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 서먹하던 대화도 소주 한 잔에 스르르 녹고, 낯설었던 인상도 예전 모습을 회복한다. 으레 그렇듯이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금세 새벽이다.
언제 또 보나. 해장은 하고 가야지. 헤어지는 서운함으로 쓰린 속을 달래려 콩나물 국밥집을 찾는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어슬렁어슬렁, 담배를 꼬나 물고 흔들흔들.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면, 그곳이 종착지다(전주는 곳곳에 콩나물국밥집이 있어 술꾼들이 버텨나기 좋다).
“콩 다섯, 모 다섯.”(콩나물국밥 다섯 그릇과 모주 다섯 잔 주세요)
갖은 양념을 곁들여 펄펄 끓인 콩나물국밥에는 모주母酒 한잔이 곁들여져야 제격. 하나같은 소리에 모두 전주의 진정한 술꾼이 돼있음을 확인하고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맑은 물로 길러낸 콩나물로 끓인 콩나물국밥과 막걸리에 생강·대추·감초·인삼·칡·계피가루 등 8가지 한약재를 넣고 푹 끓인 모주는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향토음식이다. 맛이 부드럽고, 달착지근하고, 술기가 없어 국밥에 곁들이기 좋은 술이다.
“배고프던 시절, 술지게미를 얻어다 사카린 넣고 끓여 먹었다”던 모주는 어느새 전주의 토속주처럼 자리를 잡았다.
조선조 광해군 때 인목대비 모친이 귀양지 제주에서 빚었던 술이라 해서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부르다가 ‘모주’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어느 고을에 술 많이 마시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가 막걸리에다 각종 한약재를 넣고 달여 아들에게 줘 ‘모주’라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다. 허나, 전주의 풍류가객들은 모주母酒가 아니라 어스름 새벽 어두컴컴한 때 마시는 모주暮酒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콩나물국밥의 진가를 맛보기 위해서도 모주 한 잔이 필수다. 모주는 국밥의 맛을 업그레이드 해준다. 모주 한 모금으로 입가심하고, 국밥에 몇 숟갈을 떠 넣으면 맛이 훨씬 담백해져 “이게 바로 진정한 콩나물국밥이야”라고 탄성을 짓고도 남음이 있다. 피곤도 스트레스도 확 풀린다.
얼큰한 콩나물국밥에 모주 한 잔 곁들였으니 어지간히 마셨어도 속이 풀리게 마련. 그래서 또 “한 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