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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I와 이케다 회장의 교육운동 ②
교육을 통한 세계 시민의 강한 연대를!
21세기는 교육의 세기
인간보다 경제나 정치를 우선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정신의 황폐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고립된 인간과 인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 근원에 적확한 변혁의 빛을 비추는 것이 이케다 SGI회장의 ‘교육을 향한 열정’이다. ‘교육권의 독립’ ‘교육국제연합’ ‘세계 대학총장회의’ 등, 이케다 회장이 제창해 온 여러 구상에 각계에서 다대한 기대와 찬동을 보내고 있다.
또 ‘학문이라는 보편 세계야말로 국경, 민족, 언어를 초월한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라는 신념으로, 이케다 회장은 세계 각국의 대학을 방문. 총장을 비롯한 교수, 학생들과 교류를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러시아 모스크바대학교, 중국 베이징대학교 등 주요 대학교에서 기념강연을 했다. 무엇보다 인간을 원점으로 인류 문명의 새로운 옥야(沃野)를 연 획기적인 논조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기대를 안겨 준다.
‘21세기는 교육의 세기다’ ‘21세기 인류를 어떻게 하면 행복과 평화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내 마음에는 이 일점밖에 없다’.
이러한 이케다 회장의 행동은 암운의 시대를 뚫고 희망의 파동이 되어 전 세계를 감싸 가고 있다.
C·O· N· T ·E· N ·T ·S
교육의 길 ①
창가교육학의 아버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도다 조세이의 교육사상
창가교육 ②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라는 두 스승의 염원을
현실에서 꽃피운 이케다 SGI회장
한국으로 넓혀진 창가교육의 정신 ③
인간주의의 원류인 ‘창가교육’만이
미래를 밝히는 빛
2. 창가교육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라는 두 스승의 염원을 현실에서 꽃피운 이케다 SGI회장
“인생, 혼자서 승리할 수 없다.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학교가 있다. 친구가 있다.”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완성하고, 해외에도 진용을 갖춘 창가일관교육.
창립자인 이케다 SGI회장은 ‘교육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는 신념대로 세계에 창가교육이라는 희망의 무지개를 수놓았다.
이케다 회장은 “인생 최후의 사업은 ‘교육’이다”라는 신념을 근본으로, 3만 명이 넘는 교육자로 구성된 교육부와 학술부의 광범위한 활동과 더불어 자신도 교육기관 육성의 충실에 힘을 기울여 왔다.
일본에서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창립하고 일관교육의 체제를 갖추었다.
동시에 ‘인간교육’의 파도는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라질 소카유치원, 로스앤젤레스 미국 소카대학교로 넓혀지고 있다.
거기에는 ‘세계 평화와 인간을 위한 문화 창조는 강인한 지성과 풍요로운 인간성을 겸비한 인재 육성이 선결’이라는 이념이 중점이다.
그 이념의 연원인 마키구치 초대회장과 도다 2대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케다 회장은 ‘창가일관교육’으로 실현했다.
미래를 이끌어 나갈 벗과 대담하고, 교육자를 육성하고 세계에 교육 네트워크를 넓힌다 ― ‘교육을 위한 공헌’은 바야흐로 본격적인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창가교육’의 승리야말로 나의 승리!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창가교육의 아버지 마키구치 초대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어린이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그리고 마키구치 초대회장은 생전에 가족들에게 자주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장래 창가교육의 학설을 실천하는 학교가 생긴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반드시 도다 군이 내 뒤를 이어 설립해 줄 것이다.”
그 도다는 제자인 이케다 회장에게 말했다.
“교육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라고.
1950년의 늦가을. 도다의 사업은 매우 어려운 시기였지만 유유히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교육은 나의 마지막 사업
마키구치 초대회장도, 도다 2대회장도 교사였지만 이케다 회장은 교직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두 스승의 염원을 이루어 창가교육을 실현하고, 그 사상을 세계에 선양해 왔다.
