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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장현종론 제12권
4. 변연기품(辯緣起品)①
4.1. 유정세간과 기세간[1]
1) 3계(界)
이미 3계(界)에 의거하여 마음 등을 획득하는 제법(諸法)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았으니,
① 총설
이제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3계란 무엇이며, 거기에는 각기 몇 가지의 처소의 차별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지옥과 방생(傍生)과 아귀와
인간, 그리고 6욕천(欲天)을
욕계의 20처(處)라고 이름하니
지옥과 주(洲)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계 위의 16처를
색계라 이름하니, 그 중
초정려에 2처, 제2ㆍ제3 정려에 3처
제4정려에는 8처가 있다.72)
무색계에는 방처(方處)가 없지만
생(生)에 따라 네 종류가 있는데
중동분과 아울러 명근에 의해
마음 등이 상속하게 된다.
② 욕계(欲界)
논하여 말하겠다.
나락가(那落迦,naraka,지옥을 말함) 등 아래의 4취(趣) 전부와 천(天)의 일부 권속, 중유(中有), 그리고 기세간(器世間)을 총칭하여 욕계(欲界)라고 한다.
여기서 ‘천의 일부’란 바로 6욕천(欲天)을 말하니,
첫 번째가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이며,73) 두 번째가 삼십삼천(三十三天)이며,74) 세 번째가 야마천(夜摩天,Yāmadeva)이며, 네 번째가 도사다천(都史多天,Tuṣitadeva)이며, 다섯 번째가 낙변화천(樂變化天)이며, 여섯 번째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이와 같이 욕계에는 지옥취 등과 아울러 기세간에 모두 10처(處)가 있는데,75) 지옥과 주(洲)에 차이가 있어 20처로 나누어진다.
즉 지옥에 차이가 있다고 함은 8대지옥을 말하는 것으로,
첫 번째는 등활지옥(等活地獄)이며, 두 번째는 흑승지옥(黑繩地獄)이며, 세 번째는 중합지옥(衆合地獄)이며, 네 번째는 호규지옥(號叫地獄)이며, 다섯 번째는 대규지옥(大叫地獄)이며, 여섯 번째는 염열지옥(炎熱地獄)이며, 일곱 번째는 대열지옥(大熱地獄)이며, 여덟 번째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다.
주(洲)에 차이가 있다고 함은 이를테면 4대주(大洲)를 말하는데,
첫 번째가 남섬부주(南贍部洲, Jambudvīpa)이며, 두 번째가 동승신주(東勝身洲, Purvavideha)이며, 세 번째가 서우화주(西牛貨洲, Avaragodānīya)이며, 네 번째가 북구로주(北俱盧洲, Uttarakuru)이다.
즉 이와 같은 12처와 아울러 6욕천과 방생과 아귀의 처소로써 20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약 유정계(有情界)일 경우 타화자재천으로부터 무간지옥에 이르기까지, 기세계(器世界)간 경우 [타화자재천으로부터] 나아가 풍륜(風輪)에 이르기까지 모두 욕계에 포섭된다.76)
욕계와 아울러 그 처소의 동일하지 않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③ 색계(色界)
이러한 욕계 위에는 16처가 있다.
즉 초정려에는 오로지 2처가 있고, 제2ㆍ제3정려에는 각기 3처가 있으며, 제4정려에만 유독 8처가 있는데, 그러한 기세간과 그곳에 머무는 유정을 총칭하여 색계라고 이름한다.
제1정려처에 2처가 있다고 함은,
첫 번째가 범중천(梵衆天)이며, 두 번째가 범보천(梵輔天)이다.
제2정려처에 3처가 있다고 함은,
첫 번째가 소광천(少光天)이며, 두 번째가 무량광천(無量光天)이며, 세 번째가 극광정천(極光淨天)이다.
제3정려처에 3처가 있다고 함은,
첫 번째가 소정천(少淨天)이며, 두 번째가 무량정천(無量淨天)이며, 세 번째가 변정천(遍淨天)이다
제4정려처에 8처가 있다고 함은,
첫 번째가 무운천(無雲天)이며, 두 번째가 복생천(福生天)이며, 세 번째가 광과천(廣果天)인데, 여기에 5정거처(淨居處)를 합하여 여덟 곳이 된다.
