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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론 제8권
10. 업론[5]
10.16. 육업품(六業品)
업에 여섯 가지가 있다.
지옥의 보를 받을 업과, 축생의 보를 받을 업과 아귀의 보를 받을 업과 사람의 보와 하늘의 보와 정해지지 않은 과보의 업이다.
[문] 그 내용이 무엇인가?
[답] 지옥의 보를 받을 업은 육족아비담(六足阿毘曇)의 누탄분(樓炭分) 중에서 널리 설명함과 같다.
또 살생 등의 죄는 다 지옥에 간다. 경전 중에서 살생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며 만일 사람이 되면 단명하다고 함과 같다.
내지 삿된 소견 역시 그와 같다.
[문] 이미 열 가지 불선한 길은 지옥의 보를 받는 줄 알았거니와 또한 축생과 아귀와 인도 중에 나는데도 그대는 지옥과 인도 중에서 만난다고 말하였다.
지금부터 따로따로 설명하여야겠다.
어떠한 업이 지옥의 보만을 받는 것인가?
[답] 곧 그 죄업으로서 가장 무거운 자가 지옥의 보를 받고, 작고 가벼우면 축생 등의 보를 받는다.
또 만일 세 종류의 삿된 행을 구족하면 지옥으로 가고 그 밖의 구족하지 못한 업은 축생 등이 된다.
또 일부러 지은 무거운 죄면 지옥으로 가고
또 계행을 깨뜨리고 바른 소견을 깨뜨린 사람이 지은 악업이면 지옥으로 가며,
또 깊은 마음으로 악한 짓을 하여 마음이 무너지고 행이 무너진 이 사람이 지은 악업이면 지옥으로 가고,
또 불선한 업을 짓는데 불선으로써 도와주면 지옥으로 간다.
또 성현에게 불선한 업을 지으면 지옥으로 가고,
또 불선한 업과 불선한 배움을 일으키면서 마치 사람이 불선한 업을 일으키면 뒤에서 잘하였다고 칭찬하면서 버리려 하지 아니함과 같은 것은 지옥으로 가며
또 미워하고 성내는 마음으로 죄업을 일으키면 지옥으로 가고 만일 재물을 위해서면 다른 보를 받는다.
또 삿된 소견으로써 불선한 업을 일으키면 지옥으로 가고
또 계행을 깨뜨린 사람의 지은 업은 지옥으로 가며
또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의 지은 죄업은 지옥으로 가고,
또 나쁜 성질을 지닌 사람이 지은 죄업으로 지옥에 감은 마치 축축한 땅에 조금만 비가 내려도 진흙이 되는 것과 같다.
또 항시 불선한 일만 행하는 사람의 짓는 악업은 지옥으로 가고
또 만일 긴급한 일이 없는데도 악업을 지으면 지옥으로 가며,
또 만일 사람으로서 공하고 나가 없다는 갈래를 얻지 못하고서 깊이 물들고 애착하기 때문에 짓는 악업이면 지옥으로 간다.
또 만일 사람이 몸의 계행과 마음의 지혜를 닦지 아니하고 짓는 악업이면 지옥으로 가고 또 만일 범부가 지은 죄업이면 지옥으로 간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음계입(陰界入)과 12인연 등을 알지 못하며,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짓지 아니할 것을 짓고 지어야 할 것은 짓지 아니하며,
말하지 아니할 것은 말하고 말해야 할 것은 말하지 아니하며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지은 죄업은 비록 적으나 역시 지옥으로 간다.
또 만일 불선한 것의 허물을 보지 못하는 이런 사람이면 무거운 죄업을 일으킬 것이므로 지옥의 보를 받으며,
또 만일 사람이 죄만 짓고 선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지옥으로 가게 됨은 마치 빛을 진 사람이 국왕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빛 임자가 자기편의대로 하는 것과 같다.
또 만일 사람이 선한 업이 미약하면 지은 조그마한 죄라도 지옥으로 가게 됨은 마치 사람이 몸 안의 체온이 부족한데 소화되기 어려운 음식물을 먹으면 소화시키지 못함과 같다.
