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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정식 로제의 노래 원문보기 글쓴이: 삐에르
고통과 삶 그리고 노래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겄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님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이수복 시/김정식 곡 ‘봄비’)
봄비가 내리니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 시가 절로 떠오른다. 시를 처음 본 순간 내게는 노래로 읽혀졌고, 가까운 친구들과 화음을 맞추어 지치도록 부르다가 ‘캠퍼스 송 경연대회’에 나가 입상도 했었다.
새봄과 함께 오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가톨릭교회에서는 40일간을 사순절로 정하여 특별한 준비를 한다. 모든 이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수난과 고통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고통의 참된 의미를 알아차리고, 우리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잘 받아들임으로써 회심(혹은 회개)을 이루어 새로운 삶을 누리자는 의미이다. 사순절이 고통만을 생각하는 기간이 아님에도 고통이 중요한 화두가 된다. 나 또한 전국의 여러 성당에서 ‘고통 중에 함께 하시는 자비의 하느님’ ‘고통을 이겨내는 한 가지 비결’ ‘고통의 참된 의미’ 등 고통을 주제로 한 내용으로 강의와 공연을 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나누게 된다. 나만의 고통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고통 없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어쩔 수 없어서 고통을 수용하고 산다. 오죽하면 불가에서는 ‘삶이란 고해(苦海-고통의 바다)’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타인의 고통에 대한 나눔을 듣다보면 자신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 혹은 연대감 때문에 교감을 이루기 쉽고, 강의에 대한 집중력과 호응도 또한 높아진다. 그런데도 가능하면 그것만은 피해가고 싶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유를 말하자면 ‘고통을 팔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성녀’라고 칭했으며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한 테레사 수녀를 향해서도 ‘자비를 팔았다’는 다른 쪽 평이 있는 것을 보면 ‘현상적으로 좋아 보인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어린 날, 아마도 대여섯 살 쯤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고열과 두통으로 자지러지는 나를 업고 어머니는 동네 최 의사네 집, 이웃마을 재중병원, 삼거리 서울약국, 읍내 덕수병원 등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거의 뛰다시피 다니셨다. 별다른 진단과 처방이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기에 반복되는 일이었다. 도시 중학교로 진학해 누나와 자취를 하면서부터 나타나던 결절성 홍반증은 늘 혈관염을 불러왔고, 염증으로 인한 고열과 두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 후로 45년간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을 전혀 쓰지 않고 겪어온 고통은 글로 적고 싶지 않다. 다시 생각하는 것마저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가 면역과 관련된 여섯 가지 병명(희귀난치 포함)을 진단을 통해 얻었지만, 예방도 대안도 없는 통증과 고열을 무방비 상태로 겪는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자가면역 계통의 병으로 오랜 기간 통증에 시달리다 보면 통증은 늘 또 다른 통증을 불러온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린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어버린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의 유서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지방 소재 대학병원 포함)과 한의원, 대체의학과 자연의학을 포함한 개인치료사까지 수많은 손길들이 내 고통을 없애주려고 애를 썼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알아차리게 되었다. 통증과 고열이 시작될 때마다 이번에는 꼭 죽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매번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는 것과,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는 단 한 가지 비결은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수난을 앞두고 아버지 하느님께 ‘아버지. 이 고통의 쓴 잔을 거둘 수만 있다면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내 뜻과 다르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지고지순한 이 기도내용은 곧 바로 내 기도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해서 통증이 줄어들거나 고열이 조금도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겪는 것과 반드시 이겨내고 살아난다고 생각하면서 겪는 것은 전혀 다르다. 마치 반대쪽의 환한 출구를 생각하면서 어두운 터널로 두려움 없이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스물아홉 살 때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삶이란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고, 신앙이란 견뎌내는 시간 속에 그분이 함께 하신다는 감사함을 거듭거듭 새기고 간직하는 것이다.’
