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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때문에 너무 힘드십니까?(2087.2021.6.13)
시37:1-9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을 얻는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은 다윗이 나이 많아 기록한 시입니다. 이 시편의 고백은 다윗의 파란만장한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고백이며, 악인의 변명을 보고 회의에 찬 젊은이들에게 고하는 교훈입니다. 특히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일의 계획과 섭리에 지극히 간섭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된 우리는 죄 많은 세상 속에서 죄 아래 거하며,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결코 우리 성도들이 세상과 담을 쌓고 우리들만의 거룩한 성을 쌓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어둠의 빛, 썩어져 가는 곳에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각자 각자에게 빛과 소금의 모습을 다르게 주셨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과 환경은 분명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길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서 견디고 견디다가 포기하고 공동체를 떠나는 걸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은 아주 좋지 못한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다른데가도 그와 같은 사람이 거기에 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교회를 자꾸만 옮기다가 보면 갈 때가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아무리 신경을 안 쓰려 해도 자꾸 눈에 거슬립니다. 그리고 나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견디고 견디다가 나중엔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나와 맞지 않아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직장생활 할 때에도 있었던 일이고 여러분도 직장생할 하면서 이런 일이 너무 많이 겪었을 것입니다. 같은 직장 안에서 상사때문에 아래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이런 고통스런운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잘 지내면 좋은데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따지고 핍박하고 고통을 주고 힘들게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떻게 그것을 이겨 내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생각을 아주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세상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 생각과 다르다고 힘들어 하지 말고, 그렇다고 도망 치지도 말고, 그 사람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내 옆에 두신 하나님은 왜 내 옆에 그 사람을 두셨을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분명 무슨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이 내 원수가 아니라 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를 쓴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는 사람 때문에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사울 왕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윗을 정말 힘들게 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울을 대적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마음속의 괴로움과 고통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아뢰었습니다. 심지어 너무 힘들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죽여 달라고, 그 집안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정도로 그는 솔직했습니다.
시109:8-10절‘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으면 이런 엄청난 기도를 했겠습니까?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런 기도를 했겠습니까?
다윗 왕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오늘 우리라고 그런 사람이 없겠습니까? 우리에게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용서받은 사람이고 구원의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람 때문에 힘들다면 해결책은 하나님이 제시한 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몇 가지 처방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사람 때문에 힘들 때에도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 때문에 힘들면 은근히 짜증이 나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그러면 정말 힘들고 어렵습니다. 특별히 악을 행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괴롭힘이 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1절‘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이는 명령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시는 확실한 명령입니다.
만약 행악자가 마땅히 벌을 받는다면 불평할 것도, 투기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악자의 흥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는 더 완전하여지며,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행악자와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우리 성도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떠난 자들의 흥함을 보고 우리가 그들의 길을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유익이며, 우리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불평하지 않을 수 있나요? 어떻게 시기하지 않을 수 있나요? 불평하고 시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불평하고 시기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들이 잘 되고 큰소리치고 우리보다 더 잘 산다고 생각하기에 불평하고 시기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일시적으로 그런 것 같으나 그들의 결말은 그렇게 잘나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찌되나요? 2절‘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풀 같고 푸른 채소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지않아 베임을 당하고 쇠잔하게 될 것이기에 그렇게 불평하고 시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146:3-4절‘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향해 비방하고 공격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많았습니다. 정말 악을 행하는 자들이었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향해 불평하거나 시기하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임을 알고 책망하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성전을 장사꾼들의 장사판으로 내어준 상황 속에서도 장사꾼들을 내 쫓으시고 소와 양들을 내어 쫓으면서도 절제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불평’이 뭡니까?