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본행경 제5권
25. 항상품(降象品)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에 나아가서
중생들에게 복을 행하자 땅이 크게 움직여
부처님의 여러 가지 상서가 기이하게도
성에 들어갈 때 나타났었네.
조달(調達)은 해칠 마음을 품고
부처님께서 성(城)에 들자 상서가 나타남을 깨닫고
질투를 느껴 급히 아사세왕(阿闍世王)에게 가서
속임수로 꾀어 반역을 시키되
“그대는 부왕의 위를 뺏고 나는 부처를 죽이리니
둘이 함께 비추기를 마치 해와 달과 같이 하리라.”
부왕에게 거짓말로 독약을 먹이고
코끼리에게 진한 술[醇酒]을 먹이니
코끼리는 술에 취해 미친 듯하며
울부짖음은 우레 소리 같았네.
곧 취한 코끼리를 놓아서
부처님 앞으로 달아나게 하니
비유컨대 폭풍이 휘몰아쳐
부처의 등불을 끄려 함과 같았네.
마치 겁(劫)이 다할 때의 바람이
일체 세간을 파괴시킴과 같고
날램이 금시조(金翅鳥) 같고
성냄이 염라대왕과 같았으나
부처님 마음은 굳건해 기울지 않고
취한 코끼리에 요동치 않아
마치 마라산(摩羅山)이
바닷바람에 움직이지 않음 같았네.
코끼리는 달리어 부처님 앞에 이르자
곧 발을 굽히고 부처님 발에 절하고
마음을 조복해 땅에 붙이니
티끌이 소나기를 만난 듯하였네.
붉게 타는 노을 가운데서
햇빛이 더욱 빛나고 밝듯
밝게 빛남이 흐르는 별이
검은 산마루에 떨어짐과 같았네.
가사(袈裟) 구름 가운데서
오른팔에 광명을 놓으시자
밝게 빛나 큰 코끼리를 비추어
햇빛이 검은 산에 솟음과 같았네.
덕상(德相)이 원만한 손으로 코끼리를 어루만지니
그 코끼리는 곧 취함에서 깨어나
마치 횃불이 밝게 빛나듯이
어두움이 물러나고 걷히듯 하였네.
코끼리는 갑자기 술이 깨어서
뜻에 곧 안정함을 얻었네.
마치 신선의 주문(呪文)을
독사에게 대자 독이 풀리듯
코끼리는 즉시 굴복하고서
스스로 부처님 발아래 귀의하니
부처님께서는 다시 광명을 나타내시어
해가 산마루에 떠오름 같았네.
이렇게 취한 코끼리를 교화시켜
착한 종자를 심게 하여
코끼리를 제도한 뒤에
곧 정사(精舍)로 돌아가셨네.
그때 왕사성 가운데
한 귀족의 아들이 있으니
어려서부터 성품이 유순하며
총명하고 재주도 민첩하였네.
돈독히 믿어 온갖 착함을 행하여
계율과 법을 사랑하고 공경해
부처님을 존중히 스승으로 섬기니
그의 이름을 고도(高度)라 불렀네.
조달은 그에게 찾아가서
온갖 아름다운 말로 꾀되
“내가 가르치는 대로 들으면
반드시 두터이 서로 대우하여서
높은 벼슬자리에 앉게 되고
영화와 복록이 더욱 더할 것이요,
만약 나를 잘 따르는 사람이면
마침내 뒤에는 왕이 되리라.”
그러나 어진 선비 고도는
조달의 삿된 말을 듣자
곧 바른 법의 말로서
조달에게 대답하였네.
“내가 섬기는 스승의 덕을
찬탄하리니 자세히 들어라.”
즉시 그 몸을 돌이켜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향하여
꿇어앉아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굽혀 예를 짓고 나서
고도는 찬탄해 말하였네.
“이미 끝없고 한량없이 온갖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시고
10력으로 모든 중생들을
건져내어 제도하시기 게으름 없네.
낮과 밤으로 쉬지 않으시고
중생들을 인도해 착한 근본을 세우니
내 귀의하고 스승으로 섬김은
오직 부처님 한 분뿐이네.
나는 그 밖의 스승을 섬기지 않으며
나머지는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네.
그러므로 다른 수작이 필요치 않으니
그대는 마땅히 옳음을 깨달아라.”
그러나 흉악한 조달은
마음에 매우 성이 나서
손을 휘어 주먹을 쥐고
머리를 숙이고 돌아갔다네.
아사세왕에게 아첨하는 말로
고도(高度) 어진 이를 참소해 몰아치니
왕은 흉악하게 해칠 마음으로
그 좌우 신하에게 명령하였네.
그는 자기의 보배 영락
수천금의 값진 것을 주면서
“경은 홀로 그윽한 비밀리에
이 보배 영락을 가지고
고도의 집안에 내던지되
삼가 아무도 모르게 하여라.”
그 신하는 그날 밤에 가서
왕의 명령대로 시행하였네.