이 고통과 함께 내게 온 것이 있다. 예술창작이라는 뜻밖의 선물이다. 깡촌(전남 장성군 황룡면 월평리 교동 72번지)에서 나고 자란 나는 특별한 음악교육은 물론이고 도시로 중학교를 가기 전까지 피아노도 구경하지 못했었다. 그런 내게 음악이 왔다. 고통과 함께. 단순하게 말하자면 작곡에 대한 음악지식이 전무한 내게서 감흥 혹은 영감만으로 음악이 나왔다. 따로 배우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어떤 훈련이나 노력이 없어도 끊임없이 샘물처럼 음악이 흘러나왔다. 현대 창조영성가 매튜 폭스(M. Fox)는 고통이란 ‘자비를 위한 수련장’이라 하였고, 스위스의 상담가 폴 투르니에는 ‘위장된 축복’이라고 했지만, 내게 있어 고통이란 ‘견뎌내야 할 삶의 한 부분’일 뿐 축복도 자비수련장도 아니었다. 그러나 고통을 견뎌내는 동안 내 곁에서 늘 함께 겪어주시는 그분을 더 깊게 인식할 수 있었고, 그런 순간의 영감으로 음악이 나왔다면, 내게 있어 음악이라는 창작예술은 무시로 찾아와 죽을 만큼 나를 괴롭혔던 극심한 고통을 잘 견뎌낸 산물 혹은 선물일 수도 있다.
얼마 전에 방영된 TV프로그램 중에 천재적 재능을 지닌 창작예술가들에 대한 두 가지 연구가 있었다. 일부학자들은 환생 때문에 전생의 재능이 현생에서 발휘된다고 말하는데 이런 주장은 고대부터 있어왔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상기설(전생에서 이미 학습한 지식을 상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에 기원하여 천재의 환생을 주장했다. Education(교육)이라는 단어는 ‘이끌어 올리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Educatio(에듀까시오)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대에는 ‘교육이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사상들이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도 인간은 선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자극을 받으면 탁월한 직관이나 재능, 통찰력, 영감 등을 통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내게 흥미를 준 연구가 또 있는데, 의학전문가들은 신경계통의 이상증세로 천재들을 설명하고 있다.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신경계통의 질환으로 고통 받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 고통이 천재들의 삶과 창조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발표되고 있다. 팝아트의 거장 엔디 워홀은 어린 시절 무도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는데 얼굴·손·발·혀 등의 근육에 운동장애가 나타나는 희귀병으로 자주 학교에 가지 못했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대뇌혈관 질환으로 추정되는 마비증상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다.
이들에게 신경질환은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운 독특한 성격을 낳고, 그럴수록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천재들에게 예술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게 하는 강력한 진통제와 같은 것인데, 창조성과 신경질환과의 이 상관관계는 계속 연구 중이다. 그런가하면 일부신경과학자들은 위대한 천재예술가들은 우울증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울증으로 인해 뇌가 신경질환을 일으키면 특정분야의 재능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는 26년간 우울증을 앓아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받았고, 슈베르트는 사망하기 전까지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모차르트와 베토벤 역시 우울증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케이 재미슨 교수는 20세기 위대한 예술가들의 병력을 조사한 결과 38%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예술가들이 보인 천재적인 창조력은 신경계통의 이상 때문에 발생하는 것, 다시 말해 ‘고통의 대가’ 라고 주장한다.(이상 방송내용 참조 및 정리)
천재[天才] -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아주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 또는 그런 능력이나 재주를 가진 사람.
국어사전에 적힌 대로라면 따로 배우거나 익히지 않았고, 어떤 훈련이나 노력이 없었는데도 음악창작과 연주를 하고 있는 나는 천재임에 틀림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음악작업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내 음악작업의 현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창작물들이 실재가치라거나 인류사에 이바지한 업적 같은 것으로 평가하자면 형편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평가란 척도나 기준에 따라 지극히 상대적일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별 볼일 없는 천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스스로 곱게 인정한 한 천재의 관심사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타인에게 천재성을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나의 천재성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런 천재성이 서로 교감된다고 하는 사실과 그 교감의 매개 역할이 ‘고통’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순절이 끝나갈 무렵 나는 또 다시 심한 통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새로울 것도 없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고통은 습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번의 고통은 매번 일회적이다. 자주 겪었다고 덜 힘들지도 않고, 겪어내는 일에 이력이 붙어 결코 선수(選手)처럼 유연하게 대처해지지 않는다. 또한 통증이 오르막을 타고 극한으로 치달을 때 보다 정상(頂上)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내리막으로 돌아설 때 더욱 힘들다. 이제는 한 풀 꺾여 열과 통증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그 다음을 기다려야 하고, 그 다음에는 얼마만큼의 강도로 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날도 고열로 인하여 흐려진 시선으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크린 도어에 적힌 시 한 편을 보게 되었다.
