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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朱子書節要序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서문
晦菴朱夫子, 挺亞聖之資, 承河洛之統, 道巍而德尊, 業廣而功崇, 其發揮經傳之旨, 以幸教天下後世者, 旣皆質諸鬼神而無疑, 百世以俟聖人而不惑矣.
회암(晦菴) 주부자(朱夫子)는 아성(亞聖)의 자질이 뛰어나 하락(河洛)1) 의 계통을 이었는데 도는 우뚝하고 덕은 높으며, 사업은 넓고 공로는 높다. 또 그가 경전(經傳)의 뜻을 밝혀 천하 후세를 가르친 것은 귀신에게 물어도 의심이 없고, 백세에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됨이 없을 것이다.
*亞聖(아성):성인(聖人) 즉 공자 다음이란 뜻. 挺[빼어날 정], 巍[높을 외], 幸敎(행교):가르쳐 내려줌. 俟[기다릴 사]
夫子旣沒, 二王氏及余氏, 裒稡夫子平日所著詩文之類, 爲一書, 名之曰《朱子大全》, 總若干卷, 而其中所與公卿大夫․門人知舊往還書札, 多至四十有八卷, 然此書之行於東方, 絶無而僅有, 故士之得見者蓋寡.
부자께서 돌아가신 후 두 왕씨(王氏)와 여씨(余氏)2) 가 부자께서 평소에 저술한 시문(詩文)들을 한데 모아 한 책을 만들고 이름을 《주자대전(朱子大全)》이라 하였으니, 모두 약간 권이 되었다. 그 가운데 공경대부(公卿大夫)와 문인 및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가 자그마치 48권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나라에 유행된 것이 아주 없거나 겨우 조금 있었을 뿐이므로, 구해 본 선비는 적었다.
*裒[모을 부], 稡[모을 최]:모으다. 萃[모일 췌]와 같다. 裒稡(부최):한데 모음. 僅[겨우 근], 寡[적을 과].
嘉靖癸卯中, 我中宗大王, 命書館,印出頒行, 臣滉於是, 始知有是書而求得之, 猶未知其爲何等書也.
가정(嘉靖) 계묘년(1543, 중종38)에 우리 중종대왕께서 교서관(校書館)에 명하여 인쇄해서 배포하도록 하였다. 이에 신(臣) 황(滉)은 비로소 이런 책이 있는 줄을 알고 구하여 얻었으나, 아직껏 그것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頒[나눌 반], 何等(하등):어떠한.
因病罷官, 載歸溪上, 得日閉門靜居而讀之, 自是, 漸覺其言之有味,其義之無窮, 而於書札也, 尤有所感焉.
병으로 인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계상(溪上)으로 돌아와 날마다 문을 닫고 조용히 거처하며 이를 읽어 보니, 점점 그 말에 맛이 있고 그 뜻이 무궁(無窮)함을 깨달았는데, 더욱이 서찰에 있어서는 느낀 바가 있었다.
*載歸(재귀):싣고 함께 돌아옴.
蓋就其全書而論之, 如地負海涵, 雖無所不有, 而求之,難得其要. 至於書札, 則各隨其人材稟之高下, 學問之淺深, 審證而用藥石, 應物而施爐錘, 或抑或揚, 或導或救, 或激而進之, 或斥而警之, 心術隱微之間, 無所容其纖惡.
대개 그 책 전체를 두고 논한다면, 땅이 만물을 싣고 바다가 만물을 포용하는 것과3) 같이 없는 것이 없으나, 구해 보아도 그 요점을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서찰에 있어서는 각기 사람들의 재품(才品)의 고하(高下)와 학문의 천심(淺深)을 따라 증세를 살펴서 약을 쓰며 사물에 따라 알맞게 담금질하는 것과 같아서, 혹은 누르고 혹은 들추며, 혹은 인도하거나 혹은 구원하며, 혹은 격려하여 올리고 혹은 물리쳐 깨닫게 하여서, 심술(心術)의 은미한 사이에 그 작은 악이라도 용납하지 못하게 하였다.
*爐[화로 로], 錘[저울 추], 爐錘(노추):쇠를 단련함. 藥石(약석):약재와 돌침. 여러 가지 약을 통틀어 이르는 말. 교훈이 되거나 훈계할 만한 일을 비유하는 말. 心術(심술):마음. 마음이 가지는 덕(德)이나 능력(能力). 纖[가늘 섬],
義理窮索之際, 獨先照於毫差, 規模廣大, 心法嚴密. 戰兢臨履, 無時或息, 懲窒遷改, 如恐不及, 剛健篤實輝光, 日新其德. 其所以勉勉循循而不已者, 無間於人與己, 故其告人也, 能使人感發而興起焉. 不獨於當時及門之士爲然, 雖百世之遠, 苟得聞教者, 無異於提耳而面命也. 嗚呼至矣.