또 사람이 불선한 일만 행하고 선한 업을 섞어서 행하는 일이 없으면 지옥으로 가게 됨은 마치 사람이 도둑에게 가볍거나 무거운 것을 다 씌우는 것과 같다.
또 온갖 선근을 버리면 마치 코끼리가 싸움할 때에 머리를 아끼지 아니하는 것처럼 이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으로 간다.
또 만일 적은 법을 행하고 무능한 스승에게 수학한 지라 이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으로 가게 됨은 마치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빚을 지면 부유하고 귀한 사람에게 마치 빚의 이자가 나날이 불어남과 같고 또 백정이나 사냥꾼들의 업과 같아서 지옥으로 간다.
또 죄를 숨기면 지옥으로 감은 마치 부스럼의 고름이 안에서 터져 나옴과 같다.
또 사람이 불선한 것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서 빨리 없애버리지 못하면 지옥으로 감은 마치 다스려져야 할 독(毒)이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
또 만일 사람이 자기가 불선한 짓을 행하고 또한 남에게 교사하면 많은 중생들이 괴로움의 문을 열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게 됨은. 마치 여러 국왕이나 많은 지식있는 사람들이 나쁘고 삿된 행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배우도록 한 부란나(富蘭那) 등과 같다.
또 만일 지은 업이 중생을 몹시 괴롭힘이 마치 숲을 태우듯 하는 것과
또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그른 법에 떨어지게 함이 마치 사냥하는 일과 같은 것과
또 사람이 나쁜 업으로 생활함이 마치 도둑과 망나니와 백정과 사냥꾼들과 같은 것과
또 끝까지 파계(破戒)한 사람이 짓는 죄업들은 지옥으로 가게 된다.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畢竟]라고 한다. 게송의 말씀에
끝까지 파계한 사람은
칡덩굴이 나뭇가지에 얼킨 것과 같다.
이 사람 제 몸으로 악을 지으며
저 홀로 원한을 원(願)으로 삼누나.
라고 함과 같다.
또 아무 일이 없는데도 불을 내고 이 분심으로써 죄업을 지으면 지옥으로 가게 되거니와 만일 일이 있어서 분노하는 죄라면 그렇지 아니하다.
또 진심으로 업을 일으키면 그 번뇌가 무겁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게 됨은
마치 경전 중의 말씀에
“진심은 무거운 죄라 하는데도 끊기 쉽다고 말한다”고 함과 같다.
또 악한 마음이 성품을 이루면 지옥으로 가게 되나 만일 무슨 일 때문에 일으킨 죄업이면 그것은 경미하다.
또 방종한 사람이 지은 죄업은 지옥으로 가게 되나, 만일 선지식의 보호를 받으면 천상에 가서 날 수 있음은 마치 사파(莎婆)라는 망나니가 죽게 될 무렵에 사리불께서 그 곳에 당도하자
그 사람은 곧 사나운 눈으로 사리불을 쳐다보며 괴이한 소리로 좀 더 다가오게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다시 입김을 내어뿜자
사리불의 몸빛이 더욱 찬란하여짐을 보고 문득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라 죽일 수 없구나” 하고
이내 깨끗한 마음으로써 일곱 번 위아래로 사리불을 훑어보았더니 그 인연으로 일곱 번을 천상에 가서 나고 일곱 번을 인간에 태어난 다음에 벽지불(辟支佛)의 도를 성취하였다는 것과 같다.
또 앙굴마라(鴦掘魔羅)는 많은 죄업을 지으면서 자기 어머니를 살해하려다가 부처님이 선지식이 되었기 때문에 이내 해탈을 얻음과 같다.
또 시월(施越)은 불구덩이와 독반(毒飯)을 만들어서 부처님을 해치려 하였으나 부처님이 선지식이 되었기 때문에 역시 해탈을 얻음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악업이 있었다하더라도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거니와 본래 “만일 방종한 사람이 지은 죄업이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한다.
또 만일 선근(善根)을 끊어서 다시는 다스릴 수 없음이 조달(調達)처럼 되면 마치 병 앓는 사람에게 죽을 형상이 이미 나타남과 같다.