고도의 사람이 일찍 일어나
그 보배 영락(瓔珞)을 주워
곧 그 아내에게 주자
그는 이것을 얻고 매우 기뻐했네.
사람을 시켜 남편을 불러
그 보배 영락을 보이자
고도는 그 영락을 보고 나서
매우 두려워 길게 탄식하였네.
곧 신선하고 청량한 말로써
그 아내에게 일러 말하였네.
“이것은 독한 마음을 품고서
악함을 사람에게 베풂이 아니냐.
조달이 방편을 베풀어서
나를 없애 버리려 하여
지난밤에 보배 영락을
우리 집 가운데 던진 것이 아닌가.”
그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관리들이 그의 문전에 이르러
곧 그 보배 영락을 가지고
고도의 목에 걸어 두고는
즉시 아사세왕에게 아뢰되
“영락이 고도의 집에서 나왔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옛 법률로 다스리려 하였네.
형리(刑吏)들이 악심을 품었으니
마치 태산의 사자(使者)같이
붉은 눈에 병기들을 든 것이
지옥의 옥졸 같은 형상이네.
모두 검고 흰 옷을 입었는데
그 몸에는 피 칠을 하였는데
머리에 붉은 투구를 쓰고
사형장으로 끌고 갔다네.
북을 치되 우레 소리 같고
고동 소리 진동하면서
방울을 그 상투에 달고
낙타를 타고 성에서 나왔네.
형장에 이르자 그에게 먹을 것을 주니
죽음을 재촉하는 사약이었네.
그때 조달은 사람을 보내어
그 집안 사람에 일러 말하였네.
“스스로 나에게 와서 귀의하면
당장 구제하여 살아나게 하리라.”
일가친척들이 에워싸고
소리를 내어 통곡하였네.
소리가 전해 멀리 퍼져 들리되
고도에게 사형을 집행하라고
한량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메아리 소리는 온 성을 흔들었네.
부처님께서는 지혜의 뜰에서 거니시며
대자(大慈)의 속에 머무르시고
대비의 큰 길을 밟고 행하여
낯이나 밤이나 모든 중생들이
5도 가운데 미혹하여서
길을 잃고 냇물에 빠짐을 건지시기를
소가 그 새끼를 사랑하여
어린 송아지를 살림과 같았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이르셨네.
“너는 왕사성에 들어가서
두루 거리와 마을마다 명령해
큰 소리로 이 게송을 읊어라.
오늘 여기 고도란 사람이
집에서 나와 옥에 굳게 얽매었으나
제일가는 사문이 그를 위해
감로의 약물을 마시게 하리라고.”
그때 어떤 바라문이
아난의 명령을 듣고 나서
다시 그 무리들에게 말하되
“이 어찌된 망령된 말인가.”
그 바라문 가운데 통달한 사람이
그 말소리에 응하여 대답하였네.
“불은 물로 변하고
감로는 독이 되며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은
그 본체의 성질을 버리게 할지라도
부처님의 명령하는 말은
언제나 어긋나고 다름이 없다네.”
그때 고도의 아들은
어린것이 불쌍하게도
그 아버지 목을 안고
통곡하여 그칠 줄 모르네.
“아버님은 어여삐 여겨
원컨대 스스로 호랑(虎狼)에게 귀의하오.
중생들이 귀하고 중히 하는
사람의 목숨은 얻기 어려움이오.
만약 관리들이 죽임을 본다면
아버지의 형벌을 대신하리니
스스로 돌아가 흉악한
조달에게 의지함만 못하오.”
그러나 고도의 뜻은 굳세어
그 아들에게 일러 말하였네.
“차라리 이 목숨을 버릴지라도
언제까지고 부처님을 떠나지 않으리라.”
그 아내도 분주히 와서
머리를 흩고 슬피 울므로
피눈물이 섞여 흘러내려
가슴과 의상을 적셨다네.
갖가지로 슬피 탄식하되
“인자한 나의 남편이여,
손을 씻고 몸을 서로 받았거니
어떻게 살아서 이별하리까.
지난날 언약하기를
서로 떠나지 않는다 했거니
지금 잠시 악함을 만남은
마치 나그네의 신세와 같소.
어찌해 나와 자식 하나를
불쌍히 돌보지 않으려 하오.
원컨대 미천한 이 몸과
고독한 자식을 불쌍히 여겨
겉으로는 조달의
명령대로 의지하는 척하여 목숨을 건지고
속정으로 부지런히 지극한 마음으로
가만히 부처님을 스승으로 섬기소서.”
고도는 한참 있다가 입을 열어
그 아내에게 대답해 말하였네.
“다시 지금 내 마음의
경건함을 말하리니 들어라.
삼천대천세계 모든 중생은
가장 높은 이를 믿고 의지할 뿐이라
내 이미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했거니
어찌 몸이 죽은들 아까우랴.
내 이미 스스로 부처님의
온갖 보배 수미산을 의지했거니
어찌 능히 못난 데 돌아가서
더러운 거름 더미를 의지하랴.
