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투쟁"(Struggle of Surviva) 캔버스에 유채. 300 x 226cm. 1889.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전날 밤에는 눈이 많이 내렸고 길은 빙판으로 얼어 붙어 있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Oslo)에서 가장 번화하고 큰 "카를 요한 거리"(Karl Johans gate)의 새벽은
절박하고 가난한 사람들 외에는 몇 사람 다니지 않고 황량하기만하다.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는 스튜디오가 있는 "카를 요한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마주한 이 광경에 슬픔을 느끼며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 문제에 깊게 공감하게 된다.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는 1881~1882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실주의를 접하며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882년 파리에서 돌아 온 그는 "카를 요한 거리"(Karl Johans gate)에 있는
"풀토스텐"(Pultosten)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사실주의에 기반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는 사회적 불평등이 야기한 모순들을 자주 그렸다.
"노르웨이"王宮
"카를 요한 거리"(Karl Johans gate)는 "오슬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노르웨이"王宮에서부터 중앙역까지 쭉 이어지는 메인 스트리트다.
그림에서 보는 좌우의 건물들도 부유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르웨이 국민들은 1800년대까지도 대부분이 빈곤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번화한 곳이라지만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겨울은 유달리 춥고 힘든 계절이다.
창문을 열고 나눠주는 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냥 힘겹다.
마지막 남은 빵을 서로 얻으려고 아우성이다.
그것은 어제 만들은 빵이었다.
그것을 팔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냥 나누어 주고 있는것이다.
힘없이 밀려난 어린아이들은 이 생존경쟁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저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경찰은 방관자로서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다.
뒷줄에서 초점을 잃은 아이들이 들고 있는 빈 깡통이 유달리 크게 보이고
그들의 남루한 옷자락과 드러난 빨갛게 언 얼굴과 손등이 그의 마음을 저리게 했다.
왼쪽 앞의 빵을 받아 들고 나오는 오늘 하루를 보장받은 소년의 얼굴을 마냥 행복하다.
맨 뒤에 절박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이 아이들은 빵 한 개를 얻었을까?
이 그림은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생존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제목까지도 이곳 사람들이 직면한 절박한 어려움을 표현하는듯하다.
19세기말, 노르웨이 사회 권력층은 빈민 구제를 극히 일부 사람들의 문제로 여기고,
도심 미화 개선 관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크로그"는 골목 곳곳에서 매일 벌어지는 이 현실을
모두의 눈앞에 들이밀며 게으른 생각을 깨워낸다.
"노르웨이"는 1960년 북해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춥고, 배고픈 나라였다고 한다.
그래서 20세기 중반까지도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을 많이 갔다고 한다.
현재의 "카를 요한 거리"(Karl Johans gate)
"카를 요한 거리"(Karl Johans gate) 어느 곳에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의
"풀토스텐"(Pultosten)에 스튜디오가 있던 건물앞에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의 동상이 있다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 비관적인 주제의 작품을 끝으로 "크로그"의 작품 속에 항상 존재해왔던 사회적 현실주의는 끝이 난다.
"크로그"는 이 작품을 끝내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감탄하고 경애하고 방법을 가르쳐준 건
길고 긴 새벽의 어둠이었다.
어둠을 몰랐다면
내 곁에 맴도는 빛의 축복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