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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六會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周
他化自在天宮
如來放眉間光․相光 金剛藏菩薩 入菩薩大智光三昧 十地法門
金剛藏菩薩 說十地法門. 自三十四卷 至三十九卷. 共一品經
二十六, 十地品
♧ 제목 차례
序分
1. 說法因緣
(1) 설법할 곳과 장소
(2) 함께 한 대중들
① 대중들의 덕을 찬탄한다
② 대중들의 이름을 열거하다
2. 삼매에 들다
3. 명훈가피력을 내리다
(1) 부처님의 출현
(2) 가피의 내용
① 자리
② 이타(利他)
(3) 가피의 모습
① 말씀으로 가피하다
② 마음으로 가피하다
③ 몸으로 가피하다
4. 삼매에서 일어나다
5. 십지(十地)의 강요(綱要)를 말하다
6. 자세히 설(說)해줄 것을 청하다
(1) 해탈월(解脫月)보살이 법을 청하다
① 회중(會衆)의 생각을 받들어 법을 청하다
②법이 깊고 어려우므로 설하지 아니한다.
③ 회중(會衆)의 덕(德)을 찬탄하고 다시 청하다
④ 감당할 수 없는 이를 염려하여 설하지 아니하다
⑤ 사람과 법을 함께 찬탄하고 또다시 청하다
(2) 법회의 대중들이 법을 청하다
(3) 여래가 광명을 통해서 법을 청하다
(4) 금강장보살이 설법할 것을 허락하다
① 의미의 광대함
② 설법(說法)의 광대함
正 宗 分
7. 제1환희지(歡喜地)를 설하다
(1) 중생이 선근(善根)을 깊이 심다
(2) 범부를 초월해서 보살이 되기 위함
(3) 환희지에 머무는 열 가지 법
(4) 환희지에 머물고 성취하는 열 가지 일
(5) 환희하는 20가지 이유
(6) 환희지에서 멀리 떠나는 열 가지 두려움
(7) 열 가지의 두려움을 떠나는 방법
(8) 일체 선근(善根)을 성취하는 길의 31가지 법
(9) 환희지에 머물고 발(發)하는 십대서원(十大誓願) (住地 十大誓願)
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발원(發願)하다 (諸佛供養願)
② 일체 불법(佛法)을 수지할 것을 발원하다 (佛法受持願)
③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第子)가 되기를 발원하다 (轉法輪願)
④ 교화가 중생의 마음을 증장시키기를 발원하다 (修行二利願)
⑤ 일체중생을 성숙시키기를 발원하다 (成熟衆生願)
⑥ 일체 세계를 받들어 섬길 것을 발원하다 (世界承事願)
⑦ 일체 국토가 청정하기를 발원하다 (淸淨國土願)
⑧ 일체 보살들과 늘 함께 하기를 발원하다 (菩薩不離願)
⑨ 작은 수행(修行)이라도 큰 이익 있기를 발원하다 (利益成就願)
⑩ 정각(正覺) 이루기를 발원하다 (成正覺願)
⑪ 십대서원(十大誓願)은 십진구(十盡句)로 성취한다
⑫ 서원(誓願)을 발(發)한 후 얻는 열 가지 마음
(10) 믿음을 성취한 사람이 믿는 것
(11) 보살이 염려하는 일
(12)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보시행(布施行)을 닦다
(13) 십지를 청정케 하는 열 가지 법을 성취하다
(14) 환희지에 오른 공과(功果)를 밝히다
(15) 게송으로 그 뜻을 거듭 설하다
八, 第二離垢地
가지고 계신 교재 65 P 입니다.
교재 65 P
이구지부터 오늘 강의가 시작되겠습니다.
저번 주까지 마친 것이 이제 환희지였죠.
환희지 할 때는 그 과제가 뭐였습니까?
통장 만드는 거였죠.
오늘은 이제 과제물 검사를 하겠습니다.
통장. 예?
자! 잘 들어 보십시오.
학교 때부터 이제까지 늘~ 저렇게 살아오셨습니다.ㅎㅎ
참 신기하고도 신기한 일이다.
요즘처럼 비가 이렇게 내리고 이러면
아주 오래된 묵은 대밭에 또 제 방 앞에 烏竹오죽이 있습니다.
대나무가 비가 오고 나면 죽! 죽! 자란다고 해서
대나무 죽자 써서 竹筍이 지금 죽! 죽! 올라오고 있습니다. 죽죽
하여튼 환희지는 그렇게 이제 매듭을 지었고,
지금은 두 번째 수행의 단계로
지계, 계율,
상당히 우리 수행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이고
민감한 부분들이기도 하고
상당히 번뇌가 있는 사람으로서
또 세상에 욕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욕계 중생으로서는 지키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번 귀에 스쳐놓으면
그것이 영원히 도의 종자가 된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첫 번째 단계인
환희지에서의 보시의 수행을 멈춰서는 되지 않고
보시의 수행은 계속 연결되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수행한다? 지금부터는요?
