고,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고, 열매를 맺게 한다. 예언은 믿음대로 나아가면 100%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쁜것은 버리고, 좋은것만 취하라.
9.예언사역의 금기
1.윤리 도덕에 저촉되는 은밀한 죄악의 문제는 예언하면 안된다.
간음죄, 도적질, 결코 드러나서는 안되는 일... 등등은 신중히 가려서 분별해 말씀해야 주어야한다.
2.본 것을 감정적으로, 흥분되는대로 예언해서는 아니된다. 절대적으로 말을 가려서 표현해야 한다.
차분히,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예언해야 한다. 오직 그의 입장에 서서...
3.교만이 있으면 예언해서는 아니된다.
너보다 내가 우월하다. 연조가 많다. 직분이 높다. 등등...
항상 겸손히 섬기는 자세로...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격려하고, 용기 주고, 예쁘다 하고, 훌륭하다 하고... 예언은 긍정적 말의 은사임을 잊지말라.
4.예언의 내용이 성경적인가, 아닌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5.예언은 특히 본인의 믿음이 있어야 응답된다. 자신에게 자주 나타나는 은사가 가장 소질있는 은사이다.
예언을 믿음으로 화합하라. 강단에서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으라. 이루어진다.
전도자격이 곧 능력이다. 이것이 부흥의 원동력이다.
사람을 보지않아도 이름만 보아도, 기도제목만 보아도 예언할 수 있다. 환상이 보이고, 예언이 바로나온다. 예언과 방언통역은 거의 같다. 같은 맥락에 속하기 때문이다. 대신 손얹고 기도해도 예언과 각종기도가 가능하다.
예언으로 가계저주를 끊는 기도를 할 수 있다. 가계저주는 영분별을 해 보면 상당한 축사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가계의 저주는 끈질기고, 잘 끊어지지 않는다. 본인이 깊이 기도하며, 하나하나 주님앞에서 정리해 가야 한다.
유전적기질, 질병, 우상숭배적 성향, 음란성, 가난벽, 방랑벽, 무질서한 생활, 폭력성 등은 전부 가계의 저주의 일부분이다. 배목사의 弟嫂(제수)의 무당끼는 심각한 부모로부터 내려 온 영적 오염이다. 어머니가 실제 무당이었다. 정말 깊이 기도하고 척결해야 할 부분이다.
조상과 가계저주 부분은 본인이 깨닫지 못하면 예수믿어도 헤어나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고, 끊어내지 못한다.
이웃의 000 교회 권사가 허리가 아파, 기도를 받으러 왔다. 두번 기도하고 허리를 고치고 방언을 받고 돌아가는데, 그녀의 방언속에 염불이 섞여나왔다.
배목사가“권사님! 예전에 불교 믿었어요?”하니, 독실한 보살이었다.“권사님속에 불교의 뿌리가 깊이 자리잡고 있으니, 회개 많이하고, 영적으로 깨끗해져야 한다.”고 권면하고 보냈다.
000 집사를 축사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던가? 영적 가시덤불이 빽빽했다.
20년 이상 심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000 집사에게서는 손가락만한 새까만 뱀들이 수십마리가 기어나와 내 발 앞에서 방황하는데, 비록 환상이지만 내가 기겁을 했다.
부목사 시절의 이00 할머니 집사의 아들은 카센타사장이었는데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고, 그 아들은 중 3년때 오토바이를 타다 즉사하고, 예쁘장한 딸은 중 2년때 가출해 버렸다. 그렇게 할머니가 예수를 잘 믿었는데도 왜 그런 일들이 생길까?
가계의 저주로 대변되는 영적뿌리에 근원이 있다.
일반적으로 가계저주론은 이단적 이론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나의 영적사역속에서 분별해 보면, 결코 이단성으로만 취급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음을 발견한다. 이단은 다 옳아도, 몇가지만 틀리면 이단으로 몰린다.
실상은 한국교회의 교권주의가 이단을 양산하고 있지 않은가?
예언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예언의 내용이 항상 동일한가 시험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결과도 지켜 보아야 한다.
예언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사역은 상이 하나도 없다.
교회는 목사가 은사가 아무리 강해도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사랑을 줄 때 비로소 사람은 모여든다. 한 사람 사랑으로 영접하면, 한 사람 더 찾아온다.
사도적 은사가 필요하다. 예배인도, 설교, 목양, 가르침, 기도, 전도, 사랑으로 품음 등등...... 그 때에 교회는 비로소 부흥한다.
그래서 고전12:8-9절에 9가지 은사를 말씀한 후에, 28절에 직분의 은사를 말하고, 31절에,“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말씀하고 고전 13장 사랑장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다.
예언이란 미래를 알고가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미래를 미리 알고가는 길이다. 미래적 축복의 선취이다. 믿음으로 바라보며 가는 것이다.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만 취하며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삶의 전체를 보시며, 나의 미래를 이미 축복으로 예언해 놓으셨다. 예언의 은사를 예민하게 하라.
베드로는 원래적으로 게바(반석)가 될 수 없는 자질이었다. 무식하고, 성급하고, 생각이 없고, 지혜가 없으며, 폭력적이고, 배신적인 기질이 있는 자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예언이 그를 변화시켜 반석이 되게 했다. 예언은 실천과 훈련과 믿음으로 이루어가는 것이다.
훈련이 없는 예언은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예언이란 받고서 믿음으로 붙들고 나아가 쟁취하는 것이다. 예언은 행함으로 이루어진다. 예언속에는 나의 수고가 포함되어야 한다. 피와 땀과 눈물로, 행함과 삶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예언이다.
예수님은 12제자 가운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특별히 훈련했다. 그들은 남다른 열심과 순종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1.성실해야 한다.
2.진실해야 한다.
3.마음이 곧아야 한다.
4.믿음이 있어야 한다.
5.순종이 있어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워야 귀신을 세력을 제압하고, 승리할 수 있다. 금식기도하고 은사와 능력을 받았다. 강단기도하여 능력을 받았다. 밤에 산기도하여 능력받았다. 능력받아서 무엇할 것인가?
능력받아 주를 위하여 사는 삶을 철저히, 철저히 훈련받아야 한다. 주를 위하여 살고 죽기로 결심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내속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훈련과정을 잘 마쳐야 능력의 종이 된다.
앞으로 더 큰 영적전쟁이 남아있다. 주의 종들인“별들의 전쟁”이다. 별들이 땅에 떨어진다. 목사의 1/3이 타락하여, 음녀가 된 교회를 변질시킨다.
