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모든 견해 내려놓으면 그곳이 불국토
번뇌는 본래 허망하여
다만 사라지면 그뿐이지
법이라고 세울 게 없다.
본래 청정해 얻을 게 없음을
무상정등각이라 했다.
중생은 상(相)을 좋아하여
애지중지하는 것울 붙잡아
결코 놓으려 하지 않는다
불국토에 들어가려면
모든 견해를 놓아야 한다.
그것이 그대의 마음을 가로막기 때문에 인과에 얽매여서, 가고 머무름에 자유를 잃게 된다.
깨달음[菩提] 등의 법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토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을 마음에 담아 놓고 추구하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
자기도 모르게 집착하여 국집하게 되고, 국집하면 인과에 구속되어 괴로움이 발생한다.
본래 당처에는 중생은 물론 부처도 없고, 생사는 물론 열반도 없다.
‘있다, 없다’ 하며 분별하는 것은 다만 허물을 짓는 것이지, 실상을 밝히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하는 말도 부득이 해서 하는 것으로, 그 실체는 스스로 체득할 수밖에 없다.
체득한다는 것도 한 번 흘깃 본 것만 가지고는 여기 배휴처럼 힘이 약해서 경계 따라 차별된 모습에 자꾸 달리게 된다.
따라서 한 번 본 후에도 계속 정진하며 세월을 잘 보내야만,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안목을 얻을 수 있다.
여래의 설법은 모두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마치 누런 잎사귀를 돈이라 하여, 우는 아이의 울음을 억지로 그치게 하는 것과 같다.
팔만대장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양한 근기에 응하여 자비심으로 부처니 중생이니, 보리니 열반이니 하며 온갖 말로 설파해 놓으셨다.
이런 방편 설법을 보며 뭔가 반짝했더라도, 그것은 임제스님이 얘기한 삼구법문(三句法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삼구에서 깨치면, 스스로도 제도 못한다.”고 한 것이다.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도록 짐짓 설명해 놓은 것을 이해하여 그 말을 배워 익힌다고 해서, 일구(一句)의 낙처를 알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확 뚫리지는 않는다.
아무리 잘 이해해도, 그것은 생각 속에서 알음알이를 짓는 것이어서 결국 다시 답답해지고 만다.
구름이 걷혀야 청산이 드러나듯이, 알음알이의 밑창이 한 번 확 터져야 한 법도 세울 수 없는 그 자리가 명백히 드러나는 법이다.
조사들이 시설해 놓은 관문인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간명하고 확철하게 전도몽상에서 깨어나는 길이다.
그러므로 실로 법이라 할 것이 없음을 일러 아뇩보리라 하니, 지금 이미 이 뜻을 알았다면 어찌 구구한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다만 인연 따라 묵은 업을 녹일 뿐 다시 새로운 재앙을 짓지 않으면, 마음속은 밝고 또 밝아질 것이다.
번뇌는 본래 허망한 것이어서, 다만 사라지면 그뿐이지 따로 법이라고 세울 게 없다.
번뇌가 없으면 따로 보리라 할 것도 없다.
본래 청정하여 얻을 게 없음을 일러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였다.
이 뜻을 알아듣고 더 이상 부처니 깨달음이니 하는 말에 속지 말고 다만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고 인연 따라 묵은 업을 녹이면서 세월을 잘 보내다보면, 나날이 마음속이 밝아져서 기필코 오늘 보다 나아진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견해를 모두 버려야 한다.
이미 깨달아 있는 우리들의 성품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실을 알아들었으면, 이제는 더 이상 알음알이를 채우려들지 말고 기존에 붙잡고 있던 모든 악지악각(惡知惡覺)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마음 비우고 살면 그것보다 가벼운 게 어디 있겠나?
더 이상 자기가 스스로 머리이면서 밖으로 머리를 찾아 헤매지 말고, 단지 이 마음을 인연 따라 잘 쓰면서 임운등등 자유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유마거사가 말했다.
‘가진 것을 없애 버렸다.’
「법화경」에서 말했다.
‘20년 동안 늘 똥을 치게 하였다.’
중생은 상(相)을 좋아하여 각자 애지중지하는 뭔가를 붙잡고 결코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바로 그것이 냄새나는 똥인 것이다.
장자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으나, 오래 전에 집을 나간 아들은 거지생활을 너무 오래하여 본래 자기 집인 이 부자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중생이 무상(無相)의 본지풍광을 감당할 수 없는 이유는 냄새나는 똥인 상(相)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장자는 거지 아들로 하여금 먼저 변소에서 똥을 치우게 하였다.
그 기간이 무려 20년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오로지 마음속에 지은 바 견해를 없애도록 하라.
또 말씀하시기를, ‘희론(戱論)의 똥을 제거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래장은 본래 스스로 공적(空寂)하여, 한 법도 머물게 하지 않는다.
경에 말씀하셨다.
‘모든 불국토 역시 텅 비어있다.’
가장 냄새나는 똥은 마음속에 지은 견해다.
희론의 똥인 법상(法相)이야말로 제거하기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중생은 그것이 곧 진리인 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고 익혀서 얻은 것은 모두 희론의 똥이다.
진정한 보물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뭔가 밖에서 배우려고 본성의 집을 나가 떠도는 모습이 곧 거지요 외도다.
우리 모두는 본래 장자의 아들로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다.
텅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이 뜻을 알아채야, 비로소 조잡한 외도의 견해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불조께서 한결 같이 이와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을 수용해야 비로소 불법 공부가 바른 방향을 잡고 진행될 수 있다.
실로 이 대목이 바른 공부의 갈림길이다.
유마거사가 분명히 말했다.
“모든 불국토 역시 텅 비어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국토에 들어가려면, 모든 견해를 놓아야 한다.
만일 진정으로 내려놓는다면, 선 자리가 즉각 불국토로 화할 것이다.
■ 수불 스님은…
지명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5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사미계를 1977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1978년 범어사 승가대학 졸업 후 1979~1989년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를 성만했다.
이후 스님은 1989년 안국선원을 개원하고 사단법인 불국토 상임이사, 불교언론문화상 대표 등을 맡고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국제선센터 선원장으로 활동하며 조계종 제14교구본사 범어사 주지이다.
[출처 : 현대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