이런 사람이 지은 죄는 지옥으로 가게 되며
또 사람이 자주자주 착한 행을 짓지 아니하면 장차 운명할 무렵에는 착한 마음을 내기 어렵고 이런 사람은 뉘우치게 되므로 지옥에 떨어진다.
또 임종할 때에 삿된 소견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먼저 착하지 못함을 인(因)으로 삼고 삿된 소견을 연(緣)으로 삼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다.
이와 같이 많은 업들이 지옥의 과보를 받게 된다.
또 논사는 말하기를 “온갖 불선한 행위는 모두가 지옥의 인연이다. 이 불선의 나머지 것이 축생 따위에 가서 난다”고 하였다.
마치 경전 중에서 부처님은 비구에서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보게 되는 중생으로서 몸의 삿된 행위와 입의 삿된 행위와 마음의 삿된 행위를 하는 자는 바로 지옥 사람을 보는 것으로 알아야 되느니라”고 하심과 같다.
[문] 이미 지옥의 과보에 대한 업은 알았거니와 축생의 과보에 대한 업은 어떤 것인가?
[답] 만일 사람이 선과 함께 불선한 업을 일으키면 이 때문에 축생에 떨어진다.
또 번뇌가 몹시 성하기 때문에 축생에 떨어짐은
마치 음욕이 성하기 때문에 참새 구욕새, 원앙새 등의 안에 나는 것과 같고,
진심이 성하기 때문에 살무사, 독사, 전갈 등의 안에 나는 것 같고,
어리석음이 성하기 때문에 돼지ㆍ염소 등의 안에 나는 것 같고,
교만과 방일이 심하기 때문에 사자 범ㆍ이리 등의 안에 나는 것 같고,
들떠 날뜀이 심하기 때문에 원숭이 따위로 나는 것 같고,
아낌과 시새움이 많기 때문에 개 따위로 태어남과 같으며
이러한 것들처럼 그 밖의 번뇌의 왕성으로 갖가지 축생 중에 가서 난다.
만일 조금이라도 보시함이 있었던 사람이면 비록 축생 중에 가서 나더라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받는데, 마치 금시조(金翅鳥)ㆍ용ㆍ코끼리ㆍ말 따위와 같다.
또 입으로 짓는 업의 과보는 거의가 축생에 떨어진다.
사람이 업의 과보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구업(口業)을 지으면서
“이 사람이 경솔하여 원숭이와 같구나”고 하면 그 업보로 원숭이로 가서 나며,
만일 이 “탐욕과 시새움이 까마귀와 같다”고 하거나
“말소리가 개 짖는 것과 같다”고 하거나
“어리석기가 돼지와 양과 같다”고 하거나
“소리가 당나귀 울음과 같다”고 하거나
“걸음이 낙타와 같다”고 하거나
“스스로 높은 체함이 코끼리와 같다”고 하거나
“사납기가 날뛰는 소와 같다”고 하거나
“음탕하기가 참새와 같다”고 하거나
“겁이 많기가 고양이며 너구리와 같다”고 하거나
“아첨하는 것이 야간(野干)과 같다”고 하거나
“패려[悖戾]하고 사납기가 암염소와 같다”고 하거나
“털이 많기가 소와 같다”고 하면
이러한 나쁜 구업 때문에 그 업에 따라 보를 받는 것과 같다.
또 중생은 즐거움을 탐내기 때문에 가지가지의 원을 일으킨다.
마치 음욕을 즐기면 날짐승에 가서 나고, 만일 모든 용과 금시조들이 세력있다는 말을 들으면 짐짓 그 안에 가서 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또 경전 중에서
“만일 협착한 데서 죽으면서 넓은 곳에 나기를 원하면 날짐승에 가서 나며,
만일 갈증으로 죽으면 물을 찾았기 때문에 물속에 가서 나며,
굶주려서 죽으면 밥을 탐내었기 때문에 뒷간에 가서 난다”고 하였다.