(계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계 8: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계 12: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섣부른 영적훈련으로는 이길 수 없다. 강한 훈련으로 자라나야 하고, 강한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라.(엡6:10-20절)
(10)종말(終末)로 너희가 주(主)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能力)으로 강건(强健)하여지고, (11)마귀(魔鬼)의 궤계(詭計)를 능(能)히 대적(對敵)하기 위(爲)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胄)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肉)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政事)와 권세(權勢)와 이 어두움의 세상(世上) 주관(主管)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惡)의 영(靈)들에게 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胄)를 취(取)하라. 이는 악(惡)한 날에 너희가 능(能)히 대적(對敵)하고 모든 일을 행(行)한 후(後)에 서기 위(爲)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眞理)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義)의 흉배(胸背)를 붙이고, (15)평안(平安)의 복음(福音)의 예비(豫備)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防牌)를 가지고, 이로써 능(能)히 악(惡)한 자(者)의 모든 화전(火箭)을 소멸(消滅)하고, (17)구원(救援)의 투구(投球)와 성령(聖靈)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祈禱)와 간구(懇求)로 하되, 무시(無時)로 성령(聖靈) 안에서 기도(祈禱)하고, 이를 위(爲)하여 깨어 구(求)하기를 항상(恒常) 힘쓰며, 여러 성도(聖徒)를 위(爲)하여 구(求)하고, (19)또 나를 위(爲)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福音)의 비밀(秘密)을 담대(膽大)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이 일을 위(爲)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使臣)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膽大)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예언을 주셨다.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은혜받은 만큼 쓰신다.
하나님은 크게 쓰시기를 원하신다. 주의 종이 되라는 예언이 많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것이 예언의 속성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큰 비전을 사람이 감당치를 못한다. 믿음의 분수대로 쓰면 되는데, 쓰지 못하는 게 문제이다.
예언은 행함으로 열매맺는다. 그런데 믿음이 없으니, 예언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다.
귀신을 쫓아내라. 귀신이 내 속에 숨어있으면 설교 시간이나 성령이 역사하는 시간에 하품이 나온다. 졸음이 온다. 머리가 아프다. 신경질이 난다. 목사가 미워진다. 신앙이 무기력해지며, 기도가 의미가 없어지고, 사람 관계의 작은 일 하나도 은혜로 감당이 되지않는다.
축사하며, 나가, 나가, 나가!”라고 명령하라.
일어서서 기도하는 법을 적용하라.
억눌림에서 자유하는 법을 가르치라.
4가지 음성, 즉 세상 음성, 마귀 음성, 하나님 음성, 내 음성이 있다. 예수님 보다 먼저 온 것은 다 도적이다. 속지 말라.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 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주님의 음성은 철저히 내 소리, 내 생각, 내 마음으로 들린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 같이 말해야 하고, 은혜롭게 말해야 한다. 내안에 주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어찌 욕을 하고, 난폭한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리? 내입에서 나오는 말이 예수님의 말씀이 되어야지! 그의 언어와 행동, 삶을 보면 다 안다.
설교도 예수님이 하신다. 기도도 예수님이 하게 하신다. 기도도 묵상하고, 훈련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해야한다. 눈감고 집중하는 훈련을 시키라. 피흘리신 주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부르짖는 주님의 음성을 구분하고 묵상하라.
골고다, 즉 해골의 장소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서 그 흘리신 보혈이 흘러내리며 생명을 일으킨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물으라. 주님의 음성을 정확히 들으면 실수가 없다. 그 인생에는 실패가 없다. 주님은 전도가 목적이었으니 길가는 것도 주님 뜻대로 가야 한다.
10.하나님의 뜻을 아는(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8가지 방법
고전 12장의 9가지 은사 중에 예언과 연관된 은사는 지식의말씀, 예언, 방언통역 등이다. 환상, 꿈 등은 예언의 초기현상이다. 은사에 무지하면 예언의 통로를 알지 못한다.
<1>.환상을 통해 말씀하심-배목사가 늘 보는 것
환상은 마치 TV를 보는 것 같다. 한 카트씩 지나간다. 생각 - 영상 - 환상 - 영안으로 발전한다. 영안이 열리면 영계가 열려 천국을 왕래하게 된다. 입신은 아주 쉬운 은사이다.
겔1:1절 - 제(第) 삼십(三十)년 사월(四月) 오일(五日)에 내가 그발 강(江) 가 사로잡힌 자(者) 중(中)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異像)을 내게 보이시니...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 10:3)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행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행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 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고후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배목사에게는 환상이 서서히 열리더니 이제는 영계를 보는 나의 눈의 중심이 되었다.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환상이 열린다. 참으로 희한한 능력이다. 나는 기도했으나,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있는 줄은 몰랐다.
환상과 함께 신유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게 오는가? 환상으로 영분별이 가능하다. 모든 영적인 기도가 가능하다.
또 한 여집사는 머리가 아프다는데, 기도하니 야구방망이 같은 것이 나왔다. 무엇에 얻어 맞았느냐? 물으니, 처녀시절 엘리베이터에서 강도에게 흉기로 맞고, 기절했다고 했다.
환상을 보고, 간절히 치유기도를 했더니 나았다.
<2>.꿈을 통해 일러 주심-배목사가 자주 보는 것
꿈은 예언의 초기현상으로 누구나 다 꿈을 꾼다. 자신의 꿈을 늘 주목하라.
예언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종 선지자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하신다. 나도 예언자이다. 선지자는 예언을 해야 선자자이다. 꿈이 없는 백성을 망하듯, 예언이 없는 선지자는 망한다.
꿈이 중요하다. 꿈속에서 계시를 받는다. 꿈은 가장 일반적인 계시와 예언의 통로이다. 꿈속의 세계와 현실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꿈은 영적으로 잘 분별해야 하고, 무엇보다 바른 해석이 필요하다. 요셉은 꿈의 예언을 해석으로 잘 풀어 승리한 사람이다.
부산 다대포의 어느 교회는 기도원으로 금요철야를 다녀오다가 화물트럭과 충돌하여, 한 교회가족들이 목사님을 포함하여 30여 명 가까이 거의 몰살을 당했다.
그 사고버스 기사는 제가 있던 교회 관리집사의 형님이었다. 그는 그 전날 밤 동생에게 전화하여 말하는데, 마치 유언을 하는 것처럼 말하더라 했다.
죽은 담임목사는 암이 3기인데, 보험금을 몇 억원 받아 사모와 자녀의 앞길이 예비 되었다고 했다. 죽은 성도들의 각 가정에서 수많은 간증들이 나왔다.
얼마 전 꿈속에서 주님은 나에게 꾸중을 하셨다.
“내 종이 올바른 영성에 서 있지 않으니, 온전히 나를 따르라 하라.”라는 교훈의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꿈속에서 귀신과 싸운다. 무의식세계에서 악한 영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이겨나아 가야 한다.
예언은 되새기고, 자꾸 선포해야 한다.
“너는 세계적인 신유부흥사가 될 것이다. 너는 회심의 말씀의 종이 될 것이다.”
