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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키지 여행만 다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베낭여행을 하게되어 두려움과 호기심 가득안고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작년에 두 아들만 3주 동안 태국, 라오스 베낭여행을 보낸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큰아들한테 엄마를 데리고 가라고 했었죠. 한번의 경험이 있기에...
1월 10일 인천에서 베트남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고 드디어 출발, 오후쯤 하노이공항에 도착을 했고, 짐을 꾸려 공항밖을 나오니 갑자기 넓은 세상에 둘만 버려진것처럼 두려움이 확!! 몰려왔습니다. 팩키지 여행은 안락한 분위기에서 시키는대로 하면 되는데 지금부터 모든 결정을 우리 둘이서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아들얼굴을 몇번이나 돌아보게 되고,,,아들은 걱정말라고 몇번이나 말하고,,,
하노이 시내로 가는 봉고버스에는 포항에서 처음 베낭왔다는 두 여샘도 있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두 여샘과 한방을 쓰게 되었고, 다음날 하롱베이 투어도 함께 하게 되었죠.
하롱베이!! 아마도 베트남을 대표하는 여행지가 아닐까요? 바다위에 3천 여개의 작은 섬들이 떠 있고, 기암동굴까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해적들이 여기서 해적질을 하며 숨어다닌 곳이라고 하니 해적을 찾기가 숨은그림찾기처럼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광객들이 워낙 많다보니 수많은 배들이 왔다갔다하는데 그 장면이 마치 해적선들이 몰려다닌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하노이 시내투어. 호안끼엠 호수를 시작으로, 프랑스식민시절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문받던 호아로 수용소, 역사박물관, 호치민 묘소, 못꼿사원, 우리네 국자감과 비슷하여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면서 국립대학 역할을 한 문묘까지 모두 걸어서 둘러보았습니다. 힘들면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쉴 수도 있어서 배낭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가장 기대하던 곳, 싸파를 향하여 밤기차를 탔습니다. 침대에서 한 숨 자고 나니 중국과의 국경도시 라오까이에 아침 6시쯤 도착을 하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싸파로 가는데 안개가 자욱하였습니다. 하롱베이에서 만났던 여샘한분이 말하기를 싸파에 갔다가 너무 춥고, 안개가 자욱해 아무것도 볼 수 없어 하루만에 왔다고 하여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소수민족들이 계단식논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사는 모습을 많이 기대했는데 안개가 자욱하면 안되는데,,,걱정을 하며 싸파에 도착해보니 역시나, 안개가 자욱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깟깟마을로 들어서니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여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내 어릴적 모습이 고스란히 그곳에 있었지요. 추운날씨에 손발이 트고, 동생을 업고 있는 어린 누이들, 들판에서 자유롭게 먹이를 찾고 있는 까만 돼지새끼며 닭, 오리들,,,지게에 소먹일 풀을 가득 지고 오는 아버지 모습들...너무나 정겨웠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계단식논들...오후에 싸파시장에 가니 알록달록한 고유의상들이 즐비하고,,,,
다음날 신짜이, 라오짜이마을로 투어를 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 한참을 갔는데 가이드가 내 하얀 운동화를 보더니 안된다고 호텔로 가서 장화를 빌려 신고 오라고 했습니다. 호텔까지 거리가 멀어 그냥 가자고 했고, 장장 9km를 걸어가는데 완전 진흙뻘구덩이었습니다. 우리가 봄산행을 할 때 질퍽거리는 그 길,,,그런데 장화를 신은 소수민족과 외국인들은 무릎의 바지가 흙으로 뒤덮였는데 하얀운동화를 신은 저는 바지와 신발이 말짱하니 다들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날아다녔나고? 감탄의 연발이었죠. 그동안의 산행덕분이라고 말했죠. 그날도 안개는 우리를 위해 몸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계단식 논을 보며 짐을 지고 오르내리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차로 왔지만 그 먼길을 걸어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다음날은 함종산에 올랐는데 역시 안개가 걷히면서 아름다운 싸파전경이 눈앞에 펼쳐져 얼마나 다행스러운지....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작은 분수대에서 아들의 사진을 찍으며 포즈 설명을 하다 우리 아들이 퐁당 빠지고 말았죠. 그 추운날씨에 다 젖었으니...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재밌어 이 나쁜 엄마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짬돈언덕으로 가는 길에 엄청난 높이의 폭포도 보고, 싸파여행은 날씨마저 우리편이라 순조롭게 끝난것 같습니다.
