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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자전을 멈추게 한 히스기야왕의 기도
왕하 18:1-7 19:35-37 20:6-10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응답받는 사람들은 당연히 어떤 일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다. 너희는 내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들을 안고 살지만 때로는 기도를 통해 인생고비를 넘어 간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시간에도 기도하면서 이 세상을 떠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태어날 때 보다는 죽을 때가 더 중요하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는데 죽는 그 시간에도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겠다는 마음만 먹을 수 만 있다면 그보다 더 복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함으로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한 분이시므로 그의 왕국은 영원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유대나라 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왕을 통해 하나님의 열심을 이루시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왕은 지금부터 2800년전 유대의 13대 히스기야 왕입니다. 히스기야 왕에 대해서는 왕하 18-20장 대하 29-32장 사 36-39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어떤 왕이길래 이렇게 성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히스기야왕은 어떤 왕이냐 하면 나라가 풍전앞에 등불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나라를 구하였던 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죽을 병이 들었을 때 생명을 15년 연장받은 증표로 지구자전을 멈추게 하므로 해가 동쪽방향으로 10도 돌아간 표징을 보여준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같은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왕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하18:3 히스기야가 자기 조상 다윗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니라. 주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산당들을 제거하고 형상들을 깨뜨리며 작은 숲들을 베어 내고 모세가 만든 놋 뱀을 산산조각 내니 이는 그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그 뱀에게 분향하였기 때문이더라. 그가 이 뱀을 느후스단아라 하였더라.
5 그가 주 이스라엘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니 그러므로 그 이후의 유다의 모든 왕들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없었고 또한 그 이전에도 없었더라.
6 그가 주를 굳게 붙들고 그분을 따르는 일에서 떠나지 아니하며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분의 명령을 지켰더라.
7 주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그가 아시리아 왕을 배반하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였으며
8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자와 그것의 경계에까지 이르고 파수꾼들의 망대에서부터 성벽을 두른 도시에까지 이르렀더라.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위에 오르자 마자 즉시 종교 개혁을 착수했습니다. 개혁은 자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히스기야도 자신부터 개혁을 한 왕이었습니다.
1. 신앙복원인 종교개혁을 하다
18:3 히스기야가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니라는 칭찬을 들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는 성전을 수리했습니다(대하 29:3-5, 15).
부왕인 아하스에 의해 닫혀져 있던 성전의 문을 열고 레위인에게 명하여 성전을 정결하게 수리하였습니다.
(2) 제사를 회복했습니다.
성전수리 후 성전에서 올바른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그는 또 유월절을 부활시켰는데 이것은 나라가 갈라진 이래 최대의 절기로(대하 30:26).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초청되어 즐거히 치루어 진 것입니다(대하 30:1,5).
(3)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유월절 제사 후 사람들은 유다 모든 성읍에 있는 주상이나 목상을 부숴버리고,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므낫세에 이르기까지 산당과 제단을 없애 버렸습니다(대하 31:1, 왕하 18:4).
느후스단이라는 모세의 놋뱀이 우상 숭배가 되었으므로 놋뱀을 산산조각 부셔버렸습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의 잘못을 신앙회복으로 조상 다윗의 수준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들어 쓰셨습니다.
18:4 그가 산당들을 제거하고 형상(아세라 목상들)들을 깨뜨리며 작은 숲들을 베어내고 모세가 만든 놋뱀을 산산조각 내니 그 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그 뱀에게 분향하였기 때문이더라.
부친 아하스가 성전에서 우상숭배하던 (부친인 아하스는 하나님의 전에 있는 제단을 다메섹의 신에게 제사드리는 제단으로 바꾼사람) 산당내 우상들을 파괴하였고 예루살렘성전 뿐만아니라 지방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산당도 없애버렸는데 산당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신을 유대사람들이 본받아 우상을 섬기던 곳인데 그 산당안에는 주상(죽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 세워 놓은 기둥형상)이나 아세라 목상이 있는데 이것들을 찍어서 불태워버리는 종교개혁을 한 왕이 히스기야왕입니다.
