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1년 2017년 7월 17일 남양주 봉인사의 담마야나 3개월 집중수행중 수행자들에게 오후2시 법문입니다. 사마타 위빠사나 수행에서 수행자의 실천수행과 지혜개발을 설명하고 있어요 물질정신 두가지만 아는 것이 중요한데 그 두가지를 여러 가지 측면으로 알수 있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사마타 수행자는 니미따가 생길때까지 그 수행의 대상 개념화시키고 사마타수행자는 개념으로 가는거에요 처음에는 개념과 궁극적인 실제가 섞여있어요 개념만 알 수 없어요 그래서 호흡을 개념으로 볼려고 해도 궁극적인 실제를 알게되는 것은 사마타 수행자 위빠사나 수행자도 마찬가지 궁극적인 실재를 볼려고 해도 개념이 섞여있는거에요 그런데 갈수록 사마타수행자는 개념이 뚜렷해지고 갈수록 갈수록 물질의 특징들이 모르게되고 마음 정신적으로 보지 않고 알고 있는 호흡이 사라지는 듯 그렇지만 들이쉬는 것 내쉬는 것은 알고 있어요 아주 다 비어있는 속에 들숨날숨과 아는마음을 딱 나누는거지요 사마타수행자는 위빠사나 수행자로서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물질정신 또렷해지고 또 그 물질정신의 뚜렷한 강도가 갈수록 더더 미세하게 갈라지는거지요 물질정신을 알고 물질을 지수화풍으로 먼저알고 그다음에 지수화풍말고도 눈귀코혀몸이런거 다른물질들을 알기시작하는거 소리 형상 냄새 맛 감촉 이런식으로 여러 가지 물질들이 보게되고 그 다음에 정신적으로 알때는 처음에는 간단하게 아는 마음 아는 마음 그런데 아는 마음다음에 여러 가지 수도있고 상도 있고 행도 있고 의식도 있고 그런 것이 수행자가 한꺼번에 다 보는거 아니지만 하루종일 열심히 수행하고 있으면은 아 이번에 이것봤다가 다음에 이런식으로 그래도 하루종일 보다보면은 반복하는 것 엄청나게 많아요 반복해서 보게되는 것 많고 반복해서 봐서도 뚜렷해지고 있지요 상이 올바른 상이 뚜렷해지고 있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상은 신기루같은 상 잘못알고 있는 상들이에요 신기루 같다. 물질정신이 있는데 나이다 너이다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이 그렇게 상을갖고 있는 그런 것 잘못갖고 있는 상 그리고 계속 위빠사나 지혜가 일어날때도 물질을 물질 그대로 지대면 지대에 대한 뚜렷한 상을 가지게 되고 지대는 아 딱딱하네 아 이것이네 다음에 또 딱딱함을 보면은 어 그거 지대네 부드러움을 관찰하게되면은 부드러움 계속반복합니다. 또 오늘봤다가 내일봤다가 모레봤다가 이런식으로 지대에 대한 상이 뚜렷해져요 그것은 올바른 상이에요 그런식으로 보다보면은 올바른 상을 볼때는 중생이 있는 것 아니에요 어떤 인이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런 것이 뚜렷해지는거에요 영원한 것 있는 것 아니에요 자아로 행복한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항상 생기고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것이고 이런상들을 가지게 되는거에요 그런 상들이 삼법인이라고 말하는 무상고무아 무상의 측면이 10가지 고의 측면이 25가지가 있는데 그다음에 무아의 측면이 5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40가지 그래서 수행자가 여러 가지 느끼는 것 틀리는 것 아니에요 나는 무상을 모르는데라고 말하지만 무상의 표현들이 10가지가 있다는 것 알아야됩니다. 나는 고를 잘 모르는데 고가 25가지 무아를 모른다고 해도 무아가 5가지에요 그래서 우리가 정확히 무상고무아를 표현하지 못하지만 무상고무아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보게 되어 있어요 수행중에 물질정신만 보이면은 그것이 보게되어있어요 그래서 물질정신의 이야기를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 칸다 웨까 사야다나웨까 헤나뻰두빠마숫따를 갖고 우리 이야기 하고 있어요 오늘 마지막 부분 윈냐나 이야기 하고 끝나는거지요 윈냐나를 조금 더 설명할려고 해요 독송같이 하면서 부처님 가르침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물질을 보면서 그 물질의 진정한 뭔가가 가질게없는거 아니깐 물거품같다. 지혜가 생길거에요 느낌을 관찰하면서 느낌을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한시간 두시간 행복하고 괴롭고 이런 것 아니라 아주 순간순간적으로 하나하나씩 되고 있는거에요 그렇게 보면서 물풍선같다. 그리고 마리찌우빠마 산냐 상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남자이다 여자이다. 예쁘다 크다 작다 높다 낮다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냥 상뿐이다. 사실은 그 안에 뭔가가 핵이 있는거 아니다. 우리 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 존재하지 않다. 이런말이에요 사실대로 보니깐 신기루같고 멀리에서 볼때는 내가 보이는 것이 뭐가 집같고 절같고 나무같고 사람같고 호수같고 바다같고...그래서 가보니깐 아무것도 없어 상도 그런것같고.파초나무같다
