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어떻게 불속에서 연꽃이 피어날 수 있었으리 (安得花開火裏蓮)
연강演强법사
현공께서 왕생하시기 한 달 쯤 전에 저의 이곳에 약간의 경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화상께서 오시어 저에게 종려나무 포단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3일 째 되는 날, 노화상께서 정말로 고봉사에 오셨습니다. 정오에 이곳에서 공양을 드셨으며, 공양을 드신 후 저는 노화상께 좀 쉬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쉬지 않으시고 곧 바로 다시 차에 올라타고서 떠나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노화상께 종려나무 포단을 하나 장만해드려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노화상께서는 동백산에 가셔서 한 바퀴 돌아보셨으며, 그리고 나서 돌아가신 후 며칠 안 되어 누군가가 저에게 노화상께서 원적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줄 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당시에 저는 마음속으로 몹시 놀랐으며, 저에게 종려나무 포단이 필요하다고 하신 것은 바로 저에게 당신이 앉아서 원적하실 것임을 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미리 알려주신 말씀에 계합한 징조였습니다!
사람들은 노화상께서 어떠한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셨는지를 잘 모를 것입니다! 이전에 연거푸 세 번이나 큰 화재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에도 노화상은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계셨으며, 집은 완전히 불에 타버렸지만, 노화상은 불에 타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다. ― 우리 같은 이러한 범부는 진불眞佛의 오묘함을 결코 알아볼 수 없습니다!
현공은 진실로 일대 고승대덕이라 칭할 만합니다! 제가 노화상을 알게 된 것은 노화상께서 대략 연세가 이미 60세나 70세가 되셨을 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 연세에도 몸은 여전히 매우 건강하셨으며, 매일 언제나 산에 가서 일을 하셨습니다. 현공은 그지없이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언제나 늘 땅을 한 바퀴 돌고 또 도시면서 땅속에 있는 중생들에게 미리 알리시길, “삽과 괭이가 땅속으로 내려가니, 모든 벌레들은 피하십시오. 만약 혹 생명을 다치게 되면 그 즉시 부처님의 땅에 태어나십시오.”(鍬鎬下地, 諸蟲躲避. 若傷性命, 即生佛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후 한 차례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나서야 비로소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생활이 매우 궁핍하고 가난하여 살아가기가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현공은 산위에 땅을 개간하여 고구마를 심고 토란을 심어 이러한 것들을 주식으로 하셨으며, 수행자가 산에 올라오면 노화상은 그들에게 자신이 손수 가꾸신 것들을 나누어 베푸셨습니다. 자신이 먹을 것이 혹 모자라면 약초를 캐어 팔아 약간의 식량과 바꾸셨습니다. 가을에는 산에 올라가 밤을 따 햇볕에 말려 저장해두었다가 드셨습니다.
제가 출가하기 전,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관세음보살님께서 저에게 이르시길, “때가 되었으니, 길을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바로 동백산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생활형편이 좋지 않아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제 마음은 늘 안정할 수 없었으며 여전히 속세를 그리워하고 집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도화동桃花洞에서 우연히 현공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 어르신께서 저에게 약간의 송진, 붉은 설탕 1근, 토란 종자 40근을 주셨습니다. 저는 동백산으로 돌아와 어르신이 주신 그 토란을 심었습니다. 가을이 되어 풍작을 거두었으며, 그 토란의 작황은 그야말로 대단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비로소 마음을 안정하고서 수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공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경작하셨으며, 또 묘목을 재배하여 황폐한 산에 나무를 심으셨고, 삼림을 육성하고 벌채하는 장소인 임장林場에 가서 오동나무 뿌리를 캐다가 산위에 옮겨 심으셨습니다. 동백산에는 현공께서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재배하고 심어 가꾼 나무들이 참으로 그 수량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저 역시 막 산에 올라왔을 때 그 어르신을 따라 함께 아주 많은 수량의 나무들을 심은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현공께서 이르시길, “문덕으로는 중생을 제도하고, 무덕으로는 행을 닦은 것이라네! 자네가 부처가 되고자 하면서 힘을 다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 일하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어디에 이렇게 거저 공짜로 얻는 일이 있겠는가?”(文度眾生武修行啊! 你想成佛你不出力、不勞動、不流汗, 哪有恁便宜的事呢?)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은 낮에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하시고, 저녁에는 부처님께 절하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셨습니다. 이는 당시에 제가 가장 분명하게 잘 아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낮에 일할 때 어찌 몸이 완전히 지치고 피곤해서 머리가 핑핑 돌고 눈이 어질어질할 그러한 정도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저녁에는 또 밤새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부처님께 절을 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또한 어떤 일도 꾸미지 않으셨으며, 어떤 일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공께서는 틀림없이 불보살께서 이 세간에 오셔 응화하신 분이라 단언합니다.