발이 만든 길로 다니기 신을 벗고 개울 건너기 강을 만나면 뒤돌아가거나, 머물거나, 배로 지나기 높은 산이 보이면 돌아가거나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 넘기 자연을 거스르지 않기 생이 다한 뒤에도 자연에 남는 거니까 사는 일에 집착하지 않기 (권정우 시/김정식 곡 ‘자연에 대한 예의’전문)
분명 처음 본 시였다. 그러나 그 시에 음악이 담겨 있었고, 내게는 그 시가 음악으로 읽혔으며, 그 음악은 처음인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읽히는 순간 나의 뇌에 파일(file)로 저장되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그 순간의 여러 정황과 함께 필름처럼 찍힌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경우에 따라 아무 종이에나(심지어 화장지에 까지) 오선을 그어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 정성을 다해 악보를 곱게 그려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시인께 보내드렸다. 잘 쓰인 시는 무척 많지만 좋은 시는 그리 많지 않기에 고마웠다.
“시는 읽히는 것보다 노래되었을 때 감동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 시가 김 선생님 눈에 띄어 호사를 하게 되었네요.” “제 음악작업이 비상업이라서 호사가 안 될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시 안에 노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노래를 찾아낸 것뿐입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당신의 예술창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연 속 어디에나 음악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그 음악을 발견하는 것일 뿐, 제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발견될 것입니다.’ 깊은 감동을 주는 말씀이었다. 나 또한 권정우 시인의 시에 담긴 음악을 발견했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다른 이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스크린도어에 있는 수많은 시들 중 그 시에 담긴 노래를 내가 발견하게 되었을까? 시인의 다른 시에서 그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집은 어디인가 자식들이 힘을 모아 아파트를 구해 드린 게 십년 전인데 이집이 당신 집이 아니라면 어머니의 집은 어디인가 한푼 두푼 모아서 장만했지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서 팔아야 했던 부천의 양옥집도 아니고 텃밭도 있고 우물도 있던 신정동 무허가 시멘트 벽돌집도 아니고 화장품 팔러 다니다 병을 얻었던 상도동 산동네 흙벽돌집도 아니라면 어머니의 집은 어디인가 아버지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집 판 돈도 날린 뒤에 일곱이나 되는 식구들을 끌고 들어간 강원도 산골짝의 오두막도 아니고 자수성가한 외할아버지가 춘양목으로 번듯하게 지은 외갓집도 아니라면 어머니의 집은 어디인가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 모르는 집에 맡겨진 아이처럼 우리 집으로 가자고 애원하는데 어머니의 집은 어디인가 오래전부터 대문을 열어놓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집은 (권정우 의 시 '어머니의 집' 전문)
시나 문학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한다. 다만 어렵지 않은 자전적 시 내용을 통해 권정우 시인이 나 못지않은 고통을 겪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고통을 통해 얻은 영감이 창작을 낳았고, 그 창작물에 담긴 영감 때문에 교감이 가능했다면, 결국은 서로의 몫으로 주어진 고통을 잘 견뎌낸 우리가 그 고통의 산물 혹은 선물을 통해 교감했다고 생각한다. 고통과 함께 내게 온 음악처럼 권정우 시인에게는 고통이 시로 왔나보다.
하늘의 별이 되신지 6년이 되어가는 유경환 시인과도 그런 교감이 있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관한 어린이들의 글모음을 보면서 내 머릿속으로 지나간 음악이 ‘제비꽃이 핀 언덕’이라는 소품연주곡이다. 공연 중에 바이올린으로 연주된 이 곡을 들으면서 시인께서는 당시 돌아가신지 3년 된 어머니의 무덤이 떠올랐다고 했다. 후일, 공연장에서 적으셨다는 시를 보내오셨다.
