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눌때 말고는 앉지 말라”
<15>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①-6
[본문] 편지를 받아보니 공이 편지를 보낼 때 여러 성인을 대하여 분향하고 나의 암자를 향해 멀리 예배하고 나서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공의 정성스런 마음이 지극하고 간절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서로 찾아가려고 하면 비록 심히 멀지는 않지만 아직은 직접 대면하여 말을 나누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 가는대로 손 가는대로 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지럽게 쓴 것이 이와 같습니다. 비록 번거롭기는 하나 또한 나의 정성이 지극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감히 한 마디 말이나 한 글자도 서로 속이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로 공을 속인다면 이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입니다.
[강설] 증시랑이 편지를 보낼 때에 정성을 다하여 보낸 점을 들어 칭찬하였다. 그리고 아직은 서로 만나보지 못한 사이임을 밝혔다.
선지식을 직접 친견하고 법을 묻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지만 대혜선사에게는 특히 편지왕래로서 공부를 지도한 사례가 매우 많다. 비록 편지지만 한 글자도 서로 속이는 것은 아니며 오직 진심으로 서로 상대할 뿐이라는 점을 덧붙여 밝혔다.
[본문] 또 기억해보니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최적정 바라문을 친견하고 성어해탈(誠語解脫)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최상의 깨달음에서 이미 물러간 적이 없으며, 현재에도 물러가지 않았으며, 미래에도 물러감이 없었습니다. 무릇 구하고자 하는 것은 이루지 못한 것이 없었는데 이것은 모두 지극한 정성으로 이룬 것입니다.
[강설] 또 <화엄경>의 한 대목을 인용하였다.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자세는 어떤 일에나 다 해당된다. 특히 생사대사를 해탈하기 위한 인생 최고.최대의 공부에 있어서라면 더 말할 나위없다. 대혜 선사는 증시랑의 정성을 칭찬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공부를 성취할 때까지 있는 정성을 다 바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다 받쳐서 할 각오를 다지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생사를 초탈하려면 생사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석같은 각오 서원 세우도록
격려 칭찬하는 게 선지식 책임
[본문] 공이 이미 참선하는 방석(竹倚蒲團)으로 벗을 삼는다고 하니 그것은 선재동자가 최적정 바라문을 친견한 것과 다르지 아니합니다. 또한 나에게 편지를 보낼 때에 성인에게 대하여 멀리 예배를 올린 뒤에 보낸 것은 다만 나(雲門)에게 믿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것은 지극한 정성의 극치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다만 이와 같이 공부를 해 간다면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강설] 참선하는 방석으로 벗을 삼는다는 말은 앉아서 선정에 드는 좌선(坐禪)을 뜻하는데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참선에는 일정한 방법은 없으나 두툼한 방석을 깔고 앉아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할 때는 더욱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앉아서 잠이 오거나 망상이 많이 떠오르면 조용히 일어나서 방 안에서나 마당에서나 편리한 곳을 선택하여 걷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선요(禪要)>라는 또 하나의 참선 지침서의 주인공인 고봉(高峰) 스님은 깨칠 때까지 식사를 하거나 대변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한 순간도 앉지를 않고 도량을 걸어 다니면서 화두를 들었다고 하였다.
참선자는 반드시 기억해야할 이야기다. 증시랑이 참선을 열심히 하며, 또한 대혜 선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정성을 다하여 믿음을 나타낸 것을 보면 최상의 깨달음을 이룰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칭찬하여 공부인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특히 참선공부는 생사대사를 해결하려는 큰 뜻을 세워서 일체 인생사를 모두 포기하고 더 이상 사람노릇을 하지 않기로 맹세한 사람들이 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철석같은 각오와 서원을 세우도록 격려와 칭찬을 하는 것이 선지식으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증시랑에게 보내는 첫 편지의 끝이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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