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난법관(暖法觀)
부처님께서 반직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마땅히 엄지발가락의 마디를 분명하게 관하여야 한다.
마음이 옮겨가지 않게 하고 발가락 마디 위에서 점차로 부르터 일어나게 하고, 또 종기[膖脹]가 나게 한다.
또 마땅히 뜻으로써 이 종기를 점차 크게 하여 콩알만하게 한다.
마땅히 뜻으로써 종기를 썩어 무너지게 하고, 가죽과 살을 헤쳐서 누런 고름이 흘러나오게 하고, 누런 고름 사이에서 피가 많이 흐르게[滂滂] 한다.
한 마디 위의 살갗이 썩어 다하고서 오른 발가락 마디의 희기가 흰 눈[珂雪]과 같음을 본다.
한 마디를 보기를 마치고서 오른 다리로부터 점차로 확대하여,
나아가 몸의 반이 종기가 나 썩어 무너지게 해서, 누런 피고름이 흘러 반신(半身)의 살과 가죽의 모두를 둘로 헤치니, 오직 반신의 뼈만이 빛나 매우 희다.
반신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온몸을 본다.
모두 종기가 나서 다 이미 썩어 무너져 피고름이니 싫어할 만하고, 모든 잡된 벌레가 그 속에 노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가 역시 앞에서와 같다.
하나를 보고 나서 다시 둘을 본다.
둘을 보고 나서 다시 셋을 본다.
셋을 보고 나서 다시 넷을 본다.
넷을 보고 나서 다시 다섯을 본다.
다섯을 보고 나서, 나아가 열을 본다.
열을 보고 나서 마음을 점차 확대하여 하나의 방안을 본다.
하나의 방안을 보고 나서, 나아가 하나의 천하(天下)를 본다.
하나의 천하를 보고 나서, 만약 넓으면 다시 거두어들여 돌이켜서 앞에서의 관과 같이 한다.
한 차례 관하기를 마치면, 또 마땅히 생각[想]을 옮겨 생각[念]을 집중하고 코끝을 분명하게 관해야 한다.
코끝을 관하기를 마치고서 마음이 분산(分散)되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분산되지 않으면 앞에서 뼈를 관함과 같이, 다시 마땅히 스스로 몸의 살과 가죽을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부모(父母)가 화합해서 부정한 정기(精氣)가 함께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몸이란 종자(種子)이니, 부정(不淨)하다.’
다음으로 또 마땅히 생각을 집중하여 치아[齒]를 관하여야 한다.
‘사람의 몸 가운데서 오직 이 이만이 희다. 나의 이 몸의 뼈도 치아와 같이 희다.’
마음과 생각이 날카롭기 때문에 치아가 길고 커져서 마치 신체와 같음을 본다.
이때 또 마땅히 생각을 옮겨서 다시 이마 위를 관해야 한다.
이마 위의 흰 뼈를 흰 눈과 같이 희게 한다.
만약 희어지지 않으면 마땅히 다시 역관(易觀)으로써 아홉 가지 생각[九想]을 지어야 한다. 자세히 설하면 아홉 가지 생각의 관법(九想觀法)과 같다.
이 관을 지을 때, 만약 근성(根性)이 둔한 자는 한 달이 지나고 90일에 이르도록 이 일을 분명히 관하고, 그런 뒤에 그 쪽을 본다.
만약 근성이 날카로운 자는 한 생각[念]에 곧 본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다시 허리 속의 큰 마디의 백골(白骨)을 관한다.
보기를 마치고서 곧 앞에서와 같이 마땅히 여러 가지 빛깔의 골인(骨人)을 관하여야 한다.
이 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땅히 다시 자심관(慈心觀)을 가르쳐야 한다.
자심관이란, 자세히 설하면 자삼매(慈三昧)와 같다.
자심(慈心)을 가르치기를 마치고서, 또 다시 백골을 관하게 한다.
만약 다른 일을 보아도 삼가 따라서 떨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만 이 마음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하여 백골인(白骨人)을 흰 눈의 산과 같이 보아라.
만약 다른 일을 보고서 마음을 일으키면, 없애기 위해 마땅히 이 생각을 해야 한다.
‘여래 세존께서는 나에게 뼈를 관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어찌하여 다른 생각의 경계(境界)가 있겠는가?
나는 지금 마땅히 일심으로 뼈를 관해야 한다.’
