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의 이별
1972
작사 : 정 두 수
작곡 : 박 춘 석
노래 : 문 주 란
이 노래가 만들어지기 전인 1968년은 어려운 국방여건하에서도 유사이래 최초로 해외파병(월남전)를 결심한 때였지요
병사들의 전투경험도 쌓고 외화도 벌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판단했을 것이다.
달러가 있어야 원유를 도입할 수 있고, 휘발유를 만드는 유류정재공장도, 제철소도, 발전소도 ..
이들은 모두가 해외 기술력과 기자재에 의존해야만 했으니...
60~70년대 우리의 서울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지요.
청계천과 중량천변엔 판자촌으로 덥혀 있었고,
정화조가 없는 대다수 주택에서는 오폐수를 곧바로 천변에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도시 농촌 할 것없이 우리들 모두의 삶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어야 했고
연탄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식도 라디오 뉴스시간에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월남전에 참여할 경우 많은 보수가 주어진다니 동생들만이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보낼 수도 있겠고
아무래도 아버님 혼자힘으로는 불가능함을 뻔히 알고 있는 맏아들로서는 아버님을 도와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제대후에도 뭔가 할 수 있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죽고 사는 것은 나의 운명으로 맡기고 ...
군복무기간중에 돈도 벌 수 있어 좋겠다며 자진 참여를 결심한 자도 있고,
어떤 병과는 기본훈련 마치자마다 월남 파병이 결정된 부대로 배치받은 자도 있었다고 한다.
강원지역에서 선발된 장병들은 양평, 용문에 집결하여 출전 채비를 점검하고
부산항 출항일정에 맞추어 청량리역으로 이동했는데
청량리역에서 내린 병사들이 동대문, 종로, 광화문, 서울역을 거쳐 용산역으로
1차로 해병대, 맹호부대, 백마부태, 십자성부대, 청룡부대, 비둘기부대..
저마다의 깃발과 군악대를 앞세우고, 이기고 돌아오라는 환송시민의 격려를 받으며
힘차게 행진하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제가 청량중학교에 다닐 때였으니...
독일에서 간호원과 광부로 근무하면 많은 보수를 준다는 정보를 들은 누님과 형님들 역시도 국내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으니 이참에 부자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선발준비해서 독일로 떠나셨다.
중동지역 건설경기도 좋았던 시절이라 타일공, 철근공, 래미콘타설, 용접공, 목공, 중장비운전원, 조리원...
건설현장 하부기능인력으로 중동 해외현장 근무를 결심했다.
결혼하자마자 떠나는 자도 있고, 약혼상태에서 떠나는 자도 있었으니
김포공항 출국장은 처자식과의 이별, 연인과의 이별로 수많은 사연들이 많았던 때였으니
지금의 팔십대 전후되시는 분에게는 이 노래를 잊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어 그때 그시절을 회고해 보며 올려 봅니다.
1
하고 싶은 말들이 쌓였는데도
한마디 말못하고 헤어지는 당신이
이제와서 붙잡아도 소용없는 일인데
구름 저멀리 사라져간
당신을 못잊어 애태우며
허전한 발길 돌리면서
그리움 달랠길 없어 나는 걸었네
2.
수많은 사연이 메아리쳐도
지금은 말못하고 떠나가는 당신이
이제와서 뉘우쳐도 허무한 일인데
하늘 저멀리 떠나버린
당신을 못잊어 애태우며
쓸쓸한 발길 돌리면서
그리움 참을길 없어 나는 걸었네
https://youtu.be/bcwij6JEJOk
https://youtu.be/cP6mGunqtq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