지금도 로마카톨릭에서는 마리아의 형상을 만들어서 예수님의 어머님이라고 섬기고 베드로나 야고보같은 사도들을 성인이라고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런 것이 우상숭배이고 이런 행위를 죄라고 말씀하면서 하지말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은 그들에게 기도하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님의 마음은 더 아플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잘못된 행위를 고치겠느냐입니다. 이런 우상숭배하는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이방나라의 우상앞에 제사드리는 것처럼 변질되어 갔던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산당과 그 안에 있던 우상들을 부수고 불 태워 버림으로 신앙의 종교개혁을 단호히 실시한 왕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말씀대로 유월절 제사도 아주 오랜만에 부활시켜 유다와 이스라엘이 함께 지킨 왕입니다. 역대하 30:26에는 이 때 유월절을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솔로몬 이후에는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파괴하는 것에는 신앙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출20:3-4)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순종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파괴하였다는 것은 왕이라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비록 악한 왕인 아비는 죽었더라도 히스기야 주위에는 중전을 비롯하여 친척이며 외척이 상당히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도록 이방신을 섬겼기에 이방신을 위한 열심쟁이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이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서 모세의 놋 뱀을 섬길 정도였습니다. 그 엄청난 개혁을 단행한 때 히스기야의 나이는 불과 25세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척결하였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정말 시원하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한번 상상이라도 하였으면 합니다.
2. 정치적 개혁을 하다
히스기야왕은 현재 유대나라의 왕입니다. 다윗의 왕권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왕으로서 권력도 부귀도 명예도 다 가지고 있음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니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친 때부터 지금까지 아시리아에게 조공을 드리며 그들을 섬겨왔는데 히스기야가 왕이 되면서부터는 이런 조공 바치는 것을 중단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중단한다는 것은 앞으로 나라에 상당히 위험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백성들이 우상에 빠졌던 것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해야 하고 자주적인 독립을 주장하며 아시리아에 맞섰던 것입니다. 이런 개혁을 한 히스기야왕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5 그가 이스라엘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니 그러므로 그 이후의 유다의 모든 왕들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없었고 또한 그 이전에도 없었더라.
히스기야왕은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형통의 복이 그가 다스리는 유대나라에 왔다는 것입니다. 정말 유대나라에 형통의 복이 왔을까요?
3. 풍전등화의 국가위기상황
18:10 히스기야왕 6년에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게 멸망하면서 이스라엘왕 호세아왕이 사로잡혀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13절을 보니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는 8년 후에 즉 히스기야왕 14년에 아시리아왕 산헤립이 유다에 올라와서 유다의 성벽을 두른 모든 도시를 쳐서 점령하매 즉 성읍을 침략했습니다.
어찌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첫 번째 형통의 축복을 받았다는 왕이라고 하셨는데 곧 아시리아왕의 침공을 받아서 국가가 위기상황을 맞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선왕이 섬기던 아시리아를 섬기지 않으니 침략당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위기상황에서 하나님만 신뢰하고 우상을 철폐하였던 히스기야의 본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단지 적군의 위협앞에 두려워 떨며 무릎을 꿇는 초라한 모습만 보일뿐입니다. 그 때 히스기야 왕이 행했던 모습을 볼까요.
18:14에 보니 유대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아시리아왕에게 이르되 ‘내가 잘못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짐 지워주시는 것을 내가 감당하리이다’ 하며 무조건 항복을 하고 순식간에 믿음이 무너지면서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칩니다. 그는 아시리아 왕이 요구한 대로 은 삼백달란트와 금 삼십달란트를 바치게 됩니다. 재정은 고갈되었고 주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하나님의 성전기둥에 있는 금까지 벳겨서 바치니 하나님께서도 기가 막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히스기야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아시리아왕에게 항복하고 저들이 요구한 물질로 위기상황을 해결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므로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아시라아에게 망했던 이스라엘도 여러해동안 조공을 바쳤지만 끝내는 망하였다는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말로 말한다면 남북관계에서 돈을 미끼로 한 평화는 일시적이며 불완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히스기야 왕도 돈으로 전쟁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해결책만이 영원한 것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차 침략이 있은지 2년후 이번엔 아시리아 왕의 부하인 랍사게가 두 번째 침공을 하면서 국가적인 위기를 두번째 맞이하게 됩니다.
처음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헤립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성전 곳간에 있는 은과 성전기둥에 입혔던 금까지도 벗겨서 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차 침공을 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산헤립은 오지 않았고 그의 군대장관인 랍사게를 통해 협박편지를 보냈습니다. 랍사게는 모욕적인 말 특히 신성모독적인 말을 큰 소리로 외치면서 무조건 항복을 하라고 위협하면서 편지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유다는 마치 바람앞에 등불 같은 위기상황에서 히스기야왕은 이번에는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19:1절에 보니 히스기야 왕이 신하들로부터 랍사게가 한 말을 보고 받습니다. 전하는 말을 듣고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그 편지를 가지고 주의 전에 올라가서 통곡의 기도를 하는 왕의 모습인 것입니다.