지계바라밀을 중점적으로 수행한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보시를 능히 할 수 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고
고운 말이라든지 고상한 품격이라든지
물질적이나 정신적으로 넉넉한 마음 상태가 되면
일단 바깥으로 괴롭고 즐겁고 춥고 덥고 배고프고 배부른 데 대해서
잡념이 많이 제압이 되고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잡념이 안쪽에서 아끼는 마음과 남의 것 탐내는 마음들이
많이 보시바라밀 환희지에서 사라짐으로 인해서
좀 더 굳건하게 자기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대목이
離垢地의 상태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환희지에서는 바깥으로 드러난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기의 마음을 조복 받는 상태고
지금 이구지부터는 안쪽에 도사리고 있는 아집 번뇌가
첫 번째 장부터 이제 속마음을 뚫고 들어가서
깨뜨려버리는 상태가 되겠습니다.
속마음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앞에 환희지에서
정당한 지위, 正位를 제대로 체득하고 물결의 흐름을 탑니다.
물결의 흐름을 타고난 뒤에
일단 강 위에 이제 배를 띄웠습니다.
그러면 강을 건너고자 하면
그 배가 난파선이 되지 않으려고 하면
물이 차지 않아야 될 것이고
배 밑창이 든든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계바라밀을 실천하는 이구지부터 시작됩니다.
수행 계위로 보자면 여기서부터 보이는 것은,
마음은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안쪽으로 환희스러운 마음,
간탐심이 많이 없어짐으로 해서
청정한 계행을 통해서 자성의 안쪽에
본성의, 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정신 상태가
점점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비유하자면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떤 속을 들여다 볼 때
캄캄해서 랜턴을 비춰서 보는 속이 있고
어떤 데는 바깥으로 빛은 뻗어져 나오지 않는데
속은 이렇게 열고 보면
안에 자체가 환~해지는 상태라 할까,
그렇게 됩니다.
지금 이구지부터는 무엇이 없어지느냐?
애정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애착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지나친 사랑과 지나친 배격하는 마음들이
첫꺼풀부터 이제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여러분들한테
한 말씀 비유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제가 지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한국말입니다.
여러분들은 한국말을 충분히 다 알아 듣고 계십니다.
자! 이 말을 누가 만들었죠?
.........
제가 꼭 질문을 던지면
뭘 그래 낚시 바늘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 같은데... ㅎㅎㅎ
자! 이 말을 하고 있는데 이 말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공업 중생으로 복합 공동체가 먼먼 시절부터 만들어져서
우리가 자유롭게 이렇게 말을 쓰고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이죠.
자~ 이것 뿐만 아니라
어! 보니까 이 마이크 누가 만들었습니까?
잘 모르겠다 그 사람
자! 전기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지금
발견했는 거야 뭐 에디슨이 했든지 누가 했든지 모르는데
지금 전기 여기에 공급하는 사람은
누가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책상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 책은 종이는 누가 만들었죠?
나무가 만들었나요?
뭐가..뭐... 글자도 그렇고...
아! 따지고 보니까 안경 하나로부터 해서
내가 들고 있는 숟가락 하나, 볼펜 하나, 이 세상에 꽃 하나,
내가 인위적으로 의도적으로 해서
그렇게 잘 나고 천재라고 고함지르고 자만심에 들떠 있었는데
실제적으로 내가 만들고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가는 것은
저 넓은 바다에 모래 한 알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이런 마음을 안다면
제행의 무상과 제법의 무아의 이치를 터득하면서
안쪽에서 내가 그렇게 애착할 것도
내가 그렇게 미워할 것도 없다고 하는
아만심이 사그라들기 시작하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공간도 소중한데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간과 공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이 소중한 걸 느끼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주로 애착과 시기 질투와 미움이 팽배해 있습니다.
모든 魔障 중에서 가장 큰 마장이 人魔입니다. 인마
배움에 대해서 學魔도 있을 것이고
재물에 대해서 財魔도 있을 것이고
삼재팔난이 다 있잖습니까?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사람에게,
사람에게 부대끼는 것이 가장 큰 일인데
세상이 시끄럽고 주변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 마음의 잡념이 시끄러워가지고
온~ 세상 사람의 인간 관계가 복잡하고 시끄러워졌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상태가
바로 여기 이구지 상태부터 시작되겠습니다.
환희지에서 남에게 넉넉히 베풀어주고 말도 곱게 해주고
물질적인 것 정신적으로 남에게 풍부하게 해주다가 보니까
한 단계 더 업 그레이드 돼가지고
지금 어디에 와 있습니까?
이구지 상태에 오는데
여기서부터는 아만심과 아집스러움과
내가 취착하는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 잡번뇌들이
하나씩 하나씩 녹아 가기 시작하는 그러한 상태들이 되겠습니다.
옛 말에 이런 게 있습니다.
鳥之將息조지장식에 必擇其林필택기림이요,
人之求學인지구학에는 當選師友당선사우라.
