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시스템 2
시스템2의 주요 기능 하나는 시스템1이 '제안하는' 생각과 행동을 점검하고 통제하면서,
그중 일부는 곧장 행동으로 옮기고 일부는 억누르거나 수정하는 것이다.
간단한 문제 하나를 보자,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직관에 귀기울여보라.
야구 방망이와 공 세트가 1달러 10센트다.
방망이는 공보다 1달러 비싸다.
공은 얼마겠는가?
머릿속에 숫자 하나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 수는 당연힌 10이다.
10센트 이 쉬운 문제의 특이한 점은 그럴듯한 틀린 답을 직관적으로 유도한다는 점이다.
직접 계산해보라, 공이 10센트라면 방망이는 그보다 1달러 비싼 달러 10센트로,
총 금액은 1달러 10세트가 아니라 1달러 20센트가 된다. 정답은 5센트다.
정답을 말한 사람도 처음에는 직관적으로 10세트가 떠올랐지만 직관에 저항한 게 분명하다.
나는 셰인 프레더릭(Shane Frederick)과 함께 두 시스템에 기초한 판단 이론을 연구했는데,
프레더릭은 방망이와 공 문제를 이용해 시스템2는 시스템1의 제안을 얼마나 자세히 점검하는지 연구했다.
그는 공이 10세트라고 대답하는 사람에 관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 사람은 그 답이 맞는지 적극적으로 점검하지 않았으며,
잠깐만 생각해보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는 직관적 답을 시스템2가 그대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직관적 답을 한 사람은 분명한 사회적 실마리를 놓쳤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즉 그렇게 뻔한 문제를 낼 리 없잖은가, 그 정도 점검이 그리 번거로운 일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안 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근육이 약간 긴장하고 동공이 조금 커질 정도로 몇 초만 머리를 쓰면 (문제의 난이도는 봍통이다.)
그런 당혹스러운 실수는 피할 수 있다.
10센트라고 말하는 사람은 최소 노력 법칙을 열렬히 추종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답을 피하는 사람은 존 더 능동적으로 머리를 쓰는 사람일 것이다.
대학생 수천 명이 이 문제에 답을 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다.
하버드,MIT, 프린스턴 대학 학생의 50퍼센트 이상이 직관적 오답을 말했다.
그 외 대학생들의 오답률은 80퍼센트기 넘었다.
방망이와 공 문제는 앞으로 이 책에서 반복될 이야기인 많은 사람이 직관을
지나치게 확신하고 신뢰한다는 사실과 관련해 우리가 처음 마주한 실험 결과다.
사람들은 머리 쓰는 일을 썩 달가워하지 않아 가급적 피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두 개의 전제와 하나의 결론으로 된 논리적 주장을 제시하겠다.
이 주장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되도록 빨리 대답해보라,
결론은 두 전제를 따르고 있는가?
장미는 모두 꽃이다.
어떤 꽃은 빨리 시든다.
따라서 어떤 장미는 빨리 시든다.
대학생 대다수가 이 삼단 논법을 타당하다고 여긴다.
이 주장은 엉터리다. 꽃 중에서도 장미는 빨리 시들지 않을 수 있다.
방망이와 공문제처럼 그럴듯한 답이 머릿속에 재발리 떠오른다.
그 답을 피하려면 수고를 해야 한다.
'그 답이 맞아, 맞는다고!'라는 집요한 생각이 논리를 따지기 힘들게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를 애써 더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
이 실험은 일상적인 논리적 사고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어떤 결론을 옳다고 믿으면 그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보이는 주장을,
비록 그것이 근거가 없더라도 옳다고 믿을 확률이 높다.
시스템1이 관여하면, 일단 결론부터 떠오르고 논리적 주장은 그다음이 된다.
아래 질문을 읽고 그다음 내용을 계속 읽기 전에 재빨리 대답해보라
미시간주에서 한 해에 살인 사건이 얼마나 발생하는가?
역시 셰인 그레더릭이 만든 이 문제도 시스템 2를 시험한다.
이 문제가 '노리는' 점은 범죄율이 높은 디트로이트가 미시간주에 있다는 사실을 응답자가 기억하느냐는 것이다.
미국 대학생이라면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디트로이트를 미시간의 가장 큰 도시로 정확히 지목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실을 안다는 것은 단지 아는가 모르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사실이 필요할 때 항상 머릿속에 떠올는 것은 아니다.
디트로이트가 미시간에 있다는 걸 떠올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디트로이트의 살인 사건 발생 빈도를 높게 추정하지만,
프레더릭의 질문에 응답한 사람들 다수가 미시간주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디트로이트를 떠올리지 않았다.
미시간의 살인율을 질문받는 사람들의 추정치 평균은
디트로이트의 살인율을 질문 받은 비슷한 집단의 추정치 평균보다 오히려 낮았다
디트로이트르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시스템1과 시스템2에 모두 책임이 있다.
미시간이 언급될 때 디트로이트가 생각나느냐 안 나느냐는 부분적으로 기억의 자동 기능에 달렸다.
이 점은 개인차가 있어서, 어떤 사람은 미시간주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머릿속에 떠올린다.
이를테면 미시간에 사는 사람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실을 떠올리기 쉽고,
지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야구 통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할 테고,
똑똑한 사람은 거의 모든 것을 더 풍부하게 묘사할 공산이 크다.
지능은 논리적 사고력이 전부가 아니다.
지능은 필요할 때 어떤 문제와 연관된 대상을 기억에서 찾아내어 거기에 주목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기억 기능은 시스템1의 속성이다.
하지만 누구든 속도를 늦추고 관련 사실을 기억에서 적극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천천히 방망이와 공 문제의 직관적 답을 점검할 수 있듯이,
이때 어느 정도나 의도적으로 점검하고 관련 내용을 찾아볼지는 시스템2가 결정하는데, 이 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방망이와 공 문제, 꽃 삼단논법, 미시간과 디트로이트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미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동기 부족으로 문제를 열심히 풀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라면 처음 두 문제는 얼마든지 풀 수 있고
세번째 문제도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미시간에서 가장 큰 도시와 그곳의 범죄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머릿속에 금방 떠오르는 언뜻 그럴듯한 답을 받아들일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면
훨씬 더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더 고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자기 답에 만족한다는게 문제다.
이 젊은이들의 자기 점검과 시스템2을 '게으로다'고 말한다면 야박하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지적태만 죄를 피해가는 사람은 머릿속이 바쁜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더 긴장하고, 적극적으로 머리를 쓰고 , 언뜻 끌리는 답에 쉽게 만족하지 않으며,
직관에 회의적이다.
심리학자 키스 스타노비치라면 이들을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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