그것이 ‘제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마키구치 초대회장의 교육사상을 집대성한 《창가교육학체계》는 세계 4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또 브라질과 미국에서는 창가교육학설에 바탕을 둔 교육 프로젝트를 도입하는 학교도 생겨나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자세가 적극적으로 되어 성적이 향상되는 등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브라질에서는 1995년에 한 학교만 시작했던 창가교육 관련 프로젝트가 지금은 18학교의 수업에 정식으로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교육의 위기를 맞은 요즘, 마키구치 학설은 때와 더불어 구세(救世)의 빛을 비추고 있다.
소카(創價)대학교·소카여자단기대학
38나라·지역의 81대학과 교류 중이며 세계에 널리 인간교육을 넓힌 ‘발신지’ 소카대학교.
‘인간교육의 최고 학부’를 목표로 1971년에 개교. 다음 해 공학부에서 환경공생공학부가 신설된 6학부 13학과의 체제를 갖추었다.
총명한 여성 지도자의 육성을 목적으로 1985년에 개교한 소카여자단기대학은 냉엄한 사회 정세 속에서도 높은 취업률을 보여 왔다. 풍요로운 자연이 널리 펼쳐진 캠퍼스에서 전 세계 수많은 인재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다음 〈수필 신·인간혁명〉을 통해 소카대학교의 창립 정신을 알아보자.
소카대학교 창립의 마음
-<수필 신·인간혁명> 263 중에서 -
일찍이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말했다.
“대학이란 살아 있는 세포의 핵처럼 국민의 정신이라는 창조적인 생명의 중심이다.” ― 이 ‘국민의 정신’은 ‘세계가 조국’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세계 시민의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대학의 ‘생명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학생’이다.
나는 소카대학교 설립을 구상할 때부터 “대학은 학생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라며 거듭 호소해 왔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상호 대치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학문의 길을 걷는 동지로서 굳이 말하자면 선배와 후배라는,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관계이어야 한다.”
“학내의 운영에 관한 것도 학생이 참여한다는 원칙을 실현하여 이상적인 학원공동체로 만들고 싶다.”
당시의 대학은 분쟁에 흔들리던 시대였다. 그런 만큼 나는 하루라도 빨리 참된 학문, 교육의 장을 출발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1971년 4월에 소카대학교를 예정보다 2년 앞당겨 서둘러 개교했다.
그러나 기념할 만한 소카대학교 제1회 입학식에 나는 참석할 수 없었다.
이상(理想)은 높다고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전통도 없는 새로운 대학 건설에 정열의 마음만으로 모인 1기생들에게는 서운한 마음을 들게 하고 말았다.
유감스럽지만 교원 중에는 ‘창립자는 돈을 대는 것만으로 족하다, 대학의 운영은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의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1기생 사이에서는 “왜, 창립자가 대학에 오지 않는가” “어떻게 하면 맞이할 수 있는가” 등의 의견이 점차 고조되었다.
“우리는 이케다 선생님이 창립한 대학이기에 온 것이다! 선생님이 오시지 않는 대학이라면 시험도 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듬해 나는 학생들의 초청에 응하여, 여름에는 기숙사가 주최한 제1회 다키야마 축제, 가을에는 제2회 소카대학교 축제에 참석했다.
체육관에서 열린 축제 기념 페스티벌에서 힘주어 말했다.
“1기생, 2기생 여러분은 부디 자신들이 이 대학의 창립자라는 자각으로 진지하게 임해 주기 바랍니다!”
개교를 서둘렀기에 모일 수 있었던 불가사의한 사명이 있는 학생들이다.
모두 ‘대학건설의 주역’이라는 긍지를 품어 주기를 염원했다.
나도 학생을 지키고 육성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왔다.
어떤 때는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면서 또 어떤 때는 몸이 아파도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대화를 거듭했다. 학생이 성장한다면 쓰러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교육자’가 지녀야 할 신념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학생중심’의 소카대학교 교직원이 지녀야 할 모습이 아니겠는가!