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마음에 들거나 차지 않아 못마땅하게 여김’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 못마땅한 생각을 말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또‘시기’가 뭡니까? ‘샘을 내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질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평하고 시기하는 것은 어디서 나오느냐면 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에 두 명의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제의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두형제의 20년 후의 모습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형은 우리나라에 유명한 의과대학 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주운동’을 전개하는데 앞장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아버지보다 더 심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냐는 질문에 두 형제의 대답은 똑같은 답변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알코올 중독자인 우리 아버지 때문입니다’형은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때문에 나는 저러면 안 된다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나는 아버지 때문에 되는 것이 없었다고 한탄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가고 만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사람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어떻게 대하고 살아갑니까? 혹시 죽고 싶다고 하거나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않습니까? 작은 소리 가지도 하나님은 다 들으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힘들면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기도하여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2.사람 때문에 힘들 때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맡겨야 합니다.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불의를 행하는데 그냥 불평하지 말고 시기하지 말고 마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나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악을 행한다고 우리도 똑같이 맞대항하여 악을 행하면 같은 부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때 내 방법으로, 내 힘으로 그들과 싸운다고 해결됩니까? 안됩니다. 원수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3-4절‘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내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하나님을 의뢰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고 불의를 행할 지라도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가 갖추어야 할 합당한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그토록 사울 왕이 죽이려고 쫓아다닐 때 그를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무리 악을 행하고 불의를 행해도 절대로 대적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맡기도 선을 행했습니다. 하루는 다윗이 굴속에 있을 때 사울 왕이 그 사실을 모르고 굴속에 들어와 잠을 잡니다. 그러자 다윗의 신하들은 다윗에게 원수를 갚을 좋은 기회가 왔다고 죽이라 합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잠들어 있는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고 나갑니다.
왜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나요? 그토록 자기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적을 왜 그냥 두었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를 심판하실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12:19절‘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결국은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배신할 자가 누군지 아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될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들을 대적하거나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든지 복수하고 대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다 해결하시고 결국은 승리케 하실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5-6절의 말씀을 우리는 마음깊이 새겨야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사람 때문에 길이 막혔어요? 죽을 것 같나요? 정말 억울하지요? 힘들지요? 그래도 우리 길을 여호와께 맡기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옳다는 것을 온 세상에 들어 내시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백내장 수술을 하고 한달은 잘 보였는데 그 다음에 눈에 문제가 생겨나서 엄청난 아품을 겪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고민하고 기도하느라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지옥같은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한숨만 나오고 기도하려고 엎드리면 주여 소리밖에 안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성경을 펼쳐 읽다가 제 눈에 확 들어오는 성경구절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그 말씀을 수없이 읽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설교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말씀 중 한 단어가 내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 단어는 ‘맡기라’였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고 하나님의 응답의 때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맡기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신다’제 힘으로는 이 눈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제 방법으로는 제 마음속에 아픔을 치유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도경이가 군대 가기 전에 저랑 같이 천봉산을 여러번 올라 갔습니다. 2021년 4월 19일 천봉산에 저 혼자 올라가면서 눈이 시원찮으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올라갔다가 왔는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더하라고 치유의 은혜를 주셔서 95%가 회복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사람도 저에게 눈이 어때요 하면 95%는 된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렇게 설교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설교 준비한 날이 4월 19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이 준비된 설교를 하는 날에는 온전하게 치유될 것을 믿습니다.ㅎㅎ 오늘 6월13일 설교하니까 근 두달안에 온전히 치유되어서 활동하는데 지장없도록 치유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이든 무엇 때문에 힘든 것이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잠16:3절‘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하셨습니다. ‘맡긴다’는 말은 헬라어로 ‘세게 내 던진다’,‘멀리 던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뜻은 내가 붙들고 있지 않고 하나님께 강하게 넘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말로는 맡긴다고 했는데 불안하면 그것은 맡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께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소원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무조건 기도하면서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믿음만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바로 이 믿음만이 보배입니다. 