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아래 도착한 곳은 향비의 전설이 깃든 향비묘의 평화로운 정원이었다.
회랑의 아치형 벽들은 이슬람 양식의 정교한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고,
그 앞의 싱그러운 정원은 긴 여정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해주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우리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있었다.
공원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웅장한 중앙 광장이 나타났다.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이국적인 탑은 고대 문명의 위엄을 자랑하는 듯했고,
그 옆으로 나부끼는 오성홍기는 이곳이 역사의 중심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빛바랜 라일락 꽃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탑을 중심으로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길 위에 있다고 했던가.
위구르 전통 도자기를 쌓아 올린 듯 독특한 모양의 항아리 기둥들이 늘어선 매력적인 산책로를 만났다.
이 이국적인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고대 도시의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벽면에는 옛 실크로드 상인들과 이 지역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정교한 부조가 새겨져 있어,
그들의 이야기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았다.
길의 끝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서역 특유의 흙빛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웅장한 가옥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건물 앞에는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위구르 여인들의 정교한 부조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윽고 '보월루(宝月楼)'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화려한 목조 건축물 앞에 다다랐다.
건륭제가 사랑했던 여인, 몸에서 이국적인 향기가 났다던 '향비(위구르명 이파르한)'를 위해
베이징에 지어주었다던 그 보월루의 기억이 이곳에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청나라 황실과 위구르 문화가 기묘하게 융합된 화려한 공간이 펼쳐졌다.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천장 아래, 건륭제의 총애를 받았던 향비의 초상화가 스크린 속에서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황금빛 옥좌와 그 뒤로 펼쳐진 글귀들은 당시 그녀가 누렸을 화려함과,
동시에 고향을 그리워했을 쓸쓸함을 동시에 전하는 듯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향비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비로운 향기 요법의 공간이 나타났다.
분홍색 커튼이 드리워진 입구를 지나면 벽면은 정교한 이슬람식 격자무늬로 꾸며져 있고,
투명한 유리병 속에는 다양한 향신료와 약재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미풍을 타고 번지는 듯한 고대의 향기 속에서 그녀의 전설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전시의 대미는 위구르족의 전통적인 의례와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방 안에는 '囍(희)' 자 문양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가마 안에는 전통 혼례 의상을 입은 한 커플의 조각상이 보였다.
비록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먼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지만,
이곳은 그녀를 기리는 이들의 마음으로 여전히 따뜻하게 채워져 있었다.
건물을 나와 탁 트인 광장으로 발길을 옮기자,
푸른 돔이 인상적인 주 건축물(대묘)을 배경으로 말 위에 나란히 앉은 두 인물의 동상이 기품 있게 서 있었다.
. 석조 기단에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진 '乾隆与香妃(건륭과 향비)'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황제와 후궁으로 만났던 두 사람의 연인으로서의 면모를 기리는 듯,
묘역 한편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그 뒷모습에서 묘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조금 더 걸어 대묘로 향하는 계단 앞에 이르렀다.
세월의 묵은 때가 묻어나는 돌계단 옆에서는 주황색 조끼를 입은 미화원 한 분이 묵묵히 주변을 정돈하고 계셨다.
화려한 전설과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오가는 이 역사적인 공간도,
결국은 누군가의 묵묵한 일상과 정성으로 단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리라.
그 평범하고도 경건한 풍경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에서 마주한 풍경은 이번 여행 중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낮게 쳐진 울타리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무덤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아치형과 돔형의 흙빛 무덤들이 질서정연하면서도 아득하게 늘어선 모습은 장엄하다 못해 고요한 엄숙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향비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그녀의 가문인 아팍 호자 일가와 수많은 이들이 함께 잠든 거대한 안식처였다.
흙으로 돌아간 이들의 영혼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묘역을 바라보며,
인간의 유한함과 역사의 무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한동안 말을 잃고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배웅해 준 것은 이국적인 아치형 문 아래에서
역동적인 손짓으로 춤을 추고 있는 위구르 무용수의 동상이었다.
흩날리는 치맛자락은 서역 문화의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번 향비묘 기행은 단순히 고대의 무덤을 보는 것을 넘어,
실크로드의 거대한 역사 속에 명멸해 간 한 여인의 삶과
위구르족의 애달픈 문화를 깊이 있게 마주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광활한 대지 위에,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흙빛 묘역 위에 남겨진
향비의 향기는 오래도록 가슴속에 진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마실정회동
첫댓글 같은곳을 보았는데 전 무얼보았는지 ㅠ
글을따라가며 추억속으로 여행해봅니다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청년말
저희는 중국인 아니다 위구르사람 이다며 활짝 웃어준 그청년~