그다음 상카라는 것이 내가 한다. 내가한다. 하는 나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면서 나를 굳게 갖고 있는데 상카라를 계속 관찰해보니깐 마음부수 하나하나씩 마음부수 하나하나씩 그것을 우리가 너무 크게 갖고 있는거에요 마음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생길때마다 우리는 그 마음이 나이고 내마음이고 마음이 나이고 항상 그렇게 굳게 뭔가가 흠이 있는 것 같고 나이라는 어떤 인이 어떤 중생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도 보다보니 마음이 마야 즉 환영, 틀리게 알게끔 아는 마음이 알고 있는것같이 사실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그것이 마야를 말하는거에요 우리 그 마음이 아는거 조금 이야기 하는거에요 마음이 안다. 마음이 안다고 할 때 볼 때 아는 것 들을 때 아는 것 냄새맡을 때 아는 것 맛볼 때 아는 것 그 마음이 안다는 것이 단순하게 눈귀코혀몸의 형상소리냄새맛감촉을 마음이 알 때 어떻게 아는거냐 내가 아는거 아니다라고 이해하기 위해서
아비담마의 측면을 말하면서 형상이 있고 눈이 있고 이거는 큰조건을 말한거에요 다른 조건이 필요있어요 예를들면은 형상이 있습니다. 눈이 있습니다. 다 보이냐 아니에요 빛이 있어야되 완전 깜깜하게 어두우면 눈이 얼마나 좋아도 안보이는거에요 형상이 있어도 눈이 있어도 안보이는 것이 빛이라는 조건이 빠지기 때문이에요 형상도 있어요 눈도 좋아요 빛도 있어요
그런데 마나시까라 라는 주의력! 마음의 보는 형상에 대한 내 마음이 일안할때는 형상도 많이 있고 눈도 있고 빛도 있는데 안보이는 것 엄청나게 많아요 그냥 멍하면서 딴생각하면서 걷고 있어요 맞은편에 누가와서 친구가 있어요 인사하고 있어요 그런 것 몰아요 그런 것 똑같이 형상이 있고 눈이 있고 눈은 메인이 아니지 눈은 빛도 있어요 형상도 있어요 마음이 딴데 팔려있으니깐 안보이는거에요 그것을 마나시까라를 말하는거에요 마나시까라가 일 안하는거에요 마나시까라가 다른 대상을 일하고 있는거지요 형상에서 일 안해 그래서 그런 조건이 여러 가지 있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그런거지요 눈과 형상이 있어요 눈과 형상이 있지않으면은 안식이라는 것이 있을수가 없어요 그래서 눈과 형상 조건 있어야 안식이 생깁니다. 그러면은 내 마음대로 내 마음으로 다 알수 있다는 것이 마음이 나이라는 것 눈이 있었던 없었던 형상이 있든없든 내가 원하는 것 볼수 있어요 그래서 나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내가 본다. 보는 마음이 나이다. 나의 봄이다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데 진짜 보는 것이 나하고 무슨 관계냐 보는과정에서 나라는 것이 진짜 필요하다. 나가 있든 없든 보는거에요 조건이 되면 부처님이 말할수도 없고 신이 말할수도 없고 눈이 있고 형상이 있고 인식과정의 필요한 조건들이 다 뭐하게되면은 보게되는거에요 나하고 아무 관계없는거에요 나는 우리가 그냥 갖다붙이는 것 뿐이지 나라고 해도 그렇게 되고 있고 나라고 안해도 그렇게 되는거에요 해가 나이다 라고 말하면은 내일아침에 내가 해뜰 거야 말하면은 해가 뜨는거에요 그러면은 우리는 내 나름대로 착각할수 있지요 그런데 내가 해이라고 말안해도 뜰거고 말해도 뜰거에요 해는 해의일을 하고 있는거에요 물질은 물질일을 하고 정신은 정신일을 하고 우리는 갖다붙이는거에요 물질을 나로 갖다붙이고 정신을 나로 갖다 붙이고 그 갖다 붙이는 것을 사견으로 말해요 분명히 이런 것은 물질정신인데 그 있는 물질정신에서 없는 나가 생기는 것을 사견이 생긴다고 말해요 부처님말씀으로 사까야디티 사 분명히 있는 까야 물질정신의 몸에서 디티 사견이 생기는 것 해가뜨고 달이 뜨고 이런것과 똑같이 계절이 변하고 이런 것 같이 마음도 마음의 법칙대로 해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갖고 나로 생각해 내 마음 나 마음이 나 나의 혼 영혼이다. 이렇게 생각해 그런데 보는 것 보면은 이다사띠 이다호띠 이다오비자띠 이것이 있으면은 이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니깐 그것이 생겨났다. 짜콩짜 루삐짜 빠띠짜 짜꾸 윈냐나 부처님그렇게 말해요 짜꽁짜 눈을 빠띠짜 인해서 루뻬짜 형상을 빠띠짜 인해서 오비짜띠 짜꾸 윈냐나 짜꾸 윈냐나 안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도 필요없고 너도 필요없고 하나님도 필요없고 부처님도 필요없고 그냥 이 법들이 조건이 되면은 하는거고 마음이 생겨났다는 것이 그런거 대상이 있고 감각기관이 있으면은 최하 또하면은 빛이 있으면은 이런거지요 마음이 마나시까라 일어나는거 촉이되면 보게되는거 그런데 그런 사사로운 것 빼고 이 작은 것 빼고 큰것만 말하면은 눈 형상 있으면은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보는거지요 그러면은 눈과 형상이 있는데 그냥 생기냐 아니고 파싸 접촉이 있는거에요 마음이 가서 만나는거에요 그래서 안식이라는 마음이 일어날려면은 정신적으로 파싸이라는 촉이 필요있어요 이 촉이 안식과 같이 생기면서 눈과 형상과 마음과 만남을 해 그거 촉으로 말해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 그거에요 보는마음이 생긴다고 할 때 보는마음과 같이 일하는 촉이 있어요 아니면 보는 마음이라는 것이 보는 일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는 마음이 보는 일을 할 때 마음은 단독적으로 볼수 있는 것 아니라 마음과 같이 생기는 촉이라는 것이 일해 그것이 만남입니다. 눈과 형상과 마음의 만남
