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아발다라보경 제2권
17. 성품과 성품 아닌 것을 벗어났다는 것
[영원하다는 소리]
이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영원하다는 소리[常聲]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혹란을 말한다. 저 혹란을 모든 성인도 나타내지만 전도되지는 않는다.
대혜야, 봄날 아지랑이나 불을 돌려 생기는 바퀴 모양이나 눈병에 아른거리는 머리카락이나 건달바성이나 환(幻)이나 꿈이나 거울에 비친 모습 같은 것은 세상의 전도된 생각이니, 밝은 지혜가 아니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혜야, 저 혹란이 갖가지로 나타나는 것이 있으나 혹란이 무상(無常)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품과 성품 아닌 것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성품과 성품 아닌 것을 벗어났다는 것]
대혜야, 성품과 성품 아닌 것을 벗어났다는 것은 무엇인가?
혹란은 모든 어리석은 범부의 온갖 경계이기 때문이다.
마치 저 항하(恒河)를 아귀(餓鬼)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혹란은 성품이 없으나 다른 중생에게는 나타나므로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이 혹란은 모든 성인이 전도된 것과 전도되지 않은 것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란은 영원하다.
이른바 모습 모습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니,
대혜야, 혹란의 온갖 모습과 망상의 모습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혹란은 영원하다.
대혜야, 왜 혹란을 진실(眞實)이라고 하는가?
만약 다시 그 인연을 말한다면 모든 성인은 이 혹란에 대해서 전도된 깨달음을 일으키지도 않고, 전도되지 않은 깨달음을 일으키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혜야, 모든 성인을 제외하고는 이 혹란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생각을 일으키니, 성지(聖智)의 사상(事想)이 아니다.
대혜야, 그 ‘있다[有]’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헛되이 말하는 것이니, 성인의 말이 아니다.
저 혹란은 전도되고 전도되지 않은 망상으로 두 가지의 종성(種性)을 일으키니, 성인의 종성과 어리석은 사람의 종성이다.
성인의 종성에 세 가지의 구별이 있으니,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과 불승(佛乘)을 말한다.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이 망상으로 성문승종성(聲聞乘種性)을 일으키는가?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 계착하여 성문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를 망상이 성문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대혜야, 저 혹란(惑亂)에 즉한 망상이 연각승종성을 일으킨다는 것은, 저 혹란에 즉하여 자상과 공상을 관찰하지 못하고 계착하여 연각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이 저 혹란상(惑亂想)에 즉하여 불승종성(佛乘種性)을 일으키는가?
자심(自心)의 현량(現量), 바깥 경계의 성품과 성품이 아닌 것, 망상이 아닌 상(相)을 깨달아 불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저 혹란에 즉하여 불승종성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온갖 사성(事性)에 대해서 범부는 미혹된 생각으로 어리석은 사람의 종성[愚夫種姓]을 일으킨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없는 것도 아니니, 이를 ‘종성의 뜻’이라고 한다.
대혜야, 저 혹란은 망상이 아니다.
모든 성인의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과 허물[過]과 습기와 자성법(自性法)과 전변하는 성품[轉變性]을 ‘진여(眞如)’라고 한다.
그러므로 진여는 마음을 벗어난다고 말한다.
내가 이 구절[句]을 말한 것은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이니, 곧 모든 생각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혹란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환(幻)과 같아서 계착할 만한 모습이 없다.
만약 혹란에 계착할 만한 모습이 있다고 한다면 계착하는 성품은 멸할 수 없어야 할 것이며, 연기(緣起)는 외도들이 말하는 인연으로 법이 생긴다는 주장과 같아야 할 것이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혹란이 환과 같다면 다시 다른 미혹에게 인(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환(幻)은 미혹의 인(因)이 아니니, 허물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혜야, 환은 허물을 일으키지 않으니, 망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혜야, 환이란 다른 밝은 곳[明處]을 따라 생기는 것이지, 자기의 망상과 허물과 습기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허물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혜야, 이것은 어리석은 범부가 마음이 미혹하여 계착하는 것이니, 성현은 그렇지 않다.”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인은 혹란을 보지 않는다 하면
보지 않는 중간 역시 진실이 없을 것이다.
중간이 진실이라면
혹란이 곧 진실이리라.
모든 미혹을 떠나
만약 모습이 생긴다면
이것 역시 혹란이 되리니
깨끗하지 못함이 눈병 난 것 같으리라.
또 대혜야, 환에 비슷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니, 모든 법을 환과 같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