3일간에 걸친 제2회 다키야마 축제에서 학생들을 격려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학생 편입니다. 철저하게 움직이고, 철저하게 격려하기 위해 달릴 것입니다. 이 오체(五體)가 설사 움직일 수 없게 될지라도 나는 학생을 지키기 위해 일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도 변치 않는 그리고 생애 변치 않을 창립자의 심정이다.
도쿄 소카중학교·고등학교
개교 36주년을 맞이한 창가교육의 ‘원점’,
문무양도(文武兩道)의 건투가 빛나는 도쿄 소카학원. 2003년 7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35회 ‘국제화학 올림픽’에 일본대표로 처음 소카고등학교가 참가했다.
‘영지를 연마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 ‘정열에 불타는 것은 무엇을 위해’라는 물음의 해답을 찾기 위한 학원생의 신세기를 향한 도전은 계속된다.
소카학원의 제1회 입학식
- <수필 신·인간혁명> 137 중에서 -
3대 회장에 취임하기 직전인 1960년 봄, 4월 5일 화요일.
나는 아내와 둘이서 미소를 지으며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장래 소카학원이 될 건설후보지를 시찰하기 위해서 생기 가득한 신록의 고다이라 시(市)의 다카노다이로 향했다.
눈앞에 펼쳐진 다카노다이의 천지는 그 모든 희망에 들어맞았다.
여기다! 이곳에 소카학원을 세우는 것이다.
나는 약 1만 평 가량 되는 부지 구입을 이날, 이때 결의했다.
당시는 몹시 가난한 학회였다. 자산(資産)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학교 설립 등은 누구 한 사람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앞으로 책을 쓰고 또 쓰고 계속해서 쓰겠소. 그 인세(印稅)로 세계적인 학원을 반드시 만들어 보이겠소.”
소카학원의 기공식이 열린 것은 그 6년 후인 11월 18일.(1966년)
그날은 마키구치 선생님의 기일이고 또 《창가교육학체계》가 발간된 날이었다.
이날을 맞이하기까지 고다이라 지역의 존귀한 동지들은 자발적으로 건설 예정지를 청소해 주셨다.
각다귀(모기의 일종)에 물리고 온몸이 흙먼지 투성이가 되었지만 부지런히 잡초를 뽑고 자갈을 줍는 힘든 작업을 6년 동안 족히 100회를 넘게 했다.
거기에는 아이를 등에 업은 당찬 어머니의 모습도 있었다. 그 어린 아이가 나중에 학원에 입학했다는 일화도 나는 들었다.
1968년 4월 8일 월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빛나는 제1회 입학식이 열렸다.
영광스러운 제1기생은 고교생 321명, 중학생 270명이다.
법화경에는 <5백제자품(五百弟子品)>이 있어 끝없이 펼쳐지는 인재의 한 핵(核)을 500명으로 하고 있다.
그것과 차원은 다르지만, 중학교와 고교를 합쳐 500명이라는 사명 깊은 영재가 탄생했다.
15세, 혹은 12세인 소년들이 선배도 역사도 없는, 전혀 이름 없는 학원으로 달려와 주었다.
본인도 또 보낸 가족도 얼마나 깊은 결의에 불타고 있었던가.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젊고 뛰어난 인재를 축복하러 달려왔다.
이날 정오 다함께 ‘모토의 비(碑)’ 제막식을 거행했다.
그 모토는 ‘영지(英智)’ ‘영광’ ‘정열’이라는 세 항목이다.
1기생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추억은 무척 각별하다.
얼마 전에도 현재 대학교수로 활약하는 1기생이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올봄부터 영국 명문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다녀오겠다는 보고였다.
