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보탑(天眞寶塔)을 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려왔는데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용문폭포(龍門瀑布)에 있는 팔곡(八曲)이란 刻字 때문이다.
용문폭포(龍門瀑布)가 팔곡(八曲)이라면 또 다른 刻字도 있지 않겠는가.
숙소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과연 갑사구곡(甲寺九曲)이란 것이 나온다.
그리고 갑사구곡은 親日 賣國奴 "윤덕영"(尹德榮)이 써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갑사탐방소(甲寺探訪所)에는 갑사구곡(甲寺九曲) 안내문이 없을까?
다음날 인터넷에서 찾은 것을 가지고 다시 갑사(甲寺)로 향했다.
이것을 보여주며 물었더니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이런 안내그림이 없단다.
분명 전에는 案內圖로 있던 것인데 왜 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모두 없앴단다.
다만 이곳이 어디에 있는지는 안단다.
대충 설명을 듣고 계곡쪽으로 향한다.
제 일곡(第 一曲)은 탐방소 바로 前에 있는 다리 아래에 있다.
매표소에서 곧장 올라오다가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물이 흐르는 아래를 보면 세 가지의 刻字가 보인다.
앞에 제일 잘 보이는 刻字가 간성장(艮成莊)이란 글자다.
건너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삼갑동문(三甲洞門)이란 글자가 보인다.
간성장(艮成莊)이라 쓴 刻字 바로 건너편에 비스듬히 아주 희미하게 용유소(龍遊沼)가 있다.
삼갑동문(三甲洞門)
一曲 용유소(龍遊沼).
어떤 분은 왜 글자가 저리 훼손됐나 의아해 하는데 큰 비가 오면 돌이 떠내려오며 글자를 마모시킨듯 하다.
二曲은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철탑상회"라는 음식점 간판이 보이고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는 철당간(鐵幢竿)이 있는 곳으로 가는 다리다.
二曲은 다리 위에서 下流쪽을 보면 바로 보인다.
이곡(二曲) 이일천(二一川).
철탑상점을 지나 올라가면 "조릿대"가 가득한 곳이 나온다.
이곳에 수질측정지점이란 푯말이 있다.
푯말을 등지고 앞을 보면 三曲이 보인다.
삼곡(三曲) 백룡강(白龍岡)
四曲으로 가려면 三曲에서 돌아내려와 오른편으로 난 길을 올라가는것이 편하다.
올라가서 포장도로를 조금 가면 오른쪽으로 연못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四曲은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옆에 보인다.
옛날 사진을 보면 이 바위가 돌출되어 있었는데 무엇때문인지 흙으로 많이 덮여 있다.
사곡(四曲)이란 글자가 흙에 뭍혀 안보여서 흙을 걷어 내어야 했다.
사곡(四曲) 달문택(達門澤)
五曲을 보기위해서는 공우탑(功牛塔)에서 대적전(大寂殿)쪽으로 가야한다.
오곡 (五曲) 금계암(金鷄嵒)
그런데 이 五曲과 六曲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다른 곳에는 모두 오른쪽 옆에 몇曲, 몇曲하는 차례가 있는데 이 두곳만 그것이 없다.
그렇다고 바위에 그것을 쓸 여백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되돌아 다리위에 서서 그 아래를 자세히 내려다 보면 여러곳에 많은 刻字가 있는 것을 볼 수있다.
익구 구곡 군자대(益口舊谷 君子臺)
계룡 신면 간성장(鷄龍新面 艮成莊)라고 써 있는 刻字.
원래 이곳은 행정구역이 익구곡면(益口谷面)이였는데, 1914년에 鷄龍面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을 군자대(君子臺)라고 했는데 지금은 간성장(艮成莊)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五曲은간성장(艮成莊)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다른 곳에 艮成莊 五曲이라고 써 있는 刻字도 있다.
靈地有臺君子名
名稱益口久傳聲
鷄鳴空谷今何益
口化爲龍艮自成
이 뜻을 확실히 알려면 많은 공부를 해야 할듯하다.
刻字를 하려고 돌의 面을 다듬어놓고 무엇때문인지 그만두었나보다.
이곳에 五曲이란 刻字만 있는 것이 조금 의아하다.
이곳의 원래 이름인 군자대(君子臺)의 刻字.
오래된 탓인지 글자가 희미하다.
이글씨가 우암 宋時烈의 글씨라고도 하는데 확인은 안된다.
甲寺九曲(갑사구곡)의 하나인 五曲의 바위다.
좌우 樹木이 울창한 가운데 시냇물이 그 아래로 폭포를 이루어 못이 패어서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때의 林慶業 將軍이 몸을 피했던 자리라 한다.
또 다른 바위에 있는 글자. 군자석(君子石)?
인의석(仁義石)
큰 바위의 아랫면에는 명확한 刻字가 있는데 여기를 내려가려면 조금 위험하다.
이 외에도 몇개의 刻字가 있는데 이끼에 덮여서 확인이 어려웠다.
다리의 위쪽을 보면 이곳이 六曲이다.
옛날의 간성장(艮成莊)
여기서 갑사구곡(甲寺九曲)의 실체를 알아보고 가야겠다.
간성장(艮成莊)은 일제시대에 親日 賣國奴"윤덕영"(尹德榮)이란 자가 지은 別莊이다.
