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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씨 이야기4 / 파트리크 쥐스킨트(독일)
앞에서 내가 미스 풍켈 선생님이 자기 어머니를 보고 학생에게 과자를 주라고 말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그런 일이 아주 굉장히 드물다는 것을 강조해 두었었다. 미스 풍켈 선생님은 성격이 원래 매우 엄격했고 만족시키기가 대단히 어려운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절대로 흔한 일은 아니었다. 숙제를 시원찮게 해 왔다거나, 악보를 보면서 연주할 때 다른 건반을 눌렀다든가 하면, 선생님은 얼굴이 온통 시뻘개지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팔꿈치로 학생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하다가 갑자기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꽥꽥 질러대곤 하였다.
최고로 나빴던 경험을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겪었다. 그때 선생님이 어찌나 나를 혹독하게 혼냈었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을 삭이지 못한 채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히 10분 늦었다.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오소리개가 나를 한참 동안이나 울타리 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도중에 자동차를 두 대 만났으며, 네 명의 행인을 앞질러야만 했었다. 미스 풍켈 선생님 집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얼굴이 이미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방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삿대질을 해대고 있었다.
"얼마나 늦었는지 알고 있기나 하니?"
선생님이 다짜고짜 물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는 시계가 없었다. 손목시계는 그 후 한참이 지난 다음 열세 번째 생일에 처음 선물로 받았다.
"저기 좀 봐!"
그러면서 선생님은 추가 달린 시계 밑에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풍켈 할머니가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조금만 있으면 벌써 3시 15분이야!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 온 거야?"
나는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개 이야기부터 더듬거리며 하기 시작했지만 선생님은 내게 변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개라구!"
선생님이 이내 내 말을 끊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개하고 놀았겠지! 얼음 과자도 하나 사 먹었을 테고! 너 같은 애들은 내가 잘 알고 있어. 히르트 아줌마네 구멍가게를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면서 얼음 과자나 사 먹을 생각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그건 정말 너무한 처사였다. 내게 히르트 아주머니네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었다고 하다니! 용돈도 한푼 받지 않았던 나한테 말이다! 형과 형 친구들이 그런 짓을 하기는 했다. 그 형들은 용돈을 몽땅 히르트 아주머니네 구멍가게로 갖다 바쳤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런 내가 피아노를 배우려고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온갖 시련을 겪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왔건만 고작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으려고 히르트 아주머니네 구멍가게를 기웃거렸다는 누명을 뒤집어써야만 된단 말인가!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눈물 그쳐!"
미스 풍켈 선생님이 소리를 꽥질렀다.
"가방이나 열고 악보나 꺼내서 뭘 배웠는지나 해 봐! 보나마나 연습도 안 했겠지!"
그 말은 공교롭게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전 주에 나는 다른 중요한 할 일이 있기도 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숙제로 내주었던 연습곡이 카논 형식의 푸가 형태여서 오른손과 왼손을 옆으로 쫙 벌리고 치다가, 가끔씩 한 손은 이쪽에 다른 한 손은 저쪽에 두면서 쳐야 했고, 서로 불협화음을 이루는 리듬과 특이한 음정을 지키면서, 높은 음에서 귀에 몹시 거슬리는 소리까지 내야 되는 등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서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 작곡가는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헤쓸러라는 사람이었다. 악마가 있어서 그 사람을 잡아 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그날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 특히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오소리개의 공격 - 흥분되는 일들을 겪지 않았고, 그것들에 이은 미스 풍켈 선생님의 혹독한 꾸지람으로 내 마음이 그렇게 갈기갈기 찢겨지지만 않았더라면 그 두 곡을 그런 대로 연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땀도 뻘뻘 흘리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피아노 앞에 앉아서 - 내 앞에는 여든여덟 개의 건반과 헤쓸러 씨의 연습곡이 놓여 있었고, 뒤에는 치밀어 오르는 노여움으로 내 목덜미에 더운 입김을 뿜어대고 있던 미스 풍켈 선생님이 있었다... 최악의 연주를 해 보였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베이스와 바이올린을 위한 키, 반음과 온음, 4분의 1 쉼표와 8분의 1 쉼표, 왼쪽과 오른쪽, 첫 줄의 마지막 마디도 미처 치지 않았는데 피아노 건반과 악보가 흐르는 눈물로 마치 만화경을 보는 듯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고, 나는 결국 손을 밑으로 내리고 가만히 훌쩍거리며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목뒤에서 어금니 사이로 뱉어 내는 듯한 말이 튀어나왔고, 잘게 부서진 침 방울들이 내 목덜미를 때렸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구. 늦게 오고, 얼음과자 사 먹고, 변명을 늘어놓고 뭐 그런 것들은 참 잘도 하겠지! 그렇지만 숙제는 하나도 못해 오고! 그렇게만 해 보라고,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구! 너 같은 녀석한테 내가 한 수 가르쳐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한 다음 선생님은 내 뒤에서 앞으로 나와, 내 옆자리에 털퍼덕 주저앉더니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벌려 가며 헤쓸러 씨가 작곡했을 때 그랬을 것처럼 건반 하나하나를 찍어눌렀다.