4. 히스기야의 승리
히스기야는 개인적인 환난을 당했을 때나 국가적인 환난을 당했을 때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승리 의 비결은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항상 선지자 이사야가 함께하였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기 전 히스기야왕은 이 위기상황을 위해 하나님의 종 이사야 선지자에게 신하들을 보내 기도요청을 하였습니다.
19:2에 보니 집안을 감독하던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들 중에서 장로들을 굵은 베를 입혀 아모스의 아들 선지사에게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위기를 당하면 왕부터 그리고 나라의 중진들부터 기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산헤립의 편지를 놓고 기도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군대장관 랍사게를 통해 보낸 편지는 하나님을 신성모독하는 내용, 히스기야를 멸시하는 내용으로 항복을 종용하는 편지였습니다. 싸울 힘이 없는 너희들이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느냐라는 것으로 말 탈사람만 있다면 내가 말 이천마리를 줄테니 하면서 유대나라는 싸울 기병도 군인도 없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뜻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곳을 쳐서 멸하려 올라왔겠느냐?(18:25)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주를 의지하라고 하지만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멸망당한 여러나라들 중 어느 신이 그 땅을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건져낸 신이 있었기에 주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내손에서 건져낸다고 믿느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성전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데 굵은 베옷을 두르고 기도할 때 마음이 복받쳐 올라와서 옷을 찢어가며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19:1). 굵은 베를 두르고 옷을 찢었다는 것은 현 상황이 매우 비통함과 원통함을 표시할 때 굵은 베옷을 입고 찢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은 아시리아가 1차 침공하였을때 예루살렘성은 포위되고 나라는 무너질 것 같아 무조건 금과 은으로 해결할려고 했던 불신앙적인 행동을 회개했습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며 소망을 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86:7 나의 고난의 날에 내가 주를 부르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하였듯이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께 기도를 신실하게 한 것입니다. 산헤립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놓고 히스기야왕의 기도 중심은 ?
왕하19:15 ➀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➁ 주만 홀로 땅의 모든 왕국의 하나님이십니다.
➂ 주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나이다.
16 ➃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➄ 눈을 여시고 보시옵소서
➅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산헤립의 말들을 들으시옵소서
19 ➆ 이제 우리를 산헤립의 손에서 구원하시옵소서
➇ 그리하시면 땅의 모든 왕국이 오직 주만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위기를 당했을 때 우리들도 히스기야왕처럼 베옷을 입고 옷을 찢으며 회개기도를 하여야 할까요? 당연하지요.
옷을 찢는 것은 회개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요엘선지자는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올지어다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교만한 마음의 옷을 찢고 위선의 옷을 찢으며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왕이 기도하였던 것처럼 구체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아뢰어야 합니다. 히스기야왕은 구체적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산헤립이 보낸 편지내용을 하나 하나 손으로 짚으면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랍사게가 한 말과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짚어가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확실하다고 말한 것과 또 너희가 믿는 하나님도 너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나라는 모조리 멸망당했다는 것을 너희들이 알고 있지 않느냐? 너희가 아무리 반항해도 소용없다. 너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데 그 하나님은 아시리아 신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침략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속히 항복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독적인 말을 들은 후 히스기야왕은 다음과 같이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주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눈을 여시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하나님을 비방한 말들을 들으시옵소서(왕하19:16)라고 기도합니다.
산헤립의 기고만장한 협박과 아시리아 군대의 함성소리와 그들의 말밥굽 소리를 들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시여 산헤립이 보낸 편지가 여기 있으니 한번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을 훼방한 말들을 보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렇게 무시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하나님이 만천하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달라는 것이며 기도의 결론은 주 하나님이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산헤립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오직 주만 주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19) 이것이 히스기야의 기도내용 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망해가는 나라를 놓고 울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 기도의 응답
왕하 19: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아시리아 신하들이 나를 모독하며 말한 말들 곧 네가 들은 말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19:20 네가 아시리아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19:34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고 구원하리라.
그리고 기도응답은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28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넣고 내 굴레를 네 입술에 씌워 네가 온 길로 너를 돌이키리라.
35 그 밤에 주의 천사가 나와서 아시리아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치매 그들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 죽어 송장이 되었더라.
36 이에 아시리아왕 산헤립이 떠나고 가서 돌아가 니느웨이에 거하였는데
37 그가 자기 신 니스록의 집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치고 아르메니아 땅으로 도망하매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니라.