제비꽃이 핀 언덕에 햇볕 따스히 모일 때 제비꽃 맑은 이슬에 어머니 눈빛이 맴도네 제비꽃이 핀 언덕에 바람 얌전히 고울 때 제비꽃 가는 손목에 어머니 목소리 감기네 다소곳 크지 않은 무덤 비켜간 세월도 누워 하늘로 바치는 제비꽃 하늘이 언덕에 내리네 (유경환 시/김정식 곡 ‘제비꽃이 핀 언덕에’)
원고지에 써 손편지로 보내주신 시를 받아든 순간 내게는 노래로 읽혔는데, 그 즈음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와 어머니의 무덤이 함께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설명도 없이 들은 연주음악을 통한 교감으로 시가 나오고, 그 시를 본 순간 다시 노래가 나왔다는 사실은 바로 이미지에 관한 문학과 음악의 교감이라고 볼 수 있다. 시인 또한 북쪽에 두고 온 고향 때문에 평생 마음이 아팠고, 그것이 고통이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이 노래는 내 가족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주고 있다. 이 막연한 그리움은 어머니의 생존여부와 관계없이 원초적 체험에서 비롯된 영감이며, 이 영감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고통’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예술창작인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교감을 통해 영감을 전해주고, 그 영감으로 원초적 체험이 깨어나게 도와주기도 한다.
최근에 있었던 광주 평화방송의 부활특집 방송 중에 주고받은 내용이다. “글쓰기, 말하기(강의를 포함), 노래 부르기, 작곡 등 참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데 그중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인가요?” “작곡입니다. 뼈를 깎는 고뇌가 있었을 거라고 대부분 생각하시는데 제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거든요. 엄청난 노력과 시간 그리고 공을 들여도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구요. 반면 음악이 떠오르는 순간은 지극히 찰나적입니다. 한 번 떠오르면 그것으로 끝이니 따지고 보면 가장 쉬운 일이네요.” 과연 그럴까? 매우 쉽게 일어나는 짧은 순간을 뺀 나머지 시간들은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만약에 잉태를 위해 그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선택이라면, 결코 그런 선택은 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것이 삶이기에 견뎌내는 것이고, 견뎌내는 삶 속에서 음악이 나올 뿐. 마치 죽음을 지나 이르는 부활처럼. 고치를 뚫고 날아오르는 저 봄 나비처럼.
<공동선> 구독 권유차 메일로 보낸 글을 읽고 보내오신 답신 들을 아래에 모아 놓습니다.
로제! "고통과 삶 그리고 노래" 읽었어. 주님은 사랑 자체이시니 주님과 만난 순간은 사랑의 극치를 체험하는 순간이고 그 순간에 시가 터져 나오고 영가,즉 영혼의 노래-마니피캇-가 터져 나오지. 창작의 순간은 고통의 극치=사랑의 극치를 맛본 사람의 영혼에 새겨 놓는 하느님 사랑의 자국(sign) 같은거지. 그것을 노냥 겪는 로제는, 이렇게 말하면 잔인하다겠지만, 늘 하느님과의 엑스터시 속에 살고 있는거네! 내가 겪은 사랑의 극치는 바로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었거든! 여하튼 축하해!!! 김내옥 글라라
로제님! 글에서 묻어나오는 형제님의 마음과 삶이
아마 지금 마음아픈 이들이 많이 아주많이
위로 받을줄 믿습니다
솔직하고 희망차고 쓰다듬어 주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게하는 마음의 글이었습니다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지만 많은 시간을 지내오면서
뛰어넘어가야 하는 장애물
피해가지말고 넘어서라는 그래야 그안의 답을 갖을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세월이 지난다음 알았습니다
울엄마 걱정 근심 힘든일 생길때마다 하신말씀
"까짓것!!!" 하라셨던 그말씀도 수도없이 되새기면서
여기까지 뫘지요
그리고 그고통이 나를 하느님께 인도 한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길이 내가 가야할 길인줄 그길을 통해 주님의 나라로 가는
지름길인줄 나중에 알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 까짓것" 하고나니 어려울것도 없습디다
세월이 날 강인한 사람으로 살게 해주었습니다
그 세월안에 가족과 형제와 이웃이 우릴 잊지않고
기도해주고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었습니다
어렵게 장애물을 기어올라가는 나를보고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내게 보내주신 은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형제 자매에게
최경옥 젬마(뉴욕 거주)
목련도,벚꽂도,다 지고, 이곳 제주엔 길섶의 풀들까지도 유채꽃무리, 그것들마저도 색바래가고 있네여. 소식이 뜸하면 이런저런 공연&강의땜에 바쁘겠지 라고만 했는데 요번엔 좀 달랐던 모양, 많~이 고통스러웠나보군. 고놈의 고통의 끝은 어디다여~? 요즘 홀연히 나타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천재적'악동뮤지션` 남매를 보며, 그 속에서 난 로제를 보고 있는데 음악적 천재운운하는 글을 보내왔구먼ㅎㅎ 그래, 난 가끔 로제가 천재적 음악성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하곤 했지. 힘내! 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 고통따윈 없었지? 서로 많이 바쁜 사람들끼리 또 한번 뭉쳐보자구. 나눌 수 없는 고통에 대해 잠시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나무관세음보살!!! 성오 스님
'삶이란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고, 신앙이란 견뎌내는 시간 속에 그분이 함께 하신다는 감사함을 거듭거듭 새기고 간직하는 것이다.'