"이건 이쪽으로! 그리고 저건 저쪽에! 그리고 이건 여기에! 그리고 엄지는 여기에! 셋째 손가락은 요기에! 그리고 이거는 저기에! 또 이거는 여기에..."
그렇게 오른손가락을 가르치고 난 다음에는 같은 방법으로 왼손을 다뤘다.
"이거는 저기로! 또 저거는 여기로! 요거는 저기로...!"
그렇게 분노를 삭이며 내 손가락에 마치 연습곡의 악보에 있는 음표 하나 하나를 박아 넣게라도 하려는 듯이 손을 이리 저리로 끌면서 꾹꾹 눌러 댔다. 그렇게 하기를 약 30분 정도 하자 손가락이 몹시 아팠다. 그런 다음 선생님은 마침내 내 손가락을 놓더니 책을 덮어 버리고 식식거리며 숨을 몰아 쉬었다.
"다음 번에 올 때까지는 할 수 있어야 돼! 그것도 악보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달달 외워서 알레그로로 쳐야지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혼날 줄 알아!"
그러고는 연탄곡 연주곡이 들어 있는 두꺼운 책을 꺼내어 악보를 놓는 곳에 꽝 소리를 내며 펼쳐 보였다.
"지금부터는 제발 악보 읽는 법 좀 알라고 10분 동안 디아벨리 곡을 치겠다. 어디 실수만 해 봐라!"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소매로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냈다. 디아벨리는 좋은 작곡가였다. 그는 끔찍한 헤쓸러처럼 푸가 형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디아벨리 곡은 치기가 아주 쉬웠다. 그의 곡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멋들어진 소리를 연출해 냈다.
비록 누나가 <아무리 피아노를 못 치는 사람이라도 디아벨리는 칠 수 있어>라는 말을 종종 했어도 나는 그를 사랑하였다.
아무튼 우리는 디아벨리를 연탄으로 쳤는데 미스 풍켈 선생님은 왼쪽에서 베이스를 쳤고 나는 오른쪽에서 소프라노를 동일 음으로 쳤다. 한동안은 제법 잘 나가서 나는 차츰 마음에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안톤 디아벨리 작곡가를 창조하신 신께 감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긴장이 풀린 나머지 짧은 소나타가 처음에 올림 자 음이 표시되어 있는 사 장조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계속해서 흰 건반만 편하게 두드려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곳에서 악보에 특별한 표시가 없어도 사 음의 아래에 있는 올림 바 음의 검은 색 건반을 눌러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쳐야 할 파트에 올림 바 음이 처음으로 나왔을 때 그렇게 쳐야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 만만하게 옆 건반을 눌러 바 음이 잘못 나오는 바람에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거슬렸을 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뻔하지!"
미스 풍켈 선생님이 다시 숨을 식식 소리나게 몰아 쉬며 연주를 멈췄다.