그 다음에 느낌이 있어요 그 만나는 순간 그 형상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느껴지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덤덤한 느낌이나 그 느낌이 있다고 말해요 그리고 그 보는 순간 기억해 보는 것을 그것이 김누구이다. 이누구이다 이런 기억도 있지만 첫단계 초창기에는 처음 생기는 마음에는 그런 단계가 아니에요 그냥 있는그대로 기억하는거에요 사진찍듯이 있는그대로 기억합니다. 등록하는 듯이 그 상도 있어요 그래서 수상 촉수상
그 다음에 의도가 있어요 마나시까라가 있어요 의도는 볼려고 함이죠 볼려고 함이 있고 그리고 마음에서 일해주는것도 마나시까라고 말해요 일해내는거에요 보는일을 해내는 것이 마나시까라에요
그 다음에 정신과정들의 생명체가 있어요 그래서 파싸 웨다나 산냐 집중 순간적이라도 일초보면 일초는 집중되는거에요 그것을 에까까따 집중을 말해요
그래서 파싸 웨다나 산냐 에까까따 쩨따나 지위따 인드리아 마나시까라 이 7가지가 일해야 우리 보는 마음이라는 것이 되는거에요 본다라는 것이 아주 단순하게 우리가 생각하지만 최하 지금 우리가 보는 단계가 안나왔어요 그냥 형상을 인식하는 정도만해도 7가지가 일해야되 해보세요 파싸 촉 웨다나 수 산냐 상 찌따나 의도 에까까따 집중 지위떼인드리아 생명 마나시까라 마음에서 주의를 번역하기도 하고 아비담마 길라잡이 책에는 마음의 잡도리함 이렇게도 번역되어 있어요 지금또 새로 번역하나 했다고 해요 기억안나죠 마나시까라 단어 그대로는 마음의 함 마음이 보는 일을 마음이 내키는거지요 우리가 마음이 내키다 안내킨다.이런표현이 있어요 한국말로 마음이 내킨다 안내킨다. 내 마음이 내킨다. 안내키면은 안보는거지요 마음이 내키니깐 보는거구 그거를 마나시카라고 말합니다. 주의를 말할때는 다른 단어들하고 헷갈려요 사띠도 주의로 번역해요 그래서 그런 면도 없지는 않아요 주의라는 면도 없지 않아요 그렇지만 주의를 다른 단어로 번역할려고 하니깐 또 조금 안맞고 그러면은 마나시까라가 마음이 일을 해냈다고 할 때 볼 때 보는일을 마음이 해냈다 이런 이야기지요 소리들을 때 소리 듣는일을 마음이 해냈는거지요 그런 것 있어야되요 그런 것 있지 않으면은 형상이 있어도 눈이 있어도 빛이 있어도 안보여요 마나시까라가 없으면은 안보이는거지요 마음에서 그 대상을 인식할려고 하는거지요 마음을 인식할려고 하는 것이 마나시까라 그래서 마음하나 생기는 것 보니깐 뭐가 분명해지냐면은 상카라 상카라라는 것이 모든 것이 조건따라 그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조건이 있어요 결과하나가 생길려면은 원인이 여러개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자주말하는데 밥을 할때도 생각해보면은 쌀이 있어야되고 불이 있어야되고 밥솥이 있어야되고 시간도 필요하고 그런 것 다 밥하는사람이 있어야되고 그런 여러 가지 조건이 모아야 밥이 될까 말까에요 이런 것 말합니다. 우리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래요 모든 우리의 몸의 물질하나도 마음하나도 그런 것 다 상카라를 말해요 이 상카라가 자주 말하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색수상행식에 말하는 것 행도 상카라에요 지금 말하는것도 상카라 근데 색수상행식할때는 오로지 마음부수 50개만 말합니다. 그거는 업짓는 행동을 말하고 싶은거에요 뭐하는 행을 말하는거에요 여기는 마음부수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정신을 말하는거에요 상카라가 상카라 단어가 두가지 이해해야되요 하나는 업을 말합니다. 업행 뭐를 해내는 의도로 으뜸으로 하는 업행을 말합니다. 그거는 의도이고 업이고 의도와 같이 50가지 마음부수를 말하고 있는거에요 그거는 색수상행식 여기 이 상카라는 행으로 번역하지 않아요 이 상카라는 조건지워진 법들을 말해요 그 조건지워진 법들을 말할때도 물질정신 다 들어가요 50개 마음부수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 모든 정신 모든 마음부수가 조건따라 일어나 사라지는 법들이에요 그런 상카라가 있어요 그래서 마음하나 생길때도 그렇게 단순한 마음이에요 봄 보는 마음 안식이 제일 단순해요 그런 7가지 마음부수가 빠짐없이 일해줘야 안식이 형상을 알아요 아니면 안식이 형상을 몰라요 파싸없이 안식이 있어도 형상이 있어도 눈이 있어도 안보여요 파싸가 접촉이 되어야되요 느낌이 없어도 안되고 상이 없어도 안되고 그 집중이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형상에서 머무름이 없으면은 또 인식과정이 제대로 안되요 그리고 마나시카라가 없어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마음이 그것을 인식하지 않아도 몰라요 그래서 안식하나 생겨도 그런거에요 그런데 그 안식이 그렇게 일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서 내가 봤다 내 마음대로 볼수 있고 내가 보기 싫으면은 안보고 보고 싶으면은 보고 다 내 뜻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것을 수행하면서 우리가 알려고 하는거지요 수행은 그거 알려고 하는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머리로 생각해서 찾아낼수 없어요 볼수 있는 눈을 만들어야해요 볼수 있는 눈이 어디에서 나와요? 