새가 오래도록 편안하게 쉬고자 하면
반드시 그 숲과 나뭇가지를 잘~ 선택해서
보금자리 둥지를 틀어야 될 것이고
人之求學에, 사람이 배움의 길을 가고자 하면
마땅히 훌륭한 스승과 도반을 찾아야 될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금생에 인생으로 태어나서
석가모니라고 하는 근본 스승 是我本師를 만났고
그 석가모니의 긴 삼천 년의 메아리를
제 입을 통해서, 또 그 그림자를 이 십지품 책을 통해서,
우리는 다행히 만났습니다.
이때 이제 우리 십지품을 만나가지고
당신께서 세워놓은 수행의 체계,
이것은 순서가 있습니다.
딱히 정해진 법은 없지만
숱한 수행인들이 피와 땀을 목숨을 바쳐 가면서 이룩했던 실상의 세계,
대승 불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바라밀행으로써
그 수행 체계를 잡아놨습니다.
첫째 보시바라밀,
그 다음에 지계바라밀,
그 다음에 인욕바라밀,
남에게 넉넉하게 베풀 줄 알고 넉넉한 마음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완성돼 나가는 지계바라밀,
그래서 마음의 잡때가 벗겨진다는 이구지, 그죠?
이구지, 이구지,
환희지 잘못 한다면 어떻게 된다 했죠?
화내지.
환희스러워야 되는데 환희지가 아니고 화...내...지.
離垢地,
때 垢구자, 때를 이별한다, 벗어난다, 이런 상태
그래서 살생하고 도둑질 하고 거짓말 하고
殺 盜 淫 妄, 이런 데 대해서
조금 사람이 남의 입에 발린 말 하고 이간질 하고 악한 말 하고
이런 것들로부터 조금 자유롭게
화 잘 내고 탐심내고 아주 시커먼 소견머리를 가지고
그렇게 좁은 소견머리를 가지고 살다가
거기서 자유로워지게 되면
인욕하는 힘이 참는 힘이 남보다 배가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괴롭고 즐거운 것, 이익되고 손해되는 것, 칭찬하고 헐뜯는 것,
이런 거에 대해가지고 남의 비방으로부터
譏毁讚譽기훼찬예 何憂何喜하우하희리오.
남이 나를 칭찬하든지 남이 나를 헐뜯든지
거기에 무슨 기뻐할 일이 있고 슬퍼할 일이 있겠느냐.
기뻐하고 슬퍼하는 데에서 빠지지는 않지만
그러나 눈물이 너무 많고 또 웃음이 너무 헤프고 이렇게 산다고 하면
하근기쯤 됩니다. 하근기
부처님처럼 상근기들은
사자가 사자의 미소나 범의 미소가 그렇게 얍삽하지 않거든요.
근엄하거든.
그러니까 사자가 눈물 쬘쬘 흘리고 범이 쬘쬘 울고 이러면
어떨 것 같아요?
그거는 고양이 됩니다.
그러니까 상근기들은 항상 잔 정이 없고 냉정한 것 같지만
사리분별이 應無所住 而生其心으로 빠지지 않고
일의 의당함을 따라서 마음을 쓰게 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잘 견디고 잘 참고 인내심이 남들보다 탁월하지요.
그러지 못하면 절에 같이 살아도 보면
밥 하나 뜨는 것도 귀찮고 예불 하나 모시는 것도 귀찮고
사람이 희한하게 됩니다.
인욕심이 잘~ 갖춰진 사람은
바로 어떤 일에든지 게으름이 없고 부지런하고
정진력이 바로 배가 됩니다.
정진력을 갖춘 사람들은 움직임이 이렇습니다.
글을 쓸 때도 아~주 능수능란하게 붓글씨를 써더라도 춤추듯이 씁니다.
물을 한 잔 마시더라도
이~렇~게 아~주 손이 리드미컬 합니다. 이렇게~
그런데 산란 중생들은 마음이 이렇습니다.
게으르고 산란한 사람들은
(물을 드시며) 찹!찹!
이렇게 도리방정을 떱니다.
그 사람의 몸 움직임이라든지 글 읽는 거라든지
말하는 태도가 영 고요하게 깔아 앉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진력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춤추듯이 걸음을 걸어가도 춤추고
법문을 해도 손이 하나가 춤추듯이 나가야 돼.
글을 쓸 때도 그렇고 밥 먹을 때도 숟가락이 춤추듯이 하고
욕심 많고 산란한 중생은 밥 먹을 때 이렇습니다.
자~ 법경 거사님 같은 분
짭짭 짭짭! 짭짭!
이게 욕심 탐심에 거지같이... 죄송합니다.
거지까지 가버리셨네... ㅎㅎ
막~ 손놀림이 빠르고 뭐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막~ 이렇게 움직이잖아요.
그것이 생각이 벌써 흔들려 버렸고
고요가 다 깨져 버리고
그러니까 몸은 춤추듯이 하고 말은 아~주 품격 있게
책을 읽으면 노래하듯이 읽어진다.