의리(義理)를 궁구(窮究)하는 즈음에는 홀로 먼저 조그마한 차이점도 비추어 주니, 그 규모가 넓고 크며 심법(心法)이 엄하고 정밀하며, 못에 다다른 듯 얼음을 밟는 듯 조심하고 조심하여4) 혹시라도 쉴 때가 없게 하였다. 분노(忿怒)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으며, 선에 옮기고 허물을 고치기에5)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강건하고 독실하여 그 빛이 날로 덕을 새롭게 하고, 힘쓰고 따르면서 그치지 않는 것은 남과 자신이 사이가 없어야 하므로 그가 남에게 고(告)해주면 능히 남으로 하여금 감동하고 흥기하게 하였으니 당시 문하(門下)에서 직접 배운 선비들만 그랬을 뿐 아니라, 비록 백세 뒤라도 진실로 이 가르침을 듣는 자는 귀에 대고 말하며 직접 명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아! 지극하도다.
*聞敎(문교):가르침을 받음. 배움. 提耳(제이):귀를 바짝 끌어 일러줌. 정성껏 교도(敎導)함을 이른다. 면명(面命):직접 명령하거나 훈계함.
顧其篇帙浩穰, 未易究觀, 兼所載弟子之問, 或不免有得有失, 滉之愚,竊不自揆, 就求其尤關於學問而切於受用者, 表而出之, 不拘篇章, 惟務得要. 乃屬諸友之善書者及子姪輩, 分卷寫訖, 凡得十四卷爲七冊, 蓋視其本書, 所減者殆三之二, 僭妄之罪, 無所逃焉.
돌아보건대 그 책이 너무 많아서 연구하기가 쉽지 않고 겸하여 그 책에 실려 있는 제자(弟子)의 물음이 혹 득실(得失)이 있음을 면치 못하였다. 어리석은 내가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그 중에서 더욱 학문에 관계되고 쓰임에 절실한 것만을 표시하여 뽑아내되, 편(篇)이나 장(章)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그 요점을 얻기에만 힘쓰고, 이에 글씨를 잘 쓰는 벗과 아들과 조카들에게 부탁하여 권(卷)을 나누어 쓰기를 마치니, 무릇 14권 7책이 되었으니 대개 그 본서(本書)와 비교하면 감해진 것이 거의 3분의 2나 되니 외람되고 망녕된 죄는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雖然, 嘗見《宋學士集》, 有記魯齋王先生以其所選《朱子書》, 求訂於北山何先生云, 則古人曾已作此事矣. 其選其訂, 宜精密而可傳, 然當時宋公, 猶嘆其不得見, 況今生於海東數百載之後, 又安可蘄見於彼, 而不爲之稍加損約, 以爲用工之地也哉.
그러나 일찍이 《송학사집(宋學士集)》6)을 보니 거기에 기록하기를, “노재(魯齋) 왕선생(王先生)7)이 뽑은 《주자서》를 북산(北山) 하선생(何先生)8)에게 교정하기를 청하였다”고 하였으니, 옛사람이 이미 이런 일을 했던 것이며, 그 뽑고 교정 한 것이 응당 정밀하여 후세에 전할 만하였을 것인데도 그 당시 송공(宋公)도 오히려 그 책을 보지 못한 것을 탄식하였는데, 하물며 지금 해동(海東)에서 수백 년 뒤에 태어났는데도, 또 어찌 그 책을 보기를 바라고서도 좀 더 간략하게 만들어 공부할 자료를 삼으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蘄[풀이름 기]:빌다. 구하다. 祈[빌 기]와 같다. 稍[벼 줄기 끝 초]:작다. 적다.
或曰 “聖經賢傳, 誰非實學, 又今集註諸說, 家傳而人誦者, 皆至教也. 子獨拳拳於夫子之書札, 抑何所尙之偏而不弘耶?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성경(聖經)과 현전(賢傳)은 어느 것이나 다 실학(實學)이 아니겠는가? 또한 지금 《집주(集註)》의 여러 학설로서 집집마다 전하고 사람마다 외우는 것이 모두가 다 지극한 가르침인데, 그대는 홀로 부자의 서찰에만 알뜰하니, 어찌 숭상하는 바가 그리 편벽되고 넓지 못하는가?” 하였다.