이 세상 것 다 없어진다고 하여도 믿음 하나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릴 수가 있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티끌만도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에만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든지 다 맡아서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 용광로 속에는 무엇을 넣더라도 삽시간에 모두 녹여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의 능력은 마치 용광로와 같아서 우리 인간들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일단 주님의 능력에 맡기기만 하면 일시에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이 모든 문제를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밤에 한줄기 밝은 빛을 비춰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어둡고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한줄기 빛이 비추었으니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창1: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명력이 생깁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아무리 못쓰고 버리는 폐품 고물도 생산 공장에 가면 새롭게 만들어지듯이 아무리 죄짓고 몹쓸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임하면 새롭게 거듭나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의지와 힘과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성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나의 노력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에 맡길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필요하신 도구로서 새롭게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슥4:6절‘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히4:12절‘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9:23-26절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에 예수님이 그곳에 가셔서 ‘달리다굼’ 하시니 죽은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눅7:14절 예수님이 나인성에 가셨을 때에 성에 사는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장사지내려고 가는 것을 멈추게 하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그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요11:43절에는 베다니 마을의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 나사로를 죽어서 장사지낸 지 나흘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그 무덤에 가셔서 무덤 문을 열게 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라’하시니 죽어 장사지낸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베로 몸을 동인 채로 살아 나왔습니다. 겔37:1-10절 말씀에는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을 보니 골짜기에 많은 뼈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뼈들이 심히 말랐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니까 그 뼈들이 다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살아 역사 하는 생명의 능력의 말씀은 지금도 나와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죽었습니까? 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죽었습니까? 살려야 합니다.여러분의 기도가 죽었습니까? 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사와 은혜가 죽었습니까? 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감사가 죽었습니까? 살려야 합니다. 질병으로 인하여 절망하고 있습니까? 살려야 합니다. 무엇으로 살릴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실패하지 않으려거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방황하지 않으려거든, 사업이 성공하려거든, 자녀가 올바로 자라기를 원하거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엡6:4절‘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 때에 생명의 능력, 창조의 능력, 보검의 능력, 감찰의 능력, 인도의 능력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십니다. 믿는자에게 살려주십니다.
무엇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까? 우리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장래를 맡겨야합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길’이라는 말은 ‘장래, 미래’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맡기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 전문가입니다. 환자는 질병의 전문가인 의사에게 가고, 건축을 하려고 하면 설계의 전문가 건축가에게 가듯, 오늘 우리의 장래는 장래의 전문가인 하나님께 나아가서 맡겨야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앞에 인생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맡기는 훈련을 하십시오.
우리 인간이 장래에 어떤 길을 걸어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아십니다. 신30:15절‘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잠16:3절‘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16:9절‘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길을 아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계획과 미래의 비전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푸른 초장으로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시는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짐을 여호와께 맡겨야 합니다. 시55:22절‘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오늘날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모든 무거운 짐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순간순간 우리를 짖 누르는 많은 염려와 근심을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기뻐하며 감사하며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늘 함께 하셔서 도와주십니다. 가난의 짐, 질병의 짐, 불안과 위험의 짐, 염려와 근심의 짐을 다 우리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어떤 짐이든지 능히 맡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줄이 오직 예수입니다.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벧전5:7절‘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염려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을 우리가 맡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어려운 일들을 내 힘과 노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니 염려와 근심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무거운 짐을 그대로 지고 그 무거운 짐과 더불어 씨름을 하여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여러분이 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맡깁시다.