"뻔해! 조금만 어려운 게 나와도 금방 틀려 버리지! 넌 눈도 없니? 올림 바잖아! 여기 이렇게 크고 확실하게 씌어 있잖아! 똑똑히 보라구! 다시 한번 처음부터 해! 하나 - 둘 - 셋 - 넷..."
내가 왜 두 번째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아마도 곡 전체를 올림 바음으로만 치고 싶을 정도로 음표마다 올림 바음을 치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억지로 강요하면서 올림 바를 치지 않을 것을 무진장 노력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직 올림 바를 치면 안 돼, 아직 아냐... 아직... 그러다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부분에서 그만 올림 바 대신 바 음을 눌러 버렸던 것이다.
선생님은 금방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쇳소리를 내며 야단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올림 바라고 했잖아, 이 바보 멍청아! 올림 바! 올림 바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이 바보야? 이거잖아!"
땡 - 땡 -. 그렇게 말하면서 선생님은 수십 년 동안 피아노를 가르치느라고 십 전짜리 동전만하게 뭉툭해진 둘째손가락으로 사 음의 아래에 있던 검은색 건반을 눌러댔다.
"... 이게 올림 바야...!"
땡 - 땡 -.
"... 이게..."
그러다가 선생님이 재채기를 했다. 재채기를 하고 나서 내가 위에 묘사한 바 있는 둘째손가락으로 코밑을 훔치고는 연신 쇳소리를 내면서 두세 번 더 건반을 눌렀다.
"이게 올림 바야, 이게 올림 바라구...!"
그리고는 선생님이 옷소매 끝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고 코를 풀었다.
올림 바 건반을 쳐다보던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 건반의 앞쪽 끄트머리에 미스 풍켈 선생님이 재채기를 할 때 콧털에 붙었다가, 그곳을 훔쳐낼 때 둘째손가락에 옮겨 붙었다가, 둘째손가락에서 올림 바 음 건반으로 옮겨 붙어 크기가 손톱만 하고, 굵기는 거의 연필 굵기만 하며, 벌레처럼 휘어진데다가 녹황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기조차 하는 끈적끈적한 코딱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선생님이 어금니 사이로 말을 내뱉었다.
"하나 - 둘 - 셋 - 넷..."
우리는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후의 30초는 내 일생에 있어서 가장 고역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내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있다는 것과, 두려움으로 인해 배어 나오는 땀방울이 목 언저리에 맺히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빳빳하게 섰고, 귀는 한 번을 차가웠다가 한 번은 뜨거웠다가 하더니 결국에 가서는 뭔가로 막혀서 귀머거리가 된 것처럼 안톤 디아벨리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악보도 보지 않은 채 두 번의 반복으로 저절로 굴러가는 손가락을 따라 기계적으로 쳐 나갔다. 오로지 내 시선은 마리아 루이제 풍켈 선생님의 코딱지가 붙어 있는 사 음 밑의 가는 검은 건반에만 고정되었다... 이제 일곱 마디만 지나면, 아직 여섯 마디만... 물컹한 코딱지를 누르지 않고는 그 건반을 도저히 누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제 다섯 마디, 이제 네 마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올림 바 음 대신에 그냥 바 음을 치는 짓을 세 번째로 한다면, 그렇다면... 이제 겨우 세 마디 - 오, 하느님 기적을 이루소서! 무슨 말씀이라도 하소서! 무슨 행동이라도 보이소서! 땅을 쩍 갈라지게 만드소서! 올림 바 음을 칠 필요가 없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주소서... 이제 두 마디, 이제 한 마디... 하지만 하느님은 침묵을 지켰고 아무 행동도 보이지 않았으며 마지막 끔찍스러운 마디의 순간은 도래하였다. 그 마디는 - 아직도 내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 라 음에서부터 올림 바음까지 이어지는 여섯 개의 8분의 1 박자를 치다가 그 위에 있는 사 음의 건반을 4분의 1 박자로 치고 끝맺는 것이었다... 마치 황천길을 가듯이 내 손가락이 8분의 1 음표 계단을 비틀거리며 내려갔다... 라 - 다 - 나 - 가 - 사...