“학원 1기생으로 입학한 이래, 소카대학교 대학원 석사까지 12년간을 창가의 학사(學舍)에서 공부할 수 있었음을 저는 최고의 긍지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고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할 때, 성적불량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창립자실에서 이케다 선생님께 격려를 받은 일은 생애, 제 원점이 되었습니다”라고.
간사이 소카중학교·고등학교
‘우주시민’의 감각을 연마하는 ‘어스캄(EarthCAM)’ 계획. NASA(미국 항공우주국)의 교육 프로그램인 ‘어스캄’에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4번째 참가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의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국경선 없는 지구를 촬영, 이 생명의 별을 지키는 ‘우주시민’의 감각을 양성해 왔다.
간사이 소카학원 설립
- <수필 신·인간혁명> 141 중에서 -
1973년 4월 11일, 눈부신 햇살 가득한 수요일에 간사이 소카학원의 제1회 입학식이 열렸다.
간사이 학원도 완공에 이르기까지 그 지역 청년부의 많은 노고가 있었다.
또 ‘가쿠엔마모리카이(학원을 지키는 모임)’의 분들이 헌신적으로 정원을 다듬고 가꾸어 주시고 있다. 진심으로 나는 감사드린다.
개교 직후 계속 나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숙박까지 하며 건학(建學)에 온힘을 기울였다.
역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비탈길이지만 학원생들에게는 단련의 길이기도 했다.
1기생의 졸업을 앞둔 엄동설한의 1월, 우연히 복도에서 만난 학원생 가운데 부모를 여읜 학생 두 명이 있었다.
나는 “우리 학원생은 지면 안 된다. 고뇌한 사람은 그만큼 강한 사람이 된다”라고 격려하고, 훗날 그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한 ‘대나무’를 교내에 각각 식수했다.
내가 창립한 학원에 소중한 우리 자녀를 보내 주신 가족에 대한 고마움은 생사를 초월해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간사이 학원에는 세계의 수많은 식자가 방문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부부, 쿠바의 하르트 문화부장관, 유럽과학예술아카데미의 웅가 회장, 모스크바대학교의 로그노프 전 총장, 영국 글래스고대학교의 먼로 교수, 필리핀대학교의 아부에바 총장, 터키 앙카라대학교의 세린 전 총장, 한국 경희대학교의 조영식 학원장, 미국의 정신의학자 폴링 주니어 박사 등, 학교를 방문하신 분들의 수는 37나라 400명 이상에 이른다.(방문 당시의 칭호임)
이 자체가 유례 없는 ‘국제인 교육’의 상징적 모습이라 해도 좋다.
학교를 방문해 주신 해외 대학 총장, 학장 등도 세계 40대학을 넘는다.
그분들은 모두 저마다 “일본 제일의 학원, 아니 세계 제일의 학원”이라고 감탄하며 칭찬해 주셨다.
“이 중에서 일본의 우수한 지도자, 세계의 훌륭한 지도자가 배출될 것”이라고 기대하시는 분도 참으로 많다.
남녀공학이 되어 맞이한 첫 입학식(1982년)에 프랑스학사원 회원인 르네 위그 씨가 축복하러 달려와 주셨다. 루브르 미술관의 지보(至寶)를 나치스에 대항하여 끝까지 지킨 정신의 투사다.
그때의 ‘공학(共學) 1기생’도 교직원 분들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전통을 훌륭하게 구축해 주었다.
10년에 걸쳐 간사이 학원의 구축에 앞장서 열심히 일한 장남 히로마사도 그 1기생의 담임을 맡았다.
간사이 학원의 동창들이 사이좋고 연대가 깊은 것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하며 이야기했다.
학원생의 탐구는 우주로 확대되었다.
1994년에는 미국 윌슨산 천문대와 획기적인 영상 교신(交信)을 실현했다.
게다가 올해 2월에는 ‘어스캄(EarthCAM)’ 계획에 일본을 대표하는 첫 학교들 가운데 하나로 참가했다.
스페이스셔틀(우주왕복선)이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의 영상을 학원의 교실에서 수신한 것이다.