마음의 청정함에서 나와요 마음이 청정할려면은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게 계속 관찰하고 있어야되요 그래서 관찰하고 있는거에요 맨날 관찰하고 있으면은 번뇌가 안일어나니깐 번뇌가 들어올수 있는 틈이 안생기니깐 마음이 차차차차 청정해 지는거에요 하루하루가 불선업이 없어지고 선업이 많아지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깨끗해지니깐 마음이 편해지면서 차분해지면서 고요해지면서 평화로워지면서 집중이 되는거에요 집중되니깐 보이는거에요 지금 부처님말씀하는대로 볼때도 여러 가지 일 같이하면서 보고 소리들을때도 여러 가지 일 하면서 듣고 냄새맡을때도 여러 가지 일 하면서 냄새맡고 그래서 뭔가 우리의 삶의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내것을 내소유를 내 소유권을 갖고 내가 마음대로 쓰는 것 같이 착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 물질정신들이 법칙이 있고 조건대로 생기고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눈에서 안식이 그렇게 되어서 보는거에요 이식도 마찬가지에요 소리를 들을때도 똑같아요 7가지 마음부수와 마음 하나 총 8개 같이 일해요 그래야 소리를 듣게되요 들어도 지금처럼 법문 나를 욕하고 있다 칭찬하고 있다 이런 것 몰라요 그냥 소리만 알고 있는거에요 소리만 알고 두 번째 단계는 의식이 해줘야되요 지금 말하고 있는 색수상행식중에 의식을 말하면은 마지막 6번째 마음 의문에 생기는 의식이 그것을 기억하는거에요 그 소리를 그대로 기억해서 가져가요 기억해서 가져가면은 어떻게 가져가냐니깐 삼빠띠쟈나 받아들이는 것 귀에 들리는 소리를 마음에서 받아들이고 산띠라나 조사하고 그 다음에 웃따빠나 결정하고 이런일을 한다. 그것이 무슨말이냐면은 그 소리를 듣고 원래 있었던 지식과 합해서 다시 생각하는거에요 그 과정을 해 그 과정을 하니깐 여러분들도 소리를 통해서 어릴때부터 한국어를 여러분들이 어릴때부터 차차차차 해왔기 때문에 그 과정을 하는거에요 지금 제가 하는 말을 소리대로 듣고 귀는 소리를 듣는거에요 그것을 마음이 기억하면서 어릴때부터 내가 익혀왔던 한국어로 한국사람이니깐 그렇죠 만약에 영어로 하면은 모르죠 일어로 하면은 모르게 되는거에요 왜? 내가 그 어를 모르니깐 그냥 소리가 소리일 뿐이지요 우리가 모르는 언어로 말하면은 그냥 소리밖에 모르쟎아요 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요 뜻을 몰라요 그거 왜에요? 소리는 귀로 들릴수 있는데 이 두 번째 의식을 넘어가서 내가 처음부터 갖고 있는 지식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거에요 그래서 원래 있는 지식으로 마음에 가져가서 계속 해 해석이 하나도 한번해야되. 마음이 얼마나 빠른지 생각해봐 우리는 그거를 동시에 일어났다고 이해해버렸쟎아 그런데 안에서는 마음은 단어하나에 뜻하나에 마음과정하나 이렇게 해야되. 첫째단계는 그냥 기억하는 것 뿐이에요 귀에서 마음과정 소리듣는 마음과정 하나 끝나고 여기서 넘어와서 그 소리를 기억하든 마음과정하나 끝나고 두 번째 기억하던 것을 원래 있던 지식으로 통역해서 번역해서 의미를알아요 거기서 모양이나 이름이나 이런거 나타나는거에요 모양 이름 이런거는 네 번째 마음과정에 알아요 그래서 이 단어들도 해석할때마다 마음과정하나 필요있어요 해석할때마다 그렇게 말하면은 해석이라는것에 대한 마음과정을 이해해야되요 마다에 대한 마음과정 하나 이해해야되요 얼마나 빠른지 생각해보면은 우리는 해석할때마다 이렇게 이해해야되요 그런데 마음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 마음속에 내가 어디에 있냐 이런거지요 계속 생기고 사라지고 일하면 생기고 사라지고 그 순간만 자기의 역할을 해 그 순간이 지나가면은 없어졌어요
그러니깐 우리가 기타칠 때 기타안에 소리가 있는거 아니고 기타줄에 소리가 있는거 아니고 손에도 소리가 있는거 아니고 치는거할 때 조건이 손도 있어야되고 기타줄도 있어야되고 기타몸도 있어야되고 거기서 소리가 나요 근데 손을 대는순간 소리가 없어졌어요 그러면은 소리가 미리있는거 아닐꺼에요 미리와있는거 아니에요 또 다음에 숨어 기다리는거 아니고 이 조건이 있을때만 있다가 사라지는거에요