"올림 바!"
옆자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나는 정신이 멀쩡한 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죽는 것조차 무섭지 않다는 듯이 바 음을 쳤다.
내가 가까스로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빼내자마자 피아노 뚜껑이 꽝 소리를 내며 닫혔고, 내 옆자리에 있던 미스 풍켈 선생님은 악마처럼 펄펄 날뛰었다.
"너 그거 일부러 그랬지!"
꽥하며 지르던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소리는 귀머거리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내 귀 속을 파고들었다.
"고의로 그렇게 한 거야, 이 괘씸한 놈! 건방진 놈, 못된 놈, 버르장머리 없는 쓰레기 같은 놈..."
그렇게 말한 다음 선생님은 발을 쾅쾅 굴러대면서 방 한가운데 있던 식탁으로 가더니 말을 두 마디 뱉을 때마다 주먹으로 식탁을 쾅쾅 내리쳤다.
"네 녀석이 암만 그래도 네까짓 녀석이 나를 갖고 놀게는 안 해, 알았어? 내가 이렇게 화만 내고 말리라고는 꿈도 꾸지 말아라! 네 엄마한테 전화할 거야, 네 아빠한테도 전화할거야, 네 녀석이 일주일은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패주라고 할 거야! 앞으로 3주일 동안은 집밖으로도 내보내지 말고, 하루에 세 시간씩 앉아서 사 장조를 연습시키라고 하고, 거기에다 라장조, 가장조, 올림 바, 올림 다, 올림 사도 네가 그런 것들을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때 까지 연습시키라고 할거야! 내 맛 좀 보라구, 이 말썽꾸러기 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너 같은 녀석은... 맘 같아서는 지금 당장... 내 손으로 직접... 그냥..."
그러다가 선생님은 너무 노여운 나머지 더 이상 말을 못 잇고 양팔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더니 금방 터져 버리기라도 할 듯이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앞에 놓인 과일 접시에 있던 사과를 하나 집어 가지고, 그것을 어찌나 세게 던져 버렸는지 그것이 당신 어머니의 거북이 머리 같은 머리를 약간 위쪽으로 벗어나며 벽시계의 왼쪽 벽에 갈색 흠집을 내고 터져 버렸다.
그러자 마치 누군가 작동 단추라도 누른 것처럼 칭칭 감겨져 있던 곳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같더니 감고 있던 옷의 주름 사이로 노인의 손이 나와 자동적으로 오른쪽으로 돌아 과자있는 쪽으로 뻗어 나갔다..... 하지만 그것을 미스 풍켈 선생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나만 봤다. 대신에 선생님은 문을 활짝 열어제치고 손을 쭉 뻗으며 나가라는 손짓을 하면서 쇳소리를 냈다.
"네 물건 싸 가지고 꺼져 버려!"
내가 허둥지둥 밖으로 나오자 문이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내며 내 등 뒤에서 닫혔다.