가냘픈 반딧불도 장대한 우주의 별빛도 함께 감싸가는 21세기 지성의 최첨단이 ‘간사이 소카학원’이다.
도쿄·간사이 소카초등학교·삿포로 소카유치원
맑은 눈동자 저편에 미래가 보인다.
간사이 초등학교의 엔젤릭 브라스 밴드는 2002년 오사카의 취주악콩쿨에서 18년 연속으로 금상을 수상. ‘어린이 음악콩쿨’ 전국대회에서는 일본 제일로. 어린이들은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우정을 키우며 쑥쑥 성장하고 있다. 이케다 SGI회장은 크게 성장할 그들의 ‘뿌리’가 되겠다는 각오로 애정을 기울이고 있다.
도쿄·간사이 소카초등학교 입학식 및 삿포로 소카유치원 개원
1978년에는 도쿄 소카초등학교가, 1982년에 간사이 소카초등학교가 개교하고 1976년에 삿포로 소카유치원이 개원했다.
도쿄 소카초등학교 제1회 입학식 메시지에서 이케다 SGI회장은 ‘미래의 사자(使者)들’이라며 훌륭한 전통을 구축해 주기를 부탁했다. 또 ‘이솝우화’를 비유해 어떠한 괴로움도 모두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격려했다. 그리고 독서에 힘쓰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간사이 소카초등학교 입학식에서는 벗들과 함께 정직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부탁했다.
이케다 회장은 삿포로 소카유치원생들의 선생님과 부모에게 “강하고 올바르게 쑥쑥 성장해 주세요”라고 자주 말해 주기를 부탁했다. 또 삿포로 소카유치원은 자매학교와 정기적인 교류도 하고 있다.
해외로 넓혀진
창가교육의 교류
우리들은 ‘이케다 패밀리’!
세계에서 각광 받는 창가의 인간교육. 인류의 평화를 추구하는 교육의 연대만큼 강한 것은 없다.
인도에서 소카이케다여자대학을 설립한 쿠마난 박사는 말한다. “우리들은 국가, 민족, 언어의 차이를 초월한 ‘이케다 패밀리(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 소카유치원
홍콩 소카유치원은 2002년에 창립 10주년을 맞이했다. 국제·정서·식자교육에 힘을 쏟으며 ‘홍콩의 교육계를 이끄는 선구’라고 호평받고 있다.
싱가포르 소카유치원은 교육성에서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과 환경을 갖춘 ‘모델유치원’”이라는 절찬을.
또 말레이시아 소카유치원은 다민족 국가답게 말레이어, 중국어,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다.
브라질 소카학원·소카유치원
2003년 2월 3일에 탄생한 브라질 소카학원에 이케다 SGI회장은 “‘우정’과 ‘희망’을 키우며 성장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유치원은 2001년 6월 6일에 개원, 최고의 교육환경 속에서 영어, 일본어, 컴퓨터 등을 배우고 있다.
중국 조산(潮山)·루원(樓園) 소카우호초등학교
조산 소카우호초등학교는 중국 정부의 ‘희망 프로젝트’로 홍콩SGI가 협력해서 2000년 5월에 개교. 루원 소카우호초등학교는 중국 조주(潮州) 시 교외에 2002년 4월에 탄생했다.
마카오SGI의 교육지원으로 설립. 교내에는 ‘이케다 다이사쿠 도서실’도 설치되어 있다.
인도 소카이케다여자대학·인도 세추 바스카라학원
2000년 8월에 탄생한 소카이케다여자대학은 국립 마드라스대학 소속으로 이케다 회장이 명예창립자이고, 가네코 여사가 명예학장이다.
인도 세추 바스카라학원에서 아이들은 이케다 회장의 시를 수업시간에 배운다. 이 학원을 창립한 쿠마난 박사는 가족이 없는 아이를 위해 학비와 생활비 무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케다 학원’을 설립했다.
