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건강을 위한 정기검진을 왜 없나요?”
그리스 옛 철인들이 사람은 마음과 몸으로 되어있다고 벌써 수 천 년 전에 말했습니다. 아무도 틀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들 가운데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 결과에 답답해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분명 가슴이 아프고, 소화가 되지 않고, 설사를 해대고, 혈압이 오르고, 부정맥이 잡히는데 온갖 현대 의학 장비로 잡히지 않으니 답답할 밖에 없습니다. 부부가 다 건강한데 기다리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애태우기도 합니다. 커피도 마시지 않았는데 이유 없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렇듯 몸만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마음이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몸만 있다고 보며 사는 것은 외눈박이로 사는 것입니다. 카네기 연구소 베라 루빈이라는 여성 물리학자가 보이지 않고 질량이 없고 원자로 되어있지 않은 무엇인가 있어서 은하수의 그 많은 별들이 끊임없이 굉장한 속도로 돌면서 존재할 수 있게 한다는 이론을 말했답니다. 반짝이며 보이는 별이 있으려면 보이지 않는 것 (dark matter)것이 훨씬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없으면 별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떨어지고 혼란이 올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이는 것에 혹해서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의 보이지 않는 실체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옆집 아이와 비교하여 내 아이가 가진 다른 면을 소중한 줄도 모르고 아깝게 흘려 버립니다. 아이가 갖 태어나 자랄 때 언제나 평균 키와 몸무게로 내 아이를 재려 합니다. 첫 이가 언제 나고, 낯 가림을 언제 하고, 뒤집기를 늦게 한다고 얼마나 신경을 쓰나요? 첫발을 뗀 것은 아주 중요하고, “엄마”와 “아빠” 라는 소리 가운데 뭘 먼저 했는지 싱갱이 하는 것은 그래도 귀엽기라도 합니다. 조기 교육이아이들의 생사를 가르기라도 한다는 듯, 아이들을 ‘성취’의 무대에 올려놓고 흔들어대기 시작합니다.
그러기 시작하면 점수와 등수로만 아이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창백한 표정, 비정상 체온, 식은 땀은 안중에서 사라집니다. 아이는 마음을 알아주는 부모를 잃고 고아아닌 고아가 됩니다. 그러니 아이들도 보이는 화려한 연예인, 수억 돈벌이하는 운동선수 박지성과 김연아가 되고 싶어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모르는 엄마 탓에 자신만이 가진 값어치를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 다른 사람이 되려합니다. 부모 잃은 고아가 될 뿐 아니라 자기 알맹이를 버리고 껍데기만으로 살게 됩니다.
아이를 잘 기르고 싶다고 찾아 온 엄마가 있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외국어를 잘 하시고 아이들에게도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셔서 6남매가 다 몇 나라 말을 하고, 전문직을 다 가지고 삽니다. 자기 아이에게도 영어를 어려서부터 우리말과 같이 할 수 있게 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답니다. 일하면서 아이들에게 다 고룻하게 하기에는 체력이 딸리고 힘들다고 호소합니다. 그 엄마보다 더 힘이 없거나 아예 병 든 엄마도 아이와 “무엇을 하는 것”말고 “그냥 함께 있으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도 괜찮은 것이라고 했더니 알아듣지 못합니다. “뒤통수를 느닷없이 한대 맞은 것 같다”고 합니다.
정의로운 엄마는 아이를 억울한 처지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아름답고 활기찬 총천연색의 삶을 살 권리가 아이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영역을 아주 없다는 듯이 무시하고 외면하도록 기르는 것은 그 모든 느낌의 색깔을 지워버리고 흑백사진으로 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나치 치하 유대인들 강제 수용소와 비할 수 있는 삶은 흑백으로 보는 것이 그나마 견딜 만 하게 합니다. 아이들을 느낌을 억누르게 하고 흑백사진같이 살게 하는 것은 정의로운 처사가 아닙니다. 엄마가 아이들의 몸과 마음 몽땅 사랑한다면 무채색으로만 보는 색맹으로 길러내서야 되겠습니까? 엄마들부터 마음의 색깔을 찾도록 건강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엄마부터 몸과 마음 제대로 갖추고 아이들을 길러야 하니까요.
엄마들 누구에게 검진 받으렵니까? 아이들에게 받기 바랍니다. 자기 아이만큼 자기를 잘 아는 검진 자(者)가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