늘 되새겨라. 선포하라. 시인하라. 예언대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예언한대로 나의 모습이 바뀌어져 간다. 포기하지 말고, 자꾸 시인하라. 예언은 믿은만큼 이루어진다. 늘 선포하라. 그러면 나의 뇌가 그러한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다. 나의 말이 나를 묶는다. 많은 성공한 사람은 좋은 말을 많이 한 사람이다. 에디슨은,“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많이 경험했을 뿐이다.”말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므로 예언하려고 하라. 될 때까지 계속 예언하라. 기도하고 훈련하고 실패를 딛고 계속 나아가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대화하며, 예언을 기억하고, 자꾸 자꾸 믿음으로 자신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자기를 변화시키게 된다.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창 31:10)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
(창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민 12: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왕상 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 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10)솔로몬이 이것을 구(求)하매, 그 말씀이 주(主)의 마음에 맞은지라. (11)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求)하도다. 자기(自己)를 위(爲)하여 수(壽)도 구(求)하지 아니하며, 부(富)도 구(求)하지 아니하며, 자기(自己)의 원수(怨讐)의 생명(生命) 멸(滅)하기도 구(求)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訟事)를 듣고 분별(分別)하는 지혜(智慧)를 구(求)하였은즉, (12)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智慧)롭고 총명(聰明)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前)에도 너와 같은 자(者)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後)에도 너와 같은 자(者)가 일어 남이 없으리라. (13)내가 또 너의 구(求)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榮光)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平生)에 열왕(列王) 중(中)에 너와 같은 자(者)가 없을 것이라. (14)네가 만일(萬一) 네 아비 다윗의 행(行)함 같이 내 길로 행(行)하며 내 법도(法度)와 명령(命令)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마 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 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가니라.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3>.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심-배목사가 기도중에, 말씀묵상 중에, 깊은묵상 중에 자주 들려오고, 깨닫는 것
이것은 깨닫게하시는 역사로서 심령 깊숙히 들린다. 역시 내 마음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말, 나의 음성으로 들린다.
마귀소리와 나의 소리, 세상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잘 분간하여야 한다. 자기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는 미혹에 빠지지말라. 성령을 주목하고, 성령과 동행하고, 늘 성령충만함 가운데 있지않는 자는 결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엘리제사장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고, 사무엘은 3번이나 들었다. 깊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있을 때 들리는 현상이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이다.
왕상19:11-12절 - (11)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山)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 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山)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後)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地震)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또 지진(地震) 후(後)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後)에 세미(細微)한 소리가 있는지라.
<4>.마음속의 영상, 그림-배목사가 늘 보는 것
그림, 영상은 환상처럼 생생하지는 않으나, 흐릿하다.
배목사가 기도의 영상중에 본 예수님의 모습은“예수님의 성의”라고 말하는 천에서 본뜬, 광대뼈가 튀어나온 좀 시커멓고 노동자같은 옆모습 그림의 형상과 거의 비슷했다. 나는 그래서“예수님의 성의”가 진짜라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배목사는 흰옷입은 예수님이 생수를 부으시는 모습, 안수하시는 모습,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 등을 자주 본다.
오늘날 우리는 그림, 영상을 뚜렷하게 보지 못한다. 대중 매체와 소음에 깊이 젖어있기 때문이다. TV와 컴퓨터는 영안을 열게 하는데 가장 방해물이다. 생각이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데, 마음의 눈으로 이 영상을 붙들 줄 알아야 한다.
“누가 보고 싶은데...”하고 생각하면 전화가 온다. 바로 마음의 눈, 영상이다. 이심전심이 영상에 가깝다.
“사고가 난다. 어느 지방에 홍수가 난다. 그 동네에 사고가 난다.”등을 알게된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흐릿한 그림, 영상으로 막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5>.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동-배목사가 늘 느끼는 것
계1:9-10절 - (9)나 요한은 너희 형제(兄弟)요, 예수의 환난(患難)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同參)하는 자(者)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證據)를 인(因)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주(主)의 날에 내가 성령(聖靈)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音聲)을 들으니...
나의 감정, 느낌과는 다른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영적 감각, 느낌, 지식이다. 그냥 마음에 감동된다. 지혜, 지식, 영분별의 은사로 온다. 성령님을 늘 주목하고, 동행하고, 충만하려 하면 감동은 늘 있다.
예언은 한 성령으로 나오는 것임으로 누구의 예언이나 다 똑 같다. 감동, 느낌으로 오는 예언이 많다. 생각도 않는데 하나님의 감동으로 무의식적인 말이 툭툭 튀어나온다.
<6>.성경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심(예수님말씀, 성경말씀, 묵상의 말씀, 설교, 레마의 말씀)-배목사가 늘 느끼는 것
성경을 많이 읽어야, 예언이 정확해진다. 말씀을 많이 알고, 기억하고, 내 속에 그 말씀이 있어야 예언이 맞아 들어간다.
언어, 행동은 내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수란 없다. 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의식세계는 잠재의식 세계의 표출이다. 의식세계는 생각나는 세계, 인지하는 세계의 것이다. 잠재의식의 세계는 비슷한 사건을 보는 중에 기억나거나, 감정이 일어나거나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특정사건에 혈기를 부리거나 민감한 반응으로 방어기재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과거에 잠재의식속에 이러한 사건의 잔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적상처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방면에 거의 자동적으로 발작한다. 그것 또한 스스로 내적상처를 치유하려 들지 않고, 마귀의 역사를 방관하기 때문이다. 밀어내야 한다. 추방해야 한다. 마귀의 것은 어떤 것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아니된다. 내적상처 중에 의처증, 의심증, 목사들의 장로 스트레스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7>.서로간의 교제를 통하여 말씀하심-배목사 주변에 그러한 사람들이 별로 없음, 인간적인 사람은 많으나...
성도의 교제는 너무나 중요하다.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 은혜의 사람, 기도의 사람, 사랑의 사람과의 교제는 곧 내 영혼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당신의 멘토를 가져라. 멘토는 일생동안 나를 지도하고 돌보며 떠나지 않는 선배, 스승, 부모, 목사님 중의 한 분이다. 그는 처음에는 존경하는 스승으로 다가오나, 일생동안 호흡을 같이하며 너무나 가까워져, 나중에는 친구처럼 된다. 이성간에는 멘토가 부부가 되는 경우가 많다.
교회공동체가 그래서 중요하다. 공동체에서 필요성을 따라 말씀의 감동이 오고, 예언의 적중성이 입증된다. 모임의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 성령감동으로 행하게 되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므로 회의를 하지 말고, 자주 기도하고, 성령안에서 영적교제를 나누라. 성도의 교제는 환경과 모임의 성격이 중요하다.
시133:1절 - 형제(兄弟)가 연합(聯合)하여 동거(同居)함이 어찌 그리 선(善)하고 아름다운고?
잠3:6절 - 너는 범사(凡事)에 그를 인정(認定)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指導)하시리라.
사소한 일들을 하나님께 다 고하고,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주님께 물어 처리하라. 성경을 자꾸 무시하면 성령이 소멸되어, 하나님의 뜻과 자기의 욕심에서 우러난 뜻이 구분되지 않는다. 양자를 구분하는 표준이 성경말씀이다.
예언과 설교는 계시, 해석, 적용에 있어서 정확해야지, 실수해서는 아니된다. 예언은 계속해야 깊어진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보일 뿐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마귀의 세력은 깨어진다.
<8>.방언 통역-배목사에게 더 열려야 할 영역
자꾸 방언을 통역하고, 훈련하라.
11.예언의 훈련
예언하려 하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기를 계속하라. 어느듯 위대한 예언의 영을 소유한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이성으로 느껴지며, 나의 말, 나의 음성으로 들려오며, 혼란스럽지 않고, 바뀌지 않고, 일관되게 내 마음속에서 들려온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익숙해지면, 저절로 예언의 은사가 된다. 대화기도를 많이 훈련하라. 예언에 대한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시험해가라.