미국 소카대학교
(SUA: Soka University of America)
도다 회장은 젊은 이케다 회장에게 말했다.
“다이사쿠, 소카(創價)대학교를 만들자.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 될지도 모른다. … 그때는 다이사쿠, 부탁한다. 세계 제일의 대학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사업이 어려움에 처한 와중이었지만, 도다 회장은 예리하게 빛나는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계셨다. 장대한 미래를 응시하고 계셨다.
또 어느 때는 젊은 청년 문하를 향해 선언하셨다.
“세계 최고봉의 철학이 있는 여러분은 이미 세계적인 지도자다!”
스승의 이러한 강한 확신을 가슴에 새기고 이케다 회장은 홀로 맹세했다.
‘세계가 내 상대다. 세계가 무대다! 우리 창가의 인재성(人材城)에서 21세기의 위대한 지도자를 속속 배출해 보이겠다!’라고. 그리하여 이케다 회장은 소카대학교를 창립한 때부터 ‘언젠가는 해외에 인류 공헌의 대학을 건설하겠다’라고 결심했다.
미국 소카대학교 입학식
- <수필 신·인간혁명> 232 중에서 -
2001년 8월 24일, 미국 소카대학교(SUA) 오렌지군 캠퍼스에서 내가 고대하고 세계 동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1회 입학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영광스러운 제1기생’으로서 입학한 사람은 세계 18나라에서, 미국 내에서는 18주에서 선발된 120명의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입학식에는 70여 나라에서 축전이 도착했다.
‘창가교육’의 최고 학부를 건설하는 일은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의 끝없는 꿈이며 두 분의 마음을 이어 받은 내 꿈이기도 했다.
그리고 해외에도 대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생각은 30년 전(1971년) 하치오지에 소카대학교가 개교했을 때부터 품어 온 비원이기도 했다.
아니 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보다 3년 전인 고다이라에 소카학원을 창립했을 무렵부터 내 가슴 깊은 곳에는 이미 사제불이(師弟不二)의 결의가 늘 끓어오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3대에 걸친 영광스러운 교육혁명의 제일보의 꿈을 실현했다. 나는 감개무량하다.
어느 지역 신문은 우리 SUA를 ‘언덕 위(Hill Top)의 대학’이라고 형용하고 있다.
‘언덕 위’란 이상의 높은 곳을 지향해 가는 노력과 향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중추라고 해야 할 건물은 본관인 ‘파운더즈 홀(Founder’s hall)’이다. 알겠지만 ‘파운더즈’는 복수형이다. 직역하면 ‘창립자들’이다.
그것은 선사 마키구치 선생님, 은사 도다 선생님의 창가교육 이상을 나와 함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진력해 주신 모든 분들을 현창하기 위함이다.
SUA는 민중이 세운 대학이며 민중을 위한 대학이다. 건학에 땀을 흘리신 한분 한분이 모두 SUA의 위대한 창립자다.
그리고 친애하는 신입생 여러분도 또한 ‘젊은 창립자’로서 대학 건설과 장대한 자기 건설에 영지와 정열을 불태워 주기 바란다.
우리 SUA의 기본이념에서 본다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편협한 이데올로기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풍부한 ‘다양성’을 존중한다. 인종, 민족, 문화의 ‘차이’를 존경하며 인간을 위해, 민중을 위해, 생명의 존엄을 위해 힘쓰고 싶다.
비참과 고뇌가 소용돌이치는 이 세계에서 불행의 근원을 근절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인간주의자라면 그 정신 투쟁을 이어받아 혼과 혼의 스크럼을 만들어 전진하고자 한다.
우리 SUA도 어디까지나 ‘학생이 중심’이다. 학생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미래를 소중히 여기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제1기생의 벗이여! 그대들의 성장, 승리, 영광을 모두 바라보고 있다. 이 새로운 세기는 그대들의 쾌활한 전진과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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