또 어리석어서 경미한 업을 일으키고 선(善)을 함께 지었기 때문에 벼룩ㆍ이ㆍ벌레ㆍ개미 따위로 되어 나며,
또 다른 사람을 교사하여 삿된 법에 떨어지게 하면 지혜없는 곳에 가서 나서 바보로 살다가 바보로 죽으면서 시체안의 벌레가 되며,
또 부잡한 업을 행하기 때문에 축생 중에 가서 남은
마치 경전 중에서
“모든 축생은 갖가지 마음에 따라 갖가지 형상을 얻느니라”고 함과 같다.
또 풀을 먹어야 할 업을 일으키는 것은 마치 사람이 거짓말로 스스로가 주원하거나 맹세하기를 “만일 이 밥을 먹는다면 나에게 풀을 먹게 하소서”라고 하거나 혹은 “흙을 먹어라”고 하거나 하면 그와 같은 대로 되는 것과 같다.
또 사람이 나쁜 말로 욕하면서 “너는 어찌하여 풀을 먹거나 흙을 먹지 않느냐”고 하면 이 사람은 그 말대로 나게 되어서 풀과 흙 따위를 먹게 된다.
또 사람이 깨끗하지 못한 보시를 하면 풀 따위의 과보를 얻으며,
또 사람이 빚을 지고 갚지 아니하면 소ㆍ양ㆍ노루ㆍ사슴ㆍ나귀ㆍ말 들로 나서 그의 묵은 빚을 갚는다.
이와 같은 따위의 업은 축생 안에 떨어진다.
[문] 이미 축생의 과보에 대한 업을 알았거니와 어떠한 업으로 아귀에 떨어지는가?
[답] 음식 등에서 아끼고 탐낸 마음 때문에 아귀에 떨어진다.
[문] 사람이 제 물건을 주지 않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죄를 얻는가?
[답] 바로 인색한 사람인 까닭이다.
만일 누구라도 와서 구걸할 때에 탐냄과 아낌 때문에 분노를 일으키면 이 죄 때문에 아귀에 가서 난다.
또 이 인색한 사람에게 어떤 이가 와서 구걸할 때에 있는 것도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에 아귀에 떨어진다.
또 이 사람은 오랫동안 인색한 번뇌를 닦아 쌓았기 때문에 남의 이익되는 것을 보면 시새우는 마음을 내므로 아귀에 떨어진다.
또 이 인색한 사람은 남들이 보시하는 것만 보아도 그 시주를 미워하고 성내면서 “이 비렁뱅이는 얻는데 버릇이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또 나에게로 와서 구걸하리라”고 하며
또 오래부터 인색한 마음을 닦아 익힌지라 자기는 주지 않으면서 남이 주는 것까지도 방해하며,
또 공동 소유물인 사중의 스님 물품이거나 천사(天祠)의 여러 바라문의 물품 따위를 어떤 사람은 혼자 아껴서 남에게 주지 아니하려 한다.
그 때문에 아귀에 떨어진다.
또 사람이 강제로서 남의 음식을 빼앗고 결단내면 그 때문에 음식이 없는 곳에 가서 나며,
또 사람이 보시한 복이 없으면 태어나는 곳마다 얻을 것 없는 과보를 받고, 겸하여 구걸하는 사람을 꾸짖었기 때문에 그런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또 인색한 지라 남이 굶주린 것을 보아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굶주림을 당하는 것이 마치 비상한 마음 때문에 천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으며, 그와 같이 성내고 원한을 품기 때문에 악도 중에 가서 난다.
또 권속에 깊이 애착하고 살기 좋은 곳에 애착하기 때문에 가릉가(迦陵伽) 등의 악귀 중에 가서 난다. 탐내고 사랑하는 것은 태어나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업보경(業報經) 중에서 널리 설명되어 있다.
[문] 이미 세 가지 악도의 과보에 대한 업을 알았거니와 어떠한 업으로 인간과 천상에 나게 되는가?
[답] 만일 보시하고 계행을 지키며 선행을 닦는 등의 업이면 상등은 천상에 가서 나고 중등과 하등은 인간 안에 태어난다.
또 근기가 영리한 자도 인간에 태어나며 사람의 법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된다.
