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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황금촛대[요1:4]
성소 안에 있는 세 개의 기구 중 우리는 떡 상에 대하여 살펴보았음.
이제 두 번째로 황금촛대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함.
성소 안에 촛대가 몇 개 있었는가[함정]?
등잔은 몇 개가 있었는가?
고로 성소의 촛대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일곱 등잔을 가진 촛대라는 것이 가장 정확한 명칭이라고 할 수가 있음.
오늘은 이 촛대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특별한 구속의 한 면을 살펴보면서 은혜 받고자 함.
등대의 재료
등대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 졌는가?
출 25:31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성소안의 재료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정금임.
이 정금은 몇 케이라고 하였는가?
정금에도 종류가 있는 것을 보았음.
상품화 되어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이 없을 것임.
한번 말씀을 드린 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음.
패금을 금을 만들어 모우는 한분이 금을 다 주면서 메달로 바꾸어 달라고 하였음.
그러면서 모은 금을 내어 주는데 덩어리 하나가 좀 달라보였음.
그것을 보고 지난번 한번 다른 사람이 와서 분석을 한번 의뢰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어서 모르는 체 하고 원장님 하나는 우리가 분석한게 아닙니다.
했더니 아니라고 함.
그래서 제가 금 덩어리를 다 보여 드리면서 색깔을 확인시켜 보여 드렸음.
분석하는 사람이 기술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금 중량을 조금 더 낫게 만들기 위함이었는지는 몰라도 확연하게 달랐음.
금 전문 업소에 갔더니 돈당 1000원씩 빼고 받아주었음.
아마도 성소에 사용된 금은 최고의 금이었을 것임.
그 최고의 금은 무엇을 상징한다고 하였는가?
불에 연단되어 불순물이 다 제거된 순금은 사랑으로 역사하여 영혼을 순화시키는 믿음을 나타냄.
우리의 모습도 진짜 금인지 불에 넣기는 넣었지만 제대로 정련되지 못한 금인지 누구는 아실까?
우리의 영적생야 불에 연단된 순금과 같이 순결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렇게 되길 소망하여야 함.
원은 하지만 불에 들어가기를 우린 다 싫어함.
정련과정이 그러함.
순금으로 나오려면 반드시 뜨거운 불에 들어가야 함.
그 불이 강렬할수록 우리의 빛깔은 더 아름다운 순금색깔이 될 것임.
촛대에 사용된 금의 중량은
출 25:39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이라고 한 것을 보면 많은 부속기구들이 있다는 것임.
그 전절에 보면 부속기구들이 나옴.
출 25:38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부속기구들은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고 이 모든 것을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어랴 함.
정금 한 달란트의 무게가 얼마가 된다고 하였는가? 32.2키로
다른 기구들과 달리 촛대는 무엇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였는가?
사이즈를 지시하지 않았다.
성소 뜰의 물두멍과 성소안의 촛대를 사이즈를 지시하지 않으셨음.
뜰의 물두멍은 여인들의 헌신으로 사이즈가 결정될 것이고.
성소안의 촛대는 얼마만큼 크게 하여야 할 찌는 누구에게 달렸는가?
브사렐에게 달렸음.
당신 왜 촛대를 이렇게 적게 만들었느냐고 책망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일을 누가 맡기셨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도 이러한 촛대를 맡기셨음.
마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렇게 빛을 비추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옴.
어떤 자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또 어떤 이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이렇게 맡기셨음.
그렇게 맡기시고 사이즈를 정해 주셨는가 하시지 않으셨는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음.
그리고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고 다른 사람에게 적게 남겼다고 나무랄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고 하였는가 그런 말씀없는가?
우리는 이런 면에서 자칫하면 실수를 할 수가 있음.
나에게 맡기신 달란트에 충실하면 됨.
그리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임.
브사렐이 금을 가지고 만든 촛대가 장대와 같은 촛대를 만들든지 땅으로 퍼져나가는 촛대를 만들든지 그런 것을 아무도 판단할 수가 없었음
그리고 그런 것을 볼 수도 없었음.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신 달란트에 관심을 덜 가지는 것이 좋을 것임.