예수님은 나의 질문을 듣고 싶어하신다. 기다리고 계신다. 계속 기다리고 계신다. 주님과 대화를 계속하면서 영상이 떠오르면, 그 영상에 대하여 또 물으라. 또 대답을 들으라. 영상은 늘 변하고, 대답도 틀릴 것이다. 그러나 계속하여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들을 주님과 대화하라. 묻고 또 물으라. 계속 물으라. 조용한 기도의 골방을 가져라.
중단하지 말라. 계속 대화기도를 계속하면 점점 깊어 들어간다. 내면의 심층으로 깊이 들어가라. 시간을 잊고 점점 주님과의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 대화기도, 침묵기도, 묵상기도를 깊이 하는 훈련을 받으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레마의 말씀이다. 로고스의 말씀은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다. 레마의 말씀은 지금 살아서 내게 다가오는 말씀이다. 현장속에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석의 능력을 주셨다. 해석은 엄청난 능력이 있다. 마귀는 말씀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마귀는 단순히 말씀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그 말씀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한다. 로고스의 말씀은 인용하나, 레마의 말씀은 드러내지 못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능력이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음성을 담아주셔야 한다. 말씀을 읽으면 그 배경이 눈에 훤히 드러나 보여야 한다.
예전에 은성수도원에서 관상기도를 일주일 동안 훈련하는데, 한 성경본문으로 하루를 묵상했다.
한 목사님은 베드로가 물에 빠져 들어가는 장면을 묵상하다가, 자기가 진짜 물에 빠진 것을 보게 되었다. 죽게되어,“주님! 살려주세요.”하니, 주님이 오셔서 건져주시면서,“이목사! 좀 돌아다니지 말아!”하셨단다.
이 얼마나 경이롭고, 놀라운 주님의 음성인가?
말씀의 현장과 함께 살라.
현장을 보고 설교해야 실감나고, 살아있는 것이다. 설교를 깊이 묵상하고, 사명을 갖고 감당하라. 말씀이 현장과 함께 보이도록 기도하고, 설교 준비하라. 살아있는 말씀을 체험적으로 전하려면 깊은 묵상기도, 대화기도가 있어야 한다.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속에서 그 날, 그 현장의 말씀이 우러나온다. 그 말씀이라야 역사를 불러일으키고, 예수님이 직접 역사하시는 말씀이 된다.
축복의 예언을 따라가라.
고전4:1절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주님은 우리가 구할 때 좋은 것을 주시려고 주무시지도 않고,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응답을 들고 기다리시는 주님께 왜 받지 못하느냐? 예언은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이요,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주시려고 약속한 것을 말씀을 따라주시는 것이다. 천국이란 현실의 가장 아름다운 것의 극치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미 만들어 놓으신 것이 드러난 것 뿐이다. 이 하나님의 시간이 다하는 날이 종말이다. 예언이란 이 하나님의 계획해 놓으신 바를 그 분이 미리 알려주어서 말하게 하는 것이다.
자녀를 위하여 예언을 심으라.
히7:9-10절 - (9)또한 십분(十分)의 일(一)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十分)의 일(一)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10)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自己) 조상(祖上)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레위는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 부모의 저주와 축복은 그대로 자녀에게 상속된다. 장단점도, 습성도, 성격도, 재능도, 신앙도...
믿음, 의, 선을 뿌려야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를 거둔다. 부모가 뿌린 것을 자녀는 천대까지 받아누린다.
부모가 예수믿으면 자녀는 대부분 예수믿는다. 타락할지라도 거의 다 돌아온다. 자녀 위해 기도해 놓으면, 자녀는 그 길을 똑바로 걸어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의 종의 자녀를 또 주의 종으로 쓰시기를 원하신다.
어릴 때에 반드시 예수를 믿게하라. 주일학교에 보내라. 주일학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가?
예언을 따라 버리고 포기하여, 복을 받으라.
베드로는 다 버리고 예수님께 왔다. 부모, 처자, 가정, 집, 전토를 다 버렸으나, 1,000배 이상의 복을 받았다.
예수 믿고 천국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천국가려면 12제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버린만큼 나를 책임져 주시고, 보장해주신다. 버린만큼, 포기한만큼 채워주신다.
내가 버린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를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의 보장을 받는다. 주님 뜻대로 살면 모든 것은 이미 보장된 것이다. 천국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다른 모든 상급도 다 보장된 것이다.
지옥을 맛보려면 천국을 먼저 맛보아야 한다. 천국과 지옥은 서로 보인다. 서로 보아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 땅은 준비하는 기간이다. 몇 십년간이란 짧은 세월을 준비하여 영원을 사는 것이다. 지옥을 버리고 천국을 상속하라.
천국이 멀리 있지 않다. 나의 종말은 바로 다가온다. 미리 보여주는 것이니 두 손을들고 천국 바라보며 살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12.예언의 은사를 받는 태도(예레미야 23:25-28절)
(25)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豫言)하는 선지자(先知者)들의 말에, 내가 몽사(夢事)를 얻었다, 몽사(夢事)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26)거짓을 예언(豫言)하는 선지자(先知者)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奸巧)한 것을 예언(豫言)하느니라. (27)그들이 서로 몽사(夢事)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列祖)가 바알로 인(因)하여 내 이름을 잊어 버린 것 같이 내 백성(百姓)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28)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夢事)를 얻은 선지자(先知者)는 몽사(夢事)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者)는 성실(誠實)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比較) 하겠느냐?
렘23:25절은 몽사(꿈의 세계)를 거짓으로 예언하는 선지자를 징계한다. 꿈은 꾸었으나,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 것이다.
거짓예언자는 자기의 간교한 것을 예언한다.(26절)
그 생각이 허망하여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말한다.(27절)
꿈을 바로 말하라.(28절)
하나님은 환상으로 말씀하신다. 행전16장에서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고, 고넬료는 환상으로 베드로를 초청한다.
영의 세계에는 헛것이란 없다. 모든 은사와 능력은 위로부터 내려온다. 귀신은 우리에게 능력을 줄 수 없다. 무당의 능력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단지 귀신이 타락의 도구로 쓸 뿐이다. 그러니 마음자세와 삶이 중요한 것이다.
귀신은 좋은 것을 전부 잘못 쓰게 만든다. 귀신에게 속지말라. 환상은 좋은 것이다. 보려고 애쓰라. 은사를 나의 것으로 쓰려면 먼저 은사를 사모하고, 사랑해야 한다.
사람 때문에 은사를 놓치지 말라.
사람에게 걸리면 은사는 막혀버린다. 사람 때문에 절대 시험들지 말라. 입신해서 막 하늘로 올라가는데 아내와 사이가 좋지않아 욕하는 소리에 걸려, 그만 다시 내려 오고 만다.
하나님의 은사는 광범위하다. 고정관념을 제거하고, 마음을 열고 은혜를 받으라.
붙잡고 선포하라. 될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계속 선포하라.“최고의 말씀의 능력자가 되게 하옵소서.”선포하고, 그대로 믿고, 믿음으로 이루어가라.