여기서 5정거천이라고 함은,
첫 번째가 무번천(無繁天)이며, 두 번째가 무열천(無熱天)이며, 세 번째가 선현천(善現天)이며, 네 번째가 선견천(善見天)이며, 다섯 번째가 색구경천(色究竟天)이다.77)
바로 이러한 16처의 온갖 기세간과 [거기에 머무는] 온갖 유정을 모두 ‘색계’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대범천(大梵天)과 무상천(無想天)은 수명의 길이[壽量] 등이 수승한데,78) 어떠한 이유에서 별도로 건립하지 않은 것인가?79)
마땅히 별도로 건립해서는 안 될 것이니, 대범은 한 명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하늘의 처소의 명칭은 동분(同分)에 의해 설정되는 것으로, 한 명의 범왕(梵王)에 대해 동분을 말할 수 없다.
비록 수명의 길이 등이 다른 천과 동일하지 않을지라도 하나의 소의신 만으로는 동분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범보천과 합하여 하나의 하늘로 설정해야 하는 것으로, 높고 낮음은 비록 다를지라도 지(地)에는 차별이 없는 것이다.
[또한] 무상유정천은 그러한 광과천과 수명의 길이나 신체의 크기가 동등하여 어떠한 차별도 없기 때문에, 또한 역시 원인을 달리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무상천을 제4정려의] 네 번째 처소로 설정할 수 없는 것이다.
④ 무색계(無色界)
무색계 중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방처(方處)가 존재하지 않으니, 무색의 법이나 과거ㆍ미래법, 무표색이 다 방소(方所,즉 구체적인 공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상 결정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숙생의 승열(勝劣)의 차별에 따라 네 종류가 있다고 설한 것으로,
첫 번째가 공무변처(空無邊處)이며, 두 번째가 식무변처(識無邊處)이며, 세 번째가 무소유처(無所有處)이며, 네 번째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이다.
이와 같은 네 종류를 무색계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네 종류는] 방소에 의한 [상하의 차별이] 아니라 [이숙]생에 의한 승열의 차별로서, 이러한 처소(욕ㆍ색계)에서 그러한 선정(무색정)을 획득한 자는 명종(命終)하면 바로 이러한 처소(욕ㆍ색계)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으로부터 몰하여 욕ㆍ색계에 태어날 때도 바로 이러한 처소에서 중유(中有)가 일어나기 때문이다.80)
그리고 [무색계의 4처가 이와 같은 순서로 설정된 것은] 점차로 이욕(離欲)하고, 점차로 그러한 선정을 획득함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숙]생의 순서가 이와 같은 것으로, 생인(生因)의 힘에 따라 과보가 적거나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색계에서 생을 받은 유정의 마음 등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상속하는 것인가?
어떠한 이유에서 여기서 갑자기 이에 대한 의심을 다시 낳게 된 것인가?
제법(諸法) 중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자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심ㆍ심소법은 욕계나 색계에서는 색신(色身)에 의탁하여야 상속 전전(展轉)할 수 있다.
그러나 무색계에서는 이미 색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마음 등은 마땅히 상속 전전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도 근거가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본송에서] 이같이 ‘중동분과 아울러 명근에 의해 마음 등이 상속하게 된다’는 설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아울러’라고 하는 말은 그 밖의 다른 불상응행법도 포섭한다는 말이니, 이를테면 득(得)ㆍ비득(非得)이나 이생성(異生性)의 생(生) 등이 바로 그것이다. 즉 [동분 등은] 법이 일어나는데 의지하는 바[所賴]이기 때문에 ‘근거[依]’라고 말한 것으로, 마음 등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그것에 의탁하기 때문이다.
[가령] 안(眼) 등의 네 식(識)은 각기 모두 무간에 멸한 의근과 아울러 자신의 색근(色根, 이를테면 안 등의 근)을 그것의 소의(所依)로 삼고 아울러 근거(依性)로 삼는데, 자신의 색근의 소의인 대종과, 신근과 대종ㆍ동분ㆍ명근ㆍ‘득’ 등과 ‘생’ 등은 단지 근거가 될 뿐이다.
신식(身識)은 바로 [무간에 멸한] 의근과 아울러 [자신의 색근인] 신근을 그것의 소의로 삼고 아울러 근거로 삼는데, 신근의 소의인 대종과 동분ㆍ명근ㆍ‘득’ 등과 ‘생’ 등은 그것의 근거가 될 뿐 소의는 되지 않는다.