교회의 유익을 위한 천거는 좋을지 모르지만 판단하기 위한 것은 하면 안된다는 것을 사이즈를 정해 주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서 생각하게 됨.
하나님께서 우리 개개인을 향하신 이상은 어떨까?
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36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가지신 이상은 가장 고상한 인간의 사상이 미칠 수 없으리 만큼 높은 것이다”.
우리 개개인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이상은 우리의 사상이 미칠 수 없으리 만큼 높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가?
저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지 말라는 말씀같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사상과 감정과 하나님께 향한 마음을 자로 재지 말라는 것이라 생각됨.
낮게도 재지 말고 높게도 재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실 것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 이상 하지 말아야 함.
등대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
크기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등대를 만들 때 이런 방법으로 만들라 라고 지시하신 말씀이 있음.
시작 때 찾아본 말씀임.
출 25:31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한 가지는 만드는 방법을 말씀하셨고
다른 내용은 모양을 낼 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음.
모양은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 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라고 기록하였음.
받침이 없으면 위에 줄기를 세울 수가 없음.
그래서 믿밭침을 만들고 그 밭침에 줄기를 세우고 잔은 등잔을 의미하는 것 같음.
그리고 꽃받침은 등잔 받침을 말하는 것 같고 이런 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만들라 하셨는가?
쳐서 라고 함.
쳐서 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금 세공하는 것을 보신 일이 있는가?
금 세공업자들은 고금을 가지고 먼저 도가니에 넣음.
그것이 일차 방법임.
그리고 도가니의 불을 얼마정도로 금을 녹여야 할까?
들어 보신 분 계시는가?
이것도 한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잘 모르겠음.
전 옛날 시계 도매업을 할 때 금 세공과정을 자주 자주 보았음.
기사들을 데려놓고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기사들에게 맡기고 하시기들 때문에 그들과 거래를 하였고 또 영새 없자들은 주인이 직접 시게도 고치고 금반지도 만들고 하기 때문에 금 세공과정은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아도 잘 보여 졌음.
그들 금을 얼마정도 녹이는가 하면 금 녹은 금물이 거울 같아야 됨.
불순물이 없이 녹았다는 것은 금 녹은 물에서 세공자의 얼굴이 뚜렷하게 비췰 때 비로서 불순물이 다 없어졌구나 99.99%순금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끄집어 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에 넣어 녹이실 땐 녹이는 금물에서 누구의 형상이 나타나면 다 되었다 하고 끄집어 내실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음.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우리속에 누구의 형상이라고 하는가?
그리스도의 형상.
근데 참 잘 녹지 않는 것이 있음.
치과 금 가운데 가장 금 함량이 낮은 금이 있음 그 자료를 젠센이라고 하는데 금 함량이 약 4%임.
옛날 금이 어느 정도 나올 땐 그런 것을 다 버리다 시피 하였음.
그런데 금량이 적어지고 분석할 금이 적을 땐 그놈을 좀 섞어서 분석을 하는데 량이 많이 적게 나오는 것을 보았음.
그래서 분석하시는 분을 만나 왜 적게 나오느냐 라고 하니까 금 좋지 않은 것이 들어 있어서 라고 하였음.
이것가지고 이익을 보려고 하다고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이 듬.
금 함량이 적은 놈은들은 금 아닌 것이 날라갈 때 금을 물고 날라간다고 함 진짜 그런지 아닌지는 난 모름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줄 아는 것임.
그래서 금 함량 높은 놈들이 좋구나 일하기도 좋구나 생각이 들었음.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들의 금들이 함량이 높은 금들이 되길 소망함.
하나님께서 분석하시는 일에 힘드실 일이야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4%짜리 금인지 쇠덩이인지 분간하기 힘든 금이 아니라 누구 보아도 황금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금으로 살아가길 바람.
불순물 뭍었으면 도가니로 들어가서 태우면 됨.
그런데 함량이 적은 놈들은 내 본래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순금까지 함께 가지고 날라 가버릴 수가 있음.
좋은 금들이 되도록 마음들을 늘 예수께로 향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게하길 바람.