또 여러 가지의 선업 때문에 인간에 태어나며, 이 업에도 상ㆍ중ㆍ하와 일심과 불일심(一心不一心)과 정과 부정[淨不淨] 등이 있다.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는가?
사람이란 갖가지 차등이 있어서 똑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경전 중의 말씀에서
“살생하면 명이 짧고, 도둑질하면 가난하고 사음하면 집안이 정숙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면 항상 비방을 받고, 이간질을 하면 권속이 화합하지 못하고 욕설을 하면 나쁜 소리를 듣고 발라맞추는 말을 하면 남이 믿어 받지 않고, 탐내면 음욕이 많고, 성내면 사나운 성질이 많고, 삿된 소견을 가지면 어리석음이 많고, 교만하면 하천한 곳에 태어나고, 스스로 높은 체하면 앉은뱅이가 되고, 질투하면 위덕이 없고, 인색하면 빈한하고 미워하면 추루해지고, 남을 괴롭히면 병이 많고, 부잡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되고, 때아닐 적[兆時]에 보시하면 뜻대로 되지 않고 의심하고 뉘우치면 변지(邊地)에 태어나고 깨끗하지 못한 보시를 하면 고생스러운 보를 받으며, 비도(非道)로 음욕을 행하면 고자가 된다.
인간 안에서도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불선한 업이 있다. 선한 업이란 이러한 것과 서로 엇갈리는 일이니, 살생을 하지 아니하면 장수함을 얻는 일들과 같다.
인도 중에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같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여러 가지 업의 과보인줄 알 것이다.
또 소원 때문에 인간에 태어나게 된다. 또 사람이 방일을 즐기지 않고 욕심도 많지 않으며 지혜를 좋아하면서 사람 몸 받으려는 원을 앞세우면 인도에 태어난다.
또 사람이 부모와 기타 존속에게 공양하기를 좋아하고 또한 사문과 바라문들을 공양할 줄을 알아서 사업하기를 기뻐하고 또한 복 닦기를 좋아하면 인도에 태어난다.
인도 안에서 깨끗한 업의 인연이면 울단월에 태어나고
또 사람이 농장과 주택에 나의 소유라는 차별을 싫어하면 울단월에 태어나고
또 사람이 백업(白業ㆍ淨業)을 바르게 시행하고 남을 괴롭히지 아니하며 재물을 가지면서도 보시하고 탐착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파계하지 아니하면 앞뒤에 있는 권속들까지도 울단월에 태어난다.
이 선행이 조금 모자라면 구야니(拘耶尼)에 가서 나고 더 적어서 그보다 못하면 불우체(弗于逮)에 가서 난다.
천상의 과보 받을 업이란 그 보시와 지계와 선행이 으뜸가고 깨끗하기 때문에 천상에 가서 난다.
또 사람이 지혜를 얻어서 분별하여 모든 번뇌를 극복시키면 그 때문에 천상에 가서 난다.
또 역시 여러 가지 업에 따라 차별이 있는 것은 인도 안에서 설명함과 같다.
또 원을 세우기 때문이다. 천상은 즐거움을 받는다는 인연을 듣고 지은 바 착한 업으로 모두 가서 나기를 원하는 것이니 마치 여덟 가지 복생처(福生處) 중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또 자비희사(慈悲喜捨)를 행하면 범천이나 내지 유정천에 가서 나는데, 이 중에는 선정의 차등이 있기 때문에 과보도 역시 차별이 있다. 만일 수면과 오락 등을 끊지 아니하면 이 사람의 몸빛은 흐리며, 만일 잘 제거하면 광명이 밝고 깨끗하다.
또 상품인 선업의 과보라면 천상에 가서 나는데, 모든 하고 싶은 일은 생각대로 이내 얻어지는 까닭이다.
만일 형상을 떠나서 무형세계 선정을 얻으면 무형 세계에 가서 난다.
이와 같은 일들을 하늘의 보를 받는 업이라고 한다.
정해지지 않은 과보의 업이라 함은 하품의 선한 업과 불선한 업이다. 이 업은 지옥이거나 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에서 받기도 한다.
[문] 그 밖의 네 가지 갈래에서는 착한 업의 과보를 받을 수 있거니와 지옥에서는 어떤 것인가?