예를 들면 여기서 읽어 보자면
'제~보~살이 문~차 최~ 승~미~묘~지 하고~ ' (노래하듯)
이렇게 아~주 글을 읽더라도 노래하듯이 찬탄하듯이 아름답게 들리는데
산란한 중생들은 그게 안 되니까
'보살들이 묘한 초지의 훌륭한 법문을 듣고 마음들이 깨끗해져 한꺼번에'
(빨리 읽음)
뭐 이렇게 아주 사람이 옆에 조잡스럽게 느껴집니다.
우아한 명품이 안되는 거죠.
물건에도 명품이 있듯이
사람 수행에도 생각에도 명품 생각들이
반드시 수반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정진하고 고요하게 밀고 나가다 보면
그 다음에 오는 상태가 바로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부처님 쪽으로 끌어 당길 수 있는 선정바라밀이 다가옵니다.
이때는 선정에는 갖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제가 주장하는 거는 현전에 일념입니다.
지금 여기 있을 때
생각은 하루에 한 백억 번 정도
정확하게는 93억 번 정도가 일어난다고 돼 있습니다.
일 찰나 간에 생각이 900번이나 일어났다 꺼집니다.
900 번, 천 번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면 된다는데
16분의 1초, 7분의 1초
여러 가지 찰나를 따지는 게 많은데
가장 짧은 찰나 순간에도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이 주기가 로테이션 되는 게
한 천 번쯤 일어났다 꺼졌다 하니까
하루에 한 백억 번의 생각이 왔다 갔다 합니다.
무슨 정념을 마음을 무심하게 턱 놓고 있는데
이 난초를 보면 난초가 생각이 들어오고
볼펜을 보면 볼펜 생각이 들어오고
소리를 들으면 소리에 생각이 들어오고
냄새를 맡으면 냄새 생각에 금방 금방 끄달려 갑니다.
그럴 때마다 그 끄달리는 생각을 턱! 놓아버리고
고요하게 무심 쪽으로 자기를 계~속 견지해가는 것을
사마타 수행이라 하고, 정념이라 하고 그렇고
정~ 생각이 바깥에 새소리가 들리면 새소리를 따라 가고,
종소리가 들리면 어디서 들리는고 고개를 기웃거리고,
그렇게 하지 마라고 제가 어떻게 말씀드렸죠?
새소리가 들리면 새소리가 짹짹거리든지 저 바깥에 새가 울면
들렸다고 하면 새소리는 어디도 있는 겁니까?
여기도 새소리가 있는 것이니까
반드시 당겨서 내 귀 속에서 들을 것이고
제 목소리가 여기서 나가고
저기 마이크 스피커 이렇게 통해서 나가지만
저기가 아니고 분명히 여러분들 귀 앞까지 왔다 라면
어디서 당겨 들어야 돼요?
당체! 그 자리
앉은 자리에서 듣고 보고 한다는 거
제가 여기서 이제 법경 거사님을 봤는데
저 멀리서 보였지만
이미 내 눈에는 여기도 있을 것이다. 이 망막에
당겨서 보고 당겨서 듣고 당겨서 맞고
이러다 보면 항상 내 중심적으로 해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바깥으로 계~속 이렇게 잡란스럽게 왔다갔다 하면
선정 삼매를 이루기가 정말 힘들죠.
경계야 왔다 가든지 말든지
나는 당장 무심한다, 나는 당장 무심한다,
이렇게 이제 우리 수행법에서
염불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뭐 다른 잡념이 오고 나면
그 잡념을 이기려면 그 잡념도 떠올랐지만 화두도 떠올랐다.
들고 있는 화두를 계~속 주시하면서 밀었다 냈다
화두만 계~속 단전으로 왔다갔다 숨결 따라 이렇게 참선을 하든지
염불하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계속 듣고 있든지
이렇게 하면 여러 가지 잡념들이 사라지면서
선정과 그 속에서 바로 고요함 속에서
우리의 본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혜가 돋아난다고 하는 거죠.
이래서 수행 체계를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그 다음에 그 위로 方便, 願, 力, 智라 해가지고
십바라밀이 형성됩니다만
그런 것들은 이제까지 나름대로의 이론과 진리 속에서
그러한 수행 체계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 현인이나 성인들은 군말 없이 다 좇아갔는데
수행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왜 보시가 앞에 있는지
왜 인욕이 뒤에 있는지 뒤죽박죽 돼가지고
불교인이라 하더라도 바라밀 이름만 외우고 있고
실제적으로 수행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구지에 들어간다라면
여러분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보시바라밀도 그냥 이제까지는 다른 거는
이제 정진바라밀은 안 배웠으니까
안 배웠다고 다 알고 있지만 놔두고,
뭐부터 해야 돼요?
보시바라밀을 계속 유지시키면서
내 힘이 닿는 한에는 유지시키면서
이구지 배울 때는 무엇을?
지계바라밀을 더욱 강력하게 부각시켜서 공부한다,
이렇게 이제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경전을 우리가 受持한다고 하는 거는
受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인다, 이런 말입니다.