나는 온몸으로 떨었다. 무릎이 너무나 떨려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고사하고 거의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짐을 싣는 곳에 얹어 놓은 악보 책을 잡고 자전거를 옆으로 밀면서 갔다. 그것을 밀고 가는 동안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생각들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나를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오한이 날 정도로 몹시 흥분하게 만들었던 것은 미스 풍켈 선생님의 난리 법석이 아니었다. 매맞을 것과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감금이 무서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보다는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못된 개의 잘못은 또 다른 문제였다. 모든 것이 다 문제였다. 어떤 것에 대한 예외도 없이 모든 것이 다 그랬다. 우선 제 일 먼저 내게 맞는 자전거를 사 주지 않은 우리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아버지가 그랬으며, 선 자세로 자전거를 타야 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몰래 나를 비웃었던 누나와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던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개의 똥도 그랬고, 호숫가 길을 꼭 메워 나를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산보객들도 그랬다. 푸가 형식으로 나를 괴롭히고 모욕스럽게 만든 작곡가 헤슬러도 그랬다. 말도 안되는 억지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올림 바음 건반 위에 구역질나는 코딱지를 붙여 놓은 미스 풍켈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가 딱 한번 필요로 하였을 때 도와줄 것을 간청하였건만 비겁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어긋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모양만 지켜보았을 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이 자비롭다고 하는 하느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나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그런 못된 악에 질식해 버리도록 두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나 잘 먹고 보라지! 나를 포함시키지는 말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그런 것들에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훨씬 가벼워졌다. 모든 역겨운 것들과 잘못된 것들을 다 일격에 격파하기 위해서 단지 (나 스스로 삶과 작별을 고하기) - 그런 행동을 그렇게 고상하게 표현해도 된다면 -만 하면 된다는 상상이 왠지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해 주었다. 홀가분한 마음 때문에 눈물도 그쳤고, 온몸이 떨리던 것도 진정되었다. 세상에 다시 희망이 있어 보였다. 다만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당장, 내게 다른 생각이 나기 전에 해치워야만 할 일이었다.
나는 페달을 힘차게 밟고 앞으로 달렸다. 윗마을 중간쯤까지 갔을 때 집으로 돌아가려면 가야 되는 길로 가지 않고, 호숫가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숲을 지나 언덕을 오르다가 덜컹거리며 들길을 지나, 변전소가 있는 방향으로 뻗어 있는 등하교 길을 택해 갔다. 그곳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제일 큰 나무가 있었다. 덩치가 커다란 가문비 고목이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질 생각이었다. 달리 죽는 방법은 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물에 빠진다거나 심지어 전기로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다. 그 가운데 제일 마지막 방법에 대해서는 형이 조금 추상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죽으려면 전기를 통하게 할 수 있는 매체가 있어야 해. 그것이 제일 중요한 거야. 그것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깃줄에 앉아 있는 새들이 다 즉사해서 떨어지겠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거든, 심지어 네가- 이론적으로는 십만 볼트 고압선에 목을 매달아도 너한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네게 전기를 통하게 할 수 있는 매체가 없다면 말이야."
형은 그런 것들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기라든가 그런 기구들을 이해하기조차 너무 어려웠다. 더구나 전기를 통하게 할 수 있는 매체가 어떤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뿐이었다. 떨어지는 것이라면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변전소 옆에 세워 두고 덤불 속을 헤치며 가문비나무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 나무는 너무 고목이라서 줄기 아래쪽으로는 잔가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그 곁에 있던 작은 소나무를 기어올라가 거기에서 그 나무로 건너갔다. 건너간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쉬웠다. 굵직하고 손으로 잡기 좋은 가지를 올라타며 꼭대기 쪽으로 기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사다리라도 올라가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다가 머리 위해 있던 무성한 가지 사이로 갑자기 햇볕이 내리쬐고, 내몸이 약간 휘청해진다는 것을 느낄 만큼 줄기가 가늘어진 부근에서 멈추어 섰다. 그곳은 꼭대기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던 곳이었는데, 거기에서 처음으로 밑을 내려다보니 발 밑으로 솔잎과 나뭇가지와 솔방울들이 초록과 갈색으로 두텁게 엮어져 있어서 더 이상 땅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굳이 뛰어내린다면 그것은 바로 눈 아래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단단한 침대처럼 보여 사람의 눈을 속이는 구름 덩어리에 뛰어내려서 결국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짓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어디로 어떻게 떨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나의 추락을 모름지기 갈릴레이의 낙하 법칙에 아무런 방해 없이 적용 받게 해야만 했다.
결국 나는 가지를 붙잡으면서 줄기를 타고, 아래쪽에 방해받지 않고 그대로 떨어질 수 있는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면서, 약간 어두웠던 밑으로 다시 내려갔다. 가지를 몇 개 내려가자 정말 그런 곳이 나타났다. 마디가 많아서 울퉁불퉁한 뿌리에 떨어졌다가는 심한 충격으로 죽지 않을 수 없게 될 곳을 향하여 수직으로 깊게 파인 굴처럼 휑하니 뚫린 구멍이었다.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완벽하게 떨어지기 위해서는 뛰어내리기 전에 줄기로부터 몸을 아주 약간만 앞쪽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 지점이었다.