다음날 일요일에만 재래시장이 열리는 박하로 향했습니다. 알록달록 전통의상을 입은 화몽족여인들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은 무척이나 이국적이었습니다. 가축시장에 끌려온 동물들, 먹거리장터, 자수작품들.. 정말이지 볼거리가 풍성하였습니다.
싸파, 박하투어를 마치고 밤기차로 하노이에 도착하니 아침 6시,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의 경주와 같은 문화유적이 많은 훼로 가야하는데 싸파에서 만난 한국분들이 캄보디아자랑을 많이 하기에 베트남 일정을 줄이고 캄으로 빨리 가기위해 훼와 호이안중에 하나를 포기하기로 했는데 모두가 호이안을 추천하기에 한없이 남쪽으로 내려 가야했습니다. 그런데 대낮에 기차를 타고 12시간 가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기에 낮동안 계획에 없던 하노이 남쪽 닌빈의 땀꼭을 가기로 하고 하노이 시외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마침 7시에 떠나는 버스가 있어 예매를 하고 탔고, 정확히 7시에 출발한 이 버스는 승객들을 더 태우기 위해 장장 1시간동안 터미널 주변을 뱅뱅 돌며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닌빈의 땀꼭은 또 하나의 하롱베이였습니다. 다만 강위에 펼쳐진 풍경이라는 것이 다를뿐, 두 아줌마가 저어주는 보트를 타고 천천히 둘러보며 세 개의 동굴도 지나고 아기자기 하다는 것,,,웃으며 친절하게 노를 젓던 두 아줌마는 어느 순간 기념품 판매에 열을 올렸고, 팁이라 생각하고 직접 수놓은 티셔츠 2장을 사주었습니다.
호이안으로 가기위해 다시 밤기차(물론 침대기차)를 타고 다낭으로 향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같은 호실에 있게 된 4인 가족과 바디랭귀지도 하고, 우리에게 삶은 계란을 사주며 웃는 친절한 가족들,,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아침에 다낭에 도착해 다시 1시간정도 시외버스를 타고 호이안으로 가야하는데 차장의 바가지요금이 심하다고 가이드북에 있기에 미리 같은 차를 타는 청년에게 요금을 물어 1인당 만동임을 알았습니다. 버스 차장이라고 하면 예쁜 아가씨일 것 같지만 무섭게 생긴 아저씨에 놀라죠. 아니나 다를까 우리에게 미리 만들어 둔 차표를 내밀며 5만동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1만동이라 우기니 결국 2만동을 내라고 해서 어쩔 수없이 주고 말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어렵게 찾아간 호이안,, 마을 구석구석에 역사의 향취가 깊게 배어 있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한때는 서구 상인들이 드나들기도 하였고, 중국 화교들과 일본인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거주하였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일본식, 중국식, 베트남식 장식이 어우러진 오래되고 멋진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다시 야간버스를 타고 달랏을 가기위해 호텔에 들어왔는데 싸파에서 만났던 스웨덴노부부를 다시 만난 것입니다. 너무나 반가웠는데 영어가 안되니 표현을 못하는 이 답답함...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 순간입니다.
해변휴양지로 유명한 나짱을 거쳐 침대가 있는 버스를 타고 해발 1500m 고원의 도시 달랏을 향해 7시간을 달렸고, 가는 길의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고원도시라 1년 내내 날씨가 초가을 날씨의 쾌적함, 프랑스 식민시절에 개발되어 프랑스풍의 건물과 도시전체에 만발한 꽃들,,,베트남 신혼부부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도시라고 합니다. 하노이에서 3년째 살고 있다는 동갑내기 아저씨와 택시투어를 같이 했는데 베트남 도시들 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하네요. 무엇보다 달랏대학교에 근무하는 한국인 교수님이 비닐하우스 재배를 보급하여 1인당 국민소득도 베트남에서 최고이며, 한국인에게 매우 호의적이라고 하니 퇴직후 여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거리도 많았지만 밤에 야시장에 가니 먹거리도 정말 풍부하였습니다.
