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같이 가자
우리가 바꾸자
“잘 생각해봐 우리가 어떤 활동을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이야. 결국은 잘 유지해서 가는 걸 말하는 거라면 손 잡고 같이 가면 되지 않을까?”
시간이 밤 10시로 향해가고 있는 달그락에 DYBS 달그락청소년방송국 8명의 청소년들이 앉아있다. 때는 12월, 달그락 청소년들은 겨울방학에 신입회원 모집을 위해 각자 아카데미 등 모집활동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방송국 청소년들은 신입회원 모집을 위한 미디어 아카데미를 준비하기 위해 어떤 내용으로 준비할 것인지 논의가 시작되었다.
DYBS는 2017년 방송 전담 자치기구로 시작해 제작진 간의 갈등, 영상을 제작하다가 중단되기도 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거쳐 여러 활동을 진행했다. 3년 차를 맞이하는 올해 새롭게 임원진을 구성하고 방송을 개편하자는 얘기가 주요 화두였다. 또 DYBS는 전체 달그락자치기구들이 방송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달그락 방송의 이름으로 쓰기로 했고, 방송 자치기구의 정체성을 새롭게 잡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논의한 결과 유튜브라는 트렌드에 맞춰 영상을 편집해 업로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해야 할 것이 많고 결정해야 할 것도 많았다.
곧 대학 입학을 기다리는 재식 청소년과 고3이 되어 활동을 많이 못할 것 같다는 이주, 민영 청소년이 걱정이 많다. “신입회원들이 온다고 치자, 그럼 어떻게 할 건데? 뭘 같이 하자고 하고 누가 그걸 할 거야. 우리 대표는 언제 뽑고?” 계속되는 민영 청소년의 물음.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민영 청소년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자치기구가 없어질 거 같아. 왜 아무도 말이 없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책임지고 해야 될 사람도 필요하잖아. 나는 너무 아쉬운 게 많아. 우리가 방송 준비한다고 모임 하려면 다들 바쁘다고 핑계된 적도 많잔아” 계속해서 울었다. “진짜 잘하지 않으면 다른 자치기구들이 방송하는거 보다 못하게 될 수도 있어. 신입들을 당겨올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언니 울지 말라고 휴지를 가져오는 보민 청소년은 “회의 논의 내용이 결정되면 잘 따를게. 나 먼저 가서 미안해” 라고 말하며 귀가시간 때문에 문을 나섰다.
성윤 청소년도 같은 시간에 집에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가지 않았다. “제가 몇 달 쉬는 기간이 있어서 흐름 파악이 잘 안 되는 것도 같은데, 어떤 것이 정확히 문제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거죠? 총회 열리면 제가 대표를 준비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다른 청소년들은 성윤 청소년이 처음 꺼내는 대표를 하겠다는 말에 놀란 듯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이주 청소년이 말했다. “다시 아프게 되면 공백이 생기고, 건강이 먼저야. 쉽게 말하는 거면 그런 말 하지마.” 그 말에 성윤 청소년은 “아니 이제 진짜 괜찮아. 그럼 누나가 나 도와서 같이 할 거야?” 이주 청소년이 말했다. “내가 지금 한다고 하면 얼마나 해야 되는지 감이 안 와. 내가 중간에 빠지면 네가 더 힘든 거 아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재식 청소년이 말했다. “잘 생각해봐 우리가 어떤 활동을 했고 앞으로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이야. 결국은 잘 유지해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을 말하는 거라면 손 잡고 같이 가면 되지 않을까?”
그들은 지금까지 했던 방송들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달그락에서 했던 세월호 추모 캠페인과 유가족 만남 영상 제작, 달그락 청소년 프리마켓, 에세이집 출판 기념회 등을 담아냈다. 불법 카풀,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 관련 사회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뉴스방송도 했고, 고 3의 생활, 여고 그것이 알고 싶다 라는 청춘 노트를 기획했으며, 교복을 벗고 졸업식 풍경도 담았다. 스승의 날에 스승님을 초청하는 등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전했다.
곰곰이 지난 방송들을 돌아보며 우리가 이렇게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목적이 무엇인지 한 명씩 이야기했다. 수영 청소년이 한마디 한다. “신입회원 뽑으면 되고 임원도 새로 하면 되는 거잖아요. 민영 누나가 어떤 걱정인지 알겠는데,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모인거에요. 적은 것 같지만 우리 8명이에요. 아카데미 하면 제가 옆에 앉아서 잘 꼬셔볼게요. 저 알죠?” 재연 청소년이 거든다. “하고 싶은 방송,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곳 여기뿐이잖아요. 저는 여기 와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도 말도 서슴없이 하게 되고 정말 좋은걸요. 이런 걸 잘 어필해 보면 어떨까요?” 이주 청소년이 말했다. “하긴 방송국은 나한텐 인생 자치기구야. 여러 활동과 프로그램을 참여해봤지만 이렇게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건 여기뿐이니까” 그곳에 모인 청소년들은 처음 걱정의 말을 꺼냈던 것과는 다른 말들을 이어갔다. 우린 계속 활동 할거니까 자주 모여서 회의하고 얘기 나누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시간이 꼭 필요 했어” 성윤 청소년이 얘기했다. 한참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던 다른 청소년들도 우리 자주 만나자고 입을 모았다. 그날 논의는 결국 끝내지 못했다. 다음번 모임에서 각자가 방송국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서 오기로 했다.
