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부하는 글-자세히 쓰기 사례 1-
<우리 소 늙다리>
이호철
-우리 집이 놓여 있는 모습-
우리 집이 놓여 있는 모습은 이렇습니다. 큰방이 있는 집이 남쪽을 보고 동서로 한 줄로 서있습니다. 큰방 집 쪽에서 남쪽을 보고 섰을 때, 오른쪽(서쪽) 앞쪽에 사랑방이 있는 집이 남북 한 줄로 동쪽을 보고 서 있고요. 그러니까 ㄱ자, ㄴ자 모양 집이랍니다. 큰방 집 가장 서쪽부터 부엌, 큰방, 작은방이 있습니다. 큰방과 작은방 앞쪽에는 마루가 이어져 놓여 있고, 부엌 옆에는 장독대가 있습니다. 사랑방 집의 가장 북쪽, 그러니까 부엌 가장 가까운 쪽에서부터 북쪽으로 도장 (도장 : 여기서 말하는 도장은 적은 곡식, 음식, 음식 만들 재료, 작은 기구 같은 것을 넣어 놓는 곳을 말함.) 디딜방앗간(발로 디디어 곡식을 찧게 되어 있는 방아), 나락뒤주(벼를 저장해 두는곳). 외양간, 작은 사랑방, 큰 사랑방이 놓여 있지요. 그러니까 외양간이 사랑방 집 가장 가운데에 있답니다. 앞쪽 안마당 가장 먼 쪽인 동남쪽 구석에는 뒷간(변소. 화장실. 옛날에는 ‘측간’이라고도 했음.)이 있고, 안마당 가장 앞쪽(남쪽) 큰 사랑방 옆에는 삽짝문(잡목의 가지로 엮은 문짝을 말함)이 있지요. 사랑방 뒤에는 큰 헛간 집이 동쪽을 보고 서 있습니다. 헛간에는 불 때고 나온 재와 거름을 모아두는 곳, 그 옆에는 겨울에 소에게 먹일 마른 풀을 모아두는 곳이 있지요. 거름 모아두는 옆에는 농사 연장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둡니다. 헛간 집의 다락에는 여러 가지 농기구나 서까래, 나무 반대기 같은 허드레 물건들을 얹어두었고요. 사랑방 집 뒤에는 넓은 뒷마당이 있는데 그 마당 북동쪽 가장 먼 곳에는 돼지우리가 남쪽을 보고 있답니다. 우리 집 지붕은 모두 초가지붕(짚이나 억새·갈대 따위를 엮어서 이은 지붕) 이라 겨울 들어서기 바로 전에는 새 짚으로 갈아입혀야 하지요.
우리 집이 놓여 있는 모습을 이렇게 자세하게 말하는 까닭은 우리 소 늙다리가 있는 외양간이 얼마나 귀한 자리에 있는지를 말하려고 한 것 때문입니다. 그만큼 소를 귀하게 여긴 것이지요. 우리 어릴 때 시골에서는 주로 농사를 지었데, 농사 큰일은 소가 다 했답니다. 논밭 갈기, 거름이나 곡식, 그 밖의 여러 가지 무거운 짐 나르기 같은 사람의 힘으로 하기 어려운 일은 소가 다 했거든요. 그때는 요즘 같은 농사 기계가 없던 때라 더 그랬습니다. 외양간 바로 옆 작은 사랑방 앞에는 큰 무쇠 가마솥이 걸려 있는데 거기에 쇠죽(소의 먹이로 짚과 콩 따위를 섞어 끓인 죽)을 끓여 바로 옆 외양간 앞에 놓여 있는 구유(말과 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흔히 큰 나무토막이나 큰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듦)에 퍼부어 줘요. 큰 사랑방 남쪽 옆에는 소 여물간(여물을 쟁여 두는 헛간. ‘여물’은 말이나 소를 먹이기 위해 썰어놓은 마른 짚이나 풀을 말함)이 있습니다. 거기엔 작두(말이나 소에게 먹일 풀·짚·콩깍지 따위를 써는 연장. 기름하고 두둑한 나무토막 위에 짤막한 쇠기둥 두 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긴 칼날 끝을 끼워 박음)가 놓여 있지요. 저녁 무렵이 되면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끓여줄 여물을 준비한답니다. 먼저 짚을 내 두 팔 아람으로 두 아람쯤 안아다 놓아요. 여름에 말려둔 마른 풀도 조금 갖다 놓고요. 한 사람이 작두에 매여 있는 끈을 당겨 작두날을 들면 한 사람은 그 밑에 짚단을 알맞은 길이로 갖다 댑니다. 그때 작두날 발판을 콱 밟아서 짚을 썹니다. 마른 풀도요.
“호철아, 소죽 낄이로 온니라.”
저녁 무렵까지 종태 형네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엄마가 불렀습니다. 그런데 나는 깜박하고 놀이에 빠졌습니다.
“철아! 이늠 짜슥, 빨리 안 오나!”
“아이 참, 할매한테 소죽 쫌 낄이라 카마 안 되나?”