또한 의식(意識)은 단지 무간에 멸한 의근을 그것의 소의로 삼고 아울러 근거로 삼는데, 신근과 대종, 동분ㆍ명근ㆍ‘득’ 등과 ‘생’ 등은 다만 근거가 될 뿐이다.
이와 같이 욕계와 색계의 유정의 마음 등은 색근과 동분ㆍ명근 등에 근거하여 상속하지만,
무색계의 유정에게는 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만 동분과 명근 등에 근거하여 마음 등이 상속하는 것으로, [상속의]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81)
[여기서] 근거[依]와 소의(所依)의 두 가지 상(相)의 차별은 [이와 같다].
요컨대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이 비로소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때, 이를 바로 ‘근거’의 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정코 그러한 상을 갖고 아울러 [그에] 따라 전변[隨變]하는 것을 바로 ‘근거로 삼고 아울러 소의로 삼는 것’의 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러한 법(색근과 동분 등의 법)이 마음 등의 근거가 된다고 할지라도 혹 어느 때 마음 등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것(마음)이 별도의 다른 법에 의해 장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등이 일어나는 상태[轉位]에서는 반드시 그러한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마음 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바로 관찰하더라도 마음 등은 사멸한 몸 안에서는 필경 생겨나지 않는다. 살아있는 몸 중에서 비록 잠시 멸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결정코 마땅히 [다시]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한 색[근] 등이 [마음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極成]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색ㆍ성ㆍ향 등[의 경계대상]은 능히 심ㆍ심소에 근거[依]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니, 외계 사물 중에 색ㆍ성 등이 존재하였을지라도 심ㆍ심소는 일찍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 등이 무간에 멸한 의근에 따라 결정코 전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소의로 삼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82)
대저 ‘따라 전변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다른 것으로] 바뀌게[改易] 하는 것을 말한다. 곧 전 찰나의 의근이 멸함에 따라 후 찰나의 마음 등이 생겨나게 된 것인데 어찌 소의가 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동분 등은 마음 등의 근거가 될 뿐으로, 안 등의 근이나 무간에 멸한 의근(즉 소의)과 같은 것이 아니니, 따라서 소의(所依)와 근거[依]는 그 상이 다른 것이다.
이처럼 욕ㆍ색계의 모든 유정의 마음은 4온(蘊)과 구생하여 그 모두를 근거[依性]로 삼지만,83) 오로지 색온 한 가지만은 소의가 될 수 있다.
비록 술[酒]등에 의해 어지럽혀질 때 마음이 전변할지라도 의식은 색을 소의로 삼는 일이 없다.84) 대저 소의를 성취하는 것은 결정코 능히 변화(전변)를 낳지만, 의식은 결정코 색에 따라 변화하지 않으니, 색이 존재하지 않을 때라도 마음은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색은 의식의] 근거[依]만이 될 수 있을 뿐 소의는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6식은 욕ㆍ색계 중에서 4온을 구생하는 근거로 삼지만,
무색계의 의식은 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과 구생하는 근거는 오로지 3온과 통할 뿐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째서 다만 무색계의 마음 등은 동분과 명근(즉 행온)을 근거로 한다고 말한 것인가?
이같이 말한 것은, 결정코 동일하며 잡란됨[亂]이 없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심ㆍ심소는 비록 서로에 대해 근거가 될지라도 결정코 동일한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니, 스스로의 근거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잡란됨도 없지 않으니, 이러한 지(地,무색계)에 생겨나 존재하는 경우 자지(自地)와 타지의 심ㆍ심소를 어지럽게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분과 명근은 마음 등의 동일한 근거이다.85)
또한 이러한 지에 생겨나면 오로지 이러한 지[의 동분]만 되기 때문에, 이에 근거하여 설혹 동일하지 않은 지의 마음을 일으킬지라도 이것에 의해 다시 자지의 마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이러한 두 가지(동분과 명근)에 근거하여서만 이러한 지의 ‘생’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생을 견인하는 업[牽引業, 즉 引業]은 단절됨[間斷]이 없기 때문이다.86)
바로 이 같은 사실로 말미암아[동분과 명근을] 동일하며 잡란됨이 없는 근거라고 말하였던 것이지만, 마음 등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생략하고서 설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이러한 두 가지(동분과 명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밖의 다른 지의 4온이 현재전할 때, 그때의 유정은 마땅히 다른 지의 유정이라 이름하고 이러한 지(무색계)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니, 자지의 선행된 업에 의해 견인된 과보가 상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땅히 [그러함을]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알아야 한다.