새로고침
다음 달 다시 모인 방송국 살리기 맴버들은 이름부터 제안한다. 민영청소년이 말했다. “f5 어때?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랑 5개의 방송채널로 만나자는 이야기야. 짱이지?”라고 말한다.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계속 새로고침할 때 마다 많아졌으면 더 좋겠다“라고 보민청소년이 의견을 보탰다. 재연 청소년이 ”유튜브는 같은 동영상 계속 접속 할 수 있으니까 조회수를 새로고침해서 늘리자“고 제안하니 다같이 맞는 말이라고 웃었다. 우리가 먼저 시청하고 분석하는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새로운 이름을 회의록에 적었다.
고3 활동이 불투명하다고 걱정했던 이주 청소년이 이름이 정해지고 나서 회의록에 자신의 손을 그린다. 수다와 박자의 코너를 계속 진행할테니 나는 F5에 손목 잡혔다고 말이다. ”그럼 나는 발목잡힌 걸로 해줘“ 민영 청소년이 말했다. ”언니 안한다며“ 보민 청소년이 나름의 반박을 했다. 그때 이주 청소년은 민영이가 한다고 할때 얼른 잡아야 한다며 바로 발목의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진짜 열심히 하면 그만큼 될 거야"
5개의 코너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논의하던 중 수영,보민청소년은 이제 우리도 방송을 할 때가 되었다며 중딩으로서 이야기를 재밌게 전해보겠다고 말한다. 편집에 자신감을 보이는 보민 청소년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다짐으로 우선 3개를 만들었다. 수다와 박자, 싸카오박, 진로방송이다. 3개의 방송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2개의 방송을 기획해야 했다. 신입들이 할 수 있도록 돕자고 결의했고 신입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어떻게?
신입회원 모집을 위해 달그락 오픈데이를 준비하고 있던 3월이었다. 방송 미디어 자치기구를 설명하며 이곳에서는 원하는 방송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여러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펼쳐진다며 설명에 한창인 이주와 보민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던 10명의 청소년들이 있었다.
“제일고에 뱃지가 단 두명인거죠? 아 이것 참 좋은데요” 제일고에 자율동아리 기장들에게 달그락 자치기구 활동연계를 설명하러 갔던 날이었다. 누군가 익숙하게 눈인사를 건내길래 보니 2월 달그락미디어 아카데미를 통해 활동을 시작하게 된 한샘이였다. 우리학교에서 달그락 뱃지를 가진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이냐며 묻고 기념사진도 한 장 찍어 봤다. 달그락 뱃지는 달그락청소년자치기구 연합회 회원으로 가입하면 받는 것이다. 한샘이는 자신이 속한 교내 영상 자율 동아리에 달그락 활동을 함께 하자고 벌써 소개를 마쳤다며 자랑한다. 3.1운동 100주년 행사 현장을 스케치하는 영상을 만들었고, 그 영상을 동아리 시간에 틀고 달그락 활동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고 말이다.
그때 영상과 소개를 듣고 찾아온 제일고 6명의 청소년들과 각자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온 친구들 3명, 군여고에 자율동아리로 모집한 민하와 해빈이가 모여 f5가 달그락 오픈데이에서는 17명이 되었다. 그 중 민하는 2년간 방송국 활동을 열심히 했던 민영이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두 개의 채널은 어떤 그림으로 만들어 나갈지 각자 방송 자치기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내며 임원도 선출한다. 성윤이가 대표가 되었고 한샘이가 부대표가 되었다.
5개의 코너들은 어떤 방송일까. 때는 바야흐로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유명세이던 겨울이었다. 청소년들이 겨울방학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드라마 패러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말하는 성윤이와 재연이. 여행을 콘텐츠로 추천 음악도 공유하는 청소년 만담쇼를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패러디 영상이 완성되지 못했다. 촬영 할 때 나중에 편집할 것을 생각해 찍었는데 너무 많은 촬영분과 NG, 잘 들리지 않는 소리 녹음등의 요인으로 방송 시간까지는 완성이 촉박했다. 그래도 싸카오 박은 방송일정에 맞춰 시작을 알렸다. 싸카오 박은 싸이와 마카오의 합성어이다, 두 청소년이 좋아하는 가수와 여행장소를 합성했다. 둘은 콘서트 메이트로도 달그락 내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자자 수다와 박자 시작합니다! 여러분 너무 오랜만이에요~” 인사하는 이주. 고3 첫 모의고사의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우리가 공부만 매여있을 수는 없다’를 외치며 이주 피디는 수다와 박자를 고 3들의 이야기와 먹거리로 콘텐츠를 잡기로 했다. 고3 달그락 청소년들을 하나 둘 모아 만든 첫 번째 순서는 ‘고 3, 당이 필요해요’였다. 당이 필요하다는 말은 흔히 기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말한다, 당이 필요한 고3들의 먹거리와 이야기가 오갔다. 시청자분들은 모의고사때 어떤 과목을 봤는지 물으며 시험으로 시작한 이야기를 웃음으로 이끌어 가는 이주에게 해피바이러스라는 댓글이 달린다. 방송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방송이 끝난 후 너무 재밌다며 다음에 또 불러 달라는 정헌이, 우리 댓글은 읽고 하자며 보조진행을 맡아 준 프로 댓글러 소현이, 여자 청소년들의 틈에서 모든 말 시작전에 ‘저 말해도 되요?’라고 물으며 시작하는 태빈이는 다음 테마까지 이야기를 꺼낸다.
3월 마지막 날, F5방송 자치기구의 방송 콘텐츠는 우리도 재밌고 시청자들도 공감 할 수 있는 것이야 한다는 첫 회의 시작의 말이 울렸다. / 이경민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