*實學(실학):실제로 소용되는 학문. 拳拳(권권):참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지키는 모양.
曰 “子之言似矣. 而猶未也. 夫人之爲學, 必有所發端興起之處, 乃可因是而進也. 且天下之英才, 不爲不多, 讀聖賢之書, 誦夫子之說, 不爲不勤, 而卒無有用力於此學者, 無他, 未有以發其端而作其心也.
나는 대답하였다. “그대의 말이 그럴 듯하나 그렇지 않다. 대개 사람이 학문을 하는 데는 반드시 단서(端緖)를 열고 흥기시키는 곳이 있어야 이로 인하여 진보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천하의 영재가 적지 않으며, 성현의 글을 읽고 부자[공자]의 말을 외우기에 부지런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마침내 이런 학문에 힘쓰는 자가 있지 않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단서를 열고 그 마음을 진작시키는 것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今夫書札之言, 其一時師友之間, 講明旨訣, 責勉工程, 非同於泛論如彼, 何莫非發人意而作人心也? 昔聖人之教, 詩書禮樂皆在, 而程朱稱述, 乃以《論語》爲最切於學問者, 其意亦猶是也. 嗚呼. 《論語》一書, 旣足以入道矣. 今人之於此, 亦但務誦說, 而不以求道爲心者, 爲利所誘奪也.
지금 이 서찰에 있는 말은 그 당시 사우(師友)들 사이에서 좋은 비결(祕訣)을 연구하여 밝히고, 공부를 권장한 것이었으니 저들[《집주(集註)》]과 같이 범연(泛然)하게 논(論)한 것과는 다르니 어찌 사람의 뜻을 감동시키며 사람의 마음을 흥기시키지 않는 것이 없겠는가? 옛 성인의 가르침에는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이 모두 있지만,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칭송하고 기술할 때 《논어(論語)》를 가장 학문에 절실한 것으로 삼았으니 그 뜻도 역시 이와 같았다. 아! 《논어(論語)》 한 책으로도 충분히 도(道)에 들어갈 수 있는데, 지금 사람들이 여기에 있어 설(說)을 외우고 말하기에 힘쓸 뿐 도(道) 구하기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이익에 유혹되어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札[패 찰], 泛[뜰 범], 奪[빼앗을 탈]
此書有《論語》之旨, 而無誘奪之害, 然則將使學者, 感發興起, 而從事於眞知實踐者, 舍是書,何以哉. 夫子之言曰 “學者之不進, 由無入處而不知其味之可嗜. 其無入處, 由不肯虛心遜志, 耐煩理會.
그런데 이 글에는 《논어》의 뜻은 있지만 유혹되어 마음이 빼앗기는 해독은 없다. 그러니 앞으로 배우는 자로 하여금 감동하고 분발되게 하여, 참으로 알고 실천하도록 하는 데 종사하는 것에 이 글을 버리고 무엇으로써 할 것인가? 부자(夫子)의 말씀에 이르기를 “학자가 진전(進前)하지 못하는 것은 들어가는 곳이 없어 즐길 만한 맛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하였다. 들어가는 곳이 없다는 것은 즐겨 마음을 비우고 뜻을 겸손하게 하며 번거로움을 참고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嗜[즐길 기], 煩[괴로울 번]
使今之讀是書者, 苟能虛心遜志, 耐煩理會, 如夫子之訓, 則自然知其入處, 得其入處, 然後知其味之可嗜, 不啻如芻豢之悅口, 而所謂大規模,嚴心法者, 庶可以用力矣.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자가 진실로 마음을 비우고 뜻을 겸손하게 하며 번거로움을 견디고 깨닫기를 부자[朱子]의 가르침처럼 할 수 있다면 자연히 들어가는 곳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들어가는 곳을 깨달은 뒤에는 그 맛이 즐길 만한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맛 나는 음식이 입을 기쁘게 하는 것9)
*芻[꼴 추], 豢[기를 환], 芻豢(추환):소・양・개・돼지 따위의 가축. 육류 식품을 두루 이른다.
由是而旁通直上, 則泝伊洛而達洙泗, 無往而不可, 向之所云聖經賢傳, 果皆爲吾之學矣. 豈偏尙此一書云乎哉. 滉年薄桑榆, 抱病窮山, 悼前時之失學, 慨餘韻之難理, 然而區區發端, 實有賴於此書, 故不敢以人之指目而自隱, 樂以告同志, 且以俟後來於無窮云.