달랏에서 1박을 하고 호치민을 향해 또 6시간을 달려가는 길가에 커피농장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곳곳에 커피를 말리는 모습들도 보이고,,,호치민시내와 구찌터널 투어는 마지막 일정에 넣기로 하고(어차피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호치민공항에서 탑승을 해야하기에) 메콩강투어를 하며 국경을 넘기로 하였습니다. 세계지리시간에 많이 들었던 메콩강은 정말 어마어마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젖줄이기도 하지요.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인도차이나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긴나라인 베트남은 지역마다 국민성이 확연히 다르다고 합니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방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언변이 뛰어나며 훼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 사람들은 태풍의 피해가 심하다 보니 생활력이 무척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명대학의 진학률이 제일 높다고 하네요. 공부만이 살길인 것이죠. 반면 베트남 과일의 70%를 생산하고 커다란 평야가 있는 메콩강 주변 남부 사람들은 잘 놀고, 느긋하면 급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작은 배에 과일을 싣고 다니며 판매하는 사람들, 메콩강바닥의 진흙을 퍼내는 커다란 배, 평야에는 모내기를 금방한 논부터, 한창 모가 자라는 논, 수확을 하는 논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4번까지도 벼농사를 짓기도 한답니다. 캄보디아도 건기인 겨울에 물이 있는 논은 어디든 모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국경도시 쩌우독 투어하고 1박후 또 한없이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국경에서 비자발급을 받고 넘어가는데는 30분이 조금 더 걸렸을뿐입니다. 국경을 넘어서니 글자부터 완전 달랐습니다. 아랍어처럼 보이는 꼬부랑 글씨는 정말 낯설었습니다. 수도 프놈펜에 도착하여 숙소를 잡고 화려한 왕궁과 건물자체가 명품인 국립박물관, 은으로 만든 실버파고다, 킬링필드의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뚜얼슬렝박물관, '성자 눈썹의 절'을 뜻하는 왓 우날롬을 모두 걸어서 다녔습니다. 캄보디아에 가니 우선 사람들의 표정이 달랐습니다. 뭔가 전투적이며 거칠어 보이는 베트남사람에 비해 미소를 띈 얼굴들이 너무 친근감 있었습니다. 바가지요금도 없고,,,
프놈펜에서의 1박후 다시 6시간의 버스를 타고 앙코르유적이 있는 씨엠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버스안에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었습니다. 장거리 버스는 우리의 선택권보다는 어느 시간에 출발하느냐에 따라 버스의 질과 요금까지 달랐습니다. 씨엠립으로 가는 길에는 산이 전혀 보이지 않고, 끝없는 평원이 이어졌습니다. 논과 과수원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지만 산이 없어 다소 지루하였습니다. 밤이 되어 씨엠립에 도착하였고, 툭툭을 타고 처음으로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로 갔지만 예상보다 비싸서(12달러) 몇군데를 갔지만 방이 없어 할 수없이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너무 지저분하고 가격도 비싼편이라 이틀만 자고 바로 옆에 6달러하는 외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 4일을 머물렀는데 깨끗하고 매일 청소까지 해주니 최고였습니다.)
먼저 온 대학생들이 자전거를 빌려 앙코르투어를 했다고 하기에 다음날 아침 일찍 자전거를 빌리러 갔습니다. 중학교때 자전거를 배우다 큰오빠한테 ‘여자가 자전거타면 안된다고’ 그 이유도 모르는 야단을 맞고는 타 본적이 없는 자전거인데 왠지 자신감이 생겨 연습 삼아 타보니 중심도 안 잡히고 기우뚱거려 포기할까하다가 몇 번의 연습 끝에 드디어 빌려서 출발하였습니다. 오토바이가 많고 교통질서가 엉망인 베트남에서는 빌릴 엄두를 못내지만 순한 사람들과 교통질서를 지키는 이곳에서는 가능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오르막이 없는 밀림속 평지라 괜찮았습니다. 아!! 시원한 바람을 안고 밀림속을 달리는 그 기분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왕복 24km지만 사원들이 흩어져 있어서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는 거리는 40km정도였지만 엉덩이가 조금 불편할뿐 괜찮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마지막날에도 역시 자전거를 빌려서 투어를 했습니다.
