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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면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네분의 묘소가 있다. 그분들이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는 각각 ‘희망가’ ‘짝사랑’ ‘목포의 눈물’ ‘선구자’였다. 이분들은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할 때나 두루 어울림이 긴요할 때 참모들과 고뇌와 아우름의 술잔을 순배(巡杯)와 합주(合酒)로 기울이며 이 노래들을 읊조렸다. 간혹 홀로 독배(獨杯)를 거듭하여 명정(酩酊)의 경지에 이른 경우도 있었단다.
고복수의 ‘짝사랑’은 박정희의 반주가(飯酒歌)였다. 노래 앞에는 오프닝 대사가 먼저 울렸다. ‘그 님 못 잊어 찾아왔어요 / 그 님 생각에 저물었어요 / 외로운 들국화 날리는 저녁…’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고복수 ‘짝사랑’ 가사 1절)
이 노래는 고복수가 1930년대 후반 오케레코드 전속가수로 부른 곡이다. 그는 광복 이전엔 일본과 만주 등지로 순회공연을 했고, 광복 후엔 백조악극단원으로 활약했다.
노래 ‘짝사랑’에는 서글픈 비장의 서정이 흐른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의 상황과 백성들의 허망한 일상이 노래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는 일제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야욕을 불태우면서 우리나라를 군국주의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때다. 강제징용·창씨개명·신사참배·조선육군징집령·정신근로대·종군위안부 등등. 곱씹어 생각할수록 울분이 펄펄 넘친다.
고복수는 황금심과 부부 가수였으며, 둘은 연예계에서 스캔들 없이 살아온 잉꼬부부였다. 고복수는 1972년 2월 식도염과 고혈압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는데, 당시 이봉조·김세레나·신카나리아·신성일 등 연예인들이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고별곡으로 불렀다. 고복수의 영전에서 ‘타향살이’를 장송곡(葬送曲)으로 불러준 신성일도 최근 영원한 타향살이 길을 떠났다. 울긋불긋한 오색 단풍이 자꾸 말을 걸어오던 2018년 가을날에. 인생은 들녘에 떨고 있는 들국화를 바라보다 떠나가는 짝사랑의 길이다.
식민지 백성의 한을 노래한 민족가수, 고복수
고복수(高福壽]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하며 큰 인기를 끈 대중가요 가수다. 「타향살이」와 「짝사랑」 등 국민적 애창곡으로 불린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당대 최고의 여자 가수인 황금심과 결혼하여, 최고의 스타부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인 동화예술학원을 설립하여 이미자 등 후진양성에 힘썼다.
고복수는 1911년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축음기를 틀고 종일 노래만 불렀다고 한다. 교회 합창단에 들어가 선교사로부터 드럼과 클라리넷 등 각종 악기를 익혔다. 이때 익힌 음악 실력을 바탕으로 울산실업중학교에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33년에 콜롬비아레코드사 주최한 ‘전선(全鮮)아홉도시 콩쿠르대회’의 부산대회에 출전해 1등을 차지하고, 1934년에 서울에서 열린 전국남녀가수신인선발대회에서 3등으로 입상하면서 대중가요계에 데뷔했다.
고복수 흉상
1934년에 오케레코드의 전속가수로 「타향」과 「이원애곡」이 담긴 음반을 발표했다. 「타향」은 「타향살이」로 재발표되는데, 당시 5만 장이 넘게 팔리며 만인의 애창곡이 되었다. 「타향살이」와 「이원애곡」 모두 고향을 떠나 유랑할 수밖에 없던 식민지 조선인의 설움을 노래한 것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며, 일제 강점기 최고의 대중가요로 꼽힐 만큼 크게 유행했다. 이후 1939년까지 오케레코드에서 「불망곡」, 「휘파람」, 「사막의 한」, 「새날이 밝아 오네」, 「울며 새우네」, 「밀월의 대동강」, 「짝사랑」, 「마차의 방울소리」, 「풍년송」 등을 발표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로 군림했다. 오케레코드사의 전속공연단인 ‘조선악극단’에서 일본, 만주, 간도 등지를 돌며 공연활동을 이어갔다.
오케레코드사와의 불화로 해약을 당한 뒤, 1940년 3월에 조직된 반도악극좌(半島樂劇座)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여기서 빅타(Victor)레코드 전속가수였던 황금심(黃琴心)을 반려자로 만났다. 고복수·황금심 부부는 반도악극좌의 후신인 빅타가극단에서도 함께 활동했고, 1943년에는 새로 창립된 제일(第一)악극대에도 함께 가입했다. 광복 직전에는 유성(流星)연예대로 옮겨 활동하기도 했고, ‘고복수와 그 악단’을 조직해 운영하기도 하였다. 한편 전옥(全玉)이 주관하던 백조악극단(白鳥樂劇團)의 주요단원으로도 활약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붙잡혔다가 국군에게 구출되었다. 자신이 ‘고복수’임을 증명하기 위해 「타향살이」를 불렀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군예대에서 활동했다.