지금처럼 그 소리처럼 마음도그래요 조건이 될 때 생겼다가 사라지고 생겼다가 사라지니깐 그 마음들이 하나하나가 완전히 다른거에요 보는 마음이 듣는 마음이 아니고 듣는 마음이 냄새맡는 마음이 아니고 화나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마음이 아니고 욕심부리는 마음이 질투하는 마음이 아니고 이런식으로 마음들이 계속 관찰할때마다 마음하나가 뚜렷히 끝나고 또 새로운 마음하나가 일어나고 이런거를 수행자가 보면서 이런거 모를 때 우리가 마야 이 마음이 보여주는대로 알아버리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 하는데 이런거 아니깐 다 하기는 그래요 다 이 마음이 우리를 시키는대로 하기는 조금 그렇다고 스스로 지혜로와지는거지요 그래서 이 수행함으로써 우리가 지혜가 생길 때 우리 일상생활이 어떻게 변하냐 이 마음이건 물질이건 상이건 수이건 우리가 너무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거지요
이런거 다 의미두고 있으면은 우리는 진짜 정신없이 살게되지요 그래서 어떤 장단에 춤을 춰야될지 모른데 어떤 북에 북치는것이 이쪽에는 어떻게 치고 저쪽에는 어떻게 치라는 것이 리듬이 안맞는거지요 그런것같이 우리의 마음도 이렇게 갔다가 저렇게 갔다가 따라가고 있으면은 정신없는 자 정신병자 될 수밖에 없는거에요
수행하면서 이런거 알면은 색이건 수이건 상이건 행이건 식이건 우리는 지혜롭게 바라보게 되는거에요 너무 의미를 크게 두지 않고 그 의미두는 것이 나한테 고통오는 것으로 알게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이 몸과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하는일 외에는 그냥 여기서 휩쓸러가지 않고 시달리지 않는거지요 그것이 왜 그러냐? 아상을 내릴수 있기 때문에 이 물질정신을 너무 나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그런 생활이 차차차차 가능해지는것이죠 그래서 부처님가르침에 위빠사나 수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해야되요 대충들어보면은 진짜 부정적이고 그런 것 하면서 뭐하는지 모르고 그런거 하면서 우리들마음 그렇게 되는거에요 일상생활에서 이기적인 마음들이 아상들이 많이 내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이 행복하게 되는거에요 행복하지 못한 것의 이유는 그런 것 모르기 때문에 수는 수대로 상은 상대로 식은 식대로 색은 색대로 따라서 계속 요동치고 있으니깐 정신돌았는 사람같이 그 사람과 별로 우리도 차이가 없이 살고 있는거지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밖에 없는거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이 오온에 대한 했던 이야기 하나를 이어서 할려고 해요 똑같은 이 책에 칸다 살라다 웨까 똑같은 이 쌍윳따 니까야 쌍윳따 니까야의 앗사다 숫따라는 것이 있어요 앗사다 부처님이 부처님의 자격 내가 이것을 모르기 전에 나가 부처이다라는 말을 안했어 이것을 알고 내가 부처이다고 말했다고 할 때 그거 되게 중요하지요 부처님의 자격을 말할수 있는거지요 나는 이것을 모르기 전에 나는 부처이라고 말을 안했어 나는 이것을 알고나서야 나는 부처라는 말을 했어 왜 안했냐 내가 말해도 모르면서 내가 부처이다로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거 뻔할 거야 이런말이 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신들이 있다. 범천들이 있다. 초전법륜경에도 똑같이 말하는거지요 초전법륜경에도 그런말이 나와요 사데로끼 로께사 사사나나 마눗까야 이 세상에 지혜로운 자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학자들이 있고 신들이 있고 범천들이 있는데 내가 이런 것을 모르고서 내가 부처라고 말안했어 알고나서 내가 부처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할 때 여기도 그런이야기를 해요 사왓티에 계실 때 부처님께서 말씀 하는데 고누꼬 루빠사 아사 꼬 아디노 께 네사라나 물질의 아사가 물질의 대한 아사가 아사다는 즐거움 물질에 대한 쉽게말하면은 한국말로 쉽게말하면은 좋은 점이 뭐냐 이런거지요 물질의 좋은거 뭐가 좋은거냐 그리고 오 아디노오 물질의 안좋은 점이 뭐냐 그리고 께메사라나 그 물질에서 벗어나는거 자유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식으로 부처님이 세가지를 비구들에게 물어봐요 똑같이 물어봐요 색수상행식 5가지를 물어봐요 그러면은 루빠 색온에 대한 좋은 점이 뭐냐 나쁜점이 뭐냐 그 색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네사라나 자유로워지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물어봐요 그러면은 수 느낌의 좋은 점이 뭐냐 안좋은 점이 뭐냐 그 느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수행하면서 오온을 알게될꺼에요 오온을 아는데 어떻게 알아야되냐 왜 알아야하냐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어서 이 경전을 말하고 있는거에요 우리가 지금 오온이야기를 했어서 오온을 알 때 어떻게 아는 것이 맞는거냐 왜 그렇게 알아야하는가 이 경전과 관련되어 있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 경전을 갖고 이야기 하고 있는거에요 웨다나야 아사도 고아디노오께 께네사라나 웨다나 느낌도 마찬가지 느낌의 좋은 점 나쁜점 느낌에서 자유로워지는 벗어나는 것 뭐냐 똑같이 산냐 꼬 산냐냐 앗사도 고아디노오께 께네사라나 똑같이 행 꼬 상카라나 앗사도 꼬 아디노오께 네사라낭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식온 꼬 윈냐나사 앗사도 고아디노오께 께네사라나 그렇게 물어보면서 대답을 부처님이 해주는데