예컨대 욕ㆍ색계의 경우 색신과 동분과 명근을 마음 등의 근거[依]로 삼아 혹 어떤 때 다른 지의 마음을 일으킬지라도 그 후 마땅히 색신 등에 근거하여 이러한 [욕ㆍ색계의] 생 중에서 결정코 자지의 마음을 견인하여 일으키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무색계에 있어서도 비록 색신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마음 등은 결정코 동분과 명근에 근거하기 때문에 본송에서 동분과 명근에 치우쳐 설하게 되었으니, 이는 바로 견인업(牽引業)의 이숙이기 때문으로, 그 밖의 다른 이숙의 상속이 머무는 근거[因]가 된다.
비유하자면 나무의 뿌리는 줄기 등의 근거[依]로서 머무는 것과 같다.
지금 바로 관찰하건대, 나무의 잎, 가지, 줄기 등의 모든 것은 비록 동일한 씨앗에서 생겨났을지라도 뿌리에 근거하여 머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안근 등은 오로지 업에 근거하여 머무는 것으로, 별도의 근거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무색계에 생겨나는 업생(業生)의 마음 등도 반드시 별도의 원인에 근거하여 [상속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해석하였다.
그래서 본론(本論) 중에서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수’ 등을 근거로 하는 것으로, 바로 이러한 원인의 득과 비득 등에 의한 것이다”와 같은 내용을 설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본송에서의] ‘아울러’라고 하는 말은, 전체적으로 [불상응행법 중] 다른 명칭은 설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니,
이를테면 그것들(동분과 명근 이외의 불상응행법)은 오로지 업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설혹 업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 할지라도 항상 상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에 따라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식의 연[識緣]이라고 말하지만, 수 등이 식의 근거[依性]가 된다고는 설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법이 마음 등의 근거가 된다는 것인가?
이를테면 그러한 법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지(自地)의 마음 등은 필시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니, 마치 [욕ㆍ색계에서의] 색신 등과 같은 것이다.
혹은 그것은 바로 잡란됨[亂]이 없는 원인이기 때문으로, 상지에 태어나면 하지의 선(善)을 성취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법으로는] 다른 지의 이생성 등을 성취하는 일이 없기 때문으로, [무색계에서] 그러한 법을 근거로 하여 [마음 등이 상속한다는] 이치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여사(有餘師)는 말하였다.
“예컨대 굴이나 구덩이[坑塹] 등과 같은 곳에서는 비록 바람 등이 없을지라도 등불이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만약 그러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른 장애하는 것이 없을지라도] 마음 등은 일어나지 않으니, 따라서 마음 등은 그러한 법을 근거로 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혹은 어떤 문인(門人)은 [‘무색계에서의 마음의 상속에는 별도의 근거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이같이 따져 말하였다.
“불상응행법은 마땅히 색신과 마찬가지로 역시 능히 의식 등을 낳는데 근거가 되기 때문에 [무색계에서는] 단지 불상응행법만이 마음 등의 근거가 된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무색계에서 구생(俱生)하는 4온도 서로의 근거가 된다는 뜻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 마음(즉 식온)은 ‘수’ 등에 대해 소의성이 되지만, 그러한 ‘수’ 등은 마음에 대해 소의가 되지 않으니, [마음은 그것에] 따라 작용[隨行]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마음이 경계대상의 상을 전체적으로 요별할 때, ‘수’ 등은 비로소 능히 차별의 상(이를테면 領納 등)을 취하기 때문에 그것은 마음에 수반될지라도 마음은 그것에 수반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심ㆍ심소를 ‘서로가 서로를 따르고[互相隨], 서로에 따라 일어나는 것[互隨轉]’이라고 말한 것은, 그것들이 동일한 결과[同一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욕계와 색계 중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동분과 명근)를 근거로 하여 마음이 상속한다고 설하지 않고, 다만 그것은 색신에 근거하여 [상속한다고] 설하는 것인가?
욕계와 색계 중에서는 비록 색신과 동분 등이 항상 상속하여 그 모두가 능히 [마음이 상속하는데] 근거가 될지라도 색신은 거칠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색신에] 치우쳐 설하게 된 것이다.