불가능한 것도 믿음으로 돌파해 나갈 수 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함으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배목사여!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단아래에만 앉아서 은혜만 받을 것이냐?
너도 남을 가르치는 단에 올라가야지!
성공한 사람을 따라가라. 그들을 보고, 그대로 배우라.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응답하시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을 코너로 몰아가는 것이다.
13.예언 성취
오래전에 예언받은 것을 뒤돌아보니, 다 성취되었다. 예언은 훗날 돌아보면 정확한지, 틀린지 분별이 간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은 믿음으로 계속 이루어가야 한다.
예수믿고 망하는 것은 이전의 사탄의 것들이 제거되는 과정이다. 제거된 다음에, 비로소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다. 뿌리가 곧고 바르지 않으면 어찌 아름다운 집을 지으리!
개척교회는 은사가 아니라 전도하고, 선교해야 살아남는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이 있어야 성장한다.
예언은 깨끗해야 한다. 입술을 태워야 한다. 예언은 반드시 좋은 말만 해야한다. 존대하는 말로 표현하라. 마음을 다스리면 입을 다스리고, 말을 다스리면 모든 것을 다 다스릴 수 있다.
나의 예언훈련을 하라. 가장 좋은 내용으로 스스로에게 예언하라.
1.모든 축복의 말씀으로 자기에게 예언하라. 끊임없이 긍정적, 적극적, 창조적으로...
내가 나에게 예언하고, 내가 나의 귀신을 쫓고, 내가 나를 이해 축복의 예언으로 도울 수 있다. 이러한 예언들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은 속지않는다. 남을 속이지말라. 아름답고 매끄러운 언어로 예언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라.
전도할 때 예언하라. 방언하라. 예수를 믿어야 한다며 말하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축복의 예언을 하라. 생명없는 것에도 예언하라. 예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라. 축복의 예언만 하라.
예언자는 자기 임의대로 예언하면 아니된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예언해야 한다.
예언은 하나님과의 오랜 교통끝에 이루어진다. 믿음이 있어야 예언사역이 이루어진다. 지혜, 지식, 영분별 은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예언사역이 가능하다.
2.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7가지 방법
1>.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어야
2>.말씀안에 거하여야
3>.하나님의 임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해야
4>.하나님을 늘 갈급해야
5>.실수를 두려워 말고, 자꾸 예언하려 해야
6>.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7>.하나님과의 오랜 교통이 있어야
“세미한 음성”은 오랜 훈련후에 온다. 잡기 힘들다. 예언사역자는 말씀에 정통해야 하며, 윤리도덕적으로도 탁월해야 한다.
재미있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목회하라. 사람은 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 기도도, 은사도,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18번 사역을 즐기라.
예언사역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꾸준히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예언자가 되려면 예언에 미쳐야 한다. 자신에게 하는 예언은 자신이 굳게 믿고, 그대로 살려고 해야 한다.
예언자는 믿음이 중요하다. 예언자의 믿음대로 되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믿음이 흔들려서는 아니된다. 믿음으로 선포해야 한다.
붕-띄우는 예언자, 사탕발림하는 예언자는 거짓예언자이다. 거짓예언의 분별 여부는 육체의 유익을 말하면 거짓예언자이며, 영의 유익을 말하면 참 예언자이다.
믿음의 거장이 되라. 한사람의 믿음이 너무나 중요하다. 예언을 맞게 해도, 마귀는 믿음을 흔들어 예언을 무산시킨다. 믿음의 굳건한 반석이 되라. 믿음이 없음으로 자기에게 임한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귀는 믿음을 빼앗아 예언을 틀리기 만든다.
예언사역은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예언하려고 하라. 예언자를 보호하고, 예언사역을 키우려고 하라.
하나의 은사로부터 시작하여 9가지의 은사를 다 접목해 나가라. 은사 각각의 한 나무마다 거름을 계속 공급하라. 이것 저것 다 하려 들지 말고, 한 우물을 깊이 파라. 직접 받는 것과 통해서 받는 것은 다르다. 자신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확실히 믿고 순종하면, 이루어진다. 믿는 자는 자기 스스로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라. 십자가를 보고, 환상을 보라.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하라.
(히1:1)옛적에 선지자(先知者)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貌樣)으로 우리 조상(祖上) 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 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萬有)의 후사(後嗣)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世界)를 지으셨느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에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성령 안에서 대화하시길 원하셨다.
오늘날도 성경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개별적이며,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안에서 우리와 함께 거닐며 대화하시기를 원하신다. 성령 강림, 교회의 탄생과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예언의 음성의 필요성을 제거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필요성을 더 강화시켰다.
베드로는 (행2:17)“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하셨다.
바울은 (고전14:39)“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당신의 뜻의 계시가 음성으로 들려지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그 분은 인간 종족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보일 계시와 조명의 음성으로써 예언이라는 사역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음성듣기의 두방법
1>.예언적 은사자에게 말씀하심
2>.성령의 음성듣는 훈련자에게 말씀하심
빌 해몬 목사는 "예비하라! 이 시대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주신, 또 지명하여 주신 허다한 무리의 선지자들을 세워주시는 때이다." 했다.
14.예언자(선지자,목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1>.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특별한 존재들이다.
예언사역은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깝고, 또 가장 애지중지하시는 사역중에 하나이다.
(암 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2>.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들과 하시는 일에 참여하였다.
메시야의 오시는 길을 예측하고, 준비한 이들은 선지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그의 비밀을 보여주신다.
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실된 예언자들을 사랑하신다.
그는 그의 선지자들에게 대하여 특별한 자신감과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호하게 '내 선지자들을 상하지 말라.'고 선언을 내리셨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내리는 똑같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중에 몇을 세우셨으니,…선지자들이요."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시 105: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부은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고치는은사와 서로돕는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대하 20:20)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들로 나가니라. 나갈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예언'이란 말의 의미는 '예언하다'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중 나바(naba)라는 말을 주목해 보면 재미있다. 그것은 "솟아나다, 분출해나오다, 앞으로 뿜어져나오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감동하심가운데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가 예언자의 입술을 통해 거침없이 마음으로부터 솟아나고, 거품처럼 뿜어져나오는 것을 예언이라 한다.
15.예언의 음성을 듣는 법
개인예언에 대하여
1. 부분적으로 예언한다.
(고전13: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무한한 하나님의 지식의 오직 한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언도 우리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뜻 중에서 오직 작은 직관에 불과하다. 메시야에 관한 각 예언은 그림조각 맞추기처럼 작은 부분만을 언급하고 있다.
` 다윗 - 왕위를 계승하는 영원한 상속자의 약속
` 이사야 - 고난 받는 종
` 다니엘 - 인자의 승리
우리의 개인적인 예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요셉 - 예언적인 꿈은 형들을 다스릴 것을 보여 주지만, 그의 고난은 침묵
` 모세 - 사명과 아들의 할례 (사명은 주었으나, 죄의 모습을 나타내 주지 않음)
2. 조건부적인 예언 대 무조건적인 예언
`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의 예언
` 느부갓네살왕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적인 해석
` 니느웨의 멸망 - 요나의 회개선포로 연기 되었으나, 결국 멸망
그 반면에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주시는 예언적인 약속과 선포로써 취소될 수도 있고, 변경될 수도 있고, 뒤집어질 수도 있고, 혹은 감소될 수도 있다. 실패로 돌아가고 절대로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예언이 성취되자면, 그 예언을 받은 사람의 적절한 참여와 협력을 요하게 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 2명만이 들어감
아브라함의 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
사울왕의 불순종으로 버린바 됨.
