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입향조가 세운 삼수정 인근 낙동강변의 바위절벽. 높고 가파른 이 절벽에는 500여 년 전 애틋한 사연이 묻어
있다. 바로 임진왜란을 맞아 마을로 쳐들어온 왜군들을 피해 두 여인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진 곳이다.
매오 정영후의 아내인 청주 한씨와 그의 시누이인 정소저는 그때 나이 각각 24세와 19세였다. 매오의 여동생,
정소저는 당시 비녀도 꽂지 않은 처녀였다고한다. 왜병의 침입에 항거하여 대동산 밑 절벽 쌍절암에서 낙동강으로
투신하여 순절한 것을 선조 임금께서 들으시고 교지를 내려 종택의 대문 밖에 정려를 짓고 당시 대사성이던 우복
정경세가 그 행적을 비문으로 지어 세운 것이 쌍절각입니다.
두 여인이 몸을 던진 일이 알려지면서 삼수정이 보이는 이 낙동강변 바위는 쌍절암(雙節岩)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매오의 아들 정위는 이후 나무로 된 문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염려해 1619년 대사성인 정경세에게 부탁해
글을 짓고, 경성판관인 조우인에게 글씨를 부탁해 돌로 깎은 비를 세웠다. 이 때부터 마을에 내려오는
비석이 바로 쌍절비이고, 이 비를 둘러싼 누각이 바로 쌍절각이다.
쌍절각은 지금도 마을 앞에서 우망마을의 절개와 선비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마을 앞 동산은 예부터 "청룡등" 또는
"청룡산"이라하며, 용이 낙동강 물을보고 달려가는 형상이라 지리 여건상 보호하는 산이고, 왜가리 떼가 기거하면
우망과 별실 양촌이 부흥하며, 왜가리가 오지 않으면 두 마을이 가난 해 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보호조에 속합니다.
여기 내용은 인터넷에서 발췌한후 정리하였음으로 잘못됨이 있으면 댓글 남겨주세요. 기영석(풍호)
우망마을 앞에 세워진 쌍절각과 쌍절비가 보인다. 담장안 개인집 마당에 세워지고 관리가 좀 허술해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마을 자체에서도 선조들의 남겨진 유일한 문화유산인데 관리를 잘해주었으면 한다. 문화재청에도
얘기를해서 당연히 보호되어야 할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바위에 새겨진 쌍절암 글씨도 함께 알려져기를 바란다.
이번에 바위에 쌍절암이라는 글씨를 발견한 동래정씨의 후손인 각모친구가 끈질기게 험한 절벽을 오르내리며
찾았다고 하기에 함께간 우리 일행은 너무 신기해서 모두가 위험한 절벽을 힘들게 내려가 보았다. 쌍절각은 많이
보고 들었어도 그 누구도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의 쌍절암이라는 글씨는 어디를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각모친구의 도전정신으로 우리일행은 높은 바위에 새겨진 쌍절암이라는 글씨를 직접보고 왔다.
바위에서 강 아래로는 약 100m정도의 수직으로 가파른 절벽이고 바위 위로도 올라 갈수없는 절벽에 쌍절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내가보는 쌍절암 글씨의 넓이는 내눈 높이로 볼때에 가로2m에 새로0.5m는 될거갔다.
오랜세월동안 모진 비 바람에도 남겨진 글씨는 오래됨을 말해주고있다.
수직으로 웅장하게 우뚝선 이 바위에 어떻게 쌍절암이란 글씨를 새겼을까하고 생각도해본다.
함께간 일행들이 모두 내려와 절벽에 붙어자란 나무를 붙잡고 바위의 글씨를 신기하듯 쳐다보고있다.
일행들이 기념으로 바위 앞에 붙어서서 사진을 찍는데 나는 떨어질까봐 나무를 붙잡고 힘들게 한컷을 눌렸다.
나의 옆지기가 찍은 나의 사진이다. 워낙 절벽이라 찍기가 어려워 다리자르고 바위의 쌍절각 글씨는 도망가고없다.
또 한번 더 찍은 사진이다.
모두가 신기해서 앉아 얘기하던중 관세암 주지스님이신 "혜덕" 여스님과 만나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다.
여기가 바로 쌍절암이라고는 한다지만 글씨가 새겨진것은 못보았다고한다. 아래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있다고
문화재의 가치가있으니 잘보라고 했다.
혜덕주지스님 말씀이 매월 첫째주 일요일날엔 10시부터 법회가 있으니 자주오라고한다. "우리산악회"가 풍양면에
있다고하니까 언제든 꼭 올때에 연락주면 점심은 절에서 해준다고한다. 스님의 얼굴엔 선함이 엿보이고 잘 알려
져지않은 관세암에서 살아가시기엔 어렵겠지만 불심으로 사시는거 같았다. 다음에 꼭 가기로했다.
좌로부터 정인혁 윤차순 기연이 혜덕주지스님 구순희 정각모 고숙희의 기념사진이다.
첫댓글 정말 바위에 새겨진 글 유적에 보물이내요..
배경의 사진 잘보고 갑니다요.
이것이 진정한 문화재인데 사람들은 없던것도 꾸며서
문화재로 만드는 세상이 더러웁기까지 합니다.
어제 종중에서 선산 순례중 청주한씨와 처녀산소 즉 정소저의 묘소에서 참배 하고 왔는데
지금 현세대에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맞아요. 아무리 현실의 삶들이 바쁘고 관심없어도 옛것을 지키는것조차
방심한다면 이건 크게 잘못을하는 것이지요. 없는것도 꾸며서 만드는
세상이지만 눈에보이는 것도 버린다면 정말 안타까울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