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襁褓)에 싸인 두 병정兵丁<모순(模淳)과 담(淡)>에게"
"너희도 안일(萬一)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朝鮮)을 위(爲)하여 용감(勇敢)한 투사(鬪士)가 되어라.
태극(太極)의 기(旗)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육(敎育)으로 성공(成功)하여라."
몇해전 처음 외국여행으로 중국 상하이를 갔을때...
여행 코스에 따라 아무런 생각없이 들러보게된 홍구공원에서 보게되었던..
윤봉길 의사의 거사를 치르기전 어린 자식에게 남긴
유서의 내용중 일부입니다..
이때 의사의 글앞에서 가슴속 저리도록 느껴졌던 북받쳐 오르던 감정들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의정신을 보여주셨던 매헌 윤봉길 의사의 사적지는..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고 자라신 충북 예산군 덕숭산과 수암산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 사적지에는 의사의 영정을 모신 충의사가 있고..
의사의 유품과 어록 등을 전시하고 있는 윤봉길의사 기념관..
의사께서 태어나 4세까지 사시던 광현당..
의사께서 이후 23세까지 사셨다는 저한당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곳은 자신의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반드시 한번은 같이 찾아봐야할 곳임이 분명합니다..
넓은 주차장에 차량을 세우면 약간 언덕위로 보이는 곳이 충의사인데..
이곳은 의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충의문, 홍살문 등이 있습니다.
팸투어로 찾은 시기가 때마침 무궁화가 피는 계절이라..
마음은 더 경건해 집니다..
충의문을 지나면 보이는 것이 충의사인데..
이곳에 의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니..
잠시 고개를 숙여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의사의 넋을 위로합니다..
윤봉길의사는 순종 융희 2년(1908) 6. 21 도중도 생가에서 윤황공의 장남으로 태어나셨으며..
15세에 배용순 여사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것이 가난하여 배우지 못하고 단결하지 못한 것에 이유가 있다고 한탄하며..
19세때에는 야학회를 창설하여 문맹퇴치에 힘쓰셨으며..
1930년에는 "장부출가 생불환"이라는 비장한 각오의 유서를 남기시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백범 김구선생의 애국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고..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전승축하 식장을 폭파하는 거사를 성공한 후
일본으로 끌려가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윤봉길 의사 사적지는 상해 의거와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으로 해방후인 1946년에는 의사의 유해를 모셔와
효창공원에 안장하였는데..
충의사는 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윤봉길 의사 사적지 안내도)
충의사 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면 우측으로 우뚝선 장승 사이로 잘 정비된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이곳은 윤봉길의사 기념관입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는 유품(보물 제568호) 28종 56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의사의 일대기를 볼 수있는 영상관 등이 있는데.. 의사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선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기념관을 나오면
길을 사이에 두고 푸른 잔디가 펼쳐진 곳에 아름다운 초가집이 보이는데..
이곳이 저한당(沮韓堂)입니다...
저한당은 의사께서 4세때에 부친 윤황을 따라 이사하여 살던 곳으로..
의사는 3남2녀의 장남으로 동생들에 대한 우애가 각별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의사께서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면서 해방되는 날까지
왜경의 감시와 탄압으로 시달리던 집이기도 합니다..
저한당에서 한편에 있는 문을 나서면...
솟대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작은 강과 다리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은 도중도로 한반도의 가운데 섬이라는 뜻입니다..
도중도에는 광현당(光顯堂)이 있는 곳으로 윤봉길 의사께서 이곳에서 태어나 4세까지 살았던 집입니다.
도중도에는 왜놈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곳이라하여 이곳에서 시름을 달래고.. 독립운동의 앞날을 설계하였던
곳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깊은 곳인데..
지금은 넓은 광장에 푸른 잔디가 시원하기 그지없고..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아담한 초가집은 정겹고도 정겹습니다...
오늘은 팸투어로 찾아온 곳이지만..
사랑하는 내 아들과 함께아름다운 이곳을 다시 찾아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셨던 의사의 정신을 알려줄 기회를 가져야 겠습니다..
첫댓글 친구의 글은 참 깊이가 느껴져~!
두 분... 친구세요? 언제 한 번 모두들 다 친해지면 세로로 표를 쭉 만들어서 나이계보를 한 번 만들어 봐야겠어요. 만약 두 분이 친구시면... 사랑님께는 죄송합니다만... 팰콘님이 동안이세요... 히히히
성격을 보면 팰콘이 더 과묵하고... 어른스러운데요... 사진도 잘찍고..ㅎㅎ... 저는 얼굴만 망가져서...ㅋㅋ
다리에 솟대가 있어서 참 .. 멋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긴 보존이 잘 된듯 싶어요.. 그정도면 .. 일본측에서 거의 흔적을 없애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기두 하구요... ㅠㅠ
참으로 감동적인 후기 입니다.... 역시 여행에서 느끼시는 감성이 대단하신것 같아요...
전 속으로 좀 찔립니다...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 좀 찔립니다... 사실... 윤봉길의사를 그렇게 중하게 안 여겼었거든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중요하고 큰 일을 하신 분이시네요...
앗.. 저는 아직도 후기를 못쓰고 있는데;;; 에공;;;부끄럽습니다;
글을 읽어보고 윤봉길 의사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사진중에 제 뒷모습도 많네요 감사해요
히히히... 뒷모습만...
좋은 글로 격려해주시니 더 힘이 납니다... 더 열심히 올려야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