3. 점진적으로 밝혀진다.
몇년을 두고 점차적으로 새로운 정보와 계시를 더해주고, 하나하나의 예언의 말씀과 더불어 밝혀지고, 또 늘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길의 구체적인 것이 축적됨으로써, 그 분은 서서히 우리의 생애를 위한 그의 전체 계획과 또 그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한 방법을 밝혀주신다.
16.예언사역시의 주의사항
` 들을수있게 말을 해야 한다.
` 소리를 지르지 말라. 하나님이나 그 사람은 귀머거리가 아니다.
` 빨리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라.
` 길게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라.
` 말을 반복하지 말라.
` 거친 판단이나 심한 책망을 주의하라.
` 예언을 단순하게 하라.
` 요점에 초점을 맞춰라.
` 다른 사람들을 흉내내지 말라.
` 직접적으로 하라.
` 파괴적인 특성을 피하라.
` 조용히 말하라.
` 자신이 말하는 스타일을 개발하라.
` 분노, 상처 등등은 말하지 말라. 오직 주님 마음만을 이야기하라.
` 겸손함으로 말하라.
` 말을 테스트받고자 하라. 실수할 때가 있다.
17.예언성취의 방해요소
1. 불신앙
2. 사고방식
우리들의 대부분은 인생에 대한, 우리 자신에 관한, 또 신학에 대한 선입관이 있어서 예언의 말씀이 우리의 확립된 관념에 병행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 예수께서 죽으심, 매장, 부활에 대해서 예언하셨을 때, 제자들의 반응
` 유대인들은 매시야의 재림에 대한 정치적인 사고방식
1) 확고부동한 견해는 진정한 예언을 반대한다.
오늘날 우리 역시 생활방식, 사역의 종류나 혹은 종교적 전통에 관한 어떤 유별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과 목표와 반대되는 예언을 받아들이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2) 자아상의 문제
` 강한 실패에 대한 강박관념(모세)
` 잘못된 자기 편견 : 열등감, 우월감, 자만심
` 쓴 뿌리
3) 육의 추리력과 과학적이론
3. 혼의 막힘
생각하는 관념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 의지적인 소욕이나 혹은 개인적인 야심이다. 이것을 혼의 막힘이라 부를 수 있다.
`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 함 - 시드기야(렘38:19-20), 사울 왕(삼상15:24)
` 말씀을 주고있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싫어할 때 - 미가야를 대하는 여호람(왕상22:8), 예레미야가 관련된 시드기야왕(렘38:14-28)
` 약속 대신에 문제에 시선을 집중함(민13:30-)
`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못한 실수(단11:32)
`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차라리 자아보존에 급급한 동기(계12:10-11)
4. 성급함
` 사울(삼상13:12) -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 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恩惠)를 간구(懇求)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燔祭)를 드렸나이다.
` 모세
` 아브라함과 사라 - 성급함은 이스마엘을 생산함
5. 태만, 지연과 나태함
` 모세가 아들의 할례를 지연함
6. 낙심과 환멸
우리가 바랐던대로 일들이 풀리지 않을 때, 우리의 낙심과 환멸이 우리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를 방해한다.
7. 책임전가, 자기기만과 사람을 기쁘게 함
18.예언의 시간
지금, 오늘날
대체로 우리는 이 용어를 '24시간 이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언적용어는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사울의 경우 38년 후(삼상13:1 - 사울이 왕(王)이 될 때에 사십세(四十歲)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년(二年)에...), 다윗이 왕됨이 24년(삼상15:28 -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王)에게서 떼어서 왕(王)보다 나은 왕(王)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속히 오리라'를 종말의 때까지이다.
그러므로 예언적 용어중에서 '곧'은 하루에서부터 삼년까지를 의미한다. '매우 속히'는 일년에서 10년까지를 의미한다. '지금, 오늘'은 일년에서 40년까지를 의미한다. 분명한 시간을 지정함이 없이, '내가 할 것이다'는 만일 그 사람이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 일생중에 어느 때인가 행하실 것임을 뜻한다.
특수한 상황을 암시해 주는 용어들
` 인내 : 인내심을 갖게 되리라고 할 때는, 환란 또는 문제가 생긴다는 말
` 지혜 :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겠다는 말은 우리의 지식, 지혜를 버려야 된다는 것
`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라는 말은 원망하는 대신에, 회개하라는 것
` 믿음 : 믿음을 갖게 되리는 것은 어떤 기적을 요하는 재난 직전에 처한다는 것
` 세우다, 넓히다, 늘리다 : 깊은 기초 공사 - 연단의 기간이 있게 된다는 것
` 회복 : 조각 조각으로 완전히 분해될 것이며, 회복되기 전에 더 큰 혼란이 생김
` 새로운 계시, 환상은 사역을 가져온다. 사역이 굉장하면 훈련 기간이 더 필요
` 내가, 네가, 우리가 할 것이다 : 모두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믿음의 적극적인 협동을 요구한다.
19.예언의 유익성
예언과 예언적인 말씀들은 가끔 교회안에서 논란의 원인이 됩니다. 마이클 빅블은 그의 경험안에서 예언의 모양들에 대해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다.
마이크 빅블(Mike Bickle) - 우리가 발견하기를 예언은 믿음을 강하게 해 주고, 또 기사와 일반적인 감동을 가져다줍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비난을 불러일으키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하나님의 뜻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와 함께 사역을 했던 예언적인 기쁨, 복음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더 이상 계속 사역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들은 성격적인 결함들, 목회방법들에 대한 지도자 들과의 갈등, 그리고 목회적인 속박과 정정(訂定)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일들을 통해 우리들은 더욱 굳건한 교제와 더욱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쇠는 관리입니다. 진실한 예언적인 말씀들의 정확한 해석은 훌륭하게 운영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교회적이든지 개인적이든지 예언안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운영(행정 adrninistration)은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8 - 하나님이 교회(敎會) 중(中)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使徒)요 둘째는 선지자(先知者)요 세째는 교사(敎師)요 그 다음은 능력(能力)이요 그 다음은 병(病) 고치는 은사(恩賜)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各種) 방언(方言)을 하는 것이라.)의 생명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1장, 12장-14장을 쓴 중요한 이유는 고린도교회안에 있는 은사적인 활동에 대한 경험과 반대 사이의 긴장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들은 예언적 은사를 양육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저는 우리들은 잘못된 예언이나 욕되게 사용되는 것에서부터 판단을 받고, 또 제지를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바로 그것이 양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의 이익들
@지도력 개발(開發)
@중요한 주제들을 위한 정확한 방향 제공
@마귀적인 공격의 경고
@견딜 수 있는 소망과 믿음
예언이 들리는 상태
(1)사물에 대한 관심에서 하나님으로 옮겨질때.
