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5권
15. 본말품(本末品)
그때에 부처님께서 장차 보살의 행[菩薩行]을 나타내 보이시고자 즉각 본정삼매(本淨三昧)에 들어서,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온갖 법의 본말을 모조리 보게 하시고, 다시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부처님의 한량없는 세계를 보게 하셨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는 성취한 이와 성취하지 못한 이가 있으며, 혹은 1지로부터 10지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신행(身行)과 현재가 아닌 신행이 있는데,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이에 대해 낱낱이 분별케 하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집착 없는 등정각으로 장차 중생을 제도하시고자 문득 웃으시었다. 면문(面門:입)으로부터 큰 광명을 놓아서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 수효와 같은 국토를 비추시자, 욕계로부터 위로 유상무상천에 이르기까지 다 광명을 보는데, 저 광명에서 한량없는 중생의 근본을 연출하였다.
어떻게 중생의 본말이 되는가에 대해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 가지 법을 닦아 행하여 한량없는 지혜를 문득 능히 갖추어서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였다.
[집착 없는 행, 5음의 본말이 공함을 분별함]
그때 부처님께서 모인 무리에게 집착 없는 행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집착 없는 행인가?
처음에 뜻을 발하면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54가지 법은 공행(共行)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그래서 선남자나 선여인은 늘 사유하면서 잠시도 여의지 말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54가지인가?
우선은 5음(陰)을 분별하여 일어나매 일어남을 알고 멸하매 멸함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저 5음에는 남[生]이 있기도 하고 남이 없기도 하며, 성스러운 행이 있기도 하고 성스러운 행이 없기도 하며, 공관(空觀)이 있기도 하고 공관이 없기도 하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5음(陰)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나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멸하는가를 분별하면,
색(色)은 본래 생겨남이 없으나 바로 지금 생겨남이 있어서 색을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라고 이해하니, 혹은 색의 있음[有]이기도 하고 혹은 색의 없음이기도 하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색도 또한 마찬가지이니, 본래 색이 있지 않으므로 본래의 색을 보지 못한다.
과거 속에서 과거의 색을 보지 못하고, 미래 속에서 미래의 색을 보지 못하고, 지금 현재 속에서 현재의 색을 보지 못한다.
과거의 색은 미래의 색도 아니요 현재의 색도 아니며, 미래의 색은 과거의 색도 아니요 현재의 색도 아니며, 현재의 색은 과거의 색도 아니요 미래의 색도 아니다.
보살마하살은 모두 능히 분별하여 낱낱이 모든 것을 아느니라.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은 아픈 법을 분별하여 아픔이 일어나는 바가 없음을 이해해 안다.
과거의 아픔을 관하는데, 본래 이 아픔이 없고 또한 이 아픔이 과거에 있지 않음을 안다.
과거의 아픔은 미래나 지금이 아니요,
미래의 아픔은 과거나 지금이 아니요,
지금의 아픔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다.
왜냐하면 미래의 아픔은 본래 이 아픔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지금의 아픔을 관하기를
이전의 아픔도 아니고 나중의 아픔도 아니며,
과거의 아픔도 아니고 미래의 아픔도 아니며,
아픔도 또한 스스로 아픔을 알지 못한다고 해야 하느니라.
그러한 뒤에야 비로소 근본도 청정하고 지말(枝末)도 청정함을 아느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응당 과거 5음의 상념을 마땅히 사유하여야 하느니라.
법에는 본래 이 상념이 없으니,
과거의 5음의 상념은 미래와 현재의 상념을 알지 못하고,
미래의 상념은 과거와 현재의 상념을 알지 못하고,
현재의 상념은 과거와 미래의 상념을 알지 못하나니,
상념에는 본래 상념이 있지 않느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미래 속에서 미래의 상념을 분별한다면,
미래의 상념은 미래의 상념을 스스로 알지 못하며,
미래의 상념은 과거와 현재의 상념을 알지 못하고,
미래와 과거의 상념은 미래를 알지 못하고,
과거의 상념은 미래와 현재의 상념을 알지 못하느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현재 속에서 과거의 상념을 분별한다면, 또한 과거의 상념이 없고,
미래의 상념을 분별한다면 또한 미래의 상념이 없고,
현재의 상념을 분별한다면 또한 현재의 상념이 없다.
현재와 과거에서 역시 과거의 상념이 없고,
현재와 미래에서 역시 현재와 미래의 상념이 없으며,
현재의 상념에서도 또한 상념이 있지 않느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다시 과거에서 5음의 행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났으며 다시 무엇으로 말미암아 멸하는가를 마땅히 분별하여야 한다.
과거의 행은 또한 행이 있지 않으니, 과거의 행을 분별해도 과거의 행이 아니다.
과거의 행은 미래의 행도 아니요 현재의 행도 아니다.
미래의 행은 과거의 행도 아니요 현재의 행도 아니다.
현재의 행은 과거의 행도 아니요 미래의 행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의 행은 과거와 미래의 행이 아니고,
과거와 현재의 행은 과거와 현재의 행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행은 본래 있는 바가 없어서 또한 행이 있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미래 속에서 문득 미래의 행을 마땅히 갖추어야 하느니라.
미래 속에서 과거의 행을 보지 않고 현재의 행을 보지 않으며,
미래 속에서 미래를 보지 않고 과거의 행은 미래를 보지 않으며,
현재의 행은 미래도 현재의 행도 보지 않나니, 왜냐하면 본래 이 행이 있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현재 속에서 다시 마땅히 분별하여야 하느니라.
과거의 행 또한 과거의 행이 없고, 또한 미래의 행도 없고, 또한 현재의 행도 없다.
현재의 행에서 현재와 과거의 행을 관(觀)해도 또한 현재와 과거의 행을 보지 않고,
현재에서 현재와 미래의 행을 관해도 또한 현재와 미래의 행을 보지 않나니,
온갖 행을 관하여 요달하면 있는 바가 없느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과거 속에서 과거의 식을 관해도 또한 과거의 식을 보지 않고,
미래의 식에서 또한 미래의 식을 보지 않고,
현재의 식에서 또한 현재의 식을 보지 않고,
과거의 식에서 또한 과거와 미래의 식을 보지 않고,
과거 속에서 또한 과거와 현재의 식을 보지 않고, 또한 식도 보지 않느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미래 속에서 과거의 식과 미래의 식을 보지 않고,
미래 속에서 미래와 과거의 식을 보지 않고,
미래와 현재의 식도 보지 않느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현재의 식에서 과거의 식을 보지 않고, 미래의 식도 보지 않고,
현재 속에서 현재와 과거의 식을 보지 않고, 현재 속에서 미래의 식을 보지 않느니라.
이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이 5음의 본말이 공(空)함을 분별한다고 말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