윤덕영 (尹德榮)은 누구인가?
고영희, 민병석, 박제순, 윤덕영, 이병무, 이완용, 이재면, 조민희, 조중응,등
경술국치(庚戌國恥)에 가담한 경술국적(庚戌國賊) 9명중의 하나다.
즉 윤덕영(尹德榮)은 한일합방당시 자신의 조카딸인 윤비(尹妃 : 純貞孝皇后)가 비밀회담하는 내용을듣고,
宮으로 가서 옥새(玉璽)를 치마속에 감추고 버티자 이를 강제로 빼앗아 불법조약에 날인을 한 者이다.
그 덕으로 巨金을 받아 호의 호식(好衣 好食)한 者다.
그가 이곳 계곡을 甲寺로부터 임대받아 여기 저기에 제 맘대로 바위에 글을 쓴것이다.
말이 임대지 당시의 위력에 甲寺에서 저항할 수나 있었겠는가.
이 계곡에 있는 글씨는 대부분이 윤덕영(尹德榮)이 써 놓은 글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득 고등학생 당시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장례식때 상줄을 잡고 뒤따르던 생각이 난다.
朝鮮 마지막 王妃의 장례식(葬禮式)에 참석을 한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며 다시 이 간성장(艮成莊)을 보니 이제는 逆賊의 遺物도 구경거리가 되는가 싶다.
간성장(艮成莊)바로 아래 계곡에도 많은 刻字가 있다.
수월암(水月嵒).
이곳에도 五曲이라고 쓸 자리가 있는데 쓰지 않았다.
간성장(艮成莊) 건너편의 바위에도 많은 刻字가 보인다.
간도광명(艮道光明)
은계(銀溪)
천장소회어상(天章昭回於上)
인문화성우하(人文化成于下)
간성장(艮成莊)
계곡 건너에서 본 간성장(艮成莊)
이곳에 쓴 刻字는 이끼가 덮여 글자를 확인할 수가 없다.
길에서 새로지은 "월인석보판목보장각"(月印釋譜板木寶藏閣)건물을 올려다보면 옆의 바위에 刻字가 보인다.
이곳에는 간성장(艮成莊) 오곡(五曲)이라 써 놨는데 누가 쓴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던 간성장(艮成莊) 근처의 계곡이 모두 오곡(五曲)인 셈이다.
간성장(艮成莊) 오곡(五曲)위의 刻字.
삼각립갑사흥(三閣立甲寺興)이라 써 놓았다.
六曲은 석조약사여래입상(石造藥師如來立像) 맞은 쪽 계곡의 폭포를 말한다.
육곡(六曲) 명월담(明月潭)
이곳에도 다리 아래쪽에 여러개의 刻字가 보인다.
순화림원(舜華林園)
용화(龍華)
계곡 넓은 바위마다 刻字가 있는데 읽기도 어렵고 뜻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여기에서 七曲은 나중에 올라가기로 하고 먼저 九曲을 항한다.
팔곡(八曲) 용문 폭(龍門瀑)
八曲은 길에서 멀지 않아 잠시 들러 본다.
구곡(九曲)이 있는 신흥암(新興庵)에 도착했다.
九曲이 있는 水晶峰.
九曲은 山神閣 뒤로 나있는 水晶峰 오르는길로 가야 한다.
산신각 뒤 바위에도 간성장(艮成莊)이란 글씨를 파 놨다.
도대체 이 간성장(艮成莊)이란 刻字가 이 계곡에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간성장(艮成莊)에 목을 매고 좋아했는지,,,,,,,,
산신각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오르면 九曲이 나타난다.
구곡(九曲) 수정봉 (水晶峯)
그 옆에는 세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여기 온 기념으로 옛사람이 새긴듯하다.
九曲이 먼저 새겨지고 그 후에 새겼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이 구곡(九曲) 수정봉 (水晶峯)을 새긴 사람이 누군지 알았을까?
생각없이 새겨논 이름에 그 後孫들은 賣國奴 윤덕영(尹德榮)과 함께 욕을 먹어야 할듯하다.
이제 부지런히 내려와 대성암(大聖庵)에 도착했다.
확실하게 七曲이 있는 곳을 물어보고 올라가려 했는데 庵子에 아무도 없다.
石物이 있는곳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니 두 스님이 내려오신다.
七曲의 위치를 물었더니 들어는 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냥 혼자서 찾아보기로 하고 올라갔다.
언덕위에서 좌측을 보면 콘크리트로 만든 네모난 큰 구조물이 보인다.
그쪽으로 난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좌우를 살핀다.
어느정도 오르니 길을 잘못들었는지 낙엽이 잔뜩 쌓인 골짜기가 눈앞에 나온다.
그래도 저곳만 지나가면 나타날듯해서 힘겹게 오르는데 낙엽이 미끄러워 오를수가 없다.
벌써 오후 네시가 넘는다.
나이가 나이인만치 포기도 빨라야 한다.
훗날을 기약하며 돌아선다.
구슬붕이.
건조한 능선길에 "구슬붕이" 하나가 활짝피어 나를 위로하는듯하다.
하긴 꼭 봐야 될 글자도 아닌데 불편한 몸으로 연 3일씩이나 글자를 찾아온 것도 나로서는 처음이다.
다음에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여유있게 돌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