양코루빵 빠띠짜 우뻬짜띠 소카 소마나상 아양루빠사 앗사도
양코루빵 어떤물질을 빠띠짜 인해서 우베짜띠 숫카 소마나상 행복감이 일어날때가 있고 소마나상 즐거움이 일어날때가 있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 이거는 단순하게 말하는데 우리도 보면서 그 형상을 통해서 행복하고 즐거움이 있어요 듣고 행복하고 즐거움이 있어요 다 이런거는 물질의 아사다라고 할수 있다. 물질이 있으니깐 우리가 그런거 행복하고 즐겁고 있을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물질의 아사다라고 할수 있다라고 말해요 아사다라는 것이 거기에서 욕심낼수 있는점을 말합니다. 욕심낼수 있는점 아사다 즐거운곳 그래서 수카 소마나사 루빠 빠띠짜 우삐짜띠 수카 소마나사 루빠 물질을 빠띠짜 인해서 숫카 소마나상 행복과 즐거움이 생겼다. 그것이 물질의 아사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 관찰하면서 형상을 통해서 내가 행복해지고 즐거워지고 또 몸에도 예를들면은 날씨가 더운데 바람이 불었어요 시원해지니깐 그런 쾌감 그거는 숫카를 말합니다. 마음이 좋으면은 즐거우면 즐거움 소마나사 몸의 행복이 수카 마음의 행복이 소마나사 이런식으로 두가지를 말합니다. 몸과 마음을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물질이 물질의 아사다다 그리고 두 번째 양 루빵 아네짠 두캉 위빠리나마 담마 양 루빵 그 물질이 아네짠 무상하고 두캉 고통스럽고 좋지 않고 위빠리나마 담망 변질되고 있다. 변심되고 있다. 망가지고 있다. 그것이 아야루빠사 아디노 안좋은 점이다. 만약에 이 물질을 우리한테 아사다만 주겠다면은 물질이 부처님이 안좋다고 말하지 않을거에요 그런데 물질의 안좋은 점이 뭐냐면 아디노와 아디노와는 그 사람의 안좋은 점을 보는거지요 죄를 찾는거지요 잘못한 것 보는거지요 잘못한 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잘못했다. 아니짜 물질이 무상해 무상하기 때문에 그 물질이 잘못했어 그 물질이 두카 고통스러워요 그래서 잘못해 좋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물질이 위뿌리나 마따나 변하고 있다 변질되고 있다. 안좋게 변해가고 있다. 위뿌리나 담망이다 그것이 아디노아 그 수행을 어떻게 해야하나 말하고 있는거에요 우리가 물질을 알면은 아사다도 알아야되 아디노아도 알아야되 아사다만 알면은 우리는 계속 욕심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아디노아만 알아도 우리는 그냥 화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아사다와 아디노아를 아니깐 판단이 좋아지는거에요 아사다 좋은것도있지만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거 아니다. 물질정신에 대한 아사다 아디노아 좋은점 안좋은점 그것이 수행하면서 우리가 알게되는거에요 오온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좋은점을 알고 그 좋은점 때문에 우리가 욕심내고 있는 것을 알아야되 안좋은 점을 알아야되 안좋다는 것이 아파서 안좋은거 아니고 찔려서 안좋은거 아니고 내뜻되로 안되서 안좋은거 아니고 진짜 안좋은 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리고 위뿌리나마 담마 변질되고 있기 때문에 안좋은거다. 물질의 그점을 계속 보면은 아디노와 네비다 아디노아가 안좋은점을 보는거에요 네비다는 지루해지는거에요 아디노와점이 우리 위빠사나의 수행의 힘이에요 네사라나는 뭐냐 네사라나는 아야 예루빠 삼메 삼빠라자 위네요 산따 라가 마하나 이당 루빠사 네사라낭 이당 이것이 루빠사 물질의 네사라낭 물질의 벗어남이다.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거 뭐냐 ? 요루빠 사메 그 물질 어떤 어떤 물질의 챤다라가 위네요 챤다라가 위네요 챤다 열의 원함과 라가 갈애탐욕을 위네요 버리는 것 찬다 라가 재고하는 것이 네사라낭이다. 그래서 물질의 아사다도 알고 물질에 대한 아디노와를 알면서 욕심안낼 때 욕심 안내면서 물질을 알수 있을 때 벗어나는거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은 예를들면은 형상을 보고 우리가 아사다만 알면은 욕심난다. 안좋은 쪽만 보면은 화난다. 그렇지만 아사다를 알고 그리고 아디노와를 알고 그러면은 욕심 안낼수 있다. 그 욕심 안낼 때 그 형상에서 나는벗어났다. 소리라면은 그 소리에서 나는 자유로워졌다.그 소리 때문에 내가 화나고 짜증스럽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 소리 때문에 내가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삿된음행하고 이런 일들이 없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해탈을 말하는겁니다. 