혹은 동분과 명근은 색신을 떠나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성립시키기 위해 그렇게 설한 것이지만, 무색계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87)
혹은 그 밖의 다른 지(地,욕ㆍ색계)에서는 업에 의해 생겨난 마음 등이 항상 현전하기 때문에, 혹은 동분과 명근 등도 역시 색신에 근거하여 일어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설한 것이다. 비록 그것(동분 등)과 색신이 서로에 의지(依止)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색신이 수승하기 때문에 그것만을 [마음 등이 상속하는데] 근거가 되는 것이라고 설한 것이다.88)
명근은 색신의 근거가 되는 것이니, 이 역시 어찌 수승한 것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명근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근(身根) 등의 법도 모두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명근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러한 [신근 등의] 법은 모두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색신이 많은 재앙과 횡액 등의 연(緣)을 만나게 될 경우 명근 등도 역시 색신에 따라 손상되고 이익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색신은 그것에 비해 [마음의] 근거가 된다는 뜻이 수승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뜻에 따라 대법(對法)의 여러 논사들은
“무색계 중에서는 색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동분과 명근 등은 서로가 서로의 근거가 된다”고 설하였던 것이다.89)
⑤ 3계의 명의(名義)
이를테면 본론(本論)에서는 설하기를
“무엇을 일컬어 욕계라고 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제법으로서 욕탐(欲貪)에 의해 수증(隨增)된 것을 말한다. 색ㆍ무색계의 경우 역시 이와 같다”고 하였다.90)
이는 곧 3계에 현행하는 제법은 다 그러한 계(界)에 계속(繫屬)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 이같이 설한 것이다.91)
비록 온갖 번뇌가 다 수증(隨增)할지라도 대개의 경우 탐수면이 현행하기 때문에 하나[의 번뇌]에 치우쳐 [3계의 차별을] 설하게 되었다.
여기서 욕탐이라고 말한 것은 욕계의 탐을 말하며, 색ㆍ무색탐도 역시 또한 그러하다.
곧 ‘욕’에 계속(繫屬)된 세계를 설하여 ‘욕계’라고 이름한 것으로, 상 2계의 명칭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욕탐의 세계[欲之界]를 일컬어 욕계라고 하니, 이러한 세계는 능히 욕탐을 임지(任持)하기 때문이다. 색계와 무색계의 경우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만약 색은 존재하지만 선정[定]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면, 이를 욕계라고 이름한다.
그러나 만약 색도 존재하고 선정도 존재하는 세계라면 이를 색계라고 이름하며,
만약 색은 존재하지 않지만 선정은 존재하는 세계라면 이를 바로 무색계라고 한다.
⑥ 3계의 수량
3계는 단일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다수가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3계는 무변(無邊)이니, 마치 허공의 크기와도 같기 때문이다.
비록 [처음으로 태어나는] 시기(始起)의 유정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부처님들이 세간에 출현하여 각기 무수한 유정을 교화 제도하여 무여(無餘)의 반열반계(般涅槃界)을 증득하게 하였으니,92) [3계의] 무궁무진함은 마치 허공과도 같은 것이다.
⑦ 3계의 존재형태
[만약 3계가 무변이라고 한다면] 세계는 마땅히 어떠한 형태로 안주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마땅히 옆으로 퍼져[傍] 안주하는 형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계경에서는
“비유하자면 수레바퀴만 한 하늘의 빗방울이 무간(無間)에 끊임없이 허공으로부터 아래로 쏟아 퍼붓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동방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세계가 무간에 끊임없이 멸하기도 하고 혹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동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남ㆍ서ㆍ북방도 역시 또한 이와 같다”고 만 말하였을 뿐,
상하로 그렇게 된다고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역시 상하 두 방향으로도 존재하니, 다른 부파가 전승한 경에서는 ‘시방(十方)으로 [퍼져 안주한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색구경천 위에도 다시 욕계가 존재하며, 욕계 아래에도 색구경천이 존재하니, 이렇듯 세계는 끝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93)
그리고 만약 어떤 하나의 3계의 탐을 떠날 때면, 모든 3계의 탐도 모두 멸하여 떠나지 않은 것이 없다.94)
그러나 초정려에 의해 신통의 지혜[通慧]를 일으킬 때 생겨난 신통은 다만 그 자신이 생겨난 세계와 범세(梵世)에만 미칠 수 있고, 다른 세계에는 미칠 수 없다.
그 밖의 [다른 정려에 의한] 신통의 지혜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경계대상에 대해 크나큰 과실을 갖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3계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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