결론은 예루살렘을 침공한 아시리아 군대는 그날 밤에 하나님의 천사가 아시리아 진영을 쓸어버린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시리아 군사 185000명이 시체더미가 되어 있었고 이소식을 들은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아가서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 그의 아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게 피살되었습니다. 어찌 이런일이 일어났느냐고요? 히스기야왕의 기도 때문에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9:31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 일을 행하리라.
32 그러므로 주가 아시리아 왕에 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그가 이 도시에 이르지 못하며 거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이도시 앞에 오지 못하며 이 도시를 치려고 흙 언덕을 쌓지도 못하고
33 자기가 온길 바로 그 길로 돌아가며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전쟁에서 피한방울 흘리지 않은 히스기야왕의 완전한 승리를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에 대하여 회계보고를 받으리라’(마 12:3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아시리아 왕은 자기에게 전능한 힘이 있다는 듯 위세를 부렸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시리아는 단지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로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한 아시리아 왕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훼방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에 빠진 아시리아 왕의 코에 갈고리를 꿰고 입에 자갈을 물려 다시 끌고 가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릴 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정말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 강대하던 아시리아가 하루아침에 군인들이 죽임을 당함으로 군대를 되돌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향해 화살 하나 날리지 못한 채 하나님 앞에서 방자했던 아시리아 왕은 군사적인 수모를 당했을 뿐 아니라 아들들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였습니다.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는 말씀속에 이 모두가 들어난 것입니다. 이는 유다 백성의 구원의 근거가 주의 열심에 있음을 단적으로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때때로 원치 않게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건강의 위기 질병의 위기 가족해체의 위기 물질의 위기 등을 당할 때 우리들이 할 것은 히스기야왕이 어떻게 응답받았는 것을 기억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리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이 떠오릅니다.
시편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는 말씀인데 히스기야는 왕으로 있었을 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같은 위기를 맞이했으나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일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위급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항상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비가 그친 후 맑은 날이 오듯 어려움이 지나가면 좋은 날이 오는 것입니다. 캄캄한 어두움이 지나가면 새아침이 오듯이 터널이 캄캄할수록 끝은 곧 가까이 오듯이 믿음안에서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일은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주께서 천하만국에서 홀로 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지키시고 나라를 지키시고 한국교회와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지켜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불안함이 있고 염려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러한 염려 스트레스는 누구나 다 받습니다. 어린아이도 스트레스 받고 공부 1등하는 학생도 스트레스가 있고 꼴찌하는 학생도 꼴찌의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어떤 며느리는 에덴동산에 가서 살면 거기에는 시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좋으냐 그런 말을 합니다. 사실 며느리만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닙니다. 시어머니는 더 받습니다.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주님이 계심으로 인해 우리는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3 나는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믿고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좌절하고 기도문을 닫아놓고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안 된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절대로 이 세상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주님이 강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가난하지만 주님은 부유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연약하지만 주님의 능력이 무궁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한 우리는 절대로 패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나의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참으로 너를 도우리라.”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야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3) 승리의 비결
인디언이 사냥을 하는 것을 어느 선교사님이 보니 참 쉬운 방법으로 사냥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슴을 잡는데 뛰어가는 사슴들한테 인디언이 휘파람을 부니까 딱 멈추는 겁니다. 그 사슴이 뛰어가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니까 딱 서면 그대로 사냥하는 겁니다. 또 한참 가다가 달려가는 사슴을 향해 휘파람을 부니까 딱 서는 겁니다. 그래서 또 잡았습니다. 그래서 사슴이 휘파람 소리를 듣더라도 그냥 달려갔더라면 살 텐데 휘파람 소리에 멈추면 그만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헛된 휘파람 소리 즉 사탄의 휘파람 소리, 음란한 휘파람 소리 듣고 음란한 길로 빠지면 영적으로도 죽고 육적으로도 죽습니다. 사탄은 틈만 있으면 우리주변에 온갖 우상숭배와 향락과 정욕과 도박, 알콜중독 등 헛된 세상의 휘파람 소리를 외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유혹을 받습니까? 