그런 것 다 모아질 때 모든 것에서 벗어난다. 색수상행식에서 아에벗어난다. 수행자들이 수행하다가 수행하다가 그런순간이 와요 화도 그냥 보는 것 뿐이지 그 형상과 내용이 있지 않아요 그 형상과 얽히 섥히 하지 않아요 그냥 보는것뿐으로 끝나는 것 뿐이에요 그러면은 챤댜라가 거기에대한 뭔가가 내가 욕심내고 갈애취착을 갖고 일이 벌어지는 것 없어졌어요 내가 보기는 봤어요 끝났어요 근데 처음에 나는 봤다가 어떤 어떤일을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마음의 일이 벌어지고 입의 일이 벌어지고 몸의 일이 벌어지고 그것이 하루로 끝나는거 아니고 몇일 가지도 하고 몇 개월 가기도 하고 평생따라오기도 하고 그러면은 보는고통에서 남자여자 만나서 결혼해봤다고 해봐요 평생가는거지요 그런 것 보는 것 하나 보는 것 보는 것으로 끝났다면 아무문제없어지는거에요 일이 안벌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걸 쉽게 말하면은 그런 이야기를 말합니다. 소리를 통해서 이 소리 때문에 두 사람이 원수가 되고 있어요 말한마디에서 그런데 그 소리를 그냥 듣기만 하면은 무슨 뜻이냐 자유로워지는거에요 그 소리를 듣기는 들었어 그런데 내가 거기서 개입하지 않았어요 내가 거기서 관계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은 소리는 없는것과 똑같아요 내가 안들었던 소리와 똑같아 되버렸어요 그런데 그거 쉽지 않다. 그런 소리하나 때문에 서로 죽이기도 하고 전쟁하기도 해요 말한마디로 나라두개 두 나라가 전쟁나기도 해요 그런거 우리가 비교로 생각해보면은 위빠사나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수 있어요 보면 보는거로 끝나는 것 듣고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 그것을 부처님이 네사라나 냄새맡으면은 냄새 하나에서 열가지 일이 생길수 있어요 내가 챙길수 있으면은 그거 모든일들이 일어날들이 없어요 그거 안일어날 일들이 나에게 고통으로 오는거에요 일어날 일들이 나한테 고통으로 갖고오는거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생각해봐요 내가 지금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어디에서 보면서 시작해서 들으면서 시작해서 냄새맡으면서 시작해서 맛보면서 시작해서 감촉에서 시작해서 마음에서 생각해서 시작해서 어디서 시작했던거에요 그런데 꼭 시작안해도 되는일이 되게 많아요 우리는 뭐가 뭔지 모르게 복잡하게 다 따라하고 있는거에요 그것이 이 아사다숫따를 이해하면은 위빠사나 수행의 가치를 이해할수 있어요 세가지 말했어요 부처님께서 해봐요 앗사다 아디나와 네사라나 그래서 오온을 가지고 똑같이 말해요 느낌의 앗사다가 뭔가? 느낌의 아디노와가 뭔가? 느낌의 네사라나가 뭐냐? 다 똑같아요 느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때도 있고 즐겁게 할때도 있다. 그것이 느낌의 앗사다이다. 그것만 알면 우리는 욕심부리고 죽었다가 다음생에 태어나면은 욕심부릴수가 없다. 그리고 앗사다의 반대 즐겁지 않는거 고통스러운것만 보면은 우리는 화나면서 빨리 끝나면은 좋겠다 이런식으로 단견적으로 가거나 좋다 앗사다만 보면은 상견쪽으로 가거나 상견 단견밖에 모르는거에요 앗사다만 알면은 그런데 앗사다를 넘어서 아디노와 진짜 이 느낌의 문제가 뭐냐 느낌의 문제는 그거다 무상하고 그리고 변질되고 있고 그래서 아니짜 두까 윗뿌리나와 담마 그 세가지가 아니노와이다. 그것 어떻게 아느냐 위빠사나 지혜로 아는거에요 위빠사나 지혜라면 두가지 다알아요 앗사다를 많이 알아요 앗사다를 통해서 욕심부리는 것을 알아요 앗사다를 잃어버릴 때 화나는 것 알아요 욕심부리고 화나고 욕심부리고 화나고 처음에는 욕심부리는고 화나는거 보고 욕심부리게 하는 아사다 화나게 하는 아사다를 보고 그 다음에 아사다를 아는거지요 계속보다보면은 아사다를 넘어서 아디노와를 알아요 아디노와를 계속보다 보니깐 이 형상에 대한 우리가 챤다라가 보고싶고 보는 것을 가지고 싶고 이런 쪽으로 넘어가지 않는거에요 그거를 산다라가 빠하나 찬다라가를 제압했다. 버렸다. 찬다라가 위네야 챤다라가를 교육시키다. 쓸데없이 계속 원하고 원하고 가지고 싶고 뭐하고 싶고 고싶은 병을 위네야를 피하고 멀리하고 교육시키고 그런의미들이 있어요 그래서 찬다라가 위네야 챤다라가 빠하나 그것이 네싸라나이다. 사성제를 말하면은 집성제를 버린다고 말합니다. 집성제를 버린다. 집성제를 어떻게 버려요? 아디노와 고성제를 아는거에요 아디노와 고성제를 알고 고성제를 아니깐 욕심이 떨어지는거에요 정이 떨어졌어요 정이 떨어지니깐 가지고 싶지 않는거에요 정이 떨어지는 것이 벗어나는거에요 그래서 남자여자 같이 산다면은 남자여자 서로 둘사이에 가두어 놓는것과 같아요 그러면은 남자여자 서로 정이 떨어졌어 헤어지지 않아 어떻게되요? 