배운다, 이런 말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경전을 읽게 돼 있습니다.
학교 공부를 배우든지 뭐를 하든지
지침서를 다 읽게 돼 있습니다.
읽는 것은 讀誦한다 할 때
讀은 읽는 것은 受한다는 뜻이고
지닌다고 하는 뜻은 외우는 겁니다.
지니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돼야 해요?
반드시 외우게 돼 있습니다.
외우면 안쪽으로 마음이 점점 더 굳건하게 깊이 심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환희지 같은 게 이제까지 지나왔는데
늘 반복해서 다시 읽고 외울 부분은 더러 명심하고 외우고
환희지 배우면서 저는 좋았던 점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원효스님도 참 좋아했고
무학 대사의 제자였던 涵虛堂함허당 스님도 참 좋아하셨던 대목인데
꿀벌이 꿀을 찾듯이
목마른 사람이 감로수를 찾듯이
주린 사람 밥을 찾듯이
병든 이가 약을 찾듯이
그런 대목도 좋았고
이 번뇌를 떨어내기 위해서 용광로에다가 금을 단련할 때
금을 넣어가지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또 다시 명반을 뭉쳐가지고 진금을 단련하듯이,
그렇게 내 마음을 이미 금덩어리가 돼가지고
한 99프로 98프로쯤 돼 있는 마음인데
별 문제도 없고 하자도 없는 것 같지만
다 공부가 끝난 상태라도 어떻게요?
다시 초심으로 녹여서 단련하고 단련한다.
이런 대목들이 우리가 환희지 배우는 부분에서
뭐 다른 말씀들도 너무 아름다운 게 많았지만
그런 것이 기억에 이렇게 지금 설핏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래서 이구지 정도 이렇게 오면
아까는 바깥만 환희지에서는 깨끗해져서
분별사식이 끊어지는 상탭니다.
의도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
제가 말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졌을 때는
환희지 쪽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을 뽑아내는 힘,
이거는 이구지 쪽부터 시작됩니다.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잖습니까. 그죠?
안에 마음 깊은 자리에 있는 생각,
그것은 여러분들이 만질 수 있는 생각이 아닙니다.
여기 이구지부터 나오는
아집이라든지 아만이라든지 교만하고 이런 마음들이
바깥에 나온 교만이 있고
안쪽에 잠재적으로 돼 있는 교만이 있거든요.
그거는 밀어내는 싫고 좋고 하는 것이 막 밀어내지거든.
그것은 지나가고 난 뒤에 항상 보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죠?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남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하면
‘확!~ 저게 막!’
욕부터 하잖아요.
여기까지 해놓고 우리가 이제 조금 진도를
한 번 좀 나가보도록 그래 하겠습니다.
자~ 이러면 지금 환희지 하고 이구지가 약간 다른 건 아시겠습니까?
이구지는 안쪽으로
이제 잡히지 않는 증오와 애정의 사이를 잊어버리는, 그죠?
첫 단추가 되겠습니다.
이걸 진정한 이제 수행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능엄에서 배우다시피
修道分이라고 하는 겁니다. 修道分
앞에 환희지까지는 뭐라고 배웠죠?
見道分이라고 배웠습니다.
수도분이 상당히 양이 많습니다.
二十六, 十地品 2
八, 第二離垢地
(1) 慶聞初地
諸菩薩聞此
最勝微妙地하고
其心盡淸淨하야
一切皆歡喜라
皆從於座起하사
踊住虛空中하야
普散上妙華하고
同時共稱讚하사대
善哉金剛藏
大智無畏者여
善說於此地
菩薩所行法일새
8. 제2 이구지(離垢地)를 설하다
(1) 초지법문(初地法門)을 찬탄하다
보살들이 묘한 초지의
훌륭한 법문을 듣고
마음들이 깨끗해져
한꺼번에 환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공 중에 뛰어 올라
훌륭한 꽃 널리 흩고
함께 칭찬하는 말이
장하여라, 금강장(金剛藏)이여
큰 지혜로 공포 없이
초지 보살이 행하는 일
분명하게 말하였네
八, 第二離垢地
(1) 慶聞初地라
경사스럽게 들었다.
초지 법문을 잘~ 들었다.
초지 법문을 여기서 이제 한 번 매듭을 짓고
2지로 넘어 가겠다, 이런 말이죠.
諸菩薩이 聞此 最勝微妙地하고 其心이 盡淸淨하야 一切皆歡喜라
제보살 문차 최승미묘지 기심 진청정 일체개환희
보살들이,
보살이라고 하면 어떤 분들입니까?
도를 닦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
도심 중생을 보살이라고 말씀드렸죠?
깨달은 중생들.
보살들이 저 미묘하고 아름다운 환희지의 훌륭한 법문을 듣고 마음들이 깨끗해져서 한꺼번에 환희했다. 一切가 皆歡喜했다.
모두 다 歡喜踊躍환희용약 했다, 이 말이죠.