백골을 보기를 마치고서,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여 모든 바깥 생각[外想]이 없으면 널리 삼천대천세계 안에 가득한 골인(骨人)을 본다.
이 골인을 보기를 마치고서, 하나하나 모두 없애기를 앞에서 괴로움을 관함과 같이 한다.”
이때 반직가 비구는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설하시는 것을 듣고서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관하여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하고 분명하게 하여, 때를 응하여 곧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얻고, 3명 6통과 8해탈(解脫)을 갖추고, 스스로 전생[宿命]을 생각하여 익힌 3장(藏)을 분명하게 하고 또한 그르침이 없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이 어리석고 교만한[貢高] 반직가 비구로 인해서 이 청정관(淸淨觀)의 백골법(白骨法)을 제정하시고, 부처님께서는 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이 반직가와 같이 어리석은 비구도 오히려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아라한을 이룬다. 하물며 어찌 지혜로운 자가 선(禪)을 닦지 않겠는가?”
이때 세존께서는 이 일을 보시고 나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선(禪)은 감로(甘露)의 법이며
정심(定心)으로써 모든 악을 없앤다.
지혜는 모든 어리석음을 없애고
길이 후유(後有 : 後生)를 받지 않는다.
어리석은 반직가(槃直迦)까지도
오히려 정심(定心)을 얻거늘
어찌 하물며 지혜로운 자가
생각을 집중하는 수행을 부지런히 하지 않겠는가?
이때 세존께서는 가전연에게 말씀하시고, 아난에게 명하셨다.
“너는 지금 마땅히 부처님의 말을 받아 지니어 이 묘법(妙法)으로써 널리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만약 후세의 어리석은 중생과 교만하고 스스로 높이는 사악(邪惡)한 중생으로서 좌선을 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처음 가치라난타(迦絺羅難陀)의 관법(觀法)으로부터 선난제(禪難提)의 관상법(觀像法)에 이르고, 또 마땅히 이 반직가 비구가 관한 법을 배워야 하다.
그런 뒤에 스스로 자기의 몸을 관하고 모든 백골을 보면 흰 눈[珂雪]과 같이 희다.
그때 골인은 다시 와서 몸으로 들어가고 모두 백골의 흐르는 빛이 흩어져 없어짐을 본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면, 행자는 자연히 마음과 뜻이 화평하여 기쁘고, 편안하고 고요하여 무위(無爲)하다.
정(定)에서 나올 때, 정수리 위는 따뜻하고 몸의 털구멍 속으로부터는 항상 여러 가지 향을 낸다.
정에서 나오거나 정에 들어도 항상 묘법(妙法)을 듣고, 이어서 또 스스로 보면 신체가 따뜻하며, 기쁘고 즐거워 쾌락하고, 얼굴의 모양이 빛나고 화평하며, 항상 적게 자고 몸에 괴로움과 병이 없다.
이 난법(暖法)을 얻으면, 항상 스스로 깨달아 알아, 마음을 낮추고 따뜻하며 마음이 항상 안락하다.
만약 후세 사람이 선을 배우고자 하면, 처음 부정(不淨)으로부터, 나아가 이 법에 이른다.
이 관을 얻는 것을 화난법(和暖法)이라고 이름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부처가 멸도(滅度)한 뒤,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로서 흐린 세간 가운데서 정수(正受)의 사유(思惟)를 배우고자 하는 자는 처음 생각을 집중하여 부정(不淨)을 관하는 것으로부터, 나아가 이 법에 이른다.
이것을 난법(暖法)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이 법을 얻으면 ‘스물한 번째 난법관(暖法觀)이 끝났다’고 이름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가전연이 물은 난법을 지니고 삼가 잃어버리지 말아라.”
이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후세(後世)의 중생으로 만약 이 삼매를 능히 받아 지니는 자가 있어 일심으로 안은(安隱)하여 난법을 얻으면, 이 사람은 어떻게 마땅히 스스로 깨달아 압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모든 번뇌[結使]의 상(相)을 분명히 관하여 처음 부정(不淨)으로부터 나아가 이 법에 이르면,
스스로 몸과 마음이 모두 다 따뜻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상속하여 모든 괴로움과 성냄이 없고,
얼굴의 빛이 화평하고 빛남을 깨닫는다.
이를 난법이라고 이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