나는 나뭇가지 위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은 줄기에 비스듬히 기댄 채 숨을 몰아 쉬었다. 그 순간이 되기 전에는 거기까지 찾아서 헤매는 것이 무척 힘든 과정이었기 때문에 내가 왜 무엇을 위하여 행동하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던 갖가지 상념들이 다시 머리 속에 떠올랐고, 나는 사악한 세상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갖은 험담과 욕설을 퍼부은 다음, 과연 내 장례식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 보기 시작했다. 아주 멋진 장례식이 되겠지! 교회 종이 울릴 테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윗마을에 있는 공동 묘지는 수많은 조객들로 미어 터지겠지. 나는 유리 관 속에 누워서 수많은 꽃 속에 파묻혀 있을 테고, 까만색 조랑말이 날 끌고 가면 사방에서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요란하겠지. 부모님이 우실 테고, 누나와 형들도 울 테고, 우리반 아이들도 울 테고, 하르트라웁 박사 부인과 미스 풍켈 선생님도 울 테고, 멀리서 찾아 온 친척들과 친구들도 엉엉 울면서 그들 모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소리지르겠지.
"엉, 엉!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우리 잘못이야! 만약에 우리가 좀더 잘해 줬더라면, 너무 못되게 굴지도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았더라면, 그 착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상냥했던 아이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으련만!"
좀머씨를 그 다음 번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로부터 5, 6년쯤이 지난 후였다. 그 사이에도 물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그를 큰길이나, 호숫가의 수많은 오솔길이나, 텅 빈 들판이나, 숲에서 만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만남은 내게 별로 이상스럽게 생각되는 것이 아니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 아저씨를 너무나 자주 보아 왔기 때문에 아저씨를 마치 눈에 익은 농기구를 보듯이 건성으로 보게 될 만큼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만남이었다. 그것은 마치 매번 놀란 눈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큰소리로 외치지도 않으며 하는 이런 말들과 마찬가지였다.
"저것 봐, 교회 종이 있네! 저기 학교 앞산 좀 봐! 저기 버스가 지나간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일요일에 경마장에 가다가 아저씨를 보면 나는 그냥 아버지와 농담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저기 좀머씨 간다. 저러다가 죽겠다!"
그럴 때 나는 내가 당장 눈으로 보고 있는 아저씨를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니라 수년 전 우리 아버지가 이른바 틀에 박힌 빈말이라는 말을 사용했었던, 우박이 쏟아졌던 그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 무렵 누군가의 입에서부터인가 인형을 만들던 아저씨의 부인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였는지는 아무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더 이상 페인트 칠장이 슈탕엘마이어 씨네 지하실에서 살지 않았고-거기에서는 이제 리타가 남편과 함께 살았다-그 집에 서 몇 채 뒤에 있는 리들 어부 아저씨네 집 다락방에서 살았다. 나중에 리들 아줌마에게서 들은 말에 의하면 아저씨는 집에 아주 잠깐만 들러서 뭘 좀 먹을 것을 만들거나 차를 끓여 마시고는 이내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나가고는 며칠씩 집에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잠을 자러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저씨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에서 밤을 보냈는지, 어디에서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는지, 잠을 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밤낮으로 이곳 저곳을 헤매며 돌아다녔는지, 그런 모든 것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 것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다른 걱정거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가용이나 세탁기, 잔디밭의 스프링쿨러에 대한 걱정은 했어도 어느 늙은 별종이 어디에서 잠자리를 폈는지는 걱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들은 말이라든가 텔레비전에서 본 것이라든가 히르트 아줌마가 새로 문을 연 셀프서비스 가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좀머씨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좀머씨는 가끔씩 사람들 눈에 띄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자면 세월 다 보낸 사람이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