힘든 고통의 시간속에서도 아름다운 음악의 꽃을 피우시는 로제님이 언제나 존경스러워요!! 초봄에 지인이 올해 처음 만난 제비꽃이라며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제비꽃 사진을 보고는, 제비꽃, 반갑다고! 김정식씨의 '제비꽃이 핀 언덕에' 노래가 생각나면서 듣고싶다고 댓글을 올린적이 있는데...
저는 남매를 두고 있는데, 루치아와 미카엘! 둘째 미카엘이 자가면역질환인 항인지질증후군으로 약을 먹으면서 평생 관리해야 한다더군요. 고2때 갑자기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서 생명이 위험하다고 빨리 화순 전대병원으로 가라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다행히 입원해서 혈소판주사를 맞고 점차 회복되어 그후로 전대병원 류마티스내과에서 정기검진을 받으며 꾸준하게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얼굴 왼쪽 부위에 백반증이 심하게 와서 피부과에 다니며 최첨단 레이저치료를 받아도 그다지 효과가 없어 이번에 전대병원에서 피부이식수술까지 했네요. 복부부위에서 피부를 떼어내어 얼굴부위에 붙이는 수술인데, 잘붙으라고 지금은 얼굴에 온통 붕대를 감고 있어서 과일을 갈아주거나 수프를 만들어 주면 빨대로 먹고 있고, 일주일후에 가서 붕대를 푸는데 부위가 넓어서 한번에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울것 같다고, 잘붙지않는 부위가 있을 수 있다고 하네요. 얼굴부위라 빨리 완쾌되었으면 싶은 바람인데...
로제님의 글을 읽고 저의 이야기까지 하게 되네요. 엄마라 항상 마음졸이게 되지만, 언제나 함께 하시는 그분께 감사드리며 소중한 오늘 하루도 기쁘게 봉헌합니다.
로제님!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처럼 언제나 행복한 부활의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박성자 데레사(광주)
보내주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베제트'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가 봅니다. 최윤희씨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삶의 끈을 놓았을까? 제가 뭘 알겠습니까마는 맘이 짠하더라구요..
'고통은 또 다른 창작을 낳는다' 참 공감이 가네요 고통이 예술로 승화될 때 절절함이 묻혀있다는 것...
힘내세요! 알고 지내는 많은 사람 중에 점같은 제가 먼지처럼 작은 위로를 보냅니다.. 김영숙 안젤라
감사합니다.... 숙연해지는군요. 병이 지난 날의 일만이 아니고 아직도 계속된다니 놀랍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고통의 열매만 받아 먹고 있군요. 습관이 되지 않는 것, 반복되어도 덜해지지 않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 저도 잘 알지요. 그분만이 답일 것이니....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국 방그라시아 수녀
김정식 선생님. 권정우입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산문 잘 읽었습니다. 논문 발표문 쓴다고 제때 답장을 못 했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사람이 흙집에서 살아서 치유가 된 경우를 봤는데 선생님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가까운 시일에 뵙겠습니다. 건강하시길.. 권정우(시인/충북대 국문학과)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글을 읽으며 고향을 몇번 다녀왔습니다.
천재로 태어난게 아니고 천재가 되신 것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새삼스럽게 존경합니다♥
이병섭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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