저녁에 게스트하우스 사장한테 이틀정도 여유가 있는데 가볼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최일도 목사님의 ‘밥퍼’ 다일공동체제단에서의 봉사활동을 권하셨습니다. 아들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다음날 툭툭을 빌려 타고 갔습니다. 동양최대호수인 똔레샵호수입구에 있는데, 우선 자세한 안내를 받고 계란말이를 명령받았습니다. (그곳 원장님은 SBS 단비프로에서 지하수를 뚫는 방송에 나온분이었습니다.) 평소 제일 자신없는 것이 계란말인데,,,그렇지만 열심히 계란말이를 하고 아들은 썰어서 담고,,,하나투어에서는 팩키지 일정으로 반나절봉사활동을 하였는데 좋은 생각이라 여겨졌습니다. 가족여행객들에게는 아이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교육이 될 듯하였습니다. 11시가 넘어 4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왔는데 정말이지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신이 먹을 밥을 먹지 않고 집에 있는 형제와 나눠 먹기위해 비닐봉지에 담는 그 모습,,,밥한톨 남김없이 다 끌어넣는,,,,어린동생의 손을 잡고 온 언니와 남루한 옷차림의 아줌마, 할머니까지...부족함이 없이 지내는 우리 아이들과 너무나 비교되었습니다. 오후에는 ‘빵퍼’에서 빵포장하는 일을 하고,,,그곳에서 만든 빵은 프놈펜까지 배달된다고 합니다. 씨엠립에서의 마지막날에도 쉴까하다가 아이들 눈망울이 눈에 밟혀 한 번 더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주변의 학교에 가보니 환경이 열악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작은 교실에는 전등도 없고 오전에는 중학생이 공부하고 오후에는 초등학생들이 어두워질때까지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학교옆에는 한국의 국민은행이 지어준 유치원건물도 보였습니다. 옥상에서 아이들이 배구를 하고 있기에 같이 하였는데 너무나 딱딱하고 안좋은 배구공으로 어찌나 잘하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날은 앙코르왓의 일출과 먼거리에 있는 반띠아이 쓰레이사원을 보기위해 툭툭을 빌려타고 투어를 하였습니다. 5시에 출발 앙코르왓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먼저와 연못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내내 날씨는 우리편이었습니다. 앙코르왓의 일출도 쁘레룹에서의 일몰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런데 일몰을 끝까지 보고 나서 내려오니 금방 어두워졌고, 밀림속이라 짐승들 울음소리에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서는듯 무서웠지만 뒤에서 든든한 아들이 따라오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앙코르 유적은 태국의 아유타야왕국의 침략으로 몰락하기전 800년대부터 1400연대까지의 왕들이 세운 사원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중에 제일 건축미가 뛰어난 곳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칭을 이루고 있는 ‘앙코르왓’이지요. 앙코르왓은 순수 사람의 힘만으로 37년에 걸쳐 만들어졌는데 최신식 장비를 이용하여 다시 짓는다면 설계만 5년, 건설하는데 50년이 걸린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유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조각하기 힘들다는 사암에 어쩜 그렇게 세밀하게 조각을 할 수 있었는지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전부 돌을 가지고 조각하고 건물을 지었는데 그 많은 돌들을 어디서 가져왔을지...의문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일본, 프랑스, 네델란드에서 자비를 들여 보수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은 유전개발권, 광물채취권 등 잇권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참여했지만 국회에서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지금은 안한다고 합니다. 멀리 내다보고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앙코르투어 티켓은 1일, 3일, 일주일로 구분하여 팔고 있는데, 우리는 일주일동안 3번 갈수 있는 티켓을 끊었죠. 정말 많은 관광객이 엄청난 돈을 쓰고 갈텐데 그 돈이 어떻게 쓰이기에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지 안타까웠습니다.
앙코르의 수많은 사원들 중에 앙코르톰 안에 있는 부처님의 미소가 있는 바이욘사원이 가장 인상적이라 마지막날에 한 번 더 가서 아들은 그림을 그리고 저는 박윤진선생님이 빌려준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전에 읽다가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포기한 책인데 그곳에서 다시 읽으니 머릿속에 속속 들어오면서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3일동안 앙코르투어를 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기위해 점심을 미리 준비해 갔습니다.(날씨가 더워 대부분은 오전투어를 하고 씨엠립으로 다시 돌아와 점심식사후 잠시 쉬었다가 오후 투어를 다시 합니다.)