내 이미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해
해와 달빛을 우러러보거든
어떻게 도리어 이것을 버리고
반딧불 빛을 의지할 것인가.
내 이미 스스로 부처님의
금시조(金翅鳥)왕에게 귀의했거니
어찌해 이것을 내어 버리고
까마귀 새끼에게 귀의하랴.
내 본래 맹세하고 원을 세움은
큰 바닷물을 마심이었거늘
지금 이 소 발자국 물로
어찌 내 목마름을 축이랴.
내 이제 스스로 부처님의
모든 법의 덕상이 좋은 데 귀의했거니
어떻게 해서 더럽고 못나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아가랴.”
그 아내는 남편에게 일렀네.
“다만 목숨만 건져 가지고
당신은 조달에게 오직
옛 친구처럼 좇음이 좋겠소.”
고도는 그 아내에게 일렀네.
“차라리 온갖 악해를 만나
비수와 독사ㆍ구렁이ㆍ이무기나
원수의 불에 서로 탈지라도
이는 방편을 베풀어
지혜의 좋은 약으로 제할 것이나
마침내 나쁜 벗을 사귀어
더러운 때[垢]와 가까이 않으리.
나쁜 벗과 서로 물듦은
사람의 착한 근본의 뜻을 깨는 것이라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시기를 무간지옥에
이를지라도 좇지 말라 하셨다네.”
형리들은 고도를 끌고
숲 속 무덤 사이에 이르렀네.
곧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서
부처님의 은근한 금계를 지켰네.
옥졸이 문득 칼을 빼어서
고도에게 형을 가하려 했으나
날카로운 칼로도 능히
고도의 몸을 다칠 수 없었네.
곧 다시 아사세왕에게 아뢰되
“날카로운 칼로서는 능히
고도의 몸을 벨 수 없사오니
다시 어떤 형으로 진행하오리까?”
조달은 의논에 따라 말하였네.
“산 채로 창으로 꿰고
튼튼한 가죽으로 얽어매어
길옆에 매어 달아 두라.”
명령대로 꿰려고 하자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네.
부처님께서는 금시조와 같이
펄쩍 날아 무덤 사이에 이르렀네.
부처님께서는 여덟 가지 목소리로써
어진 선비 고도에게 이르셨네.
“내 이제 너의 이와 같은
고역을 건져 주리라.”
모든 부처님의 자애롭고
청정한 감로의 법을
차례로 고도를 위하여
4성제(聖諦)를 펴셨네.
그러자 고도는 듣는 대로
아라한과를 성취하고서
즉시 여섯 가지 신통으로써
몸을 가벼이 허공에 솟아올라
아사세왕 앞에 이르러
허공 가운데 있으면서
갖가지 신통 변화를 나타내니
대중들은 보지 않은 이가 없었네.
왕을 위해 묘한 법을 설하여
왕에게 이것을 깨달아 알게 했네.
“나의 몸은 바로 고도니
왕은 하는 짓을 뉘우쳐라.”
왕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번거로워 기절하였네.
좌우 신하들이 물을 뿌리자
얼마 되지 않아 깨어났었네.
“도무지 두려운 원수와 적의
사납게 불타는 것도 모르고
또한 귀신과 도깨비며
또 흉악한 독룡도 겁내지 않았구나.
마음이 날카로운 칼날 끝에
발린 꿀을 핥음과 같았구나.
말과 하는 일이 서로 다르게
이런 나쁜 벗을 따랐단 말인가.
조달은 겉모양만 친하나
바로 이는 나의 나쁜 원수로다.
바른 법의 깃대를 나타내는 듯했으나
나를 나쁜 길로 끌어들였도다.
스스로 남김없이 태우면서
헛되이 나도 함께 태우려 했구나.
아아, 괴롭다 어이 이리 심하게
나쁜 벗을 만났단 말인가.
나는 그와 더불어 벗이 되어
부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으며
코끼리를 취하게 하여
부처님 앞으로 놓아 보냈고
나에게 악역(惡逆)을 품게 하여
산의 바위를 부처님께 굴렸네.
이 나쁜 벗의 가르침으로
부처님 거룩한 스승을 등졌도다.”
왕은 곧 비참하게 일어나
고도의 발아래 몸을 던졌네.
“원컨대 벗을 알게 되어
무거운 허물을 지었으니 용서하오.
나는 지금부터 앞으로는
부처님 제자가 되오리다.
부처님께서는 사부(師父)가 되어
나쁜 친구를 멀리 여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써
취하여 미친 코끼리를 조복하시어
바른 길에 들도록 교화하시고
선근(善根)을 심게 하셨으며
어진 선비 고도의 창에 꿰는
괴로운 독의 근심을 구하여
감로의 좋은 약을 먹고
온갖 괴로움의 독을 멸하게 하였네.
이것을 듣고 받들어 가진 이도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만나고
착한 것 받들어 행한 인연으로
모두 온갖 괴로움을 멸하게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