오늘 이 세상이 이렇게 험학한 세상인데 주님만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예수님이 나의 평생을 지켜주시는데 이 세상의 온갖 죄악의 휘파람 소리로 길을 잃게 되면 우리는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휘파람 소리에 생명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알지라도 지식이 구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학위를 많이 받아도 그 지식으로 천국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으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돈의 휘파람에, 권력의 휘파람소리에 넘어 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승리하지만 세상의 휘파람 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천국가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만 보았던 한 유명 축구선수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브라질 축구 선수 가운데 카카라는 축구선수가 있습니다. AC밀란에 소속되어 있는 유명한 미드필더, 세계적인 선수입니다. 카카라는 선수는 브라질의 가난한 빈민가의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아주 어려워 학교도 못 다니고 골목에서 축구하는데 얼마나 축구를 잘하는지. 그런데 18살에 이 카카는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거꾸로 처박아서 손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 인생 폐인이 돼버린 겁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합니다. 부르짖습니다. “예수님, 나 살려주세요. 나 축구하도록 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님을 높이며 살겠습니다. 내 평생 예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카카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몸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카카는 완전히 장애에서 벗어나 축구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브라질 대표선수가 됩니다. 축구로는 브라질이 세계 최강대국인데 거기에 최고 선수가 되면 얼마나 놀랍습니까? 유럽 AC밀란팀에 스카우트 되어서 갑니다. 유럽에는 1년에 한번씩 모든 팀이 시합해서 챔피언 뽑는 것이야 말로 대단한 것입니다. 영국에는 프로팀만 40개가 있습니다. 영국, 독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에도 프로팀이 있는데 다 대단합니다. 2008년 마지막 결승전에 이 AC밀란팀이 결승까지 올라가서 카카가 결승골을 넣습니다. 이 유명한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유니폼 상의를 벗었습니다. 유니폼 벗으면 그냥 맨살이 나올텐데 그 안에 또 하나의 준비된 유니폼이 나왔습니다. 큰 글씨로 “I belong to Jesus” 그리고 두 손 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온 세계가 보는 그 순간, 몇 년 전 척추가 부러져서 아무도 쓸 수 없는 나를 살려준 주님을 만방에 높였습니다. 그 카카 선수가 지금 신학을 공부한 후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필요하지만 주님보다 더 귀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잠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영원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지금 가진 모든 것은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됩니다. 돈도 물론 내 것 아닙니다. 권력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인간관계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믿고 의지할 것은 예수님 이외는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것도 나의 구세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카카같이 위급한 때 나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인생 승리의 비결은 오직 예수님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형통의 복
성경은 형통의 복에 대한 비밀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히스기야왕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애굽같은 강대국을 의지 않고 오직 하나님앞에 나아가 눈물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어진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대적들을 죽이기 위해 피한방울 안 흘리고 천사가 185000명을 다 죽이게 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카카처럼 개인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왕처럼 한 나라도 구원하셨는데 이런 역사는 우리가 잘아는 세계사에서도 나옵니다. 1588년에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공한 사건입니다.
그 당시 영국을 다스리던 왕은 예수님을 잘 믿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559년에 즉위해서 1603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는데, 그녀의 통치 기간에 영국은 기독교 국가로서의 오늘의 영국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그당시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스페인과 영국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고, 결국 무적함대라고 불리던 스페인이 영국을 침공한 것입니다. 스페인의 병력은 함대 130척과 군인 3만 명이었고, 영국의 병력은 쓰러져 가는 배 몇 대에 불과했습니다. 병력상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을 하게되니 엘리자베스 여왕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무적함대 130척이 도보 해협에 진입했을 때 북해의 찬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따뜻한 지중해 기후 속에 살던 스페인 사람들은 찬바람을 맞자 견디지 못하고 모두 감기에 걸렸습니다. 모두 죽게 된 판국에 함대와 대포와 3만 명의 군인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북해의 바람을 명하여 도보 해협으로 불게 하시고 무적함대를 패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3만 명의 스페인 군대와 무적함대는 도보 해협에서 전멸당하고 영국이 승리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룻밤에 185000명 군사를 쳐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신 만군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5. 형통의 복을 받는 비결은 그의 인격과 신앙이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에게 왜 형통의 길을 주셨는가 그 비결을 알아야 되지 않겠어요?
(1)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습니다(3).
왕하18: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니라. 즉 정직한 삶은 살았다라고 하였으며,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을 신뢰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모든 왕들 가운데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주를 굳게 붙들고 그분을 따르는 일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지켰더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히스기야왕의 인격의 거룩함을 말해 줍니다.
