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구정/舊正)의 추억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드리다-드리우다(매달다)
윤극영 님이 작사 작곡한 동요로 우리가 어릴 적에 누구나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이제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불현 듯 예전 어릴 적 설날 떡국을 먹고 차례를 지낸 후 온 동네방네를 다니며 세배를 하러 다니던 기억이 나서 몇 글자 추억을 떠올려 적어본다.
차례를 지낸 후 제일먼저 집안 어른께 세배(歲拜)를 올리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 ‘오냐, 새해 복 많이 받아라~’ 하시고 칭찬의 말도 덧붙였는데 곧 덕담(德談)이다. 예전에 세뱃돈은 없었다.
아침을 먹은 후 둘러앉아 제일 먼저 새해 운수(運數)를 보았는데 어느 집이나 거의 사주(四柱)책이 있었고, 사람마다 태어난 해(年:태세), 달(月:월건), 날(日:일진), 시(時)를 넣으면 평생의 운수가 나오는 책으로 당사주(唐四柱)라고 했다.
올해(今年)의 운수는 토정비결(土亭秘訣 )로 보았는데 다달마다의 운세가 상세히 나온다.
<예> 사주(四柱) : 연월일시(年月日時) - 네 개의 기둥(柱)
팔자(八字) : 갑자(甲子)년, 을축(乙丑)월, 병신(丙申)일, 정묘(丁卯)시 - 여덟 글자(字)
그리고는 잠시 기다리다가 마당가에 나서서 ‘얘들아, 세배가자!!’ 하고 손나팔을 하고 부르면 또래들이 모여드는데 다 모이면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렸다. 여자아이들은 안하고 남자아이들만...
당시는 요즘처럼 세뱃돈은 없었고 떡이나 과일을 내 놓으면 서둘러 먹고는 다음 집으로 달려가던 일이 떠오른다.
다 돌았다 싶으면 사랑방에 모여 둥그렇게 서서 우리끼리도 서로 맞절을 한다. 맞세배...
그리고 오후에는 세시(歲時) 놀이인 널뛰기, 연날리기, 윷놀이, 제기차기, 여자들은 쌍륙(雙六)놀이....
음력 정월 초하루가 ‘설날’인데 하루 전날인 12월 말일을 ‘까치설날’이라고 했다.
즉 세모(歲暮)를 말하는데 까치설날은 보통 ‘깍깍깍~’ 우는 날짐승 까치의 설날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고어(古語)인 ‘아치(하루 전날)’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나는 8남매의 막내로 강릉 안땔에서 태어났는데 까치보름(음력 정월 열 나흗날)이 내 생일이다.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 전날도 ‘까치보름’이라고 했는데 어릴 적 누님들이 나한테 ‘네 생일이 언제냐?’하고 물으면 내가 ‘까차!’, ‘까차보름’ 하고 대답했다고 나를 놀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까차’는 ‘까치의’의 준말이라고 하겠다.
설(舊正)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로, 떡국을 한 그릇 먹어야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절편(절떡) / 취떡(쑥떡) 치기 / 인절미 / 수수팥떡 / 팥떡 / 쑥개떡 / 다식(茶食)
우리나라는 떡의 종류가 수십 가지는 되겠는데 설날 차례상(茶禮床)에 올리는 떡은 몇 가지로 국한되어 있고 특히 쑥떡(쑥개떡)과 팥떡은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대표적인 떡이다.
쑥떡을 먹으면 ‘쑥떡쑥떡’ 못된 소리를 지껄이게 된다고 하여 ‘쑥개떡’이라고 했고, 팥떡은 시루에다가 쌀가루를 도톰하게 깔고 사이에 팥가루를 켜켜이 얹어서 시루로 쪄낸 떡인데 시루에서 꺼낸 후 다시 겉에다 팥고물을 묻히니 떡 색깔이 붉어서 부정(不淨)을 탄다고 했다. <시루로 쪄낸 떡이 ‘시루떡’>
제사상에 올리는 대표적인 떡으로 절편이 있는데 쌀을 물에 불렸다가 방아나 절구로 찧어서 가루로 낸 다음 시루에다 쪄내면 뭉실뭉실한 덩어리가 된다. 그것을 다시 안반(案盤:떡판) 위에 올려놓고 떡메로 치거나 절구에 넣고 절구공이로 쳐서 끈기가 있게 만든 다음 도톰하고 길쭘하게 모양을 만든 후 떡살로 꾹~ 누르면 예쁜 문양이 찍히는데 알맞게 잘라내면 완성이 된다. 절편(折片)이라는 말은 잘라서 조각을 냈다는 뜻이지만 강릉지방에서는 ‘절떡’이라고 했는데 차례상에 올리고 절을 올린다는 뜻은 아닐지....