(2)중심이 생각 이성에서 마음으로 옮겨질때
(3)성령으로 충만한 상태. 주님의 현존을 느낄때
(4)무엇을 하려는 의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지성, 고조되거나 깊이 실추한 감정의 상태에 서는 예언이 들리지 않는다.
말씀을 듣게되면, 들은 그대로 말하게 한다.
예언은 주님으로부터 오시지만, 받아서 전달하는 자는 인간이다. 예언의 순수성이 예언자의 상태에 따라서 순수성, 참 뜻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같은 말이라도 전달자의 감정 표현, 전달 방법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예언을 자신의 감정, 뜻을 섞어서 전달할 가능성이 예언시의 마음의 자세가 많은 영향력을 가진다.
(1)도덕적인 문제가 있을 때
(2)감정이 흥분상태일 때
(3)기도 받을 사람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을 때
(4)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이지, 질문을 받아서 대답하는 것이 아님.
(5)예언으로 자신의 거취문제, 사업등을 알려는 자세는 잘못된 것임.
예언은 언제나 주님의 주관하에 있다.
예언은 인격적이어야 하며, 상처를 주지않아야 한다.
1)죄에 대한 지적을 직접적, 강한 어조로 충고, 야단치듯이 하지 말고, 부드럽고 온유하게 그의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회개를 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2)가능한 존칭어와 상처받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며, 부정적인 언어보다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3)다수의 사람들일 때는 개인적이며, 인격손상이 될만한 예언은 따로 개인적으로 하라.
20.오늘날 어떤 예언자들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에베소서4:11-12은 사도들, 예언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사들, 그리고 교사들이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은사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존재합니다. 목사와 교사,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은사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서슴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왜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은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직분의 은사들중에 일부분은 믿으면서, 그러나 그 직분들의 은사의 다른 절반은 아니라고 절반을 쪼개어 내어버릴 수가 있습니까?
예언함(프로페-테이아) - 성령을 통하여 인식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고전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원어의 뜻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숨은 비밀을 드러낸다는 뜻이 있는데,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숨은 비밀(뜻)을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이 된 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는 도중에 사람이 성령에 깊이 사로 잡힌 상태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며, 자신의 입을 통하여 말하게 되기도 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심령으로부터 솟아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를 예언자, 또는 선지자, 선견자라고 말한다.
21.잘못된 예언
①. 말씀을 들은 것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하는 예언
(겔 13: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있을진저!
이 예언의 발원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예언하는 사람의 이성적인 생각에서 나오는가? 잠재의식에서 나오는가?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가? 영으로부터 발원되어지는 것인가를 분석하면 몇 퍼센트 하나님의 말씀인지 알 수 있게 된다.
②. 듣기좋은 것만 말하는 예언
대하 18:11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거늘 대하 18:12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 일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처럼 길하게 하소서.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자들에게 기쁘고 좋은 것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영과 혼을 갈라쪼개고 하늘(영)과 땅(육)을 갈라 쪼개고 거짓과 참된 것을 갈라내고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하는 것이다.
괴로운 짐을 지고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위로를 주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복음적이라는 미명하에, 청중이나 듣는 사람에게 듣기좋은 것만 골라하는 설교나 예언은 인기를 끌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이고 역리적인 것이며, 영적인 예언이나 설교는 아니다.
오늘날 강단은 인간의 말로 오염되어 있고, 성도의 귀는 육신적인 아첨과 오직 적극적, 긍정적이라는 설교에 오염되어 있고, 성도의 심령은 부인되어져야 할 자아로 똘똘 뭉쳐져, 그 자아를 부추기는 설교만을 요구하고, 또 요구하고 있다.
③. 거짓영으로 하는 예언
대하 18:21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 즉 대하 18:22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 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④. 말한 것이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는 예언
(신 18: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⑤. 비정상적이거나 비인격적인 예언
(행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워서 전도하라는 명령을 하는 경우라든가, 어느 집 앞에 십자가를 그리고 전도하라든지, 어느 사람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라면서 이를 녹음하여 전 교인들에게 알게 하라는 식의 비인격적인 요소들이 있는 예언은 귀신의 영들이 주는 것들이다.
컴퓨터를 마귀의 소산물로 말하거나, 비행접시나 이상한 사진을 찍어 신령한 역사로 말하거나, 종말에 대하여 특이한 증거를 제시하는 시한부종말론자의 예언들은 다 잘못된 것이다.
⑥. 성경의 영적맥락과 흐름에서 벗어나는 예언
도적같이 임한다는 성경의 재림의 시기를 무시하고 날짜를 못박아 예언하여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사건이 바로 이러한 예언이다.
율법과 복음, 영과 육, 성령의 열매와 은사, 죄와 은혜, 감사와 영광, 사명과 축복, 치유와 생명, 기도와 찬양, 하나님 나라와 사단의 나라, 재림과 부활... 등 성경의 전 분야에 걸쳐 고루고루 언급되어야 한다.
구약을 신약적인 원리에서 해석하지 않는 사람은 정죄하는 예언을 하게되고, 특별히 계시록이나 종말이나 재림만 강조하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편파적인 신앙과 신비에 빠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⑦. 말씀을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초신자나 어린이가 하는 예언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전혀 듣지않은 말씀을 주는 것은 사단이 주는 경우가 많다.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고, 듣는것을 말한다. 어린 아이의 경우는 말씀을 들어 본 기회가 별로 없다.
(실례). 어떤 중이 목사가 된 분이 있는데, 이 목사가 중 시절에 성경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신령한 눈을 가져서 어떤 목사와의 대화에서 이 목사가 도저히 이길 수가 없고 오히려 8시간 설법을 듣고 간 적이 있다는 간증을 하고 있다.
22.왜 꿈인가?
꿈은 하나님이 우리와 말씀하시는 의사소통 수단중의 하나입니다.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는 꿈을 통해서 체험적인 신앙인으로 거듭납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동행하시는 임마누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창28:10-19)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꿈이야기를 다름아닌 성경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말씀에 견주어 우리의 꿈이야기도 다룰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꿈의 유통을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건전한 방식으로 꿈이 유통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목회자 자신이 꿈에 대해서 열려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꿈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는 훈련이 되어있어야 하겠습니다.
목회자가 꿈을 금기시한다면 많은 성도들이 서로 은밀하게 꿈이야기를 나누든지, 아니면 미신적인 해몽가들을 찾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이미 전화상담이나 인터넷상담을 하는 미신적인 해몽가들이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실정입니다.
성도들은 어떻게든지 꿈을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이제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꿈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성경적으로 바르게 꿈을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도록 저들을 안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꿈에 매달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의 모든 성도들이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환상을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파악하는 사람은 더 드뭅니다. 그러나 꿈꾸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꿈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얻어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이런 욕구를 누르기보다는, 성경적인 방식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바르게 지도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심리적인 꿈도 신앙지도에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꿈꾼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면의 한 단면을 열어 보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꿈을 통해서 심리상담, 신앙상담, 진로상담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선뜻 일상생활을 털어 놓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꿈이야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습니다. 꿈을 통한 상담과 지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꿈을 나누고 상담함으로써 내적인 치유와 함께 신앙성장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최고입니다. 그러나 그런 꿈만 좋고 심리적인 꿈은 나쁘다는 이분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최고이지만,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귀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만들내는 심리적인 꿈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귀할 수 있습니다. 잘 활용하기만 하면 우리는 심리적인 꿈을 통해서 내면의 상처나 무질서를 치유하고, 내면의 성장을 꾀할 수 있습니다.