이렇게 인격이 거룩한 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명령들을 지키는 자입니다. 모든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하고 선한 양심을 갖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우리 자신이 정말 정직한 삶을 살고 있는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다윗의 정직성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책망하셨습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자들이여!"라고 마23:24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작은 것에는 선을 행하는 것과 같고 정직한 것과 같이 하면서 그것을 핑계 삼아 큼직한 것들에 대해서는 위선적인 태도에 대해서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직성을 말하면서 십일조는 도적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불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왜 정직하지 않은가요?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영적으로 볼 때 우리가 정직하지 못한 이유는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직하려면 마귀를 추방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51:10에 보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주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의 영을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빚으실 때 우리는 정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온전한 정직을 이룰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애쓰고 노력해도 부분적인 정직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정직에 이르려면 우리가 성령 충만을 힘입을 때 온전한 정직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2) 우상을 제거 했습니다(4)
왕하18:4 그가 산당들을 제거하고 형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느후스단이란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었더라 하였습니다. 아버지 아하스왕이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이방 신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한 것과는 달리 우상을 제거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복을 받으니 어찌 형통하지 아니하겠습니까“(대하28:25)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죄를 자식에게까지 갚아주시지만(출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신다(출20:6)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계명을 지키면 틀림없이 형통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전선에 대비하기 위하여 아시리아의 도움을 구하면서 유다에 아시리아 우상들을 들여왔습니다. 아하스는 아시리아의 왕국을 방문하고는 다메섹에서 이방 종교의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을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고, 이방신인 우상 숭배에 전념한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면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모든 우상의 단들을 헐어버리고 우상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혔던 예루살렘의 성전문을 활짝열고 제사를 부활시키고 유월절을 회복하였습니다.
이런 종교 개혁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 엄청난 개혁을 단행한 때 히스기야의 나이는 불과 25세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지장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고 그를 형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시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제거하면 우리들이 경건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깨끗한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방해가 되는 죄를 품고 있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 하려면 죄를 회개하시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같은 것은 단호하게 끊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3)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5).
왕하18:5 히스기야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신뢰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모든 왕들 가운데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18:6) 주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아시리아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하였습니다. 이는 제일로 중요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또 방백들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야곱의 하나님께 소망을 주는 자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시146:3)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146:4)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주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히스기야도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13절 이하에 보면 아시리아가 라기스를 점령하니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은금을 보냅니다. 히스기야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시리아 군대를 잠잠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을 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리아 왕이 오히려 대군을 보내서 예루살렘을 치게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실패한 히스기야는 인간적인 방법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승리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 천사를 보내셔서 아시리아 군사 18만 5천을 멸하십니다. 그리고 아시리아 왕 산헤립은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으로 형통했던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죽을병에서 생명이 15년 연장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죽음을 받아드리지 않고 낯을 벽으로 향하고 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는 심히 통곡을 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눈물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의 생명이 15년 연장 될 것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주께서 자신을 낫게 하실 표적을 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을 고쳐주실 징표가 임할 것을 말합니다. 그 징표로 해 그림자가 십도나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뒤로 물러날 것인지를 선택하게 합니다. 히스기야는 그 엄청난 우주적인 사건을 믿어버립니다. 해 그림가 십도를 나아가든 물러가든 그것은 지구가 움직이는 자전과 공전에 대한 기적입니다. 히스기야는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가는 표적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가 구한 표적대로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가게 됩니다. 이는 지구자전을 잠시 멈추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인데 그 표적 후에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게 됩니다. 기도는 자연계의 법칙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믿어야합니다.
(5)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6).
곧 그가 주를 굳게 붙들고 그분을 따르는 일에서 떠나지 아니하며 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지켰더라(왕하18:7)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명령들을 지켰습니다.
9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서 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시리아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3년 만에 그 성을 함락시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사로 잡아갑니다. 12절에 보면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망한 이유를 말해줍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주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다는 것입니다. 수1:9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되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엡 2:1-3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시절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불신자 시절에는 무엇을 따랐는지 말해줍니다. 세 가지를 따라 살았습니다.
첫째, 세상풍조입니다. 둘째, 공중에 권세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셋째,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악령을 따라 사는 대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육체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생활에는 갈등이 많습니다. 세상풍조를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악한 영을 따를 것인가 성령을 따를 것인가, 육체의 욕심을 따를 것인가 육체를 쳐서 복종시킬 것인가. 언제나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선택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인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대로 살아서 그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형통한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히스기야 왕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아서 형통한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영원하심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지만 그런데 우리의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오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불순종과 허물 때문 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예언의 말씀을 하셨고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시며 심판 후에 더 놀라운 회복의 은혜를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를 신뢰함으로 더욱 간절하게 예배하며 주를 위하여 헌신하며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의 삶이 형통의 길로 큰 일을 이루게 되시는 축복을 누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