“할매는 마실 가서 안죽 안 오싰다. 그라고 나이 많은 할매가 꼭 소죽을 낄이야 되겠나?”
“할매가 자주 소죽 낄이왔잖아.”
“이눔 짜슥, 와 그래 군소리가 많노. 얼렁 안 오나!”
“아이 참!”
“‘아이 참!’이 뭔 소리고? 소는 굶가 직일라카나!”
“알았다, 알았다, 알았어.”
가끔은 내가 놀이에 너무 빠져 있으면 엄마가 저녁 지으면서 쇠죽을 끓이기도 했습니다. 동무들과 어울려 열심히 놀고 있는 나를 빼내 오기가 좀 뭣해서겠지요. 누나가 밥하고 엄마가 쇠죽 끓일 때도 있고요.
나는 먼저 부엌 앞에 굽이 깊은 큰 다라이에 모아둔 구정물(무엇을 빨거나 씻어 더러워진 물. 여기서는 쌀 뜨물과 설거지물)을 양동이로 퍼 쇠죽솥에 몇 번 갖다 붓습니다. 구정물 속에는 반찬 만들 때 나온 채소 찌꺼기, 여러 가지 음식 찌꺼기 같은 것도 잔뜩 들어있어 걸쭉하답니다. 그리고는 여물간에 썰어놓은 여물을 짚 소쿠리로 두어 소쿠리 가득 담아와 쇠죽솥 구정물 위에 갖다 붓지요. 때로는 거기에 콩깍지나 등겨, 콩 같은 것을 넣어주기도 해요. 가을에는 풋콩을 뽑아와 쇠죽솥 안에 같이 넣고 삶아서 까먹기도 하고, 잡은 메뚜기를 자루째 넣어 삶기도 하지요.
가마솥 뚜껑을 꼭 닫고 아궁이에 불을 땝니다. 불 때다 따뜻해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지요.
“철아, 니 그래 자불다가 불알 꿉어묵으마 우짤라카노.”
엄마가 웃으며 한 소리 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었습니다. 또 불 때다 보니 부지깽이(아궁이 따위에 불을 땔 때, 불을 헤치거나 끌어내거나 하는 데 쓰는 막대기) 끝에 불이 붙습니다. 이때 부지깽이 불을 휘이휘이 휘둘리기도 하고 횃불처럼 치켜 들기도 했습니다.
“이눔짜슥, 니 그카다가 밤에 오짐 싼데이.”
“히히히, 할매 내는 오짐 안 싼다.”
“안 싸기는. 전에 한 번 싼 거는 오짐 아이고 그양 물이가.”
“헤헤헤헤헤…….”
그래도 나는 자꾸 불장난했습니다.
“으윽!”
내 앞머리가 호르륵 타버렸습니다.
“철아, 와?”
“엄마, 할매, 내 머리 꿉어묵었다. 에이잉.”
“자알 했다. 하지 마라 칼 때 끝내야지. 그카다가 큰불 내마 우짤라 카노.”
“아고오, 엄마. 이거를 우째마 좋노.”
“그래가 학교 가마 아들이 뭐라카겠노. ‘니 부석(부엌)에서 잤나.’ 이칸데이. ”
“아고, 이거를 우째노.”
쇠죽솥 언저리로 눈물이 쭈루룩 흘러내리더니 김이 피이 나왔습니다. 이때 솥뚜껑을 열고 나무로 만든 꼬끄랭이로 여물을 이러저리 뒤집습니다. 김이 물씬 올라 얼굴을 확 덮쳤습니다. 얼굴이 화끈하면서도 따뜻합니다. 풋풋하고 구수한 여물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습니다. 싫지 않습니다. 엎드려 있던 늙다리가 벌떡 일어나 가마솥 쪽으로 목을 쭉 빼었습니다.
“늙다라, 쬐끔만 기다리래이.”
솥뚜껑을 닫고 다시 한번 불을 지폈습니다. 늙다리는 못 참겠는지 목을 더욱 쭉 빼어 주둥이로 솥뚜껑을 밀어버립니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여물을 긴 혀로 날름 끌어당겨 먹고요.
“얌마, 쫌 기다리라 캤제!”
나는 부지깽이로 머리를 한 대 탁 때렸습니다. 늙다리는 눈을 꼭 감으며 쭉 뺀 목을 거두어들였습니다. 다시 한번 더 김이 피이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잠시 그대로 뒀다가 솥뚜껑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꼬끄랭이로 쇠죽바가지에 쇠죽을 끌어 담아 바로 옆에 있는 구유에다 부어줍니다. 늙다리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쇠죽을 쩝쩝 맛나게 먹습니다. 뜨거운 데도 입김을 씩씩 불어가면서 먹어요. 대충 씹은 쇠죽을 ‘꿀꺽’ 소리 나게 삼켜요. 그때 목을 보면 목의 한 줄기가 볼록볼록하며 여물 넘어가는 게 보입니다. 망나니도 늙다리 옆에서 쬐끄만 꼬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쇠죽을 낼름낼름 먹습니다.
‘아고 맛있겠다. 난도 먹고 싶어지네잉. 아고오, 배고파라.’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