[답] 만일 작은 지옥이라면 잠시 동안 휴식하는 일도 있다. 예
를 들면 불지옥으로부터 벗어나서 멀리 수림(樹林)을 바라보고는 기뻐하면서 그 숲속으로 들어가면 산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데 칼날이 아직 떨어지지 않는 그때에는 잠깐 즐기기도 하며, 혹은 짠 강물을 보고 맑은 물이라 생각하면서 달려가서는 역시 잠깐 동안 즐기게 되는 것과도 같다. 이러한 일들은 이 지옥 안에서 선업의 과보를 받는 갈래이다. 이것을 정해지지 않은 과보의 업이라 한다.
10.17. 칠불선율의품(七不善律儀品)
일곱 가지 착하니 못한 율의[不善律儀]라 함은 살생(殺生)과 도둑질[盜]과 삿된 음행[邪婬]과 이간질[兩舌]과 나쁜 말[惡口]과 거짓말[妄語]과 비단말[綺語]이다.
만일 사람이 일곱 가지 일에 완전히 갖추었거나 완전히 갖추지 않았거나 간에 모두가 착하지 못한 율의의 사람이라 한다.
[문] 어떻게 하는 것이 착하지 못한 율의를 성취하는 것인가?
[답] 생의 착하지 못한 율의를 성취하는 것은 도살(屠殺) 하는 따위요,
도둑질을 성취하는 것은 강도와 절도 따위요,
삿된 음행을 성취하는 것은 길이 아닌데도 음행하거나 여인에게 음행하는 따위요,
거짓말을 성취하는 것은 노래하고 춤추고 재주부리는 따위요,
이간질을 성취하는 것은 즐겨 훼방하며 참소(讒訴)하는 글을 읽고 외우며 국사(國事)를 어지럽히는 따위요,
나쁜 말을 성취하는 것은 옥졸(獄卒)들과 같이 나쁜 말로 생활해가는 따위요,
비단말을 성취하는 것은 언사를 늘어놓아서 남을 웃기는 따위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왕과 재상과 장사(將帥)로서 국사를 다스리면 언제나 착하지 못한 율의를 성취하게 된다”고 하나 그 일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죄를 계속 지으면서 쉬지 않으면 이것을 착하지 못한 율의를 성취하는 것이라 하는데 국왕 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문] 어떻게 이 착하지 못한 율의를 얻게 되는가?
[답] 악업을 짓는 때마다 얻어진다.
[문] 죽임을 당하는 중생으로부터 이 율의를 얻는 것인가? 모든 중생으로부터 얻는 것인가?
[답] 모든 중생으로부터 얻게 된다. 마치 사람이 계행을 가지면 모든 중생으로부터 착한 율의를 얻음과 같이 착하지 못한 율의도 역시 그와 같다.
만일 중생을 죽이면 두 가지의 무작(無作)을 얻는다.
첫째는 살생죄의 소속이요,
둘째는 착하지 못한 율의의 소속이니,
그 밖의 중생에게는 착하지 못한 율의의 소속을 얻게 된다.
[문] 이 착하지 못한 율의는 어느 때까지 성취하는가?
[답] 아직 평등한 마음[捨心]을 얻지 못한 동안에는 언제나 성취한다.
[문] 만일 사람이 낮추고 부드러운 마음에서도 착하지 못한 율의를 얻고 또는 탐냄 따위의 마음에서도 얻는다면 이 사람은 항상 이렇게 성취되어 있는가 다시금 얻는 것인가?
[답] 마음에 따르고 번뇌의 인연에 따라서 다시 착하지 못한 율의를 얻으며, 생각생각에 항상 얻으며, 모든 중생에게서 얻으며 일곱 가지를 일으킨다.
이 일곱 가지는 각기 상과 중과 하가 있기 때문에 스물한 가지가 있다. 이와 같이 생각생각에 항상 일체 중생의 곁에서 얻는다.
[문] 이 착하지 못한 율의는 어떻게 해야 버릴 수 있는가?
[답] 착한 율의를 받을 적에 버려지고, 죽을 때에 또한 버려지며,
또 깊이 마음을 내어 “오늘부터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에도 버려진다.