皆從於座起하사 踊住虛空中하야 普散上妙華하고 同時에 共稱讚하사대
개종어좌기 용주허공중 보산상묘화 동시 공칭찬
善哉라 金剛藏 大智無畏者여 善說於此地 菩薩所行法일새
선재 금강장 대지무외자 선설어차지 보살소행법
그러니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가지고 팔짝팔짝 뛰고
이제 난리도 아니네.
난리부르스라 이러죠.
허공중에 뛰어 올라서 꽃을 뿌리고 흩고
지 정신이 아닙니다. 하도 좋아가지고
함께 칭찬하는 말이
어떻습니까?
장하여라 금강장(金剛藏)이여,
'여'자가 빠졌는가 보네.
큰 지혜로 공포 없이
환희지 보살이 행하는 일을
분명하게 다 말씀해 주시는군요.
이래서 금강장 보살을 무엇으로 삼고 있습니까?
선지식으로 삼고
해탈월보살 이하 모두가 그 가르침을 잘 따르겠다, 이런 말이죠.
자~ 저를 한 번 보세요.
그 유명한 道安 법사라고 있었습니다. 잘 아시죠?
도안 법사는 이런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십지품을 하고 있는데
序分, 正宗分, 마지막에 뭐죠?
流通分,
이 3분과를 나누신 분이 도안 법사입니다.
달마스님 이전의 스님이십니다.
굉장히 똑똑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들 법명 앞에
釋석 용학, 석 누구누구,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데
그 釋석 자를 제일 처음으로 썼던 분이 도안 법사입니다.
스님들은 집을 나와서 출가를 했으므로
四生慈父이신 사생의 자비로운 아버지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아버지로 삼는다 해서
성을 전부 다 釋 누구누구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도안 법사가 처음에 은사 스님을 잘못 만나가지고
우리는 지금 금강장보살이라든지
지금 십지품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만난 거죠.
이 선지식은 두 가지가 선지식이 있어요.
아~주 지혜롭고 또 아는 것도 博達해가지고 博學多識 하고
박학다식은 아닌가?
박학다식은 뭐라고 그랬죠?
박학, 얇을 薄박자 배울 學학자, 학문은 얇고
多食, 밥은 많이 먹는 게 薄學多食이다.
여하튼 통달해가지고 아~주 박학해서 無不通知라.
모르는 게 없고 뭐든지 물어가지고 行業도 견고하다.
행하고 짓는 업들이 견고해서 너무너무 정직하고
銀山鐵壁은산철벽 같은 스님들이 있어요.
그런 스님들이 최고의 스승이고
그 다음에 분명히 많이 알고 잘 이해하고 파악은 잘 되는데
우리처럼 좀 찌찌부리한 사람들 있잖습니까?
이것은 마치 어두운 밤길을 가는데
앞에 순~ 악해빠져가지고 죄업이 많은 사람이 가는데
그 사람이 들고가는 건 오직 뭐예요?
랜턴 하나 뿐이다.
그 길을 따라 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일들도 있거든요.
안 따라 가면 어떻게 돼요?
전부 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으니까
피치 못해서 그 스승을 의지해야 되는 그런 결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안 법사가 처음에 출가할 때
師 十二에 出家해서, 12살에 출가했을 때
貌黑形陋모흑형루라, 얼굴이 새까맣고 형상이 꾀죄죄해가지고
여기 지금 야간반에는 안 오시는데
꾀죄죄해가지고 짜구가 나가지고 그렇게 생겼었던가 봐요.
그러니까 師가 輕視之 해서
'너는 안 되겠다, 너는 인물이 안 되니까 저기 밭에 가가지고
駈役田舍구역전사라, 저 밭에 가서 일이나 해라.'
그래가지고 도안 법사가
執勞三年이라, 삼 년 동안 새(혀)빠지게 일하고,
내 이래가지고 12살에 출가했는데
15살쯤 돼가지고 이래가지고 안 되겠다 싶어서
‘스님 저도 책만 한 권만 줘 보세요. 저도 공부 좀 합시다.’
辯意經변의경이라 해가지고
금강경 만한 책을 갖다가 한 권 이렇게 주니까
그걸 갖다가 돌아가서 밭에서 일하다가 나와가지고
因息就覽인식취람이라,
쉬면서 한 번 살~짝 보고는 홀딱 다 외워가지고
저녁에 책을 돌아와서 절에 와서 갖다드리고
‘스님~ 다른 거 한 권 좀 주세요. 홀딱 다 외워 버렸다.’고
‘야~가 뭐 이런 소리 하나... 외워봐라.’
진짜 다 외우거든.
더 큰 책을 한 2만 5천자쯤 되는 걸 줬더니
또 싹 다 외웠다.
그러면 대충 자기 은사 스님이 알아먹어야 될텐데
그렇게 똑똑한 천재를 알아보지도 못 하고 계속 부려먹고 이러니까
‘아이고~ 내가 여기 있어서 인간 안되겠다.’