밤에 씨엠립의 번화가를 거닐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리의 농악소리가 들려 가보니 우리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하기위해 온 대학생들이 캄보디아 어린이를 위한 모금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호응이 좋아 모금이 순조롭게 되는 것을 보고 우리까지 뿌듯하였습니다.
그렇게 가슴 벅찬 앙코르투어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13시간을 달려 국경을 넘어 호치민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날 호치민 시내투어를 위해 나섰는데 엄청난 꽃시장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설날을 전후하여 일 년에 딱 1번 열리는 꽃시장이라고 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황금색을 닮은 노란꽃을 유난히 좋아하여 노란꽃 천지였습니다. 노란국화, 해바라기 등등 우리나라에서는 볼수 없는 꽃들도 많고,,,한동안 사진촬영하면 꽃 속에서 놀다가 중앙우체국으로 이동하여 사진을 찍는데, 세상에!! 갑자기 사진촬영도 안되고 카메라속에 있던 사진이 다 날아가고 온데간데 없는 것입니다. 호이안에서 usb에 한 번 저장하고 방심하여 그후 옮기지 않았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었죠. 호치민의 유명한 통일궁, 전쟁박물관, 구찌터널을 투어하면서 사진도 못찍고.....다행히 돌아와 서비스센터에서 사진을 복구해주었지만 100% 다 된 것이 아니고 꽃시장사진 등 일부는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사진 순서도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그나마 그정도라도 복구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첫 배낭여행은 정말 만족스러웠고 다음에 다시 간다면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영어회화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누군가 그랬다죠?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 가면 안 되고, 가슴이 떨릴 때 가야 된다고....
첫댓글 베트남 배낭여행기가 궁금해 들렀더니 역시 부지깽이도 바쁜 2월임에도 여행기와 사진이 대보름 오곡밥에 나물 걸친 것처럼 푸짐하게 한 상 차려져 있네요.내가 가 본 곳을 하선생님은 어떤 시각에서 보고 왔을까가 궁금하더라구요. 결론은 역시 '아는 것 만큼 보인다'가 진리라는 말을 증명하네요.난 몇 개월 떨어져 있던 남편 만난 김에 여행이나 하는 거였고,하선생님은 작정하고 아들에게 산교육도 하는 차원이라 자전거로 앙코르왓투어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는 걸 보니 수준이 다르네요.멋집니다.6개월전에 입에 올렸던 베,캄의 지명들을 떠올리게 해준 여행기 너무 감명깊게 잘 읽었어요.
이렇게 생생한 설명과 화면을 공짜로 봐도 되나요? 다람쥐회장님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지요! 정말 감명있게 보고 느꼈습니다. 풍부한 상식과 내면을 볼수 있는 안목 부럽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큰 재산남겼네요. 고맙습니다. 시간날 때 더 볼께요. 우리 수채화 회원들에게 안내해도 되겠지요?
이제사 보게되어 죄송합니당. 기 보지 않은 곳이라 상상도 잘 안되지만 정말 멋진 곳이란 막연한 생각과 외국여행 다녀 온지가 까마득히 7년이 넘었네요. 그동안 뭘하고 살았는지 원,,,,,,,,,,아들과 함께라니 더더욱 부럽고 언제나 열정적인 산대장님 존경합니다. 동영상 보고 다시 글 올리게요.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돌아보게 했던 베트남의 농촌풍경, 재래시장의 모습도 감동이고 특히 텔레비젼에서, 책에서 말로만 듣던 앙코르왓의 모습이 이른 아침 찐한 감동으로 다가오네요. 죽기전에 다리에 힘 있을 때 꼭 다녀와야겠어요. 2012년 여름쯤???
어찌나글을 상세히 잘 썼던지 이대로 베트남 여행을 가도 될 것 같네. 봉사활동까지 하고 다양한 경험을 아들과 함께 했다는 것에 너무 부러워. 진짜 여행하다보면 영어공부가 필요한것 공감해. 언제 영어공부 도전해봐야겠는데...라이브 보는것같이 여행기 읽게해줘서 고마워.
아들과의 단둘이 배낭여행 떠나 이렇게도 할 말이 많으시군요.^^ 외로웠던 동연샘의 글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ㅎㅎ
부러워요. 떠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고스란히 자유롭게 보여 주시네요... 산대장의 활기찬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아요 . 저도 떠나고 싶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