어떤 논사가 말하기를 “성(性)이 전환할 때에도 버려진다”고 하나, 그 일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고자 따위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니 중에서도 말하기를
“만일 비구가 성전환을 하더라도 율의를 잃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의 전환 때문에 버려진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문] 다섯 가지 갈래 중에서는 어느 갈래의 중생이 착하지 못한 율의를 성취하는가?
[답] 오직 인도에서만이 성취하며 다른 갈래에서는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자와 범과 이리 들은 항상 나쁜 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역시 성취해야 된다”고 한다.
10.18. 칠선율의품(七善律儀品)
일곱 가지 착한 율의라 함은 살생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비단 말하지 않는 것까지이다.
[문] 중생이 아닌 무리 중에서도 이 착한 율의를 얻는 것인가?
[답] 얻는다. 반드시 중생으로 인하여만 한다. 이 착한 율의에는 세 가지가 있다. 계(戒)의 율의와 선(禪)의 율의와 정(定)의 율의이다.
[문] 어찌하여 샘 없는 율의[無漏律儀]는 말하지 않는가?
[답] 샘 없는 율의는 뒤에서 말하는 두 가지 속에 포섭되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논사가 말하기를
“또 끊음의 율의[斷律儀]가 있다. 욕심 세계를 여윌 때에 착한율의를 얻어서 파계(破戒)하는 따위의 악업을 끊기 때문에 끊음이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율의는 실로 세 가지 안에 다 딸려 있다.
[문] 모든 외도들도 이 계의 율의를 얻는가?
[답] 얻는다. 이 사람도 역시 깊은 마음으로 모든 악업을 여의기 때문이다. 계사(戒師)가 가르치기를 “너는 오늘부터 살생 따위의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문] 다른 갈래의 중생도 이 계의 율의를 얻는가?
[답] 경전 중에서 “모든 용(龍)들도 역시 일일계(一日戒)를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있는 줄 알 것이다.
[문]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고자 따위에는 계의 율의가 없다”고 하는데 그 일은 어떠한가?
[답] 이 계의 율의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고자들에게도 착한 마음이 있거늘 무엇 때문에 얻지 못하겠는가?
[문] 무슨 이유로 비구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가?
[답] 이 사람은 번뇌가 깊고 두터워서 도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이 사람은 비구 중에도 들지 못하고 비구니 중에도 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허락하지 않는다.
또 그들 안에 있으면 그 밖의 사람까지도 막는다. 마치 사팔뜨기와 같아 이들은 역시 이 착한 율의를 얻는다.
[문] 비녀 중에서는 역죄(逆罪)를 지은 자와 적주(賊住)로서 있는 이와 비구니를 더럽힌 자들까지도 비구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이 모든 사람에게도 역시 착한 율의는 있는가?
[답] 그 사람도 만일 속인이 된다면 착한 율의를 얻기도 한다.
이 사람에게 보시와 자비 등의 착한 법 수행하는 일을 막지 않는 것과 같아서 만일 세간의 계율의가 있는 이라면 무엇이 허물될 것이 있겠는가?
다만 이 사람이 악업에 더럽혀진지라 또한 성인의 도를 장애하기 때문에 출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문] 죽여야 하는 중생으로부터 착한 율의를 얻는 것인가? 모든 중생으로부터 얻는 것인가?
[답] 모든 중생에게서 얻는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율의는 분한이 있게 된다. 분한이 있다면 원만하지 못하다.
또 이 율의는 더하고 덜 하는 수가 있다면 역시 니연자(尼延子)의 법과 같으리니 이른바 “백유순(由旬) 안에서는 살생하지 말라”고 한다면 이런 허물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율의엔느 그러한 구분이 없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그 사람에게 살생을 여의었는데도 그 사람이 여의지 아니하면 이 계의 율의를 얻지 못한다”고 하고
어떤 논사는
“만일 보시와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는 따위를 분별하여도 복덕이 있듯이 계도 역시 그렇다.
마치 한 가지 계행을 가지면 역시 그 계의 복을 얻는 것과 같다” 하였다.