1957년 8월 서울 명동의 서울시공관에서 25년 가수 생활을 결산하는 은퇴 공연을 열었다. 은퇴 후 1959년 서울 회현동의 동화백화점[지금의 신세계백회점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인 동화예술학원(東和藝術學院)을 개설했다. 이미자(李美子), 문주란, 오기택, 안정애(安貞愛) 등의 인기 가수를 배출함으로써 대중음악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은퇴 후 고복수는 여러 사업에 실패하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1959년에 영화 「타향살이」를 제작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서적외판원이나 택시기사로 일하며 생활을 연명했다. 1972년 고복수는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다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복수 음악살롱
고복수 동상
1987년 울산에서 제1회 고복수가요제를 개최했고,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1991년 울산광역시 중구 동헌 입구 근처에 ‘고복수 노래비’가 세워졌다. 이 노래비는 2018년 12월 고복수 음악살롱이 개관하면서 이 곳으로 옮겨졌다. 고복수 음악살롱의 1층은 고복수 선생의 앨범과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고, 2층은 커피숍으로 운영된다.
<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이병렬
작고한 원로가수 고복수가 부른 가요 중에 <짝사랑>이란 곡이 있다.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하는 이 가요는 노랫말 그대로 ‘으악새가 슬프게 우는 것을 보니 가을이 온 모양이구나’ 하는 애달픈 내용으로 이 노래를 알고 있는 기성세대라면 가을날 많은 이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애창하는 사람들도 정작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새 이름에는 울음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뻐꾹뻐꾹 뻐꾹새, 뜸북뜸북 뜸북새, 지지배배 제비는 물론 종달종달 종달새가 그렇다. 그러니 혹 으악으악 하고 우는 새가 아닐까, 그래서 으악새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조류 도감에 <으악새>라는 새는 없다.
그렇다면 어찌 된 것일까.
이에 식물학자들이 나서서 <으악새>란 <억새>의 다른 이름이라 주장했고, 실제 경기도 방언으로 <억새>를 종종 <으악새>라 부른다고 국어학자들이 뒷받침을 했다.
갈대와는 달리 생김이 좀 억세서 <억새>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억새> 즉 <으악새>는 이런 모습이다.
그런데 식물인 <억새>가 슬피 운다? 매우 시적인 표현이라는 해석까지 더해지면서 작사자의 문예미학적 표현의 재능까지 찬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말 <으악새>는 <억새>일까?
이 의문이 풀리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3년 11월 27일. 이 노래 <짝사랑>의 작곡자인 손목인 탄생 100년을 맞아 그의 유고집이 출간되었다. <손목인의 가요인생>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작곡자 손목인이 전하는 작사자 박영호의 작사 배경이 재미있다. 일제 강점기 KAPF(조선예술가 프롤레타리아 동맹)에서 활약한 적이 있는 박영호는 촉망받는 시인이었으나 KAPF가 해산된 후 가요계의 작사자로 변신을 해서 성공을 했는데 한국동란 중 아깝게 40을 갓 넘긴 나이에 고인이 되었다.
손목인이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었다고 한다. 박영호 왈, 뒷산에 올라갔는데 아래쪽에서 으악, 으악 하는 새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으악새라고 했단다. 아주 시큰둥한, 요즘식으로 말하면 쿨한 대답이었다.
이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1절과 2절의 가사가 댓구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1절 :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2절 : 아~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으악새와 뜸북새의 댓구. 그러니 으악새는 갈대인 <억새>가 아니라 진짜 새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으악 으악 하고 울었다는 이 새는 어떤 새일까?
이번에는 조류학자들이 나섰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조류도감에는 <으악새>란 새가 없다. 그렇다고 작사자 박영호가 발견한 새로운 종일까? 아니다. 바로 왁왁거린다고 해서 <왁새>란 이름이 붙은 우리나라 새 <왜가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왁왁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왁새>. 이 새의 울음 소리를 듣는 이에 따라 '왁왁'이 아니라 '으악으악'으로 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박영호가 강원도 통천 출신이라는 것, 작사 당시에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경계에 있었다는 것, 그 계절, 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가 <왜가리>라는 것 등등을 통해 으악으악 울었다는 새 이름을 박영호가 몰랐기에 그냥 자신의 귀에 들린 울음소리 그대로 <으악새>라 했을 뿐 실은 <왁새> 혹은 <왜가리>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새 이름을 모르고 그냥 소리나는 대로 노랫말에 적은 박영호. 이를 두고 억새라고 주장하며 문예미학적 평가까지 했던 문학연구가들. 그러나 어쩌랴. 작사자가 작사 배경을 설명한 것이 알려지면서 머쓱해버리고 말았다.
그냥 으악으악 우는 새가 아닐까, 했던 많은 대중들의 상상이 맞았던 것이다.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그냥 으악으악 우는 새이다.
누구 귀에는 왁왁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새.
공식 명칭은 <왜가리>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