싶어서 길을 나서가지고 만났는 게
그 유명한 佛圖澄불도징이라는 스님,
부처님 佛자 圖澄도징, 불도징,
불도장 아닙니다.
불도징을 만나가지고
불도징 스님은 하루에 뭐 천 개의 게송을 외운다 할 정도로
굉장히 똑똑한 스님이었어요.
야~ 저기 도안 법사를 어린 동자를 만나자마자
탁! 보고는 신기하게 생각하고
'하! 異哉이재라 小童이요.
참 신기하고도 영리하고 똑똑한 천재, 어린 너가 잘 찾아 왔구나.
니가 眞世良驥진세양기로다.
정말로 이 세상에 뛰어난 千里駿馬인데
不遇靑眼이라.
나같이 눈 밝은 명안종사를 만나지 못해가지고
너희 은사스님 옆에서 그렇게 困駕鹽車곤가염거로다.
소금 수레나 끌고 염전밭이나 돌아 다니고
인생 한 세상 망칠 뻔 했다.
니 날 잘 찾아왔다.’
自非伯樂자비백락이면,
백락이라는 사람이
옛날에 중국에는 孫陽이라는 사람이 말 관상을 잘 봤는데,
경주 가면 왜 하늘에 내린 말이 있잖아요.
이름이 뭐요? 그게?
천마, 하늘에 날개 달린 말,
그 말을 주관하는 사람이 맞 伯백자 써가지고 즐길 樂락자 써서,
伯樂백락이라는 사람이 천마를 주관하고 살거든요.
'自非伯樂자비백락이면, 백락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奚彰千里之駿해창천리지준이리요.
어찌 이 천리준마를 알아 볼 수가 있었겠느냐?'
불도징이가
‘니가 나를 만났으니까 이제 천리마의 구실을 할 것이다.’
천리마는 어떻습니까?
鞭影已去편영이거라.
채찍질 안해도 잘~ 공부하고
채찍질 그림자만 보더라도 말은 달린다, 하잖아요. 그죠?
그런데 둔한 말들은 어떻습니까?
엉덩이가 찢어지고 배에다 박차를 가해가지고
두드려 맞아 가면서도 피가 철철 흘리면서도 비틀거리잖아요.
그래서 스승을 잘 만나야 된다,
이런 얘기는 이제 도안 법사를 통해서 우리가 이제 알 수는 있죠.
그 도안 법사 일화 중에 유명한 거는 이 정도죠.
도안 법사는 굉장히 똑똑하고 위트도 넘치는 분이었죠.
제가 여기 수업 시간에 한 번씩 이렇게 말씀을 드린 적은 있어요.
도안 법사 못지 않은 이가 있었어요.
그 양반들 말씀하시는 게 부처님을 닮아가지고
자기가 세계에서 제일 낫다고,
세계를 그 때 세계로 표현 안 하고 四海라 이렇게 표현합니다.
‘제가 四海의 習鑿齒습착지입니다.’
도안 법사가 만나면서 홱! 쳐다보면서
‘응~ 제가 彌天미천, 온 하늘에 그 이름이 가득한 釋 道安,
저는 우주적인 인물 도안입니다.’
습착지가 한 방 당하고 나니까 기분이 안 좋거든.
앞에 촐랑거리고 이제 가고 이러니까
습착지가 뒤에서 기분 나쁘니까
‘아이고~ 앞에 가는 꼬라지 봐라.
키질 하면 폴폴 날리는 껍쭉정이가 앞에 날라가듯이 그렇게 촐랑대고 간다.’
도안 법사가 탁! 돌아보면서
'쌀 조리질 해봐라.'
뒤에 남는 거는 뭐가 남아요?
’돌만 남는다. 이 돌대가리 같은 놈아!‘ ㅎㅎㅎ
쌀을 조리질 하면 뒤에 뭐가 남지요?
돌, 돌, 돌만 남는데, 조리질 해봐라. 돌만 남지.
그러니까 습착치가 졸지에 돌대가리가 된 거라. 뒤에
써먹을 데 없는
쌀 일 淘도자, 쌀 일 汰태자,
그래서 우리가 淘汰도태시킨다, 하잖아요?
도태시킨다는 말이
뒤에 찌꺼기를 없애는 거를 淘汰라 하거든.
쌀 일 淘도자, 또 뭐? 쌀 일 汰태자,
그 도태시킨다는 그 양반이,
써먹었던 양반이 도안 법사입니다. 도안 법사
그런 스님은 스승을 다행히 잘 만나가지고
훌륭한 법을 잇고
중국에 지금까지도 빛나는 천 몇 백 년이나 되도록
천오백 년이 넘도록 아름다운 이름으로 해서
이 문수선원에 회자 됐죠.
우리가 이제 수행하면서 살아갈 때
스승을 잘 만나야 되고,
도반을 잘 만나야 되고,
도량을 잘 만나야 됩니다.
한 장소를 한 도량에서 한 십 년씩만 있으면 지덕을 입는다 그러죠.
리어카 장사도 십 년만 한 자리에서 오래만 하면 성공하게 돼 있어요.