30대 후반의 한 여집사님이 자주 꿈에서 자기 집 안방에 누워있는 시체를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체가 부패해 가는데도 그것을 치워야 할 남편은 꿈쩍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꿈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이 꿈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이 꿈은 그녀의 부부생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부부생활은 부패해가는 시체와도 같았습니다. 남편의 마음이 다른 여자한테 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성도님이 대학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기 전에 큰 개와 싸우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 개를 몰아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꿈은 그가 병마와 싸워이기고,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심각한 수술을 받아야했고,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가 꿈을 해석하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준비만 제대로 돼 있다면, 꿈은 아주 유용한 목회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은 앞으로 어떤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건과 맞붙어 싸우는 싸움에서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꿈을 바르게 해석하고 상담함으로써, 그들의 신앙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상담학의 권위자인 정태기 박사는 꿈해석을 통한 치유목회의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꿈을 통해 참다운 삶의 의미를 더 깊이 지각하게 됩니다. 상처입은 성격도 치유받게 됩니다. 꿈해석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이 더욱 깊어지고, 우리의 영혼이 활력을 얻게 됩니다. 꿈해석은 우리의 갈등과 문제를 드러내는 한편, 그런 문제의 저변에 숨어 있는 무한한 잠재력도 밝혀 줍니다. 꿈해석은 우리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자각시켜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장해 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갖게 해 줍니다.
꿈해석은 우리의 영혼육이 어떤 상태에 처해있는가를 밝혀줌으로써,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줍니다. 더 나아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진단함으로써, 나의 병든 부분을 치유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결국 꿈해석을 통해 우리는 전인 건강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8) 그 후(後)에 내가 내 신(神)을 만민(萬民)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子女)들이 장래(將來)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異像)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신(神)으로 남(男)종과 여(女)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異蹟)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煙氣) 기둥이라.
하나님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음성으로, 그림으로, 글자로, 소원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청각적인 음성과 내적인 음성, 환상과 꿈, 성경 말씀과 설교 말씀, 예언과 내적인 소원으로 말씀하십니다. 물론 주변 인물이나 주변 환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꿈과 환상으로도 응답하십니다.
(28) 그 후(後)에 내가 내 신(神)을 만민(萬民)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子女)들이 장래(將來)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異像)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신(神)으로 남(男)종과 여(女)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異蹟)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煙氣) 기둥이라.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글자언어라면 꿈과 환상은 하나님의 그림언어입니다. 꿈은 잘 때 주어지는 그림언어이고, 환상은 거의 깨어있을 때 주어지는 그림언어입니다. 환상은 눈을 뜨고있든지, 감고있든지 상관없이 거의 깨어있을 때 주어지는 그림언어입니다. 환상을 보는 사람은 드물지만, 꿈은 누구나 꿉니다.
믿는자도 꿈을 꾸고, 믿지않는 자도 꿈을 꿉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응답하십니다. 구약성경의 요셉은 두번 꿈을 꾸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요셉은 세번 꿈을 꾸었습니다.(마1:18-25, 2:12-23)
솔로몬은 꿈꾼대로(왕상3:5-10), 가장 지혜로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종말론적인 묵시꿈을 꾸었습니다.(단2:31-35, 7:1-15)
하나님은 믿지않는 자에게도 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바로왕도 하나님의 꿈을 꾸었고,(창41:1)
바로왕에게 시중드는 관원들도 하나님의 꿈을 꾸었고,(창40:16)
느부갓네살 왕도 하나님의 꿈을 꾸었고,(단2:1)
빌라도총독의 아내도 하나님의 꿈을 꾸었습니다(마27:19).
그러니 우리는 꿈을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꿈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아닙니다. 개인의 과거경험이 재현되는 꿈도 있고, 심리적인 욕망이 드러나는 꿈도 있고(전5:3-7),
거짓 꿈도 있습니다(신13:1-3, 슥10:2).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꿈인지, 자기 자신의 심리가 만들어 낸 꿈인지, 사탄이 준 꿈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분별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꿈을 해석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직독 직해해야 하는 꿈도 있고,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꿈도 있습니다. 직독 직해할 것을 상징적으로 푼다든지, 상징적으로 풀어야 할 것을 직독 직해로 푸는 잘못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해몽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이 그랬고,(창41:25)
다니엘이 그랬습니다.(단1:17)
우리는 꿈에 민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단7:1) 꿈을 기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보다 분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꿈을 제대로 분별하려면 성경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꿈들이 인간의 심리적인 욕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링컨과 꿈 - 아브라함 링컨은 저격당하기 10일전에 자신이 총을 맞아 죽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링컨은 꿈속에서 어떤 여인이 슬프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울음소리는 백악관의 지하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울음소리를 따라 지하실로 내려가던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보좌관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서 누군가의 관을 향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링컨이 옆에 서 있던 보좌관에게 물었다.
"저것은 누구의 관인가?"
"대통령 각하께서 저격을 당해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그는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이 죽다니, 대통령이 바로 나 아닌가!'
이튿날 아침 그는 아내에게 어젯밤 꿈 얘기를 해 주었다. 그의 아내는 꿈이 불길하다면서 이야기를 중단시켰다. 링컨은 이 꿈을 꾼지 10일만에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이 꿈이야기는 백악관 문서보관소에 아직도 보관되어 있다.
정태기 교수의 태몽 - 나는 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태몽은 신비하기 그지없다. 나의 어머니도 나를 가졌을 때 태몽을 꾸셨다. 어머니는 큰 건물을 보았다고 했다. 건물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내가 그들에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더란다. 그 때까지 어머니는 고향의 섬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어머니가 그렇게 큰 건물이나 많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태몽을 꾸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머니는 이 태몽이야기를 자주 얘기하셨다.
내가 안양중앙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나는 어느 수요일밤 설교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무렵 어머니가 우리집에 다니러 와 계셨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여 내 설교를 들었다. 어머니는 그 때까지 교회문턱도 밟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 내 손을 덥석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이것이 니 태몽이여. 태몽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여.”하셨다.
본인의 이름 석자도 못쓰셨던 어머니가 태중에서부터 이미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아셨던 것이다. 어떻게 먼 훗날 뱃속의 아이가 살아갈 모습을 미리 볼 수 있었던 것일까?
①. 꿈은 하나님이 보낸 편지요, 선물이다
②. 꿈은 의미와 목적, 그리고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③. 꿈해석은 영적, 정신적성숙을 목적으로 한다.
꿈이 가지고 있는 예언적인 요소는 1%에 불과하다고 한다. 꿈이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적인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꿈의 본래적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영적, 정신적성숙에 있다. 즉 일상사의 삶과 마음의 자세와 대인관계,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④. 꿈은 타인보다는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⑤. 꿈은 상징언어이다.
②. 꿈기록 노트를 준비한다.
③. 꿈을 나눈다.
④. 꿈을 삶에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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