인절미도 거의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데 멥쌀대신 찹쌀로 하고 겉에 콩가루를 묻힌다. 또 취나물이나 쑥을 삶아서 섞어 안반(案盤)에 놓고 쳐내면 취떡, 쑥떡이 되는데 이 또한 맛이 좋다.
취떡(취나물+찹쌀밥)은 산나물 향기로 무척 맛이 좋아 내가 특히 취떡을 즐겨 먹었던 기억이 난다.
떡살 / 안반과 떡메 / 디딜방아(살개방아) / 물레방아 / 물방아 / 다식(茶食) 판 / 절구통과 절구공이
우리 옛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떡은 모양을 좋게 만들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애쓴 흔적이 보이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떡살과 다식판(茶食板)이라고 할 수 있다.
떡살은 일명 떡손, 또는 병형(餠型)이라고도 하는데 단단한 나무를 골라 가지가지 다양한 무늬를 새겨서 떡을 찍어내도록
만들었는데 떡이 너무도 예쁘게 보여 정말 먹기에 좋았다.
떡을 치는 안반(案盤:떡판)은 대부분 굵은 나무를 잘라다 깎아서 만드는데 대체로 길쭘하게 만들었고 떡메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지만 우리 집은 공이가 돌인데 구멍을 뚫어 자루를 끼웠었다.
나무공이로 치면 떵떵(짝짝)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지만 우리 집은 살짝 들었다 놔도 되니 조용~~
곡식의 껍질을 벗기는 방아는 디딜방아(살개방아)와 물레방아도 있지만 물방아도 있다.
디딜방아는 일명 살개방아, 발방아라고도 부르는데 곡식을 넣는 확(방아확)에 껍질이 있는 곡식을 넣고 발로 다리를 밟아 공이가 찧어 껍질을 벗기는 방식인데 보통 두사람이 다리를 밟아 찧고 한사람은 확 옆에 앉아 곡식을 뒤집는다.
디딜방아로는 곡식의 껍질을 벗기는데 사용할 뿐만 아니라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물레방아는 개천에 흐르는 물이 많으면 커다란 수차(水車)를 끊임없이 돌게 하여 그 축에 막대를 고정한 후 디딜방아에서 사람이 밟는 부분(다리)을 연속적으로 누르게 하니 방아확(공이가 찧는 부분)을 돌보는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
그런데 개천에 흐르는 물이 많지 않으면 물방아를 설치했는데 수차(水車)는 없고 디딜방아의 발을 밟는 부분을 옴팍하게 물통처럼 만들었는데 나무 홈통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물통에 채워지게 만들었다.
물통에 물이 그득 차면 물 무게로 쑥 내려가게 되는데 그러면 공이가 들리고 내려간 물통의 물이 쏟기며 가벼워지면 쑥 다시 위로 올라가 방아공이가 쿵 떨어지며 곡식을 찧게 된다. 그러니 부지하세월.....
다식(茶食)판은 밤, 대추, 송화(松花), 쌀, 깨 등을 가루로 만든 후 꿀과 엿 등으로 반죽하여 덩어리를 동그랗게 만든 후 다식판 구멍에 넣고 손으로 꼭꼭 누른 다음 윗판을 꾹 누르면 예쁜 모양새의 다식이 쏘옥 튀어나오는 한국 고유의 과자라고 해야 하나.... 이것도 아름다운 꽃문양이 찍혀 나오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다.
곡식을 빻아 가루로 만드는 절구는 나무나 돌, 요즘은 쇠로도 만들고, 찧는 절구공이도 나무, 돌, 쇠로 만든다.
절구는 방아형식이나 크기가 작다보니 사람들이 손으로 찧는다.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에서 토끼들이 절구질하는....
여자들 허리가 굵으면 ‘꼭 절구통 같네’, 남자들 거시기를 절구공이에 비유하기도... ㅎ
우리나라 옛 유행가요 물방아 도는 내력....
1953년에 발표된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이 부른 대중가요이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밖에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련다.
나도 즐겨 부르던 가요지만 말도 안 되는 가사이다.
길쌈을 매고 물방아가 돈다고? 길쌈은 여자들이 삼베를 짜기 위해 삼(麻)을 찢어 잇고 천을 짜는 것을 말하고, 개천에 설치하는 물레방아는 수차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은 물레방아지 물방아는 돌아가는 방아가 아니다. ㅎㅎ
나중 길쌈을 기심으로, 물방아를 물레방아로 가사가 바뀌기도 했는데 그렇게 바꾸니 문맥이 통한다.
'기심을 매다'는 강원도 방언으로 '김을 매다'. 즉 밭에 있는 잡초를 뽑는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