서로 자유를 주는거지요 네사라나 그래서 쉬운 예를 말하면은 자유가 됐다 그러면은 대상도 마찬가지 대상하나에 우리가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은 나는 그 대상의 교도소에 갖혀있는거에요 대상에 욕심이 없어지는 순간 그 대상의 교도소에서 나오게 됐어요 그것이 네사라나의 의미 모든 것에 욕심이 없어졌다면 해탈이지요 해탈의 의미가 그래서 앗사다숫따의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해봐요 앗사다숫따의 고누코 루빠사앗사도 고아디노오 께인메사라낭 양코루빵 빠띠짜 웃빠짜띠 수캉 소마나상 아야루빠사 아사도 야루빵 아네짜 두캉 위빠리나마 담망 아야루빠사 아비노 요루빠삼메 챤다라가 위네요 챤다라가 따하낭 이당 루빠사 네사라낭 부처님말씀 우리가 한번 새겨보는거지요 그런데 핵심은 아사다 아비노와 네사라낭 그러면은 우리가 수행을 어떻게 해야하나 왜 해야하나 이런 것이 이 단어 세가지를 우리가 알수 있어요 수행을 어떻게 해야되나 우리는 앗사다 아디노와를 알게끔 해야되요 앗사다를 알아야되 아디노와를 알아야되 그래서 이 물질에서 우리가 왜 당하고 있느냐 앗사다 때문에 당하고 있는거에요 물질에서 벗어나려면 그 아디노아를 알아야되요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이 앗사다 때문에 당하고 있는거에요 그 물질에서 벗어나려면 아디노아를 알아야되요 당하는 원인을 알아야 벗어날 수 있지요 앗사다를 관찰할때마다 우리가 욕심에 빠질때마다 다음에는 앗사다를 알거에요 좋아하니깐 우리가 집중에 빠질때도 마찬가지에요 집중을 좋아하쟎아 집중이 고요하고 행복하니깐 집중을 좋아하는거에요 이런 것이 앗사다 그 앗사다에서 빠지는 일을 알고 계속 관찰하고 있는 아니짜 무상 두캉 고 위뿌리나마 계속 변질되고 있고 그런거 보면서 아디노와 아무것도 아니고 의지할만한 것이 아닌데 그렇게 좋은거 아닌데 계속 정이 떨어지고 있는거에요 아디노와 그러면은 마지막에는 챤다라가 위네요 챤다라가 바하나 챤다라가 거기에 대한 애착 집착 욕심을 버리게된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 5가지를 다 그렇게 말하는게 끝에는 이런말을 하는거에요 야와끼와짜와 비쿠에 이메상 빤쨔낭 우빠낭 넥칸다낭 네와 아사단짜 아사닷또 아딧노와 짜 아디노와 또 네사랑낭짜 네사랑또야 야타붓따 낫떼냥 네와따와 비카웨 사데와떼 로께 사데와떼 사 빠마떼 사사라마 빠마니야 아비쟈야 사데와 마누사야 아눗따라 삼마삼보디 아비삼부또띠 빠쨔냐세 이 오온에서 내가 앗상따 아디노와 네사라나를 모를 때 나는 나를 부처이다고 말안했어 그 다음에 야도짜 비쿠웨 이메상 빤쨔낭 우빠낭 아베카낭 에와 앗사랑짜 아사랑도 아디노와 짜 아디노와또 네사라랑짜 네사라또 야타부탕 압빠나 야타부땅 있는 사실 그대로 아베냐세 내가 알았어 깨달았다는 것을 말하지요 바다하 그때가야 그때되야 비쿠웨 사데와떼 로께 사마라떼 사브라마떼 사사마낭 브라마니야 빠자야 사데와 마눗사야 아눗따라 삼마삼보띠 아비삼보띠 빠쨔냐세 그때 가서 내가 부처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온의 이 세가지를 모르고 부처가 되지 않다. 그래서 오온 물질정신을 오온이라고 해도 되고 물질정신 똑같아요 물질정신 오온에서 우리가 아사다 아디노와를 알려고 수행하고 있다. 아사다 아디노와를 알면은 우리는 잘나가다가도 버릴수 있을거고 그러면 우리는 버릴수 있으면은 우리는 자비로와질꺼다. 그렇게 부처님의 경험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알수 있어요 냐냥짜 닷사나 우다빠디 빠꼬빠 메 위뭇띠 야만띠와 쟈띠 마자띠 낫티 다니 우나 도띠 이제 다시 마지막 생이다. 마지막 태어남이다. 낫티 다니 우나 도띠 이제 다시 다음생이라는 것 없다. 이 세가지를 알면서 부처님이 내가 부처이고 다음생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하루종일 물질정신을 팔정도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 가셨던 길이다. 이 물질정신에서 우리가 수행의 잘못다른 목표를 두고 수행하지 말고 물질정신을 알고 물질정신의 앗사다라을 알고 앗사다라를 어떻게 아느냐 내가 좋아할때마다 알아야되 좋아할때마다 앗사다라가 있어서 좋아하는거에요 보는 것 좋아하고 듣는 것 좋아하고 냄새맡는 것 좋아하고 맛보고 좋아하고 먹고 좋아하고 자고 좋아하고 그 느낌에 우리가 앗사다 당하고 있는거에요 불빛에 보면은 벌레처럼 당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알고 그다음에 아디노와를 알고 아디노와를 어떻게 알아요? 계속 관찰해서 아는거지요 계속 생기고 사라지고 계속 생기고 사라지고 그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계속보면은 아디노와 다음에 네비다가 되는거지요 그다음에 챤다라가 빠하나 욕심을 버릴수 있는 것 욕심버리는 것 따로 없어요 내가 아디노아를 알면은 바로 챤다라가 위떼히나 가 되는거에요 수행하면서 내가 처음에 내가 너무 좋아했던 것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많이 느껴질꺼에요 처음에는 내가 이것 참지못할정도로 좋아했는데 지금은 내 마음 별거 아니다. 이런 것이 아디노아를 알고 욕심이 차차 버리게 되는거에요 그런것에 대한 내 마음이 별로 요동치지 않는거에요 그래서 오온에서 열심히 팔정도 수행을 관찰하여 앗사다 생로병사 삼세윤회 모든 고통벗어나 닙바나 성취하기를 기원합니다. 사두사두사두( )
-락카인주(로힝야난민문제가발생한 지역)들어가기 바로 전에 있는 고도시 삐에 만들어진 쉐산도사원 -부처님머리카락두올을 모셨다고 하네요-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