이로 말미암아 널리 통하여 곧바로 올라간다면 이락(伊洛)10)을 거슬러 수사(洙泗)11)에 닿게 되어 어디로 가나 옳지 않음이 없게 되니 앞서 말한 성경(聖經)과 현전(賢傳)이 사실은 모두 우리의 학문인 것이니 어찌 이 한 책[《朱子書》]만을 치우치게 숭상한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나[황(滉)]는 나이 늙었고12) 병들어 궁벽한 산중에 있으면서 전에 배우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성인의 여운(餘韻)을 깨닫기 어려움을 개탄하였다. 그런데 내가 단서를 발견하였던 것은 실로 이 글에 힘입었음이 있었다. 그래서 감히 남이 지목하는데도 스스로 숨기지 못하고 즐거이 동지들에게 고하며 또한 무궁한 후세에 공론(公論)이 있기를 기다린다.
*旁[두루 방], 泝[거슬러 올라갈 소], 薄[엷을 박]:접근하다. 가까이 다가가다. 悼[슬퍼할 도], 賴[힘입을 뢰]
嘉靖戊午夏四月日, 後學眞城李滉, 謹序. <出處 : 退溪先生文集卷之四十二>
가정(嘉靖) 무오년(1558) 4월 어느 날 후학 진성(眞城) 이황(李滉) 삼가 서(序)하다.
1) 하락(河洛) : 황하(黃河)와 낙수(洛水)라는 지명으로 하(夏)・은(殷)・주(周) 3대가 도읍했던 곳이다. 그러므로 우(禹)・탕(蕩)・문왕(文王)을 가리킨다.
2) 두 왕씨와 여씨(余氏) : 두 왕씨는 왕잠재(王潛齋)와 왕실재(王實齋)를 말하며 여씨는 여사로(余師魯)를 말한다.
3) 지부해함(地負海涵) : 대지가 만물을 그 위에 실어 주듯 바다가 온갖 물줄기를 다 받아들이듯 넓고 큰 임금의 덕을 표현하는 말이다. 지식이 넓고 깊음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4) 전긍임리(戰兢臨履) :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매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의 “전전긍긍하여 심연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5) 징질천개(懲窒遷改) : 징분질욕(懲忿窒慾) 천선개과(遷善改過).
6) 《송학사전집(宋學士全集)》 : 명나라 송렴(宋濂)이 찬한 것으로, 36권이다.
7) 노재(魯齋) : 송(宋)나라 왕백(王柏, 1197 ~ 1274)의 호. 남송 말기 무주(婺州) 금화(金華) 사람. 자는 회지(會之) 또는 백회(伯會)이고, 호는 노재(魯齋) 또는 장소(長嘯)이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황간(黃幹)의 문인 하기(何基)를 좇아 공부했다. 일찍이 여택서원사(麗澤書院師)와 상채서원사(上蔡書院師)를 지냈다. 하기와 김이상(金履祥), 허겸(許謙)과 함께 ‘금화사선생(金華四先生)’ 또는 ‘북산사선생(北山四先生)’으로 일컬어졌다. 《시경(詩經)』과 《상서(尙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시의(詩疑)》와 《서의(書疑)》를 지었고, 주희(朱熹)가 주해한 《사서(四書)》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졌다. 그 밖의 저서에 「독역기(讀易記)」와 「독서기(讀書記)」, 「시변설(詩辨說)」, 「함고역설(涵古易說)」, 「오경장구(五經章句)」, 「연기도(硏幾圖)」, 「주자지요(朱子指要)」, 「천관고(天官考)」, 「지리고(地理考)」 등이 있다.
8) 북산(北山) 하선생(何先生) : 송(宋)나라 하기(何基, 1188~1269)의 호. 자는 자공(子恭)이며 면재(勉齋) 황간(黃榦)을 통하여 주희의 학문을 전수받았는데, 왕백(王柏)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이락(伊洛)의 근원을 연구하였고, 금화산(金華山)에 살았으므로 사람들이 북산선생이라고 일컬었다.
9) 본문의 추환(芻豢)은 꼴을 먹여 기르는 소나 염소의 고기를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이의(理義)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추환의 고기가 우리의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10) 이락(伊洛) : 두 정자(程子)가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사이에서 학문을 강론하였다.
11) 수사(洙泗) :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수수(洙水)와 사수(泗水). 공자께서 이곳에서 도를 강론하였다.
12) 상유(桑楡) : 1)뽕나무와 느릅나무. 2)해질 무렵 석양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 끝을 비춤. 곧 황혼녘. 3)늘그막. 만년을 비유하는 말. 《문선(文選)》의 조식(曹植)의 시에 “年在桑楡間, 影響不能追”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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