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0:22-29, 아론의 죽음, 19.1.2, 박홍섭 목사
민20장은 1절에 미리암이 죽었다고 시작되어 마지막 29절의 아론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죽음과 모세의 형 아론의 죽음이 민20장을 둘러싸고 그 중간에 므리바의 반역사건과 에돔의 방해사건이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인생인 이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죽음이 따라오며, 우리 곁에는 언제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일러줍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리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 꼭대기에서 죽으니라” 아론이 첫 대제사장의 직임을 다하고 죽습니다. 모세는 아론의 옷을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고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주셨던 대제사장의 임무를 엘르아살에게 계승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하는 엄숙한 임무 교대의 순간입니다.
아론의 죽음으로 대제사장직을 이어받은 엘르아살의 이름은 이 “하나님이 도움이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연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아론을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도우셔서 백성들을 위한 대제사장직을 수행케 하셨습니다. 엘르아살이 새로운 대제사장직을 이어받아 수행할 때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자신이 아론에게 승계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그의 옷입니까? 그냥 직분입니까? 그 옷과 그 직분과 이름에 담겨 있는 의미대로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 하는 삶입니다. 이 일과 사명은 자신의 힘으로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의 중보가 되어 백성들을 돕는 직분입니다. 누가 진정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진정한 이스라엘의 도움이십니까? 아론을 세우시고 그를 데려가시고 이어서 엘르아살을 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인간 선지자와 제사장은 참된 도움이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역할일 뿐입니다. 인간 지도자는 다 연약하고 실수하고 죄의 한계 가운데 살다가 죽어야 할 죄인들입니다. 미리암도 죽고 아론도 죽습니다. 모세도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자신보다 나은 선지자와 제사장을 바라보게 하며 참 도움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게 하는 역할입니다. 아론은 그 역할을 다하고 죽습니다.
특별히 24절은 아론은 죽음이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죄의 결과임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니라.” 2-13절에 기록된 므리바 사건은 회중들만 아니라 모세와 아론마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한 불신의 사건입니다. 회중들은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했고, 모세와 아론은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석을 두 번 치는 잘못으로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선지자며 대제사장이었지만 그들 역시 백성들과 똑같은 연약한 죄인들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도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도움은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한편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였죠? 인생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죄와 연약함 때문에 죽는 죽음 외에 모세와 아론의 죽음에는 대속의 죽음이라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보다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위해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시고 이들을 살려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죽어 마땅하고 심판받아 마땅한 이들을 죽이지 않고 생수를 주셔서 살게 하십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들을 살리는 생수가 반석에서 나왔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4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바울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물을 내었던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해석해줍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셔라 하셨던 생명의 물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 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이 물을 주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아버지와 함께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민20장의 첫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은 우리 대신 우리를 위해 죽으시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론은 하나님이 세우신 첫 인간 대세자장입니다. 그가 죽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죽고 또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죽음과 엘르아살이 그 직분을 이어받은 승계를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대제사장이 필요함을 가르쳐주십니다. 다시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토록 우리를 도우시는 제사장을 바라보게 하시고 사모하게 하시고 기다리게 하십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위대해도 인간 선지자와 제사장은 죄를 범하고 죽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죽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누가 필요합니까? 모세보다 더 나은 선지자, 더 탁월한 선지자, 아론보다 탁월하고 위대한 제사장입니다. 죄 없는 선지자, 죄 없는 제사장, 아니 죄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선지자와 제사장,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선지자와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모세보다 탁월한 선지자로, 아론보다 위대한 제사장으로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 반석을 깨트려 영원한 생수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옷을 갈아입는 대제장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에게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대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 예수님으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선지자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합니다. 이를 갈라디아서 3:27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설명합니다.
지난 주일에 하나님의 원칙과 은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신앙의 원칙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원칙을 적용하실 때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우리의 체질을 아시어 우리의 죄를 따라 다 벌하지 않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은혜로 적용하신다 했습니다. 그 은혜가 독생자를 내어주는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은혜는 참으시고 기다려주는 만큼 그 피해와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기에 우리의 죄를 다 갚지 않으시고 처벌하지 않으시기 위해 그 벌에 해당되는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이 몸소 담당하셨습니다. 아들이 담당하셨습니다. 성령께서 탄식하면서 담당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 받은 주의 백성들입니다. 의와 공도의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되 모세와 아론의 므리바 실수처럼 분노와 혈기로 추구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큰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이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