사람이 신불을 못해가지고 왔다갔다 해서 그렇지.
한 가지만 오래오래 하면 다 성공하게 돼 있어요.
한 우물만 오래오래 파면
道場도량이라고 하는 걸 제가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도량!
한문은 道場도장이라고 씁니다.
도를 닦는 장소,
도를 닦는 장소는 어디냐 라면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마음
저 사람 도량이 넓다 도량이 좁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마음이 탁하고 마음이 옹졸하고 소견이 딱 대바라져가지고
꽈배기처럼 비틀려가지고 왜곡돼 있고 굴곡진 사람들은
도량이 범어사 같은 청정한 도량이 있더라도
자기 마음이 이미 비틀렸기 때문에 도량이 없는 것입니다.
조금의 여지도 없는 것이죠.
부처님처럼 불타는 사바세계에 살면서도
극락처럼 사바세계를 참고 무심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뭐가 넓기 때문에 그래요?
당신의 마음이 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얘기를 지금 다시 이구지부터
이렇게 진행돼서 쭉~ 나오게 되겠습니다.
왜 오늘 전부 분위기가 꾸~리 하십니까?
보살님은 날씨가 아니고 왕씨잖아요?ㅎㅎㅎ
왕씨 탓이냐, 김씨 탓이냐, 이씨 탓이냐. 날씨 탓이냐.
성도 희한한 씨가 다 있네.
날씨가 뭐꼬... 날씨
자~ 저는 이게 저는 그렇게 말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 먼저 튀어 나와 버려요.ㅎㅎㅎ
말이 어딨는지 내 말을 듣지도 않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거 말을 만든 사람이 누구예요?
말 만든 사람은 아마 제가 생각할 때
그 사람 고향은 제주도 같아요.
사람은 낳으면 어디로?
(서울로)
말은 낳으면?
제주도. ㅎㅎ
우리 말 만든 사람이 제주도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그 다음 대목으로 넘어 갑시다.
이게 조금 이해 안 가시는 분들은 조금 소금 수레나 지고 그래야 되겠죠?
여하튼 여기서 올바른 환희지를 증득해서
분별 망상 잡념을 끊고 나서 드디어
출세간의 도,
부처의 길로 가는 쪽으로 점점 다가가는 쪽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2) 請說二地
解脫月菩薩이
知衆心淸淨하야
樂聞第二地의
所有諸行相하고
卽請金剛藏호대
大慧願演說하소서
佛子皆樂聞
所住第二地하나이다
(2) 제2지를 설해줄 것을 청하다
이때 보살 해탈월(解脫月)이
대중 마음이 청정하여
제2지에 행할 일을
듣고 싶어함을 벌써 알고
금강장께 청하기를
불자들이 2지 법문을
듣자오려 바라오니
연설하여 주옵소서
(2) 請說二地라
그리고 초지를 찬탄하고 난 뒤에 그 다음 뭐를 청합니까?
이구지 두 번째 경지를 설해줄 것을 청합니다.
解脫月菩薩이 知衆心淸淨하야 樂聞第二地의 所有諸行相하고
해탈월보살 지중심청정 요문제이지 소유제행상
이때 보살 해탈월(解脫月)이 대중들의 마음이 청정하여 제2 지에 행할 일을 듣고 싶어함을 벌써 알고,
이제 2 지에 행할 일을 벌써 알고는
卽請金剛藏호대 大慧願演說하소서 佛子가 皆樂聞 所住第二地하나이다
즉청금강장 대혜원연설 불자 개요문 소주제이지
금강장보살에게 청하기를 불자들이 여기 모인 모두가 두 번째 법문을 듣기를 바라고 있으니 부디 연설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해서 게송으로 말씀드리죠.
이 게송이라든지 노래로 상대편에게 하는 것은 어떻다고 했습니까?
사랑이 절절할 때 노래가 나오게 되고
슬픔이 절절할 때 애절한 시가 나오게 되고
아주 기쁠 때도 절로 나오게 되고
절에서는 도를 깨달아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쁜 마음이 들면
悟道頌을 쓰게 되고
마지막 인생을 조~용하게 장엄하게 근엄하게 정리할 때는
涅槃頌을 쓰고
이렇게 사람이 형편이 자기 지금 살아가는 처지가
극도로 표현하고 싶을 때는
짧은 말 속에서 노래 가락에 실어가지고 묻게 돼 있으니까
여기서 게송으로 금강장보살에게 청하는 것은
아주 간절한 마음이 배어 있다,
이런 뜻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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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선화님,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것처럼 신비하고 재미있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離垢地~~~
수고 하셨습니다..지선화 님!!
사랑으로 절절할 때
슬픔으로 절절할 때
아주 기쁠 때 시가 나오고
도를 깨달아 주체할 수 없는 기쁜 마음이 들 때
오도송을 쓰게 되고
마지막 인생을 장엄하게 정리할 때 열반송을 쓰고...
강의 귀절마다 아름답네요
강사스님, 지선화님,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