모든 행사를 맡겨야합니다. 잠16;3절‘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개인의 일, 사업, 직장 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등 우리가 행하는 모든일들을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하면 그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 힘으로, 내 수고로, 내 노력으로만 하려고 하니 낙심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마11: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염려를 하려면 한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염려를 그 분께 맡기기만 하면 해결해 주시리라 약속하셨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의 무거운 짐과 고통스러운 문제를 온전히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을 다 이루어 주십니다. 5절‘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시55:22절‘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인생 문제를 다 맡겨 드릴 때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붙들어 주셔서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게 해 주십니다.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벧전5:7절‘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돌보심이니라’ 문제는 오늘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얼마나 맡기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불신자들은 맡기려 해도 맡길 곳이 없어서 온갖 어리석은 짖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맡길 대상이 있고 그 하나님께서 제발 맡기라고 간청까지 하는데도 우리들은 맡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장래를 오직 하나님께 맡길 때에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과거부터 현재까지 온갖 험난한 인생길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와 동행하시며 위로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우리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겨 드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참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의 모든 짐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근심과 걱정, 질병과 고통, 환난과 역경, 핍박과 고난의 모든 짐을 다 하나님께 맡겨 드릴 때에 모든 것이 해결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새 생활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과 함께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사람 때문에 힘들 때에도 잠잠히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사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정말 참기 힘들어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사람 때문에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7절‘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참고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분을 그치고 불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8절‘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화가 나죠, 분노가 생깁니다. 그래서 불평하게 되지만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요?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은 악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시27:14절‘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참고 기다릴 수 있나요? 여기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는 것은 ‘입을 다물고’참고 기다라는 것입니다. 왜 입을 다물어야 할까요? 입을 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원망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니 입 다물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친히 그렇게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총무로 일할 때 주인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녀는 요셉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동침하자는 것입니다. 그것도 날마다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믿고 신뢰한 보디발 장군에게 배신하는 짓이기도 하고 하나님께도 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해보니 그 여인만 혼자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다 내보낸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셉씨 사랑해요’하고 끌어안으니 어쩝니까?
그때는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 최고입니다. 요셉도 무조건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겉옷이 벗겨졌습니다. 결국 한을 품은 여인이 소리를 지르고는 요셉을 강간미수범으로 누명을 씌워 감옥에 처넣습니다. 그런데 그때 요셉은 자기의 억울한 일을 주인 보디발 장군에게 변명하거나 해명하려고 힘을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저 감옥에서 죄수로 지냅니다. 그러다가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아 감옥 안에서 왕의 신하죄수들을 수종드는 사람이 됩니다. 그때에도 자기 주인을 향해서나 유혹한 여주인을 향해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러기에 잠잠히 참고 기다린 것입니다. 때가 되면 억울한 누명은 벗어질 것을 믿은 것입니다. 결국 약 2~3년이 지난 후 요셉은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만약 요셉이 자기 무죄를 해명하고 주인을 원망하고 불평했다면 어찌되었을까요? 아마도 그가 무죄를 입증하여 죄 없음이 들어났다고 해도 다시 보디발 장군 집에 노예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인은 자기의 악을 감추려고 아무도 모르게 요셉을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렸더니 때가 되매 하나님이 그에게 바로왕의 꿈을 풀게 하시고 그런 일로 하루아침에 총리가 되게 하십니다. 누가 했나요? 하나님이 요셉의 나이 17살 때 주셨던 꿈을 성취하게 하기 위해 일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정말 억울하고 힘들어도 참고 기다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도 제자들이 하는 답답한 짓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3년씩이나 가르쳤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불평하거나 원망치 않습니다. 그저 참고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능력도 없고 믿음도 없는 그들에게 말도 안 되는 거룩한 사명을 부여합니다. 막16:15-16절‘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어찌 보면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도 못 믿는 제자들에게 세계선교를 명령합니다. 어떻게요? 우리 주님은 그들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들 속에서 일하시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온 천하에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승천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힘들고 정말 어려운 사람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내 맘에 안 들고 골치 아픈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니 그도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이 그를 그렇게 사랑하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사랑하고 끌어 앉기는 힘들어도, 불평치 말고 입을 다물고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해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결 하실까요? 입 다물고 참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9절처럼 역사하실 것입니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악인이 승리하는 것 같으나 결국은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집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워도 묵묵히 참고 기다린 사람은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인간관계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하지 마세요. 정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님 앞에 맡기시고 하나님의 일하심과 때를 묵묵히 참고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승리한 자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성령 안에서 그 승리를 풍성히 누립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진실로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나와서 기도도 하고, 낮에도 나와서 기도하고, 밤에도 철야하며 기도해 보시면서 그러면 성령이 임하게 되고 마음에 평안함을 얻게 되고 문제가 해결되어서 다 예쁘게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성령이 임하고, 능력이 임합니다. 우리 모두 승리하신 그리스도 예수 그리고 성령 안에서 이기고 이긴 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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