이렇게 순금 세공자의 얼굴이 그 금물에 비췰 때 이제 그 금을 끄집어 내어서 어떻게 할까요?
이젠 그놈을 도마 위에 올림
그리고 어떻게 하는가?
금을 도가니에서 끄집어 내면 바로 반지나 목고리 되어서 나오는가?
반지나 목고리를 만들려면 또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망치로 쳐야 됨.
출 25:31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이곳에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라는 말씀은 그런 말씀임.
쳐서 밑판을 만들고 쳐서 줄기를 만들과 쳐서 잔과 꽃밭침과 꽃을 만들었음.
저는 성소를 공부하면서 그리고 준비하면서 생각하기를 성소에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은 우릴 구원하시기 위하여 맞으시는 분으로 보임.
어디서 처음 맞으셨는가?
번제단에서 그분은 맞으셨음.
십자가로 상징된 번제단에서 양은 찔리고 벗기고 각이 떠지고 불태워 졌음.
그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피와 땀을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심장이 터져서 돌아가셨음.
그다음에는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려고 돌이 되어 맞으시고 갈라지셨음.
생명의 떡이 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상징은 어떤 것인가?
우린 떡을 볼 때 이런 말씀을 보았음.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누구에 대한 말씀인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아닌가?
많은 열매를 얻도록 하시려고 죽으시고 우리로 열매 되게 하셨음.
그리고 생명의 떡이 되시기 위하여 한 알의 밀은 또 그냥 있어서는 떡이 되지 않음.
뿌려져서 죽고 추수하기 위해 낫으로 베임을 받아죽고 거두어 들여서는 타작기계로 두둘겨 맞고 절구통에 들어가서 겉질이 벗겨져야 하고 다시 가루가 되고 불속에 들어가야 우리가 먹을 수가 있는 생명의 떡이 될 수가 있음.
이러한 모든 과정들을 우리가 생각할 때마다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은혜가 될 것임.
이제 그렇게 맞으신 주님께서 촛대가 되기 위해 다시 맞으셨다는 것임.
왜 주님께서 그러한 고난을 격어야만 하시는 것을 보여주실까?
주님께서 우리위해 죽으시면 되는데 고난도 필요하셨을까?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 있음.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이 말씀 이해하기에 참 어려운 말씀이라 생각함.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는 말씀도 이해하기 힘이 들고.
순종으로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씀도 이해하기 힘이 듬.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빌립보 2장의 있는 말씀으로 비쳐보아야 함.
잘 알지만 찾아보겠음.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어떻게 하셨다고 하는가?
비우셨다 ...어떤 자기를 비우셨을까? 하나님으로서의 자기 여호와로서의 자기 전능자로서의 자기 창조주로서의 자기를 비우셨다.
그리고 무엇으로 오셨다고 하는가?
사람의 모양과 종의 모양으로.
그 주님께서 무엇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고 하는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
그리고 그 것으로 온전하게 되셨다.
자기를 비우신 예수께서 그분도 순종을 배우시기 위하여서는 고난이 필요하였다고 성경은 말함.
우리도 필요할까? 순종을 배우기 위해 고난이 필요할까?
고난이 올 때 도망하려 하지 마시라. 그럼 다음에 다시 그런 고난을 허락하실 것임.
그것이 우릴 하늘 데려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임.
그리고 이곳에서 온전하게 되셨다는 말씀은 품성의 온전이 아님.
헬라어 텔레이오오는 성품과 관련하여서도 사용될 수도 있지만 예수그리스도에게 관련하여서는 그분의 목표 임무를 완수하셨다는 말씀이 됨.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고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는 말씀임.
이렇게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시고 이루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이런 말씀을 주심.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일까?
처음에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불리워지기 시작하였음.
그것은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임.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람.
우린 말씀을 단면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항상 양면성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됨.
하나님의 두면 인자와 엄위가 있는데 우리가 인자를 늘 바라보고 생각하여야 하지만 엄위를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것임.
우릴 불러 온전케 하시는 주님따라 주님처럼 살아감으로 우리도 작은 촛대로서 주어진 빛을 잘 전달하는 주님의 도구들로 살아가길 축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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