현공이 이번 생 동안 어떤 사람과 무엇을 다투어 얻기 위해 싸움을 일으키신 일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노화상의 이 점은 특히 찬탄할 만하며, 훌륭한 인욕공부이십니다! 한 평생 어떤 사람과도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사이가 벌어진 적이 없으십니다. 현공은 이들은 모두 자신의 세세생생의 부모요, 형제요, 스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이 있거나 수행이 없거나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나 현공이 계신 이곳에 이르면 일체가 모두 좋으며, 또한 남의 좋은 장점도 말하지 않으시고 모자란 단점도 말하지 않으셨으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기뻐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현공은 평소에 어떠한 한담도 하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으며, 서 있거나 걷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언제나 늘 “아미타불”을 부르셨습니다. 현공은 진실로 이러한 경지의 단계에 도달하셨으며, 안으로 마음을 관觀하고, 바깥의 경계를 관觀하지 않는 경계에 이르셨습니다. 한 마디 “아미타불”을 부르는 일을 평생 동안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현공께서는 임종하실 때 몸에 병고가 없으셨으며, 미리 왕생할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아셨으니, 이 얼마나 자유자재합니까! 이것이 바로 후학들에게 직접 몸으로 행하여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며, 후학들로 하여금 모두가 당신이 행하신 본보기를 따라 그대로 따라 수행하여 불과佛果를 증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연강법사께서는 여러 해 동안 풍습병 때문에 다리가 몹시 아파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아예 신발을 벗어던지고서 상관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무쇠다리승려”(鐵腳僧)라는 아름다운 찬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연강법사께서 수지修持하신 공부는 오늘날 이 시대에는 정말로 희유하다고 칭할 수 있으며, 지혜와 변재가 원융하여 걸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입은 종문宗門을 떠나지 않았지만 마침내 교하敎下로 돌아가셨으며, 해解가 있고 행行이 있고, 부처의 지견知見을 갖추셨습니다!
말학은 일찍이 두 차례 고봉산에 올라가 연강법사를 찾아뵈었습니다. 현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어르신은 말씀하시는 동안 내내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셨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말씀하실 때마다 모두 그 말씀이 구정九鼎조차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무게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감격하게 하셨습니다! 그 어르신의 현공에 대한 찬탄은 진실로 마음속 깊이 폐부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글은 그 어르신을 인터뷰한 동영상에 근거하여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그 어르신께서 들려주신 한 구절 한 구절의 그 의미를 차마 망가지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글에 지나치게 많은 수식을 가하지 않아 비록 약간 두서가 없어 보일지라도, 그러나 본래의 의미를 잃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오직 시방의 어진 이들께서 처한 입장을 바꾸어 한 번 생각하고, 인정과 도리를 헤아려 세 번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구정九鼎 고대 중국 하나라 우왕 때, 전국의 아홉 주에서 바친 금으로 만든 솥으로, 이후 대대로 천자에게 보물로 전하였다.
글 속에서 언급한 큰 화재로 현공께서 세 차례 불에 타신 적이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학이 연강법사께 언제 발생했던 일인지 구체적으로 여쭙는 것을 잃어버린 점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공께서 일찍이 말학에게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민국 27년(1938년) 가을, 노화상은 처리하실 일이 있어 고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때 주집가朱集街에 있는 음식점 주인의 사위가 마침 남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처갓집에 겨울옷과 약간의 생활용품들을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현공께서는 출가하시기 전에 이 음식점에서 견습생으로 지낸 적이 있었으며, 그때 그 주인이 현공을 따뜻하게 잘 돌봐주셨기 때문에 현공은 그 주인의 은혜에 늘 감사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출가하셨지만 매번 고향으로 돌아갈 때마다 늘 잊지 않고 이 음식점 주인을 찾아뵈었습니다. 당시에 이 주인 집안에 때마침 일이 있어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현공에게 옷과 물건들을 자신의 사위에게 남양까지 갖다가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현공께서 남양에 도착하신 그날, 때마침 공교롭게도 일본군대가 비행기 40대를 출동시켜 남양성을 폭격하였습니다. 현공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담벼락 모퉁이에 앉아 계속해서 관세음보살님의 성스러운 명호를 불렀습니다. 비행기 일곱 대가 그의 머리 위를 돌면서 번갈아가면서 아래로 폭탄을 떨어뜨렸지만, 노화상은 솜털조차도 다치지 않으셨습니다. ……
제공濟公장로의 전기傳記 《취보리醉菩提》의 첫머리에 절묘한 선시가 한 구절 있습니다.
애욕의 그물을 상관하지 않으면 애욕이 속박하지 않나니, (愛網無關愛不纏)
황금 밭에 갖가지 금단이 있다네. (金田有種種金丹)
선심禪心이 티끌 속에서 깨끗해야, (禪心要在塵中淨)
(주)선심禪心:청정淸淨하고 적정寂靜한 마음
수행한 공부가 끝내 반드시 세상에서 온전하리. (功行終須世上全)
번뇌는 번뇌 사이에서 벗어나고, (煩惱脫於煩惱際)
생사는 생사 사이에서 벗어난다. (死生超出死生間)
불속에서 가지와 잎이 생겨날 수 없다면, (不能火裏生枝葉)
어떻게 불속의 연꽃이 피어날 수 있으랴? (安得花開火裏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