그와 같아서 한 중생에게서도 역시 율의를 얻는다.
[문] 이 계의 율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생 동안[盡形] 지키는 것이요,
둘째는 하루 낮 하룻밤[一日一夜]만 지키는 것이다.
일생 동안이라 함은 비구와 우바새에 해당하고 하루 낮 하룻밤이라 함은 여덟 가지 계를 받는 것과 같다. 하루 낮 하루 밤이란 어떤 것인가?
[답] 그 일은 일정하지 않다. 하루 낮 하룻밤이기도 하고 혹은 하루 낮만이기도 하고, 혹은 하룻밤뿐이기도 하고 혹은 반일(半日)이기도 하고, 혹은 반야(半夜)이기도 하다. 따라서 받게 디는 때에 출가한 사람이면 일생동안 지켜야 한다.
만일 “나는 다만 한 달 동안이거나 두 달 동안이다”고 하거나 만일 “일 년 동안뿐이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출가의 법을 얻지 않았다고 한다. 오계(五戒) 또한 그렇다.
[문] 혹시 착한 율의를 얻었다가 도로 그 율의를 헐거나 잃는 것인가?
[답] 잃지 않는다. 다만 착하지 못한 법으로써 그 율의를 더럽힐 뿐이다.
[문] 현재의 중생에게서만 계의 율의를 얻는 것인가? 삼세(三世)의 중생으로부터 얻는 것인가?
[답] 모두 삼세의 중생에게서 얻는다. 마치 사람이 과거의 높은 이에게 공양하여도 역시 복덕이 있는 것처럼 율의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은 동일한 계율의 종류[戒品]이면서 이 계의 율의는 한량이 없다.
마치 한 중생에게서 일곱 가지를 일으킬 수 있는 일과 같다.
탐내지 않는 등의 착한 뿌리로부터 일으키기 때문이며, 또는 상과 중과 하의 마음으로부터 일으키기 때문에 많은 종류가 있다.
한 사람에서와 같이 모든 중생에게도 역시 그와 같아서 생각생각에 언제나 얻게 되므로 한량없다.
[문] 계의 율의는 몇 차례나 받을 수 있는가?
[답] 어떤 사람이 하루 동안의 계를 받으면 바로 첫째의 율의요
바로 그 날에 우바새의 계를 받으면 둘째의 율의요,
그날 바로 출가하여 사미가 되면 셋째의 율의요,
그날 바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으면 넷째의 율의요,
그날 바로 선정을 얻으면 다섯째의 율의요,
바로 그날 무형의 선정[無色定]을 얻으면 여섯째의 율의요,
바로 그날 샘 없음[無漏]을 얻으면 일곱째의 율의다.
이렇게 도과(道果)를 얻음에 따라 다시 율의를 얻되 본래 얻은 율의는 잃지 않으며, 더 나은 것만의 이름을 받을 뿐이다. 이와 같이 하면 복과 덕은 더욱더 불어난다.
이 계율의는 모든 중생에게서 생각생각에 항상 얻어지기 때문에 하루 동안의 계의 율의를 설명하여도 네 가지 큰 보배 갈무리[寶藏]는 그의 16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선(禪)율의와 무루 율의는 마음에 따라서 행해지지만 계의 율의만 마음에 따라 행해지지 않는다.
[문]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선정에 들 때에 선의 율의가 있고 선정에서 나오면 없다고 하는데 그 일은 어떠한가?”
[답] 나거나 들거나 간에 항상 있다. 이 사람은 진실을 얻었으므로 악업을 짓지 않는다.
파계한 사람과는 서로 틀려서 항상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착한 마음이 차차 더 나아지기 때문에 항상 있어야 된다.
[문] 만일 선(禪)으로서 무형[無色] 중에서는 파계의 법이 없다면 무엇과 반대되기에 착한 율의라고 하는가?
[답] 으레 그렇게 되어야 한다. 모든 신선과 성인은 다 착한 율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만일 파계(破戒)와 반대된다 하여 율의가 있다 하면 괴로움을 당할